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어 완역본) - 톨스토이 단편선 새움 세계문학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김선영 옮김 / 새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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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움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고전 읽기는 언제나 기대가 된다. 이번 신간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집이다. 이미 여러번 읽고 아는 책이라서 그런지 오히려 서평이 쉽지 않았다. 자꾸만 뒷걸음치고 있는 하나남의 사랑이 내재된 글이 마음을 건드리는 것도 무시하지 못했다.

사람이 사는 곳에 내려와 천사가 알고 싶은 세 가지!
사람들 속에 무엇이 있는지, 사람들에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았는지, 사람들이 무엇으로 살아 있는지...
아는 듯하면서 설명하지 못한 채 애매하게 살아가고 있는 명제가 아닐까.


'사람들 속에 무엇이 있는 지 알아내어라'하신 하나님의 첫 번째 말씀이 생각났어요. 난 사람들 속에 사랑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들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자신의 몸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 지 아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여자가 남의 아이들에게 마음이 녹아 우는 걸 보고는 그녀에게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봤고, 사람들이 무엇으로 살아 있는지 깨달았지요.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마지막 말씀을 계시하셨고 날 용서하셨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깨달은 것은 각 사람은 자신에 대한 돌봄이 아니라 사랑으로 인해 살아있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중에서


그가 여러 편의 단편을 통해 전하는 것은 하나같이 "사랑"이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사랑.
혼자 살아남는 것은 결국 죽음이며, 다 같이 살아야 나도 살 수 있음을 강조했다. 타인을 진심으로 위하는 삶은 단출하고 소박할지 모른다. 삶의 목적이 자기 자신으로 향할수록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얽매이고 높은 곳을 향할 수록 욕망에 발이 묶인다.

소유와 재산에 눈이 멀어 정작 중요한 자신의 목숨을 잃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사람에게 땅이 많이 필요한가>,
가장 중요한 때와 사람과 일을 찾아다니는 왕의 이야기<세가지 질문>이 전해주는 이야기에 공감했다.

누군가와 함께 일을 하던 그 때, 곁에 있던 사람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고, 가장 중요한 일은 누군가에게 선행을 베푸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때는 하나뿐, 바로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는 메세지를 준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오직 이 순간에만 나 스스로를 어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필요한 사람은 지금 내가 만난 사람이다.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내가 무엇을 위해 왜 사는지 갈팡질팡하며 혼란하고 삶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 혼잣말을 할 때가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결국 남는 것은 사랑이겠지만, 어떤 유형의 사랑이든 마음의 손을 잡고 동행할 친구가 함께 하는 것이 큰 위로가 되고 혼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다는 것을 배우고 돌아왔다.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곳에 가서 책과 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서로가 느낀 그 동안의 감정과 앞으로 나아갈 글의 방향 등을 의논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소중했다. 잠시나마 일상을 탈출한 여행 덕분에 막막하고 답답했던 마음과 무거운 머릿속을 털어내고 가뿐해진 몸과 마음으로 또 한번 힘을 낼 수 있는 시간을 선물받았다.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던 그의 단편들을 다시 돌아보며 역시 톨스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화같은 이야기가 슬프기도 했고 날카롭게 다기오기도 했다.
신을 믿는다는 것과 별개로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내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야 할지를 삶에 잘 녹이고 버무려 내 삶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삶으로 가꾸고 서로 격려할 수 있는 동행하는 삶이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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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Blue + Purple 세트 - 전2권 - 시로 쓰는 러브스토리 연인
이도하.이정하 지음 / 비엠케이(BMK)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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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하 시인.
가슴 설레도록 애절하고 애틋한 시를 무한정 내뿜는 애정 시인의 이름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앉은 듯 그리움의 언어들로 넘실대는 사랑꾼 시인. 이도하 시인과 함께 러브 스토리를 연애편지처럼 한 면씩 채워가며 달달한 사랑과 뭉클하고 저릿한 이별 시로 짝을 이루어간다.

이름도 비슷한 두 시인의 만남에 잔뜩 부풀어 올라서 책이 도착하는 날을 설레며 기다렸다. 사랑시도 많았지만 사랑한 후에 남자를 떠나 보내려는 여자와 그 사랑을 잡으려는 남자의 절절한 마음을 시로 녹여냈다.
사랑했던 두 남녀는 이별 앞에서 각자의 마음이 달라진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통증을 잊고 다음 생을 기다려 볼 마음으로 사랑해서 떠나 보낸다는 여자가 있다.
또 한편에는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나 사랑해서 떠날 수 없는 남자가 있다. 두 남녀의 사랑이 엇갈리는 순간까지 애틋함을 시로 주고 받은 마음을 시로 승화시켰다.

