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요, 커피 한잔 타 올게요
김경진 지음 / 메이킹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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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작가님의 책은 두번째 만남이다.
처음에 인연이 닿았던 <여전히 이기적인 나에게> 감성의 결이 나와 잘 맞아서 이번 책도 기대가 되어 한두편씩 가볍게 읽어내렸다.
시처럼 에세이처럼 생각을 글로 담아내는 것이 김경진 작가님의 표현방식인 것 같다.
시와 에세이가 겹쳐져 있어서 시인듯 하면 에세이 같고, 에세이인듯한 시들이 꽤 있다.
제목부터 편안하게 다가온다.

일상의 언어에는 한계도 있고 표현의 임계점도 있으며 곧이곧대로 표현되지 않는 말의 이면들이 있다. 그러한 다양한 어휘들을 작가님만의 잔잔하고 서정적인 언어들로 편안한 글로 내려앉았다. 마음에 닿는 문장들은 내 글 속으로 갖고 오고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익숙하게 흐른다.

「말의 이면​

내가 너에게 하는 말에 나는 의미를 숨겨두곤 한다.
함부로 하지 않는 나의 말은 항상 너에게 향해 있다.
밥먹자는 말은 너와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뜻이다.
커피 한잔 마시자는 말은 너를 조금 더 알고 싶다는 말이다.
술 한잔하자는 말에는 너에게 나를 더 많이 보여주고 싶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너를 보고 싶다는 말을 이처럼 나는 어렵게 돌려서 말한다. 매일매일 한사코 보고 싶다고 말하면 보고 싶음이 가벼워질까봐서」

적당히 의미를 숨겨서 말을 하거나 에둘러 말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제대로 나의 뜻이 전해진다면 좋겠지만, 경계가 불분명한 모호함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엉뚱하게 어긋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정확하게 말하면 어쩐지 속내를 들킨것 같아 겸연쩍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밥먹자, 커피마시자, 술한잔하자는 말에는 골고루 다양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함께 하고 싶기도 하고, 편안해서 좋으니까 또 만나고 싶고, 더 많이 알아가고 가까워지고 싶고,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하고....

나는 혼밥이 싫다는 말을 자주 한다. 배가 고프지 않다는 말의 이면에는 뱃 속의 허기보다는 허전함이 더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혼자 밥먹기는 싫은데 배는 고프고, 혼자 먹는 밥이 익숙해질만도 한데 혼밥은 여전히 하기 싫다.
딸아이가 친구와 밥을 먹고 들어오는 오늘같은 날은 옥수수나 포도 한송이로 넘어간다.

밥을 먹을 때 같이 먹을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은 밥을 배부르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의 이면을 알아주는 사람이 생기면 좋겠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과연 나는 말걸음마를 어느 정도나 떼고 있는 것일지 궁금하다. 어디에서든 검증되지 않은 글을 혼자 잡다하게 늘어놓고 나면 속에 고인 물을 다 퍼낸 기분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워진다. 좀 더 고르고 걸러냈어야 했는데, 혹은 너무 길어지지 않게 짧은 말을 했어야 했나? 너무 감정이 섞인 언어보다는 논리정연한 말을 하고 싶은데 사람마다 갖고 있는 말의 성향이 달라서인지, 내겐 논리에 매달리는 일이 난해하고 힘들다.

듣자마자 바로 수긍이되는 투명한 언어들이 좋다.
바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은 받아들이는 사람이 나의 뜻을 그대로 전해받지 못할 때 안타깝다. 그러면서도 꼭꼭 숨긴 은유적 표현을 하는 작가들의 수려함에 탄복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언어를 택하는 기준을 부러워하고 조심스러워하면서도 겨우겨우 걸음마를 떼어가며 식상한 일상의 언어들을 배설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좀 더 강렬하고 절절하게 사람의 마음에 닿는 말사냥을 떠나고 싶다.

책의 글 자체가 김경진 작가 자신이라는 느낌이 오롯이 드러나는 책이다. 거짓없이 진솔하게 인간 김경진의 언어들은 바로 이렇다고 말해준다.
다양한 사물과 경험을 나의 글로 옮겨보는 일을 해보고 싶어졌다. 김경진 작가님의 글에는 사소한 것을 시처럼 에세이처럼 어떤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시와 산문의 경계에 걸쳐있는 시에세이를 겨냥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삶에도 경계가 뚜렷하지 않는 운문과 산문의 경계 어디쯤에 서성이는 언어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을지 모를 일이다.

잠시만요, 커피한잔 타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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