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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자살 클럽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그 시절.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의 수도를 경성이라고 불렀던 시절. 전통과 신문물이 부딪히는 격랑의 한가운데인 경성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다. 식민지였기에, 그들은 근대를 식민지를 통해서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겹겹의 아픔을 지닌채 삶을 살아야 했다. 식민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아픔. 전통사회에서 자생한 근대가 아니라, 이식된 근대를 통해 새로운 문물에 접해야 했던 사람으로서의 아픔. 사람의 삶은 원래 아플수 밖에 없는 것이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는 유난히 더 큰 아픔이 있을수 밖에 없었다.
전봉관이라는 작가의 손을 통해 우리들에게 그저 멀고 아득한 시간대로만 여겨지던 식민지 경성에서의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들이 하나 둘씩 우리들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단순히 그 시절... 로만 여겨지던 관념적인 삶의 시간대가, 이제 전봉관이라는 예리한 시간추적자의 손을 통해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살아있는 시간대로서 다시 느껴지게 된 것이다. 이 책 경성자살크럽은 그 아픈 시대를 살아가면서 죽음이라는 것으로 그 시대와 마주쳐야 했던 사람들의 아픈 삶의 모습을 통해 그 시대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책이다.
이 책에는 여러 남자와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여자들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된다. 저자가 책의 서두에서 밝히듯이 식민지 경성은 수많은 자살이 가득히 자리잡고 있던 아픔의 장소였다. 이 책은 그런 아픔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전하는 책이다. 세상의 어떤 죽음이 사연이 없는 죽음이 있겠는가. 더우기 자살로 젊은 생을 마감하는 죽음의 이야기가 남기는 아픔은 얼마나 큰 여운을 가지고 있겠는가. 그래서 이 책은 죽음이라는 절박한 사연을 통해서 그 먼 시대의 삶과 생생하게 마주치는 경험을 전해주는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그 아픈 시절을 전하면서도, 절대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칫 신파조로 흐를수 있는 이야기들을 비교적 객관적인 사실을 근거로 전하면서 읽는 사람이 스스로 그 이야기의 맥을 찾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에 의해 이입되는 강요된 감정이 아니라, 독자들 스스로가 찾아서 느끼는 자발적인 감정이 우러나오게 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렇게 느껴지는 순수한 감정을 통해서 그 시절의 삶에 대한 자료들이 제 살과 제 뼈를 갖춰서 비로서 생생한 삶의 모습을 갖추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은 그 아픔의 시절에 가난에 몸을 팔아야 했던 순정의 여인의 비참한 생에서 부터 시작해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의열단에 몸을 던지고 제국의 식민지 한가운데에 있는 척산은행에 잠입한 열사의 죽음까지. 근대를 경험하면서 문화의 첨단을 걸어가던 사람의 불가해핸 죽음의 이야기에서 부터,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빗어지는 아픔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을 맨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를 아우런 다양한 죽음을 소개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 죽음들을 통해서 얻는 것은 시대와 삶의 부조화가 가져오는 아픔에 관한 깊은 통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