사랑이 아픈 것은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루어질 수 없거나 이루어져선 안되는 사랑.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그 사랑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가슴이 평생 잿더미가 되는 것도 모른 채.
하지만 꽉 막힌 현실 속에서도 사랑은 어떻게든 빛을 낸다. 희미하게라도..

사랑을 해 본 기억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추억을 선물하고 이별의 아픔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 시린 기억이 떠오를지 모른다. 만남의 설렘부터 세상의 모든 풍경들이 정지된 가운데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향하던 모든 시선과 마음들이 고스란히 아름다운 시어들로 채워진다.

세상에 수많은 길들이 있지만 한 사람을 향한 길은 오직 한 길 밖에 없는 것. 진흙 속에서도 고결하게 피어나는 연꽃처럼 아픔과 상처 속에서도 과연 꽃은 피어날까?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하루 모든 시간이 궁금해진다는 것이다.

"그 사람도 나를 궁금해할까?"
"스스로 감당할 길 없는 너를 향해 꽉 차 있는 이 마음,
네가 좀 덜어줄래?"

아...심쿵하는 이런 문장을 적어내는 이정하 시인은 사람 마음을 들었다놨다 심장이 들썩거리게 한다.
조용히 내리는 가랑비처럼 마음을 적시고
어두울수록 반짝이는 별처럼 따뜻하게 안아주고 달려가는 사랑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설렐 것 같은 시집이다.

헤어지는 이별을 고하기 전에 서로 열심히 아낌없이 행복하기 위해서 사랑을 하자.
이별 뒤에 홀로 남는 사랑같은 거 너무 아프니까..
오랜 휴식기에 있는 나의 연애 세포를 툭툭 건드려본다.
아직 살아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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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김비.박조건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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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보랏빛 바탕에
내가 좋아하는 우산까지 홀로그램으로 반짝이고 있는 매력적인 표지인데 마음 한켠 후미진 곳에서는 왠지 모르게 차분하게 가라앉는 감정이 흘렀다.

김비 소설가는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박조건형 드로잉 작가는 우울증으로
서로의 결핍을 채우며 회복하는 부부의 이야기를 에세이형식으로 담았다.

세상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오롯이 자기 편이 되어 줄 사람이 나타났다는 기쁨
자신보다 더 큰 손이 투박하지만 따스했던 기억
사랑은 그렇게 가뭇없이 작은 온기로 스며든다.

부부가 살면서 자기의 생일이나 결혼 기념일 같은 날을 굳이 챙겨가며 호들갑을 떨고, 이벤트가 없이 지나가면 무능한 남편, 센스없는 부인이 되기 십상이다.
이들의 기념일은 조용하다. 일상을 소소하게 감사하며 챙겨주는 날이 많아서 기념일에 굳이 이벤트를 열지 않아도 평범함이 이벤트가 되는 시간이라는 말이.
굳이 이벤트가 필요치 않다는 말이 꽤나 멋지게 들려온다.

"사랑은 표현하는 것이고
그 표현은 일상적이어야 힘이 있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박조건형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이 더 자연스러운 부부의 세계가 훨씬 이쁘고 이런 짝지를 만나 더없이 편안하고 재미있게 살아가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세상의 편견에 맞선 자신의 짝지를 위해
무조건 짝지 편이 되어준다는 든든한 남편.
그에겐 평생 따라다닌 우울증이 괴롭힌다.
오롯이 자신이 감당해야할 우울증의 무게를 함께 하면서 벽하나를 두고 마음으로 끌어안는 부부의 모습이 이쁘고 뭉클하게 다가온다.

나이 50을 트로피라고 말하는 김비 작가는
자신의 본명 김병필을 불러대는 유일한 사람 남편에게 사랑스러운 여자이다.
어릴 때부터 아팠고 허약했는데 게다가 감당하기 힘들었을 성전환수술까지 하느라 고단한 몸은 얼마나 살아갈 날이 남았는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쟁같은 세상, 이기적인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우습게 들릴 수 있는 정글같은 사회에서
다시 한번 사랑을 믿게 하는 글들과
사랑할 용기를 아낌없이 퍼부어댄다.
연약한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의 약함을 숨기지 않고 회복해 나가는 일상이 아름다워서 반짝인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들처럼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이 두려워 머뭇거리는 연인들에게 사랑의 힘을 믿게 해주는 아주 사소한 기록만으로 감동적이다.
작은 것에도 감격하고 감사하며
미안한 일에 정확하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면
서로에게 얼마나 위안이 될까.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을 하는 것이야말로
살아가면서 누릴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아프지말고 행복하자는 말에 담긴 사랑
그리고 서로의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날들이 많지만
이 사회가 던지는 질문에 언제나 대답을 해야하는 쪽은 자신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는 어른다움이 있다.

