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표지를 보고 묘한 느낌이 들었다. '혀'라는 단 한 음절의 짧은 재목도 그렇고, 표지그림의 얼굴이 풍기는 미묘한 뉘앙스도 독특했다. 요즘 나오는 책들이 저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잡으려고 강렬한 이미지를 사용하는데, 이 책은 눈에 탁 튀는 그림이면서도 가만히 뜯어보면 차분하고, 그러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강한 느낌을 주는 그런 표지였다. 참 멋지네 하고 그냥 넘겨버리는 표지가 아니라, 표지 자체를 한참을 들여다 보게 만드는 그런 표지...

책의 내용도 독특하다. 요즘 소설을 많이 읽지 않긴 했지만, 과거에 한참 읽었던 기억과 비교해볼때 이 작가의 문체. 범상치 않다. 내면의 독백이 이렇게 많은 소설은 정말 오랜만에 대하는 것 같다. 대화도 " " 표시가 없이 그냥 일반 문장처럼 표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대화를 대화로 표현하기 보다는 주인공의 마음에 미치는 반향으로 표현하기 위함일까... 이 책은 강하다. 심리묘사가, 그리고 삶에 대한 맛깔이... 인생의 맛에 대한 집착이...

혀라는 제목에 맞게, 주인공의 직업인 요리사에 맞게 음식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 우리는 들여다 볼 수 없는 주방 안쪽의 일상들, 그 속에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삽화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밖으로 나올때의 일반인으로서의 삶. 어릴적의 추억, 그리고 지금 겪고 있는 삶의 고통, 아픔, 희망, 연민, 그리고 파국...

혀는 음식을 섭취하는 도구이고, 음식의 맛을 느끼는 기구이고,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는 상징이고, 요리사라는 직업을 택한 주인공이 세상의 진정한 의미를 경험하는 특별한 감각기관이다. 이 책에서 아마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일 단어일 것 같은 '혀'는 그만큼 중층적인 의미를 가진 상징체계이다. 혀에 그토록 집요하게 많은 의미를 쌓아 올릴수 있다는 것은, 작가의 엄청난 사유의 산물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삶과 음식과 사랑과 아픔에 대한 보기 드물게 깊은 사고가 특이한 소재와 만나면서 만들어 낸 아주 독특한 맛을 가진 밀도높은 언어의 향연이 벌어지는 책이다. 혀가 어떤 것을 상징할 수 있고, 사람은 혀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작가는 혀에다 무슨 의미들을 부여했는지, 또 그런 사유의 방식으로 바라본 인간의 삶이란 것은 어떤 모습인지... 흥미로운 독서를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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