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페루비안 - 황색의 눈과 녹색의 눈
김안나 지음 / 평민사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페루를 여행하는 또 하나의 방법


멕시코에서 체류하며 우리에게 ‘멕시코’란 좋은 책을 선사한 김안나 씨가 이번엔 페루를 기행한 기록을 남겼다. 요즘은 남미를 여행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아졌고, TV혹은 책을 통해서도 남미에 대한 기행문을 그리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가 있다. 그러나 양과 질이 항상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남미에 대한 우리의 기행은 짧은 여행과 그에 대한 피상적인 인상기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안나의 이 책도 여행의 기록이고,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담은 인상에 대한 기록이다. 그녀가 여행을 하기 이전에 남미의 역사와 페루에 대한 사전 자료조사를 많이 하긴 했지만 역시 기행문이란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미 여행기가 주마간산격인 것에 비하면, 사진도 그리 많지 않은 책 한권을 온통 페루에만 할애하는 이 책은 상당히 심도가 깊은 여행기인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녀의 여행은 느리다. 리마나 쿠스코 같은 페루의 유명도시나 페루의 대명사인 맞추피추도 그녀의 여행기에서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기행은 오히려 다른 기행문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스페인식 중앙광장을 거닐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그 사람들이 마시는 음료, 그 사람들과 나눈 대화에 더 중점이 주어져 있다. 그녀는 박물관에도 많은 관심을 가진다. 페루의 박물관에 전시된 옛 잉카와 잉카제국이 성립되기 전의 페루에 깃들었던 여러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녀의 관심이 가장 많이 할애된 것은 페루에서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것도 대도시 페루가 아니라, 페루 인구의 절반이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오지의 모습이다. 그 오지를 보기 위해서 그녀는 길도 닦이지 않은 산속 깊은 마을들을 찾아다닌다. 그곳에서 그녀가 만난 것은 아직도 수 백 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이 살아가는 페루 원주민들의 삶이다. 그녀는 그곳에서 그 사람들의 순수함을 만나고 그들과의 삶을 나누며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고생한다.


저자가 일부러 편한 교통편을 마다하고 원주민들이 이용하는 가장 싼 교통편을 이용하며 밤을 새워 고생을 사서하는 것은 단순한 낭만에서 우러난 객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여행에 관한 개인적인 동기야 없을 리가 없지만, 적어도 책에선 그런 감상은 묻어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체험하며 앞으로 앞으로 느리게 걸음을 옮겨놓습니다.


저자의 그런 행보는 페루의 가장 안쪽인 아마존 상류를 향한 여행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쿠스코에서 출발하는 편하게 가는 투어여행을 포기하고, 현지인들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아마존 밀림을 향해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가기로 마음을 먹은 것입니다. 그 깊은 내륙은 전기나 교통수단은 물론 정부의 인구통계조차도 없는 곳입니다. 그곳을 지나가는 트럭에 합승하여 이 마을에 가도 배는 없고, 수소문을 해서 이웃의 다른 마을로 가도 아마존으로 가는 배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쿠스코에서 오는 단체관광객들이 오는 날만 어디선가 배가 나타난다고 하니 말입니다.


저자는 여자의 몸으로 결국 아마존을 지나는 뗏목 배에 올라타고 여행을 떠납니다. 말이 뗏목이지 달랑 나무 네 개를 묶은 것입니다. 그것을 타고 굽이굽이 급류가 몰아치는 아마존의 상류를 떠내려가는 것입니다. 그곳은 물살이 너무 험하여 바위가 많아 배를 조정하기가 어렵기에, 일부러 뗏목을 4개 이상 붙이지 않는다는 것을 여행을 통해 깨닿습니다. 그렇게 들어간 아마존의 오지 마을에서 그녀는 마침내 자신이 왜 그곳을 찾아 그 먼 길을 왔는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애당초 목표했던 곳을 그리 멀리 남기지 않은 곳에서 발길을 돌립니다.


그곳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도 멀고 힘들었지만, 꼭 같은 거리를 거쳐서 쿠스코로 돌아가는 길을 빨랐다. 그것은 그녀가 그곳까지 찾아서 들어가는 길목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사귀며 나누었던 푸근하고 따스한 정 때문이었다. 그녀를 만나는 사람마다 그녀가 무사히 여행을 끝내고 다시 만나게 된 것을 자기 일처럼 기뻐했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그녀는 즐겁고 푸근한 마음으로 그 길고 힘든 길을 다시 되돌아 올수 있었다. 이제 다시 문명의 세계로 돌아온 그녀는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제는 그 험난한 여행을 떠나게 된 그 마음의 갈증이 시원하게 풀렸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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