"여전히 나는 여기 이 세상의 언어로는 규정할 수 없는 존재로 살지만, 그럼에도 다행히 나답게 살고 있다.
언제나 답을 찾는 일은 내 몫이다. 이 사회가 나에게 질문을 할 때마다, 나는 그 말들을 씹어 삼킨다. 어떤 말이든 꾸역꾸역 씹어 배 속에 밀어 넣는다"
-김비

김비의 글과 박조건형의 글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처럼 차곡차곡 쌓인다. 성소수자로서 살아가는 부인을 가장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부인이 더이상의 아픔과 무례함을 적게 겪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과 사랑이 그대로 묻어났다. 사랑하는 남편의 우울증을 바라보며 무던히도 애쓰는 그 마음을 끌어안고 귀한 삶으로 인정하고 포기하지 않고 올곧게 서 있는 모습으로서 그들은 서로에게 완전한 의미가 되어간다.

결핍이란 때때로 사람을 든든하게 묶어주고 단단하게 결속시켜주는 힘이 있다.
서로에게만 무장해제되는 것
진정 살아있는 사랑의 참모습이 보인다.
어떤 우산이 되든 양산이든
서로에게 유일무이한 사람이 되어준다는 것,
그들이 말하는 자신만의 '짝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 축복일까 싶어 내심 부러웠다.

적어도 둘만이 사는 세상 안에서 그들은 가장 행복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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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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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떠오르는 공포와 호러 장르의 책이다.
띠지에 적혀있는 홍보문구가 읽기도 전에 무섭게 만들어서 뒤로 미루다가 겨우겨우 읽었다.
게다가 책의 뒷면에는 주의사항까지 적혀있다.
*심약자는 반드시 해설을 먼저 읽을것!
공포감 조성이 대박이다...

[이사]를 주제로 일상의 가까이에 있는 것들이 공포로 돌아오는 리얼리티 호러의 진수라고 설명되어 있다.
문/수납장/책상/서랍/벽/끈​
6가지 이야기를 묶어놓은 연작 단편집이다. 으스스한 공포감이 감도는 도시전설을 소설화한 작품이라 읽기 전부터 망설였다. 워낙 공포영화도 잘 놀래서 보지못하는 지라 살짝 겁을 먹고 읽어야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기함할 정도로 공포스럽지 않고 술술 재밌게 잘 넘어가는 읽을만한 괴담소설이었다. 긴장하고 읽기 시작해서 그런지 첫번째 소설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이사를 준비하다보면 이집 저집의 구석구석을 면밀히 들여다보게 된다. 이사를 결정하려던 집의 벽면에 구멍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공포스럽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슬쩍 무서운 상상을 하게 될 것 같다.
오다 게이타로는 강간 및 살인 혐의로 체포된 인물인데 이 집은 아무래도 오다 게이타로가 살던 집인 모양이다. 잘못 배달된 우편물로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벽에 뚫린 구멍이 차츰 눈이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엔 무수히 뚫린 구멍의 정체를 몰랐지만 오다 게이타로가 살았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는 피해자를 표적삼아 다트핀을 던지며 놀았다는 사실이 재판에서 밝혀진 바가 있기 때문이다.
소름~~~!!

편안하게 살던 집에서 어느날 불현듯 날아온 우편물로인해 그 전에 살던 사람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게다가 그의 이름은 살인범이었다니...
당장 다른 집으로 이사라도 가버리고 싶을 심정이 되지 않을까.

가끔 비가 내리고 어둑해지는 날엔 거실 불을 끄고 귀신 이야기를 하거나 알고있는 학교나 동네의 괴담이야기를 해준다. 아이들은 돌아가면서 자기가 알고 있는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들끼리 놀라 책상 아래로 숨어버린다. 지금은 높은 층에 살아서 그런 재미가 없어졌지만 1층에 살면서 공부방을 할 때는 비가 오는 날에 불을 끄면 귀신이야기 하기 딱 좋은 조명이 된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무서운 이야기의 절정에서 책상 한번 확 두드려주면 아이들의 공포감은 극대화가 된다. 꺅~!!!

귀신 이야기나 괴담들은 시대가 흘러도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주제이다. 실제로 귀신을 보았다던지 귀신 체험을 했다는 이야기들을 모아 소설로 만든 단편들이다.

