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화, 야누스의 두 얼굴 교양 교양인 시리즈 3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김동택 옮김 / 한길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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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globlization 이라는 단어는 세계화라고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은 지구화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을 수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지구화라는 단어를 고집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행성인 이 지구는 지구화 되어가고 있다. 얼마 전 타결된 한미 FTA는 우리가 지구화의 격랑속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구화는 많은 변화를 낳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국가의 위축이다. 자본은 국가를 넘나들면서 자신의 국적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가 있다. 국민들 또한 활발하게 국가를 바꾸고 있다. 가진 사람은 더 좋은 교육과 더 안락한 삶을 위하여,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더 많은 수입을 위하여... 오늘날 지구는 새로운 방랑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지구화의 결과로 더 많은 상품이 더 많이 생산될 때, 상품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비할 것을 명령한다. 생산된 상품이 소비되지 않을 때, 경제에 어떤 파국적인 움직임이 일어날 것인지는 이미 여러번 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파국이 지구적인 규모에서 일어날 때 실로 엄청난 파장을 낳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소비하는 인간이 되기를 강요받는다. 소비만이 살길인 것이다. 그러나 지구화는 꼭 자본의 우위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아직 그 힘은 약화되어 보이지만, 지구화로 인해 세계의 흩어진 시민들이 의견을 교환하고 뭉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더욱 열려가고 있다. WTO 반대시위를 전 세계적인 규모로 조직할 수 있는 것은 지구화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자본의 탈 국적화(지구화)보다는, 시민들의 지구화가 더 느리고 더 힘이 약해 보인다. 물론 지금의 판세가 앞으로도 이어질지는 모를 일이다. 자본이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더욱 강하면 강할수록, 흩어진 시민들의 항의의 물결이 순식간에 더욱 거세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구화 자체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그러나 어떤 형식의 지구화를 받아들일 것인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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