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양 박해와 서초동 십자가 - 조국 사건, 집단폭력과 희생양 매카니즘
이범우 지음 / 동연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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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개개인이 나서서 힘을 모으기도 하지만, 밝은 세상에 필요한 규범이나 법치를 올바르게 세우기에 역부족이 되는 경우도 많다. 더욱이 기존 규범과 법치 혹은 몸에 맞는 역사전통에 따라 편한 옷을 입고 편하게 살아가려고 할 수도 있다. 이런 맹신, 맹목을 깨뜨릴 수 있는 게 문화 변화이다. 올바른 문화는 무작위로 개인, 혹은 집단의 생각을 맹신하고 따라가는 개인의 그릇된 판단을 고쳐 나가는 역할을 한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생각과 이론, 주장에 아주 많이 공감했다. 특히 희생양 박해 문제를 르네 지나르 인문학자의 주장을 바탕으로 과거의 풍습을 현대에 그대로 적응시키는 저자의 능력에 놀랍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두려움도 느꼈다. 지난 선거에서 보수 카르텔의 힘을 대변하는 현재 야당과 보수 언론, 극우 보수 기독교 집단에 국민이 등을 돌렸지만 그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중심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검찰 또한 보수카르텔을 이용하여 자신이 우두머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집단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조국 장관이 희생양 매커니즘의 제물이 된 과정은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 박해자들이 그들에게 가한 터무니없는 집단살해를 르네 지나르는 초석적 폭력이라고 정의한다.

 

고대 사회의 희생양 집단 살해는 일시적으로 사회적 위기를 진정시키고 공동체에 평화를 가져온다. 르네 지나르는 이것을 초석적 폭력이라고 부른다.’ (85)

 

나에게 결과적으로 슬픔을 안긴 초석적 폭력이 너무도 처절하지만 적을 알아야 백전백승이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 상황 전개 과정을 살펴봤다. 욕망이 불러오는 모방과 경쟁으로 만들어지는 폭력은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주관적인 인간의 그늘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작가가 이야기한 장난감을 가진 아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큰 의미를 지닌다. 자기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것으로 즐기면 되는데 한 아이가 다른 아이의 장난감을 뺏으려 하는 순간 모든 평화가 무너지고 폭력이 난무하게 된다.(147) 단순한 이 이야기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욕망을 지닌 채, 학력, 명품, 재력 등을 가지려고 안간힘을 쓰는 현대의 여러 사건과 똑같은 논리에 속한다.

 

내재한 집단폭력 속성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악마는 스스로 속이는 존재‘(319)라고 한 말처럼 난 다른 사람과 달라라고 하기보다 나도 폭력과 욕망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늘 해야겠다. ‘거짓과 비난은 스스로 속이고 남을 속임으로써 상대적으로 완벽함을 추구한다.’(319)는 말처럼 가식적인 행동은 무조건 억제하려 해야겠다.

 

작가가 말하듯이 희생양 메커니즘은 거짓된 신화에 기초하고 있기에 결국 박해자의 신화는 깨어지게 되고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들 보수카르텔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 원인이 역사의 무지에 있다(327)고 한 말, 또한 진리이고 명심해야 할 말이다. 특히 가슴에 와닿은 주장은 희생양 전도라는 현상으로 희생양에 대해 신성화하는 일이 있으면 안 된다고 한 것이다. 희생양을 절대적 존재로 변하게 하여 모든 주장이 진실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인상적이였다. 희생양을 동원한 새로운 형태의 박해는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 저자가 말하는 희생양의 보호를 통한 전반적인 이권의 신장희생양 구조 위에 토대를 두고 있는 사회의 모든 양식을 정화하고 구조 자체를 해체시켜 나가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 주어진 인류사적 임무’(338)라고 한 말을 명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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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조차 아름다운 당신에게 - 상처받기 쉬운 당신을 위한, 정여울의 마음 상담소
정여울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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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문학대로 철학은 철학대로 문화는 문화대로 자신의 영역에 머물든 시대는 지나갔다. 하나를 갖고 하나에 만족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21세기는 앞 시대와 달라도 매우 다르다. 21세기는 복잡다단한 시대이고 여러 분야와 접하면서 사고를 팽창하는 시대이다. 여기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융합과 시너지 효과의 시대에 사는 현대인으로 단순하였던 옛 시대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정여울 작가의 상처조차 아름다운 당신에게는 지금 시대 인간이 겪는 아픔을 치료하기 위해 철학, 문학, 영화의 세 장르를 앙상블 시켜서 내놓은 처방전이다.

