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희랍인 조르바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스인 조르바란 이름으로. 이름이 달라지듯, 책도 더 멋있고, 표지도 더 멋지다. 내용은 물론 그대로이다. 오랫동안 자리를 떠났던 서점의 중요한 자리를 버젓이 차지하고, 돌아온 왕자마냥 위엄을 뽐내고 있다. 그 예전의 조르바는 어쩐지 더 누추하고 더 왜소해보였는데...

스무해 전 조르바는 자유로움과 열정의 상징이었다. "내 비록 누추하고 가난할지라도, 내 가슴에 조르바를 담고 있음에..." 나는 그렇게 자부심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다. 찬바람이 쑹쑹 들어오는 허술한 옷을 입어도, 가슴에 뜨겁게 타오르는 조르바의 영혼을 가지고 있음으로 추위를 느끼지 못했었다.

지금 난 조르바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제 조르바는 내 가슴속에 타오르는 횟불이 아니라, 아득한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다. 너무 멀어졌지만 결코 잊을 수는 없는, 마치 첫사랑처럼 아련하고 그립기만 한... 그 조르바가 다시 서점에 나타났다. 반갑고 또 실망스럽다.

서점에서 찾을 수 없었던 그 모습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세월이 바뀌어도 아직도 그의 가치가 사람들에게서 잊혀지지 않고 전보다 더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희랍인이 그리스인으로 바뀌듯, 더 모던하고 더 고상한 모양으로 돌아온 그의 모습은 내가 그리워하던 옛날의 그 조르바가 아닌것 같다.

책의 내용은 같은 것이다. 글자 한자까지도. 그러나 내 가슴속의 조르바가 이미 예전의 조르바가 아니듯이. 돌아온 조르바도 나를 불사르게 만들고, 나를 삶에 미치도록 만들던 그 카리스마 넘치는 조르바가 아니다. 나에게 조르바는 이제 아련한 추억일 뿐이다. 영원히 희랍인 조르바로 남아 있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