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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키핑
메릴린 로빈슨 지음, 유향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잔잔하고 은은한 문체로 시작되는 책이었다. 처음. 책의 리듬에 적응하기가 조금 힘들었다. 쉽게 읽히는 요즘 책에 적응된 속도로 책을 읽으려니 책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리듬과 부조화를 일으킨 때문이다. 그러나 책이 가진 시적인 분위기에 이끌려 느린 리듬의 이 책에 적응을 하면서부터는 이 책이 가진 매력을 제대로 느낄수가 있게 되었다.
한 가상의 마을을 배경으로 삼대에 걸친 가족의 이야기가 이 책의 내용을 이룬다. 그러나 이 책은 가족의 장황한 연대기를 말하는 책은 아니다. 산문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아름답고 다소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이 책은 점차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주장이 강한 책이었다.
책은 지키는 자와 떠나는 자의 이야기가 교대로 교차한다. 삼대에 걸친 가족의 역사는 바로 그런 것이다. 산이 보고 싶어 산이 있는 곳으로 이주해온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책에서 할아버지가 떠나고, 엄마가 떠난다. 집을 떠난 이모가 집으로 돌아오지만 새로운 떠남을 위한 준비를 한 셈이 된 것이었다.
반면에 남아서 집과 삶과 가치들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할머니와 동생이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 마을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이모로부터 주인공인 루스를 분리하려고 한다. 삶에는 지켜야 할 것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노력인 셈이다.
그러나 떠나는 삶의 화신이 된 사람들이 있다. 떠나는 것을 그리워 하였으나 자유롭게 떠나지 못한 사람이 있었고. 정처없이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남들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리고 두 가지의 삶의 모습들 사이에서 각자 스스로의 길을 정하는 두 자매의 이야기가 이 책을 이루는 줄거리이다.
그 이야기가 정적인 느낌을 주는 전반적인 책의 감성 속에서 놀랄 정도로 스피디하게 전개되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대화가 극히 적은 부분을 차지하고 세밀한 감성의 움직임을 서술하는 것이 대부분인 이 책이지만, 암시와 과감한 생략들이 계속되면서 책은 읽는 이에게 팽팽한 긴장감을 갖추게 만든다.
놀랄만한 사건의 반전을 단 한 줄로 서술해버리는 기법은 놀라움을 줄 정도이다. 그래서 지키는 자와 떠나는 자들의 입장과 감성을 놀랄만큼 잘 묘사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에 깊은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 섬세한 감정의 묘사를 읽다보면 어느듯 대하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