 

책을 읽고 나서 잊혀지지 않는 단어가 셀프self’이다. 프로이드의 이드’-‘에고’-‘슈퍼에고는 듣고 알고 있는 분석심리학의 근본 용어였지만 융의 셀프라는 용어는 처음 들었다. ‘셀프는 자기 개성화를 위해 필수 불가결하다는 말에 공감하였다. 이드와 에고, 슈퍼에고를 적대적인 관계로 정의하고 파악하는 게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로 설명한다. 나는 부딪히는 충돌이 생기면 늘상 이분법 논리를 적용하여 하나가 하나를 물리쳐야 비로소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알고 살았다. 정여울 작가는 이러한 논리에 반격을 가한다. 에고와 셀프의 결합을 의식과 무의식의 결합으로 보고 기존의 에고가 트라우마(혹은 방어기제)를 물리치고 셀프를 회복하여 자기를 만나게 되고 개성화를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을 파울로 우첼로의 <성 제오르지오와 용>이라는 작품을 통해 이야기한다.(45)

 


(방어기제인 용을 물리친 에고(의식)인 왕자는 셀프(무의식)인 공주를 구한다. 이 둘의 결합이 자기를 이루게 된다)

셀프를 찾기 위해 트라우마를 남겼던 이드와 슈퍼에고를 극복하자는 이야기는 나에게 숲속의 길처럼 환하고 밝은 깨달음을 주었다. 특히 트라우마를 부정적인 경험으로 보는 게 아니라 대면해서 극복해야 할 통과의례로 작가가 설명할 때 내 안의 의식이 깨지는 경험을 하였다.

 

투사를 통해 트라우마를 제대로 인지하여 극복하여야 에고가 셀프와의 결합이 이뤄진다는 이야기는 다른 장에서도 드러난다. 9장과 10장이 그러하다. 9장은 내향성과 외향성, 10장은 아니마와 아니무스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여성성을 대표하는 내향성과 아니마와 남성성을 대표하는 외향성과 아니무스는 작가의 말대로 이분법으로 나눠서 정의하면 안 된다. 어느 사람이든 내향성과 외향성을 둘 다 갖고 있으며 타인에 대한 배려와 외부를 향한 적극성을 다 갖고 있다. 나 자신을 들여다봐도 마찬가지이다. 필자가 지적하듯 하나로 정의한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살다가는 언제가 내면의 자아가 폭발하여 자신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작가는 이러한 심리적 현상을 영화 '더 와이프'를 통해 설명한다. 내면성의 소유자이며 남 앞에 나서길 꺼리는 아내는 자신의 남편을 통해 자신의 문학능력을 발휘한다. 극도한 외향성의 남편과 극도한 내향성의 아내, 이런 엄마, 아빠 속에서 살고 있는 자녀들 모두 불행의 씨앗을 키우고 있다. 자기 발견으로 폭로가 들춰지려 할 때 남편은 심장마비로 자신의 고통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고 아내와 자녀들도 불행한 삶을 이어가야 한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억압하였을 때의 결과는 참담한 비극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이야기하듯 자신 내면의 두 성향이 하나에 기울어지면 안 된다. 작가가 말하듯 페르소나에 갇혀서 자신의 에고가 원형적 이미지에 사로잡히게 내버려두는 사람들이 현대에 얼마나 많으며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니다. 항상 마음 속 양면을 적절하게 배합시키면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과 자신의 에고와 셀프가 결합이 되도록 늘 자신을 돌아보는 습관을 지녀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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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이 오고 있다 세상을 읽는 눈
신명호 지음 / 개마고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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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poverty’이란 말이 입에서 나오거나 머리에 떠오르면 짐짓 두렵고 막막해진다. 내가 빈곤자이든 주변의 아는 사람이 빈곤자이든 별반 다르지 않다. 맘 구석에서 나의 자아는 나는 싫어. 나는 아냐라고 중얼거린다. ‘빈곤을 정의하기가 힘들고 빈곤의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더 힘들다.

