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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평점 :
또래의 여성이 모두 82년생 김지영의 삶을 살진 않았지만 그녀가 겪은 경험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을 것이다.
가장 화나는건 결혼 후 전업주부로 일하는 여성에 대한
삐딱한 시선이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방망이 두드려서 빨고, 불 때서 삶고, 쭈그려서 쓸고 닦고 다 했어. 이제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다 하지 않나? 요즘 여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이런것.
사회 생활하며 잦은 야근에 퇴근 하고 집에오면 씻고 잘 시간. 이런 생활을 오랫동안 했지만 내 경우에는 돈버는 게 살림하는것 보다 쉬웠다. 말 하면 입 아프지. 해 봐야 안다.
아직도 집에서 살림하는 여성들에게 남편이 벌어 주는 돈으로 놀고 먹는다고 이야기하는 무지한 자들에게 돌을 던지고 싶다.
집에 있는 내내 소파에 누워서 먹기나 하고 티비는 틀어 놓고 손에는 스마트폰만 종일 끼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겠다.
더 큰 문제는 그런자들이 아닌 시집 온 순간부터 늙어서까지 고생한 시어머니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내 아들이 번 돈으로 며느리는 논다고 생각하는 시가집.
결혼으로 독립된 가정을 이루는게 아니라 자기집으로 여자가 종속 된다고 생각하는 조선 시대 마인드.
아직 그 날은 먼걸까?
타인(아내)에게 공감 할 줄도, 사과 할 줄도 아는 김지영의 남편 정대현을 보며 남자가 저정도라도 되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초라하다.
언제까지 남자가 조금의 관대한 태도나 공감하는 모습이라도 보이면 칭찬하며 괜찮은 사람이라고 할텐가.
비정상들 중에 보석이라도 하나 찾은것 처럼.
김지영씨는 유모차 끌고 공원에 나와 1,500원짜리 커피 하나 마신다고 일면식도 없는 평범한 남자 직장인에게 맘충이라고 수근 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명절때는 시가에가서 온종일 일을 하고 몸살을 앓으며 친정은 늦게가서 엉덩이 한번 잠깐 붙이고 돌아 온다.
계속 일하고 싶었지만 출산과 육아, 남편의 권유로 경단녀가 된다. 이런 일은 결혼 후에 그녀가 겪은 그저 작은 좌절에 불과하다.
82년생 김지영이란 여성으로 태어나 자라면서 지금껏 겪은 부당함과 차별은 더 많다.
결국 그녀는 가끔 다른 사람으로 빙의가 되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증상을 보이고 극단적이게도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바로 잡으려니 힘들고 지치며 무시하자니 한도 끝도 없이 달려듦.
입만 아프고 기운 빠지고 지는 싸움을 하는것 같아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본인의 목소리를 내며 잘못된 일을 바로 잡으려는 여성들때문에 조금이라도 편하게 산다.
더러운 옷들이 스스로 세탁기에 걸어 들어가 물과 세제를 뒤집어쓰고, 세탁이 끝나면 다시 걸어 나와 건조대에 올라가지는 않아요. 청소기가 물걸레 들고 다니면서 닦고 빨고 널지도 않고요. 저 의사는 세탁기, 청소기를 써 보기는 한 걸까.
의사는 모니터에 뜬 김지영 씨의 이전 치료 기록들을 훑어본 후, 모유 수유를 해도 괜찮은 약들로 처방하겠다고 말하며 마우스를 몇 번 클릭했다. 예전에는 일일이 환자 서류 찾아서 손으로 기록하고 처방전 쓰고 그랬는데, 요즘 의사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종이 보고서 들고 상사 찾아다니면서 결재 받고 그랬는데, 요즘 회사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손으로 모심고 낫으로 벼 베고 그랬는데, 요즘 농부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라고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선택했고, 출산 방법은 부모의 가치관과 사정에 따른 판단일 뿐 어느 것이 더 낫고 말고 할 것은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언론에서 병원의 처치와 약물들이 아이에게 미칠 수 있는 인과관계도 불분명한 악영향을 언급하며 죄책감과 불안감을 안겨 주었다. 머리만 좀 지끈거려도 쉽게 진통제를 삼키는 사람들이, 점 하나 뺄 때도 꼭 마취 연고를 바르는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엄마들에게는 기꺼이 다 아프고, 다 힘들고, 죽을 것 같은 공포도 다 이겨 내라고 한다. 그게 모성애인 것처럼 말한다. 세상에는 혹시 모성애라는 종교가 있는 게 아닐까. 모성애를 믿으십쇼. 천국이 가까이 있습니다!
이 바닥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회사는 어쩌라는 거냐. 남자 직원들도 다 가정이 있고 부모가 있는데, 사람 인생을 이렇게까지 망쳐 놓아야 속이 시원하겠느냐. 여자들 입장에서도 사진 나돌고 그런 거 소문나서 좋을 거 없지 않느냐. 또래 한국 남자들에 비해 감각도 생각도 젊던 대표의 입에서 너무 뻔하고 이기적인 자기방어의 망발들이 쏟아져 나왔고,
"가정이 있고 부모가 있다는 건, 그런 짓을 용서해 줄 이유가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대표님 생각부터 고치세요. 그런 가치관으로 계속 사회생활하시다가는 이번 일 운 좋게 넘기더라도 비슷한 일 또 터집니다. 그동안 성희롱 예방교육 제대로 안 한 건,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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