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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저편, 길을 나서다 -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여행이야기
안홍기 지음 / 부표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아니 도대체 어떤 사람이야? 하루에 수편씩 영화를 보고, 아무 이유 없이 떠나고 싶으면 훌쩍 떠나서 몇달인지 몇년인지 알수 없는 기나긴 시간동안 세상의 곳곳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여유로운 인생이라니... 셈이난다. 게다가 저자는 언어가 짧다고 말하면서도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곧잘 이야기를 하고, 깔깔거리며 배가 아프도록 웃기도 하지 않는가. 게다가 저자가 다니는 곳은 흔히 우리가 아는 익숙한 여행지와는 동떨어진, 잘 알려지지 않은 곳들이 많지 않은가. 그런 곳을 혼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사람. 돈과 시간에 별 구애를 받지 않는 듯이 보이면서... 질투가 난다.
그러나 저자를 미워할수만은 없다. 저자는 나름 열심히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도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나도 저자처럼 하루에 영화를 몇편씩 보는 열정은 없다. 저자가 소개하는 영화들중 태반은 나도 본 것이지만, 저자가 그 영화에서 감동받아 자신의 삶에서 느끼는 것처럼 열정적인 감회를 받아보지 못하였다. 내가 저자를 부러워하는 마음의 기저에는 내가 가지지 못한 열정. 그것을 가지고 있는 저자에 대한 열등감과 부러움이 자리잡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 저자는 부지런하다. 부지런히 사색하고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또 이렇게 멋진 책을 낼만큼 충분히 부지런하다.
부지런히 언어실력을 쌓는 것, 타지에서 만나는 외국인과 스스럼없이 어울릴수 있는 자연스런 성격, 자신이 만나는 아름다운 광경들을 멋있게 사진에 담아 놓을수 있는 능력, 자신이 즐겨본 영화들의 주요한 맥락과 장면들을 기억하는 성실함. 그리고 여행이라는 자신의 삶의 여정에서 그토록 좋아하던 영화의 맥락들을 대입시키며 삶과 여정을 반추하고, 그 여정에 의미를 덫칠하는 능력. 그래서 일견 평범한 여행기로 끝날수 있는 것을 이토록 깊은 사색의 글들로 채울수 있는 능력... 나는 그런 것들이 부러운 것이다.
지적인 게으름. 나는 내가 가장 보이기 싫어하는 약점을 이 책에서 발견하고 말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인생을 살아간다고 생각했었고, 나름대로 현실세계에서의 약점을 그런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버터왔었다. 그러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거울처럼 비추어주는 이 책 앞에서 나는 거꾸러지고, 나의 부끄러움은 그대로 드러나고 만다. 그러나 나는 다시 이 책을 펴본다. 이제 이 책은 나의 스승이다. 나는 나의 부끄러움에 숨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젠 기꺼이 반가움과 그리움으로 이 책을 다시 읽고 내가 가보지 못한 여행과 삶의 향기를 다시 한번 느껴볼 것이다. 좋은 책. 좋은 만남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