 

단순하게 빈곤은 가난이고 가난은 개인의 게으름이나 의지부족으로 생긴 현상이기에 개별적으로 개개인이 노력하여 빈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헛생각의 헛말이다. 그렇다고 빈곤은 사회문제이니 국가가 직접 관여하여 빈곤의 원인을 찾아서 중재하여 빈곤문제를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뜬구름 잡는 소리같다.

 

가난이 무엇이며, 빈곤과 어떻게 다른지, 빈곤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 사회가 빈곤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처리해야 하는지 등등 모르는 게 한 둘이 아니다. 평소 빈곤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본 경험이 없기에 깨놓고 하나도 모른다. 시사프로에 가끔 나오는 저소득층, 빈곤층, 노숙자들을 보고 가난하면 안된다, 저렇게 살면 안된다. 아하 불쌍하다, 안됐다 등등을 생각하고는 끝이다. 나와는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고 가까이 가면 안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 등을 갖고 살아왔다.

 

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암묵적 경계심을 갖고 살아온 나 자신이 너무 나약하게 보였다. 나와 타인에게 아무 소용없는 사람이 되기 싫다는 생각에 이 책 빈곤이 오고 있다’(신명호 저서, 개마고원 출판, 2020)을 읽게 되었다.

 

빈곤의 정의와 원인 그리고 실태를 하나하나 풀어 설명하는 저자의 글을 따라 푹 빠져서 책을 읽었다. 그러다 책의 중간쯤 되는 부분에서 노숙인과 인터뷰를 실시한 조사원들의 경험을 읽고 깜짝 놀랐다.

 

노숙인과 일대일 인터뷰를 하였다는 조사원들이 이런 말을 이구동성으로 했다고 한다.

 

저들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더라.”

나도 저들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더라.” (151)

 

이러한 노숙인들의 이야기를 들려 준 후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분의 문제가 전체의 문제일 수 있음을 인식하는 사회는 그 문제에 대한 해법과 예방책을 정책과 제도로 마련한다. 노숙인 문제에서도 국가 차원의 고용과 복지 정책이 중요한 이유다.’

 

노숙자가 된다거나 빈곤자가 되는 게 순리적으로 나와 있는 계단을 밟아서 되는 길이 아니라 누구라도 외부의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상황이 생활을 무너뜨려서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맞게되는 불행임을 알게 되었다. 무서웠다.

 

‘1990년 중반까지 8%인 빈곤율이 1997년 말 외환위기로 12%이였다가 그 후 조금 내려가는 듯하다 2003년부터 다시 악화되다 2009년에는 15.4%로 정점을 기록‘(52)하였다 한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빈곤율이 높다는 지표가 사실이라도 하면 사회 불평등 해소의 방법을 찾아서 빈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 직접 현장에서 사회운동을 하시고 계신 저자 신명호씨로부터 이론이 아니라 실제 빈곤의 해결책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빈곤의 원인으로 지적한 5가지 질병, 재해 및 사고, 노령, 실업, 질 낮은 일자리- 중에서 눈여겨 본 부분은 뒤의 2가지인 실업과 질 낮은 일자리이다. 이 둘은 개인적으로 혹은 우연히(혹은 개인이나 기업의 부주의로) 맞는 가난의 원인이 아니다. 국가의 적극적 개입과 근로자를 생각하는 기업의 올바른 이윤추구가 필요하다. 저자 역시 국가와 기업이 열악한 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빈곤층의 증가와 저질환경의 노동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생명을 잃는 사태를 언론을 통해 보고 있다. 너무 맘이 아프고 속이 상한다. 대체 나라는 무엇을 하고 있으며 기업은 근로행위를 하는 노동자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생각하면 정말 답답하다. 정부가 기업과 결탁하여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 촛불혁명을 일으킨 국민의 힘을 받아서 등장한 문재인 정권에 속한 정치인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제발 국민을 생각하고 국민을 위해서 기업인들을 단속하는 엄한 정부를 보고 싶다.

