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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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제니친은 스탈린을 비방한 편지 한통으로 수용소에 갔다. 그곳에서 8년의 시간을 보냈고 이 책을 썼다.
긴 시간의 고통에 무뎌진건지 그 사람 성격이 그런건지 수용소 생활은 담담하기만하다.
스프를 먹고 빵을 먹는 과정의 묘사는 의식 같다.
생선 뼈다귀에 자양분이 있다며 쪽쪽 빨고 남겨둔 빵껍질로 죽 그릇 바닥을 긁어 먹는 장면이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추접하다는 생각이 살짝 스칠때면 미안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밥 먹고, 과일 먹고, 과자도 먹고, 딩굴거리다 네모난 방에 커다란 침대에 누워 벽과 천장을 보면서는 감옥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기 때문이다.

[따끈한 국물이 목을 타고 배 속으로 들어가자, 오장육부가 요동을 치며 반긴다.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바로 이 한순간을 위해서 죄수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자유 없이, 생각 없이는 살아도 먹지 않고는 못 산다는 사실이 슬프다.

[뻑 ? 뻑 ? 뻑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자, 굶주린 온몸 전체로 담배 연기가 퍼져 나간다. 머리와 발끝까지, 구석구석 뻗어 나간다.

황홀감에 온몸이 떨리고 있는 순간, 슈호프는 저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들었다.]

온 몸 구석구석 뻗어 나가는 담배 연기의 황홀감. 간결하면서도 거의 완전한 표현이다.

어딜가나 사람 몇이 모이면 그 곳은 사회가 된다.
큰 세상 그 안의 나라들 그 안의 작은 조직들은 큰 세상의 축소판이다.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용소도 마찬가지다. 나쁜 놈, 좋은 놈, 이상한 놈들이 끼어있는 작은 사회.
수용소가 스탈린 시대의 축소판이라고 하는데 그 시대에 대해서 모르기때문에 뭐라 말은 못하겠다.
생각엔 그냥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구조로 보인다.
없는 사람 등쳐먹고 돈만 있으면 힘든 상황도 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부조리한 사회.
하지만 그런 인간들만 있는건 아니다.
죽을때까지 수용소에서 나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버티는 노인, 믿음으로 모든 상황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알료쉬카, 8년이나 힘든 상황에 갇혀서도 타락하지 않은 이반 데니소비치같은 사람들도 있다.
결국은 먹어야 사는 존재들이지만 치사하게 사는것 보다 가치 있는 삶 아닌가.

어디서 듣기론 작가가 감옥에서 책의 내용을 머릿속으로 썼고 매일 외우고 외운뒤 형을 모두 마친후에 글을 써 내려갔다고 한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해도 훌륭한 작품임엔 틀림없다.

알료쉬카는 누가 무슨 부탁을 해도 싫다는 내색을 하는 법이 없다. 만일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런 사람들뿐이었다면, 슈호프도 그렇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도움을 청하는데 어떻게 그걸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알료쉬카의 동료들은 올바른 인간들임에 틀림없다.

그는 마음속으로 하느님께 울부짖으며 기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 하느님, 저를 구해 주소서. 영창에 가지 않도록 해 주소서!’라고 말이다.

슈호프는 남은 국물과 함께 양배추 건더기를 먹기 시작한다. 감자는 두 개의 국그릇 중에서 체자리의 국그릇에 하나 들어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고 게다가 얼어서 상한 것이었지만, 흐물흐물한 것이 달짝지근한 데가 있기도 하다. 생선 살은 거의 없고, 앙상한 등뼈만 보인다. 생선 지느러미와 뼈는 꼭꼭 씹어서 국물을 쪽쪽 빨아 먹어야 한다. 뼈다귀 속에 든 국물은 자양분이 아주 많다. 이것을 깨끗이 처치하려면,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슈호프로서는 달리 서두를 일도 없다. 그에게 오늘은 명절과 다름없는 날이다. 점심도 두 몫을 먹었고, 저녁도 두 몫을 먹게 된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이라면, 다른 일을 뒤로 좀 미룬다고 해서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다.

그는 끝이 다 닳은 나무 수저로 건더기도 없는 국물을 단정한 모습으로 먹는다. 다른 죄수들처럼 국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먹는 것이 아니라, 수저를 높이 들고 먹는다. 이는 아래위로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 뼈처럼 굳은 잇몸으로 딱딱한 빵을 먹고 있다. 얼굴에는 생기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그래도 어딘가 당당한 빛이 있다. 산에서 캐낸 바위처럼 단단하고 거무스름하다. 쩍쩍 갈라진 거무스름한 손은 그가 걸어온 수십 년의 감옥살이를 통해, 한 번도 가벼운 노동이나 사무직 같은 것을 얻어 일한 적이 없이, 생고생만 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하지만 그는 전혀 굴하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다. 어떤 타협도 하려 들지 않는다. 삼백 그램의 빵만 하더라도, 다른 죄수들처럼 더러운 식탁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지 않고, 깨끗한 천을 밑에 깔고 그 위에 내려놓는다.

알료쉬카는 슈호프가 "하느님"이라고 말한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슈호프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것 보세요, 이반 데니소비치! 당신의 영혼이 하느님을 찾고 있어요. 왜 영혼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합니까?"

슈호프는 힐끔 알료쉬카를 쳐다본다. 두 눈이 촛불처럼 환하게 타오르고 있다. 슈호프는 휴우 하고 한숨을 쉰다.

"왜, 영혼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냐구? 알료쉬카, 기도라는 건 죄수들이 써 내는 진정서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세. 말해 봤자, 꿩 구워 먹은 소식이 될 뿐이고, 거절당하기 십상이란 말이야!"

당신의 마지막 남은 믿음마저도 잃어버리게 될 거예요. 감옥에 있다는 것을 즐거워하셔야 해요! 그래도 이곳에선 자신의 영혼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요.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라고 하신 말씀을 우리는 명심해야 해요."

슈호프는 말없이 천장을 바라본다. 그는 이젠, 자기가 과연 자유를 바라고 있는지 아닌지도 확실히 모를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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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0 16: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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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0 17: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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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2-10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같이 추운 날씨에 이 소설을 읽으면 더 춥게 느껴져요.. ㅎㅎㅎ 오래 전에 읽어서 확실하지 않는데, 추운 수용소 내부를 묘사한 내용이 있었던 걸로 압니다.

쉐기쉐기몽쉐기 2017-02-10 18:00   좋아요 0 | URL
오늘같이 추운 날 이거 읽으면서 공감 많이 했어요. 전 수용소 독방 생각이 나는데 열흘만 다녀와도 폐렴에 걸리거나 평생 반죽음 이라던가 15일이면 거의 죽음 상태가 된다는 표현이 생각나요. 창도 없는 좁은 공간에 홑껍데기 입혀놓고 들여보낸다지요..

2017-02-10 18: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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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0 18: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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