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 개정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물건'을 하나 만났다.  "현대인의 감성을 잘 포착하기에 무척 흥미롭긴 하지만, 왠지 깊이가 약간 모자란 듯한 작품들이 많은 것이 일본 문학이다."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당연하지만 모든 일본 문학이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작품이다. 이 책 '최악'은 자신을 다른 일본 대중문학과 분명히 차별화하는, 여러가지 면에서 걸출한 작품이다.

 

잘 짜여진 꽉 찬 구성이 돋보인다. 하나도 필요없는 군더더기가 없고, 빈틈없고 만들어진 심리적인 복선으로 가득한 것이 이 책이다. 자칫 산만해질수도 있는 세가지의 이야기가 저마다의 힘을 가지고 이어지며, 다른 이야기들을 방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당한 분량의 긴 책을 읽으며 약간 집중력이 떨어질만할때 새로운 이야기가 이어지며 흥미를 돋우는 묘한 매력을 가진 책이다.

 

완벽하게 계산된 책이다. 하나의 문장도 허투루 쓰여진 것이 없다. 모든 문장들이 주인공의 내면을 포착하기 위해 잘 짜여진 심리적인 배경이 된다. 마지막에 이어질 대 폭주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너무나 엉뚱한 폭팔이지만 그럴수 밖에 없게된 심리적 상황을 이해시키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빠르게 읽혀지지만 뼈가 있고, 쉬운듯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는 책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비극이다. 이 책의 어디에도 밝은 모습은 없다.  나는 이 책이 말하는 것이 이 세상의 본질적인 아픔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은 히극적으로 비칠수도 있다. 묘한 착시 현상 때문이다. 책의 내용이 희극적인 것은 아니다. 아픔속에서도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때로 우스광스레 보일수도 있다. 또 아픈 세가지의 내용들을 섞어가며 빠른 속도로 전개하는 구성이 책을 무겁지 않게 느끼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이 아픈 내용들을 담은 책은 빨리 읽힌다. 흥미로운 구성 때문에 다음 내용이 궁금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너무 아픈 내용이라서 아픔의 무게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페이지를 빨리 넘기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각자 다르게 진행되던 그 아픔이 마지막 순간에 하나로 모여져 극적인 상승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어떻게 각자의 이야기들이 그렇게 정교하게 결합될 수 있는지 놀라울 정도로 치밀한 구성력에 놀라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이런 구성에 대한 치밀함은 책을 덮은 후, 이 책의 여운을 음미할때 비로소 천천히  느끼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을때는 이 책의 아픔에 절절히 공감할 뿐이다. 다른 여유가 없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극적인 페이지에서 우리는 작가가 그동안 뜸을 들며 공을 들여 쌓아온 심리적 묘사가 한꺼번에 개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극적으로 비극적인 카타르시스는 '찬란한 슬픔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처럼 처연하고 가슴이 아프다. 

 

이 책이 공감을 받고 가슴 절절한 아픔을 느끼게 하는 것은 오늘날 사회가 가지고 있는 아픔을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라는 그물망의 맨 밑바닥에 있는 원청업자, 하청업자, 재하청업자로 이어지는 사슬의 맨 아래에 있는 영세 자영업자의 삶의 고단함. 입사하는 순간부터 구분지어지는 엘리트로 나아가는 길에서 소외된 은행원. 사회의 최하층에서 부랑하며, 직업적 조직원에게 핍박받는 부적응자... 바로 이 책의 세가지 이야기를 구성하는 주인공의 면면들이다.

 

그들을 아픈 삶을 극적으로 살아가는 비극적 '영웅'이라고 부를수 있다면 그들 각각은 각기 그들과 대응하는 '반영웅'과 맞닥뜨리게 된다. 영세자영업자는 외국계 기업의 고위인사와, 비주류 은행원은 지점장과, 부랑자는 그 바닥의 주류인 야쿠자와 갈등을 빗으며 아픔을 겪는다. 그러나 그들과 부딪히며 잘난 척하는 그들 역시 거대한 더 큰 힘의 부속품이 뿐이다. 외국계 회사의 임원은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고, 지점장은 곧 방계기업으로 떨려날 쳐지이다. 야쿠자 역시 더 큰 조직의 한 부속품으로 언제든 폐기처분될 수 있는 허약한 존재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비극을 이끌어가는 진정한 악역은 누구란 말인가... 그런 의문에 놓이지 않을 수가 없다. 하루 하루의 삶을 눈물날 정도로 충실하게 살아가는 성실한 사람들에게서, 최소한의 꿈마저 빼앗아버리도록 만드는 것이 악역을 맡은 사람들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그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살도록 만드는 더 큰 무엇... 그런 사회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힘은... 애서 노력해서 그 먹이 사슬의 높은 곳에 속한 것만으로, 먹이사슬의 낮은 곳에 속한 사람 사람을 경멸하도록 만드는 그런 힘은 무엇인가...

 

성실히 살아가려는 한 개인의 노력이 마침내 삶을 얽매어오는 무게의 아픔을 견디지 못해 극적으로 무너져 내리도록 만드는 바로 그 순간에 느끼는 가슴 절절한 카타르시스. 눈물나도록 슬픈 쾌감. 삶의 모든 것을 던져버리는 순간에 주인공들이 한결같이 느끼는 역설적 해방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자신들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고, 그래서 그 전보다 다시 한등급 아래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그들의 어떻게 할 수 없는 애당초 성공할 수 없었던 반항...

 

책은 그렇게 마무리 된다... 아픔으로 가득히 점철된 채로... 우리시대의 슬픈 자화상을 놀랄 정도로 세밀하게 그려내면서...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웅변하면서... 그래서 이 책은 오늘날의 '분노의 포도'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사회성 짙은 책이면서도, 인간에 대한 강한 사람과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수작으로 꼽고 싶은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