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앤 더 시티 - 4년차 애호가의 발칙한 와인 생활기
이진백 지음, 오현숙 그림 / 마로니에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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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아쉬운 일이다. 사람은 모든 길을 다 가볼 수는 없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여유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지런히 내가 선택한 길을 가야 한다. 그러나 주변의 다른 길들을 힐끔힐끔 넘겨다보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모든 유혹이 치명적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달콤하면서 위험하지 않은 안락을 주는 유혹도 있고, 때로는 내 인생의 행로를 바꾸어 놓는 긍정적인 의미의 유혹도 있다.

 와인의 세계는 그 자체가 하나의 깊고 큰 세계를 형성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과는 단단한 절연체로 잘라진듯 담을 쌓고 있는 세계였었다. 일부러 높은 담을 쌓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었다. 우연히 내가 걸어가는 길이 와인의 길과는 다른 길이었고, 내가 가는 길이 편하고 익숙했기에 굳이 다른 길로 가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완전히 차단된 길이었기에 오히려 호기심은 더 있었다.

 저 곳.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저곳에는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이 있을까. 무엇이 저들을 매료시키는 힘일까. 혹시 그곳에 내가 모르는 진정한 가치로움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호기심. 바로 그 호기심이 서점을 찾을때마다 내 발길을 와인에 관한 책 주변을 잠깐이라도 어정거리게 만드는 힘이었다. 그러나 인연이란 쉽게 닿아지지 않았었다. 번번이 나는 손에 들었던 와인관련 책을 내려놓고 다른 책을 들고 서점을 돌아나왔으니 말이다.

 그러다 이 책. 와인 앤 더 시티를 만났다. 뭔가 독특한 느낌이 있었다. 우선 만만해 보인다. 그리고 골치아프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을 손에 드니 우선 가볍다. 책을 휘리릭 넘겨볼 때 눈에 와 박히는 단어들이 쉽다. 원색의 그림들이 나는 어렵지 않아요... 하는 속삼임을 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와인에 관한 책들에 빠지지 않고 있는 고전적인 느낌을 주는 잘난척하는 사진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저린 이유로 나는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내가 읽은 첫 와인책이 된 셈이다.

 책은 내가 생각한 첫 느낌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저자는 직장인(아마도 잡지사 기자)으로서 더 멋진 삶을 위해 방황하던 하던 중 와인의 세계를 만났고, 와인의 세계를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상당히 윤택해 보이는 삶 임에도, 자신이 느끼기엔 상당히 가난한 주머니 사정 덕분에 돈 적게 들이고 와인을 경험하는 방법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4년동안 와인과 우정을 나눈 덕분에 이젠 그의 부인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이 와인이 되었다... 뭐 이런 개인적인 경험담에 관한 책이었다.

 모던한 도회적 삶을 살아가는 상당히 세련되었지만, 아주 지적으로 첨예해보이지는 않는. 그러나 상당히 잘 나가는 직장인의 삶. 그리고 그가 느끼는 모던한 삶의 상징으로서의 와인. 이렇게 보면 이 책의 제목은 뉴욕 여성들의 삶을 다룬 '섹스 앤 더 시티' 와 상당히 유사한 편이다. 제목을 잘 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와인에 관한 책이기도 하지만, 와인을 좋아하는 일반 와인 애호가들의 삶을 속직하게 느낄수 있는 책이었다.

 책을 읽어서는 와인의 맛은 잘 모르겠지만,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삶이라는 것이 이러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와인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와인문화에 대한 것이라면, 이 책은 오늘날 우리나라 평균적인 직장인 와인애호가들의 삶을 아주 적절하게 보여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와인에 대한 기호를 어떻게 가지게 되든, 그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와인의 세계가 한번 풍덩 빠져들어 볼것인가 말것인가를 망설이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내가 앞으로 와인과 나와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하기로 했는가 혹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비밀이다. 혹 내가 다른 와인에 대한 서평을 쓰게 된다면 그 글들을 통해 비밀을 푸는 단서가 보여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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