 

가장 알고 싶었던 게 빈곤해결 방안이다. 어떻게 하면 빈곤층을 낮추고 근로자들에게 좋은 근로환경과 좋은 소득을 줄 수 있는가. 필자는 마지막 15장의 빈곤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서 나름의 해결 방안을 내놓았다. 하나씩 뜯어보면 국가, 기업, 개인이 모두 공감과 실천을 해야 하는 방안이다. 이런 방안을 하나도 놓치지 말고 늘 가까이 접하면서 국가나 기업에 대해서는 감시의 눈으로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나라의 빈곤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현제도의 문제점은 한마디로 적용 대상이 너무 적고 급여수준이 너무 낮다는 것) 둘째, 오늘날 빈곤의 확산과 구조화는 고용의 불안정에서 비롯되는 부분이 너무 크므로 무엇보다 실업자와 불안정한 취업자에 대한 사회보험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셋째, 실질적인 실업부조제도의 도입도 시급하다.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청년이나 경력단절 여성 등에게도 기초생활을 보장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넷째, 빈곤층의 취업능력 및 자립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각종 사회서비스, 즉 교육, 건강지원, 노인과 아동에 대한 돌봄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내용을 강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다섯째, 공공임대주택의 공급량을 최대한으로 늘려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공공의료체계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해야 (277-278 요약함)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사회의 틀 속에서 익힌 삶의 습관과 양식을 확증편향의 기준으로 삼아서 살아가는 우리들 개인은 가 아닌 우리를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확증편향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인 우리를 늘상 생각한다고 맘속으로 다짐하지만 실제 행동이나 의식이 여기에 걸맞지 않고 추상적인 사념으로 끝났다. 앞으로는 위의 방안을 하나씩 되새기면서 필요악이긴 하나 빈곤문제가 사회구성원들의 노력으로 인해 축소되다가 사라지는 날이 올때까지 동참하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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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는 세상을 바꿨다 - 코로나 시대, 새로운 행복의 기준을 제시하다
최복현 지음 / 인문공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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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는 세상을 바꿨다’는 책 제목과 ‘코로나 시대, 새로운 행복의 기준을 제시하다’라는 앞표지 글을 보고 책을 읽고자 한 동기가 생겼다. 코로나로 인한 언택트(untact), 즉 비대면 시대에 접어든 2020년의 남은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살면 행복하게 살까를 고민하는 중에 만난 책이다. 신화 속 인물인 제우스가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떤 생각을 하였는지를 들춰 오늘의 시대에 맞는 굳건한 지팡이를 던져 줄 거라 생각했다.


신화 속 제우스의 다양한 전략 전술의 장단점을 통해 우리 현대 인간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 가를 서술할거라 말하면서 전개된 필자의 신화지식을 따라가는데 힘이 들었지만 단면으로 신화와 시대 표준의 태도를 이야기할 수 없기에 차분하게 필자의 글을 따라갔다.


10장까지 이어진 책에서 1장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제우스와 결혼한 신이나 인간과의 결합을 통해 뉴노멀의 표준규칙을 알려준다. 1장은 ‘균형추:제우스와 크로노스’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제우스가 탄생하기 이전의 세상, 카오스에서 출발한 우주가 열리는 시대를 설명한다. 


생생하게 머리에 남은 부분은 처음 세상이 열리게 된 과정이다. 카오스 상태의 세상에 처음 문을 연 게 무엇인가를 말한다. 필자는 ‘카오스의 역할은 신화에서 창조까지이고, 새로운 모두는 출산에서 나온다’라고 한다. 우라노스가 가이아와의 결합으로 생긴 모든 생산물을 가이아의 동굴(자궁)에 모두 밀어넣었다는 사실과 아들 크로노스의 도움으로 우라노스의 성기를 잘라버리는 부분, 이러한 우라노스의 비극을 본 크로노스가 아내 레아가 낳은 자식을 자신이 먹어버려 자기와 같은 반역자가 나오지 못하게 하는 부분이 모두 가모장제를 인정하지 못하는 가부장들의 욕심이고 횡포이다. 이런 비극상황에서 레아는 시어머니인 가이아의 도움으로 출산한 제우스 대신 돌을 크로노스가 먹게 하여 제우스를 살린다. 이때 살아난 제우스가 여자를 동등한 존재로 인식하여 기울지 않는 균형추를 다는 최초의 남자(남신)이다.  


