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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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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행복해지자, 너의 행복과 더불어
-세계라는 빗속에서 황정은이 건네는 우산 같은 소설
이 문구만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이 책이 한없이 포근하고 따뜻한 줄 알았다. 책을 읽고 나서야 이 책은 무겁고 날카로워 나에게는 조금은 아픈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d>는 남겨진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dd가 죽고 홀로 남은 d, 사람이 떠나고 물건만 남은 세운상가의 여소녀, 세월호 사건 이후 남겨진 유가족들과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dd가 남긴 것들을 통해 d는 죽음을 느낀다. d는 사물에서 온기를 느낀다. 미적지근한 사물의 온도에 d는 흠칫 손을 뗀다. 그 미적지근함은 사람의 손을 탄 흔적이라고 느꼈다. 애정을 가진 만큼 사람이 남긴 온기들 같다.
우산이라는 사물이 아니고 작은 dd인 것처럼, dd의 일부를 빌려다 거기 둔 것 같았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 d는 dd에게 빌린 우산을 베란다에 걸어놓는다. 우산은 마치 dd의 일부인 것 같아 dd에게 돌려주고도 마치 우산이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는 듯한 환상을 보기도 하고 허전함을 느낀다. 소설을 읽으면 남겨진 사람들, d와 여소녀와 세월호는 함께 느껴진다. 떠나간 이들이 남기고 간 흔적은 그렇게 허전하고 환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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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여러 사회적 사건들을 펼쳐두고 이야기한다. ‘펼치다’라는 단어가 생각난 것은 <d>에서 혁명과 세월호 사건이 이야기의 중심을 빙글빙글 도는 주변의 이야기였다면 이 소설에서는 운동과 혁명에 참여하는 ‘나’의 이야기이다. 연세대 항쟁과 세월호 사건에 있던 ‘나’와 1987년 6월 항쟁, 용산 참사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소설에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혁명에 관해 이야기한다. 연세대 항쟁과 6월 항쟁이 과거였다면, 세월호 사건과 2017년 촛불혁명과 탄핵이 현재로 진행된다. 이 소설에는 미래에 일어날 또 다른 혁명에 이야기한다. 여성의 차별과 약자의 이야기를. 소설은 수면 속에 가라앉아있던 여성의 사회적 소외를 꺼내 이야기한다. 연세대 항쟁에서 함께 운동하면서도 소외되었던 여성, 일상적으로 무시되는 직장 내 성희롱,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행동들과 탄핵 운동에서 악‘녀’라고 말하는 문제들까지. 많지만 무시되어 왔던 여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하나의 길처럼 만들어준다. 과거를 되짚고 현재를 딛고 앞으로 나아간다. 앞으로 일어날 변화들을 함께할 이들에게 우산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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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말하는 혁명들은 역동적이고 거칠지만 이야기하는 글은 정작 담담하다. 요동치는 깊은 해류 위의 잔잔한 바다처럼 소설이 깊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확실히 어려운 책이다. 천천히 읽고 다시 읽고 중간으로 돌아가서 읽고를 반복했다. 짧은 문단 속의 이야기에도 많은 것들이 담겨있어 곰곰이 생각하다 책장을 넘기는 소설이었다. 읽고 나니 잔잔한 문장들에 오히려 내 마음이 요동친다.
이 책이 나에게 아픔을 준 이유는 내가 그동안 ‘혁명’과 변화를 멀리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회적 문제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살아왔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긴 수험생활을 핑계로 뉴스와 사회, 주변의 일들에 대해 무관심하게 살아왔다. 근현대사와 현재를 이야기하는 글들을 읽지 않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뉴스와 사회적 문제들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책은 단 한 줄로 날 찌른다.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 세계라는 비를 나 홀로 유유히 피할 방법은 없다. 작가는 그렇게 나에게 우산을 건네며 말한다. 이 모든 게 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