사실,, 이사를 준비하면서 이 책을 본다면 섬뜩할지도 모르겠다. 수납장을 열며, 서랍을 열어보며, 끈을 잡아당기며, 벽의 구멍을 보며....갖가지 상상을 하게 될 것 같은 실화괴담들을 작가의 유쾌한 표현력으로 실감나고 흥미롭게 풀어냈다.
혼자 이사할 집을 보러 다니다가 이러한 일을 만나게 될까봐 살짝 정신이 혼미해지는 부작용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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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커피 한잔 타 올게요
김경진 지음 / 메이킹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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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작가님의 책은 두번째 만남이다.
처음에 인연이 닿았던 <여전히 이기적인 나에게> 감성의 결이 나와 잘 맞아서 이번 책도 기대가 되어 한두편씩 가볍게 읽어내렸다.
시처럼 에세이처럼 생각을 글로 담아내는 것이 김경진 작가님의 표현방식인 것 같다.
시와 에세이가 겹쳐져 있어서 시인듯 하면 에세이 같고, 에세이인듯한 시들이 꽤 있다.
제목부터 편안하게 다가온다.

일상의 언어에는 한계도 있고 표현의 임계점도 있으며 곧이곧대로 표현되지 않는 말의 이면들이 있다. 그러한 다양한 어휘들을 작가님만의 잔잔하고 서정적인 언어들로 편안한 글로 내려앉았다. 마음에 닿는 문장들은 내 글 속으로 갖고 오고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익숙하게 흐른다.

「말의 이면​

내가 너에게 하는 말에 나는 의미를 숨겨두곤 한다.
함부로 하지 않는 나의 말은 항상 너에게 향해 있다.
밥먹자는 말은 너와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뜻이다.
커피 한잔 마시자는 말은 너를 조금 더 알고 싶다는 말이다.
술 한잔하자는 말에는 너에게 나를 더 많이 보여주고 싶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너를 보고 싶다는 말을 이처럼 나는 어렵게 돌려서 말한다. 매일매일 한사코 보고 싶다고 말하면 보고 싶음이 가벼워질까봐서」

적당히 의미를 숨겨서 말을 하거나 에둘러 말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제대로 나의 뜻이 전해진다면 좋겠지만, 경계가 불분명한 모호함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엉뚱하게 어긋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정확하게 말하면 어쩐지 속내를 들킨것 같아 겸연쩍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밥먹자, 커피마시자, 술한잔하자는 말에는 골고루 다양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함께 하고 싶기도 하고, 편안해서 좋으니까 또 만나고 싶고, 더 많이 알아가고 가까워지고 싶고,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하고....

나는 혼밥이 싫다는 말을 자주 한다. 배가 고프지 않다는 말의 이면에는 뱃 속의 허기보다는 허전함이 더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혼자 밥먹기는 싫은데 배는 고프고, 혼자 먹는 밥이 익숙해질만도 한데 혼밥은 여전히 하기 싫다.
딸아이가 친구와 밥을 먹고 들어오는 오늘같은 날은 옥수수나 포도 한송이로 넘어간다.

밥을 먹을 때 같이 먹을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은 밥을 배부르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의 이면을 알아주는 사람이 생기면 좋겠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과연 나는 말걸음마를 어느 정도나 떼고 있는 것일지 궁금하다. 어디에서든 검증되지 않은 글을 혼자 잡다하게 늘어놓고 나면 속에 고인 물을 다 퍼낸 기분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워진다. 좀 더 고르고 걸러냈어야 했는데, 혹은 너무 길어지지 않게 짧은 말을 했어야 했나? 너무 감정이 섞인 언어보다는 논리정연한 말을 하고 싶은데 사람마다 갖고 있는 말의 성향이 달라서인지, 내겐 논리에 매달리는 일이 난해하고 힘들다.

듣자마자 바로 수긍이되는 투명한 언어들이 좋다.
바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은 받아들이는 사람이 나의 뜻을 그대로 전해받지 못할 때 안타깝다. 그러면서도 꼭꼭 숨긴 은유적 표현을 하는 작가들의 수려함에 탄복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언어를 택하는 기준을 부러워하고 조심스러워하면서도 겨우겨우 걸음마를 떼어가며 식상한 일상의 언어들을 배설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좀 더 강렬하고 절절하게 사람의 마음에 닿는 말사냥을 떠나고 싶다.

책의 글 자체가 김경진 작가 자신이라는 느낌이 오롯이 드러나는 책이다. 거짓없이 진솔하게 인간 김경진의 언어들은 바로 이렇다고 말해준다.
다양한 사물과 경험을 나의 글로 옮겨보는 일을 해보고 싶어졌다. 김경진 작가님의 글에는 사소한 것을 시처럼 에세이처럼 어떤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시와 산문의 경계에 걸쳐있는 시에세이를 겨냥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삶에도 경계가 뚜렷하지 않는 운문과 산문의 경계 어디쯤에 서성이는 언어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을지 모를 일이다.

잠시만요, 커피한잔 타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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