이런 제우스와 더불어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는 출산을 통해 자식을 번성시킨 ‘여신’과 ‘여자’들이다. 가부장적인 입장에 놓인 사실을 확정된 사실로 일부 인정하는 부분이 있지만 내가 볼 때, 반반의 비율이 아니라 80대 20의 비율로 여자가 남자보다 중요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이 생각은 바뀌지 않았고 더 확실하게 마음에 담겼다. 책의 나머지 부분도 남자는 제우스 하나 뿐이고 나머지 주인공은 모두 여자라는 점을 봐도 여성이 중심을 이루지 않은 집단은 오래 가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제우스와 결합한 모든 여신들은 리더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스승이다. 메티스를 통한 약속, 테미스와의 관계에서 나타난 질서, 에우리노메의 품격, 테메테르의 생존과 므네모시네의 화합, 마이아의 소통, 레토와의 관계를 통해 보여준 중용과 헤라의 권력 그리고 마지막 여러 인간 여자와의 관계에서 보여준 유연성이 바로 그것이며 코로나 시대를 넘어서기 위한 덕목으로 지녀야 할 삶의 양식이다.


이러한 규범은 모두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솔선수범의 정신을 이야기한 2장에서 지엄한 법의 상징이자 약속의 상징인 맹세의 신 스틱스의 강을 건너야 한다는 부분이 특히 맘에 와 닿았다. 어떤 일을 하든지 약속을 하면 꼭 지켜야 하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솔선수범하여 이행하는 자세가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대에는 놓지 말아야 할 규범이다. 


6장에 나오는 리더의 근간이 경제이며 생존이 이념에 앞선다는 농경의 신 데메테르 부분 또한 찡하였다. 언론기사를 보면 매일같이 경제문제로 자살, 사기, 폭행 등의 일이 일어나고 노동문제를 고발하는 시위가 늘상 일어난다. 아무리 지적재산이 많다 해도 손에 쥐어진 돈보다 더 중하지는 않다. 물건과 바꿔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없다면 어떻게 세상의 문제를 다룰 수 있겠는가. 필자도 ‘생존이 이념을 앞선다‘고 했고 ’리더의 제일 덕목은 경제의 근간을 제대로 읽고, 그 방향을 잘 잡고, 그 방향으로 무난히 나갈 수 있는 인재를 등용하고, 그에게 중요한 지침을 내려주고, 그가 난관에 부딪쳤을 때 난관을 해결해주는 것이다‘(138)이라 하였다. 밥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한 발 앞서 뻗는 리더(가장)가 되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제우스와 여신들의 결합을 통해 알려준 여러 가지 리더의 덕목을 앞으로의 생활에 하나 하나 실천해 나가기 위해 재독을 해야겠다. 일 주일에 한 파트씩 읽고 체험하는 기회를 가져 한 가정의 리더, 한 직장의 리더로서 모자람이 없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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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걸려버렸다 - 불안과 혐오의 경계, 50일간의 기록
김지호 지음 / 더난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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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흐름이 신경을 누를 정도로 복잡하거나 난해하지 않다. 행동과 사고가 보일 정도로 글이 쉽고 부드럽다. 머리에 잘 들어온다. 작가적 감각을 갖춘 저자인 김지호씨와 탁월하게 편집을 한 더난콘텐츠 출판사 편집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먼저, 내용 감상에 앞서 글 전체 구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이 책은 1부, 2부로 나뉜다. 1부는 '50일간의 입원 생활'이고 2부는 '기다리던 퇴원, 그리고 일상으로의 복귀'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다. 저자의 경험이 코르나19 확진되기 전 과정, 코로나19 확진 판정과 입원, 입원 후 주변사람들과의 통화와 심경표현, 퇴원 직전의 상황과 퇴원과정에 든 생각, 가족과의 만남과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원망과 미안함 등으로 글이 이어진다. 

누구나, 어디서든, 언제든 코로나에 걸릴 수 있는 세상이다. 유럽과 미국은 9개월 전 코로나가 시작된 후 봄-초여름에 코로나 절정 상태를 맞았다. 그후 코로나가 진정되고 모든 사람들이 일상으로 복귀하여 예전생활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 때의 절정이 절정이 아니었다. 10월 말인 지금 추위와 함께 코로나의 절정이 다시 찾아왔다. 우리나라도 100명 전후(대부분 100명 이하이지만)로 코로나대전은 끝나지 않았다. 어제(2020 10 27) 코로나 감염 전문가들이 진단한 코로나 사태 전망에서 코로나가 없는 세상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예전 일상은 없어졌다. 예전 일상과 같은 일상을 볼 수도 누릴 수도 없다. 생활의 일부로 코로나를 대해야 한다. 코로나를 감기의 한 종류로 생각해야 한다. 근데 문제는 백신개발이 올해 말, 내년 초 등등의 시각에 나올 수 있다고는 하지만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백신이다. 안정된 백신은 내년 말에야 가능하다고 한다.

