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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의 존중 - 문명의 충돌을 넘어서
조너선 색스 지음, 임재서 옮김 / 말글빛냄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문명내의 충돌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새로운 시대의 주된 갈등은 문명간의 충돌이 아니라, 같은 문명내부에서 서로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문명내의 일부는 렉서스를 쫒아가는데, 같은 문명내부의 일부는 올리브 나무를 고집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물론 나는 그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문명내부에서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의 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에서 점령군에 협조하는 세력들과 점령군이 반발하고 있는 세력 사이의 균열이 진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단지 어떤 사회에나 늘 존재하기 마련인 기회주의자와 근본주의자 사이의 단층선일 뿐이다.
세계화에 대한 불만은 확실히 빈부의 격차를 일으킨다. 올리브 나무를 고집하는 사람들을 앞지르고 나아가서 렉스서의 신화를 쫒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런 균열이 문명권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차이를 불식시키지는 못한다. 중국의 일부가 자본주의를 받아 자본주의보다 더욱 자본주의적인 나라가 되었지만, 중국은 자본주의가 아닌 중화주의 국가일뿐이다.
세상은 가까워지고 있지만 여전히 서로 다르다. 다른 존재들 사이의 가까움은 불편함으로 표현이된다. 관용과 이해가 전재되지 않는 가까움은 불편함을 증오와 원한으로 상승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세계화가 폭력적인 양상으로 전개될때 그 불편함의 정도는 더욱 심해지기 마련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바로 그런 세상이다.
이 책의 저자는 엉뚱하게도 종교를 들먹인다. 오늘날처럼 세속화된 세상에서 종교라니. 그러나 비종교적인 삶을 살아가는 듯한 서구사회도 명백하게 종교적인 색체를 띄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그들이 신을 받아들이든 않든 서구사회라는 것은 자신들의 입장을 바탕으로 세상을 재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서구사회와 부딪히는 단층선에서는 존재하는 사람들은 가장 비종교적인 사람들도 그 갈등의 과정에서 더욱 더 종교적인 세상으로 바뀌어간다. 그들 스스로 자신이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을 할지라도, 다른 문화권을 증오하고 원망하는 그 감정은 그대로 종교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은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물질적인 규칙의 변화가 아니라 영적인 곳의 변화에서 와야 하는지도 모른다.
세계화와 그에 대한 불만을 논하는 저서들이 많다. 서점을 뒤덮고 있는 산더미 같은 책들은 사실 다 같은 이야기들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세속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영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다. 사실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그러나 세계화에 따른 불만을 풀어나가기 위한 논의들은 어쩌면 이 책의 바탕위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세계화에 대해 남 못지 않은 불만을 가진 내가 이 책을 접하면서 내내 한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