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평전 -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의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유럽에 유령이 하나 떠돌고 있다. 바로 공산주의라는 이름의 유령이다." 공산당 선언에 있다는 이 말은 이 마르크스 평전에서 여러번 인용된다. 이 구절의 뜻은 공산주의라는 이름의 사상이 유럽을 떠돌아다니며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이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세상에 유령이 하나 떠돌고 있다. 바로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름의 유령이다." 나는 이 말을 사회주의로 대변되는 진보에 대한 관념이 몸이라는 실체를 잃은 유령이 되어 원혼처럼 떠돌고 있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싶다.
 
그렇다. 세상은 세계화의 물결에 휩싸이고 있다. 마르크스는 세계화가 사회주의 실현의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겪는 세계화는 모든 사회적 변혁의 희망을 앗아가는 아픔의 세계화이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고용의 조건은 나빠져가고,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빈부의 격차는 더욱 커져간다. 마치 마르크스가 활동하던 그 시대의 유럽이라는 작은 대륙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오늘날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이 책은 복합적인 책이다. 두터운 페이지의 책에 매우 세세하게 관련 자료들을 빽빽하게 담아놓은 이 책에 마르크스를 평하는 저자의 나래이션이 군데군데 들어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는 이가 어떤 시각을 가지느냐에 따라 마르크스를 보는 눈이 서로 달라질 수 있는 책이다. 책 내용중에 드러나는 저자의 의견과 책의 마지막에 그의 사후에 마르크스 주의가 어떻게 바뀌어 갔는가를 나타내는 긴 장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이 책은 읽는 사람이 자유롭게 해석할 여지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눈에는 마르크스는 한 사람의 허약한 지식인으로 보였다. 왜 그동안 우리나라에 이 허약한 지식인의 유약한 글이 허용이 되지 않았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의 이론은 취약한 기반들 위에서 끊임없이 수정되면서 만들어졌고, 만들어진 이론도 그다지 과격하지는 않았다. 마르크스 자신이 "나는 마르크스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듯이, 위험한 것은 그의 추종자들이었지 결코 마르크스 자신은 아니었다. 비록 마르크스가 인터내셔널을 지휘하는 실재적인 권력자였더라도, 그가 실제로 파업과 과격행동을 선동한 적은 없었다.
 
그는 프롤레타리아에 관심이 많았지만, 그 자신은 어디까지나 귀족적인 취향을 버리지 못한 지식인이었을 뿐이다. 그는 가난을 묵묵히 참아내기보다는 가난을 싫어했고, 약간의 사치를 좋아하기도 했었다. 끊임없이 돈에 대한 갈망을 포기하지 않았었고, 그의 지적 작업을 빨리 세상에 내놓기 보다는 이론적 완벽을 추구했었다. 그는 실천가이기보다는 강박증과 자기모멸에 시달리는 지식인이었다. 그는 소외에 관해 말했지만 그의 의식과 그의 생활은 서로 소외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가 평생을 바쳐 만들었다는 그의 정교한 이론이라는 것은 풍부한 철학적인 면모가 강한 소외론과, 독창적인 이론인 노동가치설과 잉여노동설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낡은 이론으로 비쳐진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지적 산물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여러가지 사상들중 일부에 기여를 했을 뿐이고, 그의 학문적 기여가 빛을 발한 것은 그의 생의 마지막 순간의 일시적인 시기뿐이었다. 그의 이론들의 상당부분도 그의 앞의 사람들의 토대위에 세워진 것이고, 그의 이론들도 그 이후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정된 것이다.
 
역사는 그 역사를 만드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는 그 역사를 빛낸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일뿐이다. 그의 사상들이 그의 삶의 궤적과 역사적인 변동에 의해 끊임없이 바뀌어 왔듯이, 그의 사후에 다른 세계적 상황의 변동에 따라 그의 사상들도 변형되고 수정되어왔다. 혹 그가 아직 살아있다면 그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150년 전에 말했던 것들을 고색창연한 과거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네... 그 책에 적힌 것은 그 당시의 상황에서 나에게 최선의 이론이었을 뿐이라네..." 라고.
 
그는 확실히 뛰어난 두뇌를 가진 독창적인 사람이었다. 그를 괴롭히는 여러가지 아픔들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적인 모색을 끝까지 밀고나간 용기와 고집을 가진 사람임에는 틀립없다. 그는 훌륭한 연설가이자 조직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어디까지나 그의 시대의 테두리 내에서 활동했던 사람이고, 그랬기에 그의 위대성이 부각되는 것이다. 그는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가 인간 사회의 진보의 대열에 영향을 미친 위대한 사람중 하나이지만, 그의 사상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가 말하는 공산주의란 애매모호할 뿐이고 구체적인 내용이 전혀 결여되어 있는 막연한 이상향이었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고민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추구하는 모색에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그는 단지 그의 사회에서 두드러진 인물이었고 후대 사람들의 지적 모색에 많은 영감을 준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마르크스를 처음만났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격동하던 시기의 유럽의 역사에 대해서도 많은 이해를 얻었다. 약간 투박하고 잘 읽히지 않는 문체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그 두툼한 분량을 끝까지 읽어낼 가치가 있는 책이다. 그리고 이런 책을 이제야 접한 나의 지적인 게으름을 책망하고 싶다. 그리고 그가 지적한 인간의 소외와, 세계화와 인간가치의 충돌이 내는 파열음에 대해 오늘날의 입장에서 어떻게 모색해야 할지를 고민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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