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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의 시간 - 결국 현명한 자는 누구였을까
안석호 지음 / CRETA(크레타) / 2021년 4월
평점 :
책이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다. 책과의 만남을 통해 독자는 좋게 말해서 모르는 동네를 순회하는 것이고, 정확히 말하면 모르는 바깥세상을 기웃한다. 책을 들고 읽기 시작할 때 이방인이면서 친분을 지닌 지인이 되고 싶어 딴에 집중한다. 시간이 흐르고 책장이 넘어가면서 관계의 지도가 펼쳐진다. 한 번 만나고 말 사람, 다시 더 만나고 싶은 사람, 절친이 되어 인연을 맺고 싶은 사람으로 사람 관계가 나뉘듯 책과의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로 나눠진다. 그냥 두고 가버리고 싶은 책도 있고 계속 파고 들고 싶은 책도 있단 말이다.
이번에 만나게 된 '장벽의 시간'(안석호, 크레타 출판사)은 잔잔하게 장벽의 배경을 설명해 주고, 장벽에 얽힌 당사자들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며, 장벽이 갖는 의미를 전달해 주는 다시 또 만나고 싶은 책이자 저자이다. 안석호님의 다른 책을 구해서 읽고 싶다. 그래서 내 입장에서 절친이 되고 싶은지 살펴보고 싶다.
장벽이 있든 없든 한 번 세워지면 장벽에 갚힌 사람의 마음에 흐르던 감정과 소통의 자유는 멎는다. 그래서 장벽은 세워지면 안 되는 장애물이고 불순물이다.
1장의 베를린 장벽에서 19살인 동독병사 슈만이 간신히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가서 30년 가까이 살았지만(49세) 장벽이 무너진 후 고향인 동독에 갔을 때 서독 탈출자인 자신을 배신자로 바라보는 고향 사람들을 만난 후 10년이 지난 후(59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내용이 가장 맘 아픈 장면이었다.(89) 정치인들의 정권유지 편리를 위해 시민만 고통을 받는 살벌한 장벽 설치는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보안 목적이라고 말하면서 팔레스타인을 고립시키는 이스라엘 장벽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영역만 올바르고 다른 사람의 영역은 불순하니 경계를 지어 나의 순수를 그들의 불순으로 얼룩지게 하면 안된다는 자의 행동으로 장벽은 장애물이 되고 만다. 이스라엘의 행위는 더더욱 잔인하고 비겁하다.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서안과 가자지구로 분리하고서 자신의 땅이 신성하다고 말하는 이스라엘이 과연 자신의 종교인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후손이 맞는가?
장벽이 그린라인을 그대로 따라서 만들어졌다면 길이가 약 320km여야 했지만 계획된 것은 2배가 넘었다. 이스라엘 정부의 초기 계힉에 따르면 완성될 경우 동예루살렘 일부를 포함해 서안 지구의 10% 이상이 이스라엘 쪽에 포함되도록 경로가 설계됐다.(130)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이나 멕시코-미국은 경제선진국이 경제후진국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약자-강자의 공식이 적용된 경우이다. 문제를 미리 방지하여 서로가 인정 후 안전을 추구하기 위한 조그만한 시도가 작은 울타리의 국경이어야 제대로 된 국경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땅에 살면서 이웃과의 협력으로 즐거운 삶을 살아가는 게 나라와 나라의 경계가 존재하는 이유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슬프다.
팔레스타인이나 멕시코인들이 한 나라의 떳떳한 시민이 되어 자신의 영토와 자신의 문화, 자존을 지켜서 후손들이 당당하게 세계의 한 국민으로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그들 내보의 시민들조차 목에 걸린 밥그릇을 위해 자신의 나라가 아닌 잘 산다는 이스라엘이나 미국에 빌붙어 살아가려고 한다. 그래서 장벽은 없어지지 않는다. 강자가 이를 이용해 약자를 약탈하기 위해 더 높이 세우는 게 장벽이다.
멕시코 산업과 노동시장은 미국이라는 거인에 종속되다시피 했다. 경제 협력과 무역 확대에도 멕시코 경제와 산업,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대미 종속화가 심화했고, 이는 곧 멕시코에서 미국으로의 이주 행렬로 이어졌다. (195)
이런 종속관계가 강자 입장에서도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듯이 인건비가 미국의 10분의 1 수준 밖에 되지 않는 멕시고 근로자와 싸고 풍부한 멕시코 자원, 90%를 미국에 의존하는 멕시코 경제 등은 미국 시장이 없다면 경제가 지탱하기 힘들다. (230) 미국 시장도 마찬가지이다. 멕시코 인력과 자원 그리고 소비시장이 없다면 미국 기업 역시 제대로 된 발전을 이룩할 수없다. 이런 관계를 분명히 하고 서로 협력하면서 공정한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히스패닉이 없으면 패닉이 올 거라는 말까지 나온다'(223)
물리적으로 마지막 장벽인 한반도 DMZ장벽은 당사자인 남한사람인 나로서 아찔한 장벽이다. 앞 장벽과 너무나 다른 DMZ장벽은 슬픔의 장벽이고 원통의 장벽이다. 2차 대전 후 소련과 미국이 한반도를 갈라놓은 것부터 원통하고 김일성이 통일명목으로 전쟁을 일으킨 것 또한 원통하다. 제대로 국가로서 기능을 세우지 않고 정권욕에 빠진 이승만도 슬픈 인간이고 막무가내 한반도를 자신의 지배하에 두려고 까분 김일성도 슬프디 슬픈 인물이다. 그래서 625 전쟁이 터졌고 3년간의 전쟁 후에 세워진 DMZ비무장지대가 오늘날에도 가면 볼 수 있는 아픔의 장벽이다. 남과 북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미국과 멕시코, 서독과 동독처럼 인종이나 경제로 눈에 띄게 기울어진 국가는 아니다. 얼마든지 대화를 할 수 있고 얼마든지 서로 원조를 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다. 그런데 왜 못하는가? 이승만과 김일성이 제대로 나라를 챙기지 못했기에 아니 하지 않았기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 묶여 미국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딱한 처지에 묶여 있다.
동독이 세운 베를린 장벽이나 이스라엘의 분리장벽, 미국이 세우고 있는 멕시코 국경장벽 등도 마찬가지다. 모두 정치 상황이나 경제적인 이유, 또는 구조적인 결함 등으로 인해 인력과 물자가 장벽을 넘나드는 것을 완벽하게 차단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반도 허리를 자를 비무장지대는 다르다.(289)
<장벽: 인간의 또 다른 역사>의 저자인 클로드 케텔은 휴전선을 가리켜 "세계에서 가장 길고 폐쇄적인 국경"이라고 불렀다. (289)
마지막 장벽을 작가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라 하였다. 물리적으로 가로놓인 장벽이 아니란 말이다. 이런 장벽은 너무 무섭다. 희망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가시적인 장벽은 제거하면 된다는 비가시성의 희망을 주지만 보이지 않는 장벽은 심리적으로 사람을 억압하여 정신적 질병에 걸리게 한다. 그래서 무섭다.
에필로그에서 필자는 마지막 장의 보이지 않는 장벽과 연관된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시대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설명한다. 그렇다. 이런 예기치 못한 외부압력이 등장하니 선진국이니 문화 문명 최고 나라니 하는 나라들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장벽을 가-비가시적으로 치고 사는 나라들은 장벽의 무서움을 느끼게 된다.
어떤 장벽이라도 만들어서 안 된다는 교훈을 뼈 속 깊이 느낄 수 있는 읽기가 되어 유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