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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더 하우스 1
존 어빙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책의 표지가 무척 상큼하다. 멀리까지 펼쳐진 녹색의 들판, 그 위에 드리운 푸르디 푸른 하늘. 그리고 탐스럽게 잘 익은 거대한 붉은 사과. 그 사과 위에 나란히 않아 있는 두 사람. 얼마나 평화롭고 얼마나 마음이 푸근해지는 풍경인가. 주변의 친구 동료들이 이 책을 열심히 읽는 나를 보고 말을 건다. "그 책 정말 재미있겠다... 표지만 봐도 정말 멋진 책인것 같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다. 정말 이 책은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 책의 흥미는 표지의 아름답고 목가적이고 따뜻한 느낌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이 책은 아픈 책이다. 아픈 이야기를 담고 있어 시종일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책이다. 한을 토로하는 비참한 내용의 책은 아니다. 오히려 책의 페이지마다 위트와 웃음을 담고 있어 미소를 짓게하는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위트 뒤에 담겨 있는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슬프다. 이 책은 정신없이 발전해가는 세상의 뒷편에서 세상과 담을 싿고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의 소박한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특이하지 않다. 특별한 괴짜도, 특별히 선한 사람도, 특별한 갈등구조를 야기하는 개성적인 인물도 없다. 그저 세상을 너무 착하지도 너무 악하지도 않게, 너무 열심히도 너무 게으르지도 않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이라고 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가 없겠는가. 오히려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보통 사람들의 보통인생을 살아가지 않겠는가. 이 책은 바로 그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에 숨겨져 있는 '진한 아픔'을 잘 파악하고 보여주는 책이다.
책이 길다. 이 긴 책이 막힘없이 읽힌다. 좋은 책은 책의 부피에 압도당하기 보다는 남겨진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다는 책을 들게 만드는 법이다. 그러나 그런 책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런데 이 특별한 것도 없는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이 바로 그런 특별한 재미를 주는 책이다. 아름다운 고장의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토록 흥미롭게 만든 것이 바로 그 많은 상을 휩쓸었다는 이 책의 저자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불려지는 이유일 것이다.
한때는 번성했으나 산업의 변화로 사람들이 떠나고 쇠퇴한 도시. 그곳에 자리잡은 고아원. 병원을 겸하고 있으나 병원의 기능보다는 출산을 돕고, 출산후 버려진 아이를 키우다 입양을 하는 것이 주 기능인 병원겸 고아원의 이야기이다. 산업이 쇠퇴한 고장을 두고 사람들이 떠나가듯이, 원하지 않는 아이나, 키울 능력이 안되는 아이를 두고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간다. 뚜렷한 산업이 없어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그곳에다 자신의 몸에 달린 혹을 떼어놓고 가려는 사람들뿐이다. 이 책은 그래서 그 떼어진 혹들의 삶과, 그 혹처럼 떼어져서 남겨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책이 고아들의 삶을 다룬다고 해서 축축하거나 칙칙한 책은 아니다. 어느 곳에서나 태양은 동일히게 밝게 비치듯이, 그 좋은 일이라곤 없어보이는 곳에서도 사람이 살고, 사람들의 삶에는 나름의 즐거움과 나름의 기쁨이 있다. 그곳에서 태어난 한 아이가 특출한 재능을 보이지만, 그 재능을 재대로 발휘할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혹 영악함을 최대로 발휘해 그 기회를 잡을 가능성조차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순박한 사람들은 그런 기회에 눈빛을 부라릴만큼 영민하지 못하다. 그들이 바라는 삶은 그저, 자신들의 이 위태로운 평화가 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평생을 즐거움이란 것과 담을 쌓고 남들이 보기에 하찮아 보이는 그 변변치 않은 삶의 지루함을 이겨내며, 그들의 하는 일이 보람되는 것이라는 확신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라났으나, 어느새 장성하여 젊음을 얻었고, 그 젊음의 피가 인도하는 바를 따라 세상으로 날개를 펴고 떠난 아이들이 있다. 책의 중반 이후는 그 곳을 떠난 아이들의 삶과, 그 아이들이 떠난 곳의 이야기가 충첩되면서 그려진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성장에 따른 아픔을 겪고, 아이들을 떠나보낸 곳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 쇠락의 경과를 겪어간다.
시간의 힘은 동일하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따라 사람들의 삶이 결정된다. 세상에는 법과 윤리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그 법과 윤리는 종종 현실과 유리된 이상을 추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이 지키고 헌신하는 가치는 세상의 윤리와는 드라다. 그들이 세상과 동떨어져 살기에 세상의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다. 이 책은 오히려 세상이 삶의 후미진 곳에서 살아가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질타한다. 이 책에서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갈등. 하나님의 일과 악마의 일 사이의 갈등. 그것에 대한 묵시적인 공감과 그것에 대한 반항. 그것이 이 책의 주된 갈등구조의 하나를 형성한다.
또 하나의 갈등은 그 쇠락한 마을과, 그 마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유택해보이는 사과과수원에서의 삶의 대비이다. 고아원에서 몸을 일으켜 사과나무 과수원에서의 삶의 자리를 마련한 사내는 자신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를 포기한다. 그저 타인들의 행복을 바라보며 그 행복이 마치 자신의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기뻐한다. 자신도 사랑을 받기를 원하지만 자신이 받는 사랑보다는, 자신이 남들에게 주는 사랑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는 것. 그것은 바로 그가 떠나온 그 솨락한 마을의 고아원의 가치관과 동일하지 않는가.
세월은 가고, 젊은 시절 고아원을 만든 의사가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날 정도로 긴 새월이 지나고, 오랜동안 그와 함께 생활하고, 오랜동안 그를 존경하며 그에게서 배우고, 오랜동안 그를 떠나 독립된 삶을 추구하고, 오랜동안 그를 이해할 수 없어하던 사내는 오랜시간이 지난후 그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다시 그가 일군 터전, 그의 오랜 삶의 역사인 고아원으로 돌아간다. 이미 세상을 떠난 고인과의 진정한 화해와 사랑이 표현되는 것이다.
이 길고 긴 서사를 이끌어가는 이야기는 더할나위 없이 감동적이다. 오랜만에 읽어보는 명작의 감동을 느낄수 있다. 현대적인 감성과 현대적인 필치로 태어난 새로운 대작이고 명작이다. 많은 칭찬이 결코 아깝지 않은 좋은 감동을 주는 책이다. 사람의 부질없는 욕망과 그래도 아름다운 청춘과, 사람들이 살아가며 겪는 아픔과, 그 아픔들이 결국은 화해하고 용서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다시 사랑과 헌신이라는 가치에로 돌아가게 된다는 고전적인 가치관이 현대적인 필치로 다시금 우리에게 등장한 참 좋은 읽을 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