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5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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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위 장르소설이라는 것을 읽게 된 것은 얼마전의 일이다. 나는 운이 좋았다. 처음에 이 책이 속한 블랙펜 클럽의 책들을 읽게 되었기 때문이다. 블랙펜 클럽이 펴내는 책들은 세밀한 심리묘사가 잘 살아 있는 책들이다. 본격문학의 냄새가 풍부하게 풍기면서도 독특한 소재를 다루는 책들인 셈이다. 그래서 난 새로이 접하는 소위 장르문학이라는 것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낙원은 내가 남김없이 읽는 블랙펜 시리즈를 통해 알게된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장르문학, 특히 일본의 것들에 대해 '지극히 가벼운 책들' 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는 정말 행운이었다. 아직 다른 작품들을 별로 읽어보진 못해서 비교할 순 없지만, 이 책을 먼저 접함으로써 "역시..." 라고 하는 거부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검색해보면서 알게된 내용이지만, 이 책의 작가는 이 방면에선 무척 잘 알려진 사람이라고 한다. 어떤 이들은 이 작가를 일본 장르문학의 대표주자라고 표현하기도 하니 말이다. 이 작품은 이 작가(미미씨 - 미야베 이유미를 일컷는 우리나라식 약칭) 의 대표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모방범의 후속작이다. 이 작품내에서도 같은 인물이 모방범의 내용을 계속 언급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한 작가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공인되다시피한 작품의 직계 후계작이라고 같은 인물을 내세워서 작품을 전개하고 있는 셈이다(그녀의 다른 작품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 작가인 미미 씨 자신 스스로도 이 책에 그만큼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자신을 대표하는 작품을 이을만한, 혹은 능가할만한 새로운 작품으로 내놓은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그런 자부심이 이해가 간다. 이 작품은 세밀한 심리묘사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사람의 내면에 대한 묘사나 독백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 "로 표시된 대화외에 많은 대화체의 글들이 책을 가득채우고 있다. 모두 그 상태에 처한 사람들의 심리에 관한 이야기들이 묘사된 것이다. 그리고 그 심리묘사를 통해 하나씩 풀어가는 사건의 비밀들이 이 책의 흥미를 더하게 하는 비결이다.

아무것도 아닌것 같은 사건을 통해 숨겨진 인간의 심리 속으로 파고 들어가게 되는 과정이 무척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이 책은 '장르'라는 우산속에 파격을 상정하고 시작하는 책이 아니다. 억지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운 설정. 따라서 '장르'를 전혀 모르는 본격문학 팬들도 아무런 부담없이 인간의 심리와 내밀한 감성의 흔들림을 흥미롭게 따라가게 구성된 치밀하게 짜여진 거대한 스토리이다.

처음 책을 대할때 900페이지 가까이 되잖아... 라는 비명은 오히려, 아직도 많은 페이지가 남아 있다는 것에 안도를 느끼도록 바뀌게 되는 흥미로운 책이면서, 시간때우기에만 그치지 않게 몰입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작가는 전혀 모르던 층층이 쌓여진 사건을 복잡한 과정을 거쳐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한겹 한겹씩 비밀을 벗겨간다. 그 과정을 통해서 인간의 깊은 심리의 심연으로 독자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이 책은 또한 그 치밀한 묘사때문에 일본사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도 무척 도움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가까운면서도 먼 나라. 이 세상 전체에서 우리나라와 가장 비슷한 모양(외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잘 알기 힘든 나라라는 일본에 대한 나의 이해를 높여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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