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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의 여행 바이러스 - 떠난 그곳에서 시간을 놓다
박혜영 지음 / 넥서스BOOKS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꿈꾸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다. 꿈이 없는 삶보다는 꿈을 안고 살아가는 삶이 훨씬 더 나은 것을 제공해준다는 말이다. 나는 그 말을 믿고 싶었다. 그리고 그 꿈을 믿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러나 나는 지금 생각한다. 꿈을 꾸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고. 꿈을 실현하는 사람이 행복할 뿐, 꿈을 가슴속에 꾸깃꾸깃 숨겨놓고 언젠가 그 꿈을 이룰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는 사람의 가슴에는 송곳으로 찌르는 것보다 더 한 아픔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은 이루기 위해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루지 못한 꿈, 그것은 삶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삶을 더 지치게 만드는 가시방석일 뿐이다. 그러나 내 말을 곡해하지는 말라. 나는 결코 꿈조차 꾸지 않는 그런 삶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너무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는 꿈을 기다리느라 지쳐버린 내 영혼에 대해 약간의 위로를 주고 싶을 뿐이다. 지금 내가 누리는 이 아픔은 나의 꿈 때문이었노라고. 나는 노력했으나 꿈은 나에게 이루어지지 않았노라고.
히피. 나는 사실 히피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반문화운동에 대한 몇 권의 책, 68년 운동에 대한 몇 권의 책을 읽어보기는 했으나, 내가 찾은 책 중에는 우리나라에 히피운동에 대해 제대로 소개된 책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나에게 히피는 꿈이었다. 락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우드스탁이 영원한 꿈이듯이, 나같은 방랑하는 영혼에게 히피는 언제나 성스러운 운동으로 남아있다. 오늘날 히피운동이 마치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퇴폐적인 문화로 비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기성권력의 도전권력에 대한 철저한 짓밟음의 결과라는 것 정도는 안다.
그렇다. 나는 히피의 영혼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 내 시대에 내 영혼이 갈망하는 히피에 대한 갈증을 받아주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나는 그런 운동을 지나친 낭만적 감성으로 치부하는 생경한 시대를 살아왔다. 그러나 나는 내 영혼 속에서 철저한 반항의 감성과 비판의 지성을 키워왔다. 시대를 앞서가던 사람들이 기득권에 집착하는 속에서도 나는 철저히 무명으로, 그리고 철저히 내 꿈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였다. 하여. 내 영혼은 지치고 이제 파리한 꿈의 마지막 자락을 잡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어보겠다는 꿈을 접은 지가 얼마되지 않았다. 추측할 수 있겠는가. 오랫동안 숨겨왔던 꿈을 마침내 포기한 자의 아픔을. 그리고 나는 그 아픔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먼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한때 꿈꾸었던 아득한 나라의 꿈을 다른 곳에서 찾는 듯이. 그것은 저 하늘위의 힌구름 속에 존재하는 세계는 아니었지만, 내가 그리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나라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실재하는 나라이고, 내가 조그만 용기만 내면 다가갈 수 있는 나라였다. 그렇다. 그것이 내 비천한 꿈을 대신하기 위해 선택한 대안이었다.
이 책. 제목이 마음에 든다. 히피 바이러스. 물론 내가 꾸던 꿈과 저자가 꾸는 꿈은 그리 비슷하진 않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수년씩 수십개국을 자유로이 여행하는 사람은 현실의 내가 될 수 있는 그런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과거에도 내가 꿈꾸던 그 꿈은 그리 가까운 것은 아니었다. 내가 꿈꾸었던 것은 내가 실현할 수 있다고 해서 바랬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것이 좋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좋았을 뿐이었다. 마찬가지이다. 내가 온 세상을 돌아다닐 수는 없지만, 내 꿈이 사라져버린 이 세상의 모습을 내 눈을 통해서 확인하고 싶은 꿈. 이루어질 수 없는 그 꿈을 바라는 것이 죄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