위 문단에 기록된 이런 상황은 어느 정도 코로나 지식을 갖추고 하는 말이다. 저자가 코로나에 감염되었던 때는 늦은 봄-초여름의 코로나 초기 유행 때이다. 모든 사람들이 코로나의 전염과 확산을 두려워하였다. 코로나에 걸리면 마치 죄인이 된듯한 분위기였기에 코로나 확진자 중 자신의 동선을 숨기려는 사람도 종종 나타났다. 저자는 할머니 장례식에 참석한 친구들이 고마워서 식사대접를 하다 클럽에 다녀 온 친구로부터 전염된다. 다른 친구들은 감염되지 않고 혼자 감염되었다. 외부사람들은 확신된 저자의 코로나와 선을 긋기 위해 칸을 지른다. '내가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저자는 괴로워한다. 누구나 그럴것이다.   

'억울하지만 아무도 관심 없을 내 사정을 누구에게까지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할까? 힘들고 겁에 질린 건 난데, 그들은 나를 계속 추궁한다. 그냥 내가 간 곳이 있다면 거길 방역하면 되는 것이고, 내가 접촉한 사람이 있다면 찾아서 검사를 받게 하면 되는데, 내가 어디까지 전화해서 그들을 안심시켜야 하는 것인가 싶었다.' (43쪽)

회사에서도 확진전화를 받고 저자와 멀리 하려는 행동이 암암리에 진행된다. 같은 건물 다른 층의 사업체에서도 위로 전화가 아닌 동선을 따져 묻는 전화를 한다. 역학조사로 저자가 다닌 바bar와 미장원의 직원 중 근접 접촉한 사람을 자가격리시키기도 한다. 카톡으로 원망을 한 헤어디자이너는 자신이 격리되어 생활비를 벌지 못했다고 원망했지만 저자가 퇴원하고 난 후, 상황이 마무리되고나자 서로를 이해하고 일상으로 복귀한다. 

전염된 사람은 전염시킨 사람을 원망한다. 자신의 일상이 보름, 혹은 저자의 경우는 50여일의 시간을 일상과 격리된 채 살아야 하기에 이해가 된다. 하지만 전염된 사람도 전염시킨 사람 누구도 의도를 갖고 전염되고 전염시킨 것은 아니다. 대구의 신천지 집단 신도들이나 광화문 집회 참석한 기독교 일부 단체들 사람들이 다소 무분별한 행동을 통해 코로나 방역을 방해하는 행동을 한 게 문제이다. 나약한 인간이기에 이기주의가 발동하고 이타주의는 사라진다. 저자도 이런 부분을 퇴원 후 절감한다. 

'개인이 사회 속에서 온전히 자리하기 위해서는 타인이 존재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타인을 이해할 때 비로소 '나'라는 존재가 성립되고, 그때 우리에게 '이타심'이 작동한다. 이타심은 인간의 이기심의 정반대에 서 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동시에 이기심과 공존한다. 이타심은 타인에 대한 나의 이해에서 비롯되는 마음이고, 이기심은 타인에 대한 나의 결핍이 만들어내는 마음이다. 즉 타인에 대한 결핍으로 인해 자신만을 위한 마음이 커지는 것이다. 이것이 본디 인간이 가진 이기심의 본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262쪽)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과 사회를 생각했다. '나'가 중요하지만 '너'가 없다면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과 '나' '너'가 '우리'가 되어 사회, 문화를 세워 나가지 않으면 '삶'의 진정한 가치나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공유와 느낌을 위해 생각날 때마다 다시 이 책을 읽어야겠다.

마지막으로 저자도 여러 번 적은 간호사와 의사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 말하고 싶다. 그들의 희생정신이 없다면 이렇게 체계적이고 안정된 방역시스템을 구축할 수가 없다. 그들을 대할 때 더욱 더 겸손해야겠다.

'그들도 무서웠을 것이다.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용감하고 담대하게 매일 수많은 환자들을 만났고, 바이러스에 무너져가는 환자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나를 살려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환자를 살려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끈질긴 바이러스와의 전쟁의 최전방에서 누구보다 가장 용맹하고 숭고하게 싸워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간호사실을 나서는 순간, 가슴이 벅차올라 진심을 다해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렸다.' (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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