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 발칙한 글쟁이의 의외로 훈훈한 여행기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2009.02.22 22:24

 

빌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빌 브라이슨의 글을 읽고 있자면 그의 속사포 같은 문체 때문에 하하하 하고 웃어버리고 만다. 어떻게 저런 식의 표현을 할 수 있을까 하고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발칙한 유럽산책’이란 제목답게 글쓴이는 무척 많이도 걸어 다닌다.

낯선 곳에서 한손에는 책을 들고 여기저기로 알지도 못하는 길을 걷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구경을 하고 식당에 들어가 음식과 맥주를 시켜놓고 책을 읽는다... 혼자서!!!

아... 내가 무척이나 동경하는 그런 일이다.

요즘 많이 나오는 사진이나 그림에 여행기가 함께 있는 화려하게 디자인 된 여행수필은 아니지만 글쓴이의 유쾌하고도 솔직한 표현법이 그런 요소들을 보충하기에 충분하다.

빌브라이슨의 거침없는 문체를 감히 이외수 선생님의 거침없는 문체와 비슷하다고 생각해본다.

아... 부럽다.

아, 그리고 신기하게도 빌브라이슨도 에드워드 호퍼의 간이식당을 이 책에서 언급하였다는 것.

알랭 드 보통처럼 호퍼적인 것을 빌브라이슨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어디까지나 나만의 생각이지만.

 

 

 

런던에 있을 때 유럽 여행을 한 다음 책을 쓸 거라고 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여러 외국어를 구사하시나 보군요.”

“아니, 영어밖에 모르는데요.”

내가 모종의 자부심을 가지고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게는 그것이 외국 여행의 묘미다. 나는 여행지의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싶지 않다. 낯선 나라를 여행하는 것보다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을 자아내는 일이 어디 있을까. 여행자는 갑자기 다섯 살짜리 어린이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읽을 수 없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간신히 눈치로 알 수 있을 뿐이며,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가 없다. 존재 자체가 연이은 추측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그 나라를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전혀 히트할 가능성이 없는 대중가요도 듣고, 나와는 평생 연이 닿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전화박스 사용법부터 저 식품의 정체가 무엇인지까지 도무지 친숙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국적인 곳에 가고 싶었다.

낯선 곳에서 어리둥절해하는가 하면 매료되기도 하고, 실타래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근사한 대륙의 다양성을 경험하고 싶었다.

 

나는 노트르담 주변을 슬슬 돌아본 후 센 강 난간에 몸뚱이를 걸친 채 유람선이 미끄러져가는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유람선은 조명 때문에 물 위에 떠다니는 보석상자 같았다. 절망적이리만큼 낭만적인 모습이었다.

 

 

파리의 운전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병적으로 공격적인 운전자들이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신경 약물인 소라진을 자전거 타이어 펌프만 한 주사기로 투약하고 가죽 끈으로 침대에 묶어놓아야 할 사람들이 모두 한 공간에 진입하여 열세 개 방향 중 아무 데로나 이동을 시도한다고 생각해보라! 이게 사고를 내라고 고사를 지내는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퐁피두 센터 같은 건물에 대해 정말 맘에 안 드는 점은 그저 과시하기 위한 구조물이라는 사실이다. 퐁피두 센터를 설계한 리처드 로저스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건물을 확 뒤집어서 배관을 온통 밖에다가 설치했어요. 나 정말 쿨하죠?”

 

 

이 사람들은 상점 진열장도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 모른다. 심지어 약국 진열장도 너무나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어 감탄하다 보면 어느 순간 티눈에 바르는 고약이랄지 요실금 패드 따위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살펴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에드워드 하퍼의 “밤샘하는 사람들” 그림에 나오는 간이식당과 아주 비슷했다.

애석하게도 와이 낫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주인이 자기 식당에서 파는 음식을 먹고 죽었다나 뭐라나? 그렇지만 나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김 서린 간이식당 창과 옹기종기 모여드는 야간 근로자들, 카운터 표면을 젖은 행주로 닦으려고 널브러져 엎드린 손님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들어 올리는 셜리의 모습,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커피 한 잔과 필터 없는 카멜 담배를 손에 들고 공상에 잠긴 쓸쓸한 한 남자의 모습이...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 식당이 가끔 생각난다. 특히 어둡고 을씨년스러우며 수평선 저편 양방향으로 텅 빈 철로만이 뻗어 있는 벨기에 남부 이곳에서는 더욱...

 

 

뇌라고는 시리얼 한 조각만한 인간들이...

 

 

기억해 두자. 로마에서 줄을 설 때는 끼어드는 사람을 막기 위한 곡괭이가 필요하다!!

 

 

이탈리아 은행에서 일을 보려다가는 속이 터져서 심장마비 걸리기 십상인데, 은행에서는 ‘고객 심장마비 양식’을 작성해서 적어도 세 창구에 가서 도장을 받을 때까지 구급차도 불러주지 않는다.

 

 

그는 물병과 잔을 하나씩 가져와서 말 한 마디 없이 테이블 위에 내려놓더니 마른 행주와 젖은 유리잔에게도 돌아갔다. 방금 자기 마누라가 우유 배달부랑 도망가면서 자기 웨일런 제닝스 음반을 몽땅 가져갔다는 얘기라도 들은 사람 같았다.

 

 

실망을 극복할 줄 아는 사람의 눈길로 유심히 살펴봤더니...

 

 

 

나는 직장에서 잘리고 차도 도둑맞았는데 아내가 제일 친한 친구와 도망간 사실을 방금 알게 된 사람 같은 표정으로 여직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뭐..... 라고요?”

 

 

 

나는 흐르는 물을 보면서 변기에 앉아 여행이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생각했다. 집의 안락함을 기꺼이 버리고 낯선 땅으로 날아와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애초에 잃지 않았을 안락함을 되찾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쓰면서 덧없는 노력을 하는 게 여행이 아닌가.

 

 

여행이란 어차피 집으로 향하는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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