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
클레르 카스티용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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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분야를 한동안 잊고 지낸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내가 생활에 바빠서 한동안 좋아하던 문학책을 멀리하고 지낸 것이 십 여년. 그 사이에 우리 독서계는 참 많이 변한 것 같다. 나로서는 생소한 이름의 작가들도 많고, 그 세월동안 우리 독서인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들을 하나씩 섭렵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클레르 카스티용. 내가 문학에 관심을 두지 않는 세월동안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작가인 모양이다. 그럴만하다. 날카롭다고 평단에서 일컬어지는 그녀의 문체는 독특하다. 우아하면서도 날카롭고, 특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무척 시니컬하다. 특히 사랑에 대해서...

이 책에는 여성의 입장에서 사랑을 논하는 단편들이 많이 실려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을 운운하는 내용은 아닌 것 같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부질없음에 대해서.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는 사랑을 둘러싼 행위들에 대해서 날카로운 시선을 가지고 바라보는 관점이 무척 흥미롭다.

그렇다고 그녀의 책이 사회 비평의 사명을 띤 선구자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글은 위트로 가득하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단편들이 처음에는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을 듯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대개의 경우 마지막 페이지의 몇 구절에서 반전이 일어나며 이제껏 진행되어온 일들과, 대화들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었는지를 깨닿게 한다.

내용이 흥미롭다. 단편들이 진행되어 가면서 클레르 카스티용의 어법에 익숙해진 나는, 이제 처음부터 느린 호흡으로 찬찬히 읽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그러나 결코 끝 부분을 읽지 않고서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몇 페이지의 짧은 지적도전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침내 책이 끝나고 많은 수의 단편들을 다 읽고 날 즈음에 나는 클레르 카스티용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을 알게 된다. 그녀의 세상은 결코 우중충하거나 우울한 것은 아니다. 사랑의 덧없음과, 그런 사랑에 매달이는 인간군상의 바보스러우면서도 애처러운 모습을 펼쳐 보이면서도 그녀는 비아냥거리지 않는다. 그저 이것이 안타까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보여줄 뿐이다.


그녀의 관점에서 볼 때 사랑은 부질없는 짓이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이름하여 부르는 것들은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과 얼마나 가까운 것일까. 관념의 사랑과 현실의 사랑의 괴리감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녀는 그것을 위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것에 매달리며 그것을 놓지 못하고 살아가는 아픔이 바로 인간의 삶이라고 말할뿐이다.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 제목처럼 저자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사랑이 아무리 덧없고 부질없는 것이라도, 사랑이라고 불리는 것이 사실은 당사자가 서로 다른 언어로 제각기 자신의 말만 지껄이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래도 사람들은 사랑을 필요로 하고, 그것에 매달리면서 살아간다. 그래. 그래도 사랑은 막을 수가 없다. 저자는 우리 시대의 삶의 모습을 그렇게 보여주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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