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헤미안의 파리 - 창조적 영혼을 위한 파리 감성 여행
에릭 메이슬 지음, 노지양 옮김 / 북노마드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느린 호흡으로 읽어야 된다. 나는 사회과학 책이나 인문서적은 빨리 읽는다. 그러나 감성적인 책은 천천히 읽는 편이다. 사회, 인문과학책은 논지만 확실히 파악하면 되지만, 감성을 위한 책은 충분히 내 영혼과 교감할 시간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평소보다 더 느리게 읽었다. 이 책의 호흡이 아주 느리고, 이 책과 잘 교감하기 위해선 평소보다도 더 느리게 읽어야 한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기 때문이다.
파리에 더 이상 보헤미안은 없다. 파리는 더 이상 예술가들로 넘쳐나는 도시는 아니다. 이 책의 저자가 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는 예술적 감성을 자극하기에 더 없이 좋은 도시란다. 천천히 걸으면서 도시를 즐기다 생각이 떠오르면 아무 곳에나 걸터앉아 글을 쓸 수 있는 도시. 그런 사람을 아무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는 도시. 그래서 이젠 사라진 보헴을 찾아 나서려는 갈증을 지닌 사람들에게 가장 알맞은 도시라는 것이다.
이 책은 파리에 대한 스케치이자, 저자가 파리와 교감하는 과정에 대한 시시콜콜한 기록이다. 이 책을 정보의 소스로, 기록의 저장물로 읽으려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글쓴이의 호흡에 맞추어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저자가 파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잘 느껴진다. 저자는 파리를 그렇게 걸었고, 내 마음도 파리를 그렇게 따라 걷는다. 그러다 보면 많은 것이 보인다. 내가 파리를 다녀올 땐 보지 못했던 것들.
한때 느림에 관한 글들이 유행을 했었다. 그때 난 의문을 가졌었다. 왜 느림에 관한 책들이 이렇게 부산하고 빠른 호흡으로 팔리고 있는 것인지... 이 평범하고 눈에 틔지 않는 외양을 가진 책은 조용하다. 흑백의 삽화들과 조그만 판형. 소박한 표지. 그리고 역시 소박한 글들이 담긴 조용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강하다. 자신의 목소리에 알맞은 외형을 가진 잘 만들어진 책이기 때문이다. 조용한 책의 가치를 아는 사람. 느릿한 걸음의 의미를 아는 사람. 이젠 사라진 그런 것들에 향수를 가진 사람. 혹. 지금의 세상에서라도 나만은 파리의 ‘플라느리’의 호흡으로 삶을 살아가고 싶은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