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 신경림의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 시
신경림 엮음 / 다산책방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시가 내게로 찾아왔다.

네루다는 그의 유명한 시에서 "어느날 시가 내게로 찾아왔다." 고 말했다. 난 네루다를 알고 그의 시를 좋아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시들중 몇편을 좋아한다. 내가 읽은 단 하나의 그의 시집에 스물 한편의 시 중에서도 내 마음에 썩 좋은 것은 몇 편 뿐이었다.

난 시를 좋아한다.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린 시들은 달달 외우기도 하고, 남몰래 시를 써보려고 노트에 글을 적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시가 나를 찾아왔다."고 외칠만큼 좋은 시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아니 그럴만한 정성이 부족했다. 나에게는.

내 영혼은 산문적인 것이어선지, 시를 좋아하고 책을 즐겨 읽긴 하지만 내가 시집을 사 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내 까마득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도 몇권 뿐. 그 뿐이다. 그래도 한때는 나도 시를 끄적여 보았는데, 그렇게 박약한 노력으로 무엇을 하겠느냐고 스스로에게 자책도 해본다.

그러나 솔직해야 하는것 아닌가. 오랜만에 맘먹고 산 시집을 끝까지 읽은 적이 별로 없었다. 서가에서 시집을 빼들고 이리저리 페이지를 넘겨봐도 맘에 와닿는 시들은 한 시집에 한 두편... 그 때문에 시집을 살순 없었다. 변명같지만... 난 그랬다... 그렇게 살아왔었다.

시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시가 담겨 있는 책속으로 푹 담겨버릴만한 시집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미칠만큼 좋아하는 시들고 가득한 시집을 찾기보단, 도서관에서 시집들 속에서 찾아낸 시들을 내 노트에다 옮겨놓는 것이 훨씬 나은 편이었다. 나에게는.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 책. '처음처럼'은 내가 좋아하는 술처럼 진한 향기로 다가오는 책이었다. 시는 좋아하지만 좋은 시만 가려서 읽을수는 없었던 나에게, 그리고 이제는 시노트를 간수하는 것조차도 귀찮아진 무력한 생활인에게, 그러나 시적인 그리움에 대한 갈망이 전혀 없어진 것은 아닌 평범한 인간에게... 이 책은 톡 쏘는 술처럼 다가왔다.

"어느날 그게, 그게... 나를 찾아왔다..." 나는 이 책을 되풀이 읽으면서 그런 말을 되풀이 할것 같다. 게슴츠레 취한 눈으로 책의 페이지를 뒤져 오늘은 이 시를, 내일은 저 시를... 그렇게 내 고달픈 영혼에 안식과 위안을 주기에 알맞은 책을... 난 어느날 만났다... 그게 어느날 나를 찾아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