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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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증상은 어떠신가요.

심프토머라는 각종 이상한 증상을 가진 존재들이 등장하는 책이다. 사람이라고 하기 보다는 존재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수도 있는 희안하고 독특한 존재들이 읽는 이를 즐겁게 한다. 이 책은 매우 독특한 형식과 구성 그리고 내용을 지닌 책이다. 내가 아는 한...

사실 난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에 더욱 끌렸는지도 모른다. 다른 소설들에서 비슷한 이야기들이 반복되고 있었는지, 이런 류의 소설들이 오늘날의 책을 이루는 대세인지... 그런 것은 내가 알길이 없다. 난 사실 1년에 몇권의 소설을 대할 뿐인 사람이므로...

살아가는 것이 참 빡빡하다. 삶은 더 이상 여유롭지도 않고,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지도 않는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기 보다는, 오늘도 무사히... 라고 생각하며 저녁에 무사히 하루의 잠자리에 드는 것을 축복으로 여긴다. 이젠 예전처럼 잠자는 시간을 아끼면서 책을 읽지는 않는다. 아직도 내 삶이 아깝기는 하지만, 시간들은 존재를 위해 판매하는 것으로만 여겨질뿐,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로 느껴지진 않는다. 하물며 소설들이야...

때로는 그렇게 하찮게 취급하는 소설들이 내 가슴에 문득 와 닿을 때가 있다. 이 책. '캐비넷' 같은 책 말이다.

심심한 인생. 하루에 10분만 일하는 인생. 그 무료함을 참지 못해 절대로 열어서는 안돼는 캐비넷을 열어버린 인생이 있다. 그 사람이 이 책의 화자이다. 그리고 그 금단의 캐비넷에서 각종 증후군(심프톰. symptom)을 가지고 있는 가련하고 독특하고 희안한 존재들이 튀어 나온다. 그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감동적이랄 것도 교훈적이랄 것도, 아주 재미있지도 않다. 말장난 같이도 보인다.

그러나 그것 외에 하나가 더 있다. 바로 그 캐비넷을 연 장본인. 그 심심한 존재. 매우 다양하고 다체롭고, 화려한 심프톰을 가진 존재들이 아니라, 정상인인 그가 바로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그는 내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다. 심심하고, 무료하고, 삶의 중심을 잃었고, 장래도 희망도 없고, 내가 책의 페이지를 뒤적이는 것처럼 캐비넷을 뒤적이며 존재의 허전함을 메꾸는 존재. 존재이면서도 존재감을 가지지 못하는 존재...

그가 바로 진정한 심프토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모든 심프토머는 그의 존재감을 수식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그리고 그가 바로 나다. 어느날 낮선 책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게 바로 내가 이 책을 대한 느낌이다... 나의 느낌이 다른이에게 공감을 주면 좋고,,, 아니면 말고...

난 내 새로운 명칭을 얻었다. 무릇 이름은 그의 가면이자 페르소나이고. 누구나 자신의 십자가처럼 자신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난 나의 가면을 새로이 바꾸었다. 심프토머란 이름의 가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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