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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이 하잘것없는 진실, 썩어 없어진 육신의 비밀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정조란 무엇이고, 우리는 사랑한 여인에게서 무엇을 기대했던가?
나는 살 만큼 살았고, 이것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네. 정조는 가공스러운 이기주의가 아닐까?
인간이 좇는 대부분이 그렇듯이 허영심의 산물이 아닐까?
우리는 정조를 요구하면서, 과연 상대방이 행복하길 원하는 것일까?
상대방이 정조라는 것에 구속되어 행복할 수 없는데도 정조를 요구한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의 사랑이 상대방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데도 정조나 희생같은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일까?
죽음을 앞둔 이제는 사십일년 전 그때처럼 감히 이러한 문제들에 단호하게 대답할 용기가 없네."
죽음을 앞둔 두 노인의 41년만의 해후와 하룻밤의 대화로 이루어진 책. 열정.
이 책을 읽으며 사실 확실한 전모가 드러나길, 두 노인의 언성이 높아져 사실을 낱낱이 캐는 스토리이길 바랬다.
그러나 작가는 끝끝내, 인생의 굴곡을 겪어본 노인들에게만 나올 수 있는 차분한 어조로 담담하게 책을 마무리 짓는다.
책을 덮으며 가슴이 답답하여 참을 수가 없었다.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책의 내용이 아른거린다.
왜일까? 왜 나를 이렇게 자극하는 것일까?
우정이라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진정한 인간관계에서의 신뢰와 불신.
오해와 변명과 거짓말, 사실과 눈속임.
모든 지저분한 감정 앞에 이 책을 감히 추천하고 싶다.
이유는 없다. 아직도 가슴이 쿵쾅거리는 묘한 매력이 이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