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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비파 레몬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10월
평점 :
한달이 넘는 유럽여행에 책이 필요했다.
짐이 너무 많아서 책을 많이 넣는 건 불가능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을 읽지 않은 채로 가지고 있다가
여행 때 가져가려니 너무 아까워서 몇 번을 망설였다.
더구나 긴 여행에 듬성듬성한 그녀의 책은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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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옷을 빼고 화장품을 빼고 속옷까지 뺀 무게만큼
그녀의 책을 넣고 뿌듯한 채로 여행길을 나섰다.
아, 그리고 내용이 빼곡한 기욤 뮈소의 신작 한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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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녔다. 너무나 무거운데도 읽지 않은 채로 아끼고 아껴서.
파리에서 교외로 나가는 햇살 담은 기차 안에서도.
동화 속 나라같던 벨기에에서 커피를 마실 때에도.
내내 참다가 스페인에 가는 기차 안에서 책을 펼쳤다.
햇살과 1등석의 깨끗한 테이블과 커피 한잔이 충족됐을 때.
그녀의 책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 책.
따뜻하고, 여유롭고, 완벽한 일상을 가지고 있는 9명의 그녀들.
그리고 외롭고, 뒤틀리고, 눈물겨운 속마음들..
결혼과 사랑에 대해 이토록 따스하고 냉혹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갑갑하고, 날카로운 지적에 슬프고 동시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스페인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난 가슴이 따끔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을 주먹으로 먹먹하게 쳐댔다.
이렇게 따스하게 위로를 해줘버리면
모두가 그 힘든 일상들을 인정해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을.
나 또한, 조금 용기를 내어, 날 위로할 수 밖에 없는 것을..
그리 잘못한 것은 아니라고 위안할 수 밖에 없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