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생 새움 세계문학
기 드 모파상 지음, 백선희 옮김 / 새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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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1883년에 처음 출간되고 톨스토이로부터 [래미제라블]이 후 프랑스 문학의 걸작이라는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너무도 친절하고 자세하게 인물, 사건 등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하고 있다. 너무나 뻔하지만 묘하게 중독성이 있어 다음 장면을 보게되어 끝까지 읽어 나간 드라마 같은 소설..

하지만 삶은 어쩌면 영화보다 더 영화같고,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기막힌 일들이 포진해 있음을 나는 안다.

잔느라는 시골 여성 귀족 여성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다른 현대 소설처럼 복잡한 장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지루하기도 하다.

해는 이미 저물었다. 멀리서 종소리가 들렸다. 작은 마을에는 등불이 켜졌다. 하늘에도 총총한 별들이 빛난다. 불밝힌 집들이 드문드문 한 점 불처럼 어둠을 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다 갑자기, 언덕 너머, 전나무 가지 사이로, 커다랗고 붉은 달이 졸음에 겨운 듯 솟아올랐다.
p. 24 알퐁스도데의 <별>처럼 풍경묘사가 아름답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잔느는 수도원에서 나와 미래 계획에 들떠있다.
그러다 우연히 젊은 귀족 쥘리앵을 만나 순식간에 사랑에 빠져 바로 결혼하게 된다.

그는 여자들이 꿈꾸고 모든 남자들이 불쾌해 할 그런 행복한 얼굴의 소유자였다. 곱슬곱슬한 검은 머리가 가무잡잡하고 매끈한 이마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인공적으로 보일만큼 반듯한 눈썹 때문에 검은 눈매는 더 깊고 부드러워 보였고 흰 눈동자에는 살짝 푸른빛이 감도는 듯했다. 번민하는 듯한 그 눈의 매력은 생각의 깊이를 만들고, 사소한 말조차 중요하게 느껴지게 했다.
p.52-53

딸을 순수하게만 키우려고 했던 아버지 덕분에 잔느는 세상을 모르고 수도원에서 지냈다. 처음 다가온 멋진 남자의 외모에 반하고 첫인상에 빠져 사랑을 하게 된다 . 아름다운 사랑에 나까지 설레는 기분~ 사랑의 시작.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음에 탄식이 나왔다.
신혼여행 이후 그들에겐 사랑이 없었고 사랑하던 사내는 차츰 변해갔다. 그 이후의 생활은 잔느라는 여자가 감당하기 힘든 일들의 반복이었다.
과연 이 남자는 변한걸까?
본래의 마음을 숨기고 사랑을 가장한 접근이었을까?
잔느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시간이 있을까?

네가 살아가는 일을 얼마나 알지 모르겠다. 특히 딸애들에게는 조심스럽게 감추는 비밀들이 있단다. 딸애들은 우리가 딸의 행복을 책임질 남자의 품에 안겨 줄 때까지 정신이 순수하게, 한 점 오점이 없도록 순수하게 남아있어야 하기 때문이지. 인생의 감미로운 비밀에 씌워진 베일을 걷는 건 그 남자의 몫이란다....(중략)
하지만 이것만은 잊지 말거라.
너는 온전히 네 남편의 소유라는 점 말이다.
p.94

그렇게 아끼던 딸의 순수함을 자키려던 이유가 고작 남편될 사람에게 오점없이 주기 위함이라니.. 이 문구가 답답하고 숨이 턱 막혔다.
그녀는 정확히 무엇을 알았을까?
무얼 짐작했을까?
어떤 예감처럼 우울하고 고통을 느꼈을까?

이 말을 듣는 나조차 압박에 짓눌려 숨이 막혀버릴 듯했다. 남자가 여자의 행복을 책임져 준다는 말에 여자는 남편의 소유라니...
그때까지 순수하게 남아있어야 한다는 말도 잔느를 불행하게 몰았다.

잔느가 그에게 애정어린 징책을 하려고 들면 그는 아주 거칠게 응수했다.
"날 좀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하겠어?"
그녀도 스스로 놀랄 만한 태도로 체념하고 그 변화를 받아들였다. 그는 그녀에게 낯선 사람이 되었다. 영혼도 마음도 그녀에게 닫혀 버린 사람이었다.
p.137

만나서 사랑하고 애정하는 마음과 프로포즈로 결혼했던 그들이 갑자기 거의 모르는 사람처럼 되었을까?
그녀는 남편에게 버림받고 어떻게 괴로워하지 않을까?
이런게 인생일까?
그들이 사랑이라고 착각한 걸까?
그녀에게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감각이 꺼져 버린 잔느는 더 이상 동요하지 않았고, 상처입은 그녀의 마음, 감상적인 영혼만이 따뜻하고 풍요로운 봄바람에 흔들리는 둣했다. 욕정 없이 들뜨고, 꿈에는 열정적이지만 육체적 욕구에는 죽어버린 그녀의 마음은 증오심 어린 혐오감에 가득 차서 그 추잡한 동물성에 질겁했다.
p.231

이렇게 굴곡있는 서사가 갑갑한 이유는 주인공 잔느의 삶에 대한 태도가 정말 수동적이기 때문이다. 삶을 바꾸려는 의지 없이 시골에서 정해진 대로만 살아가는 운명론적 인물이다. 정말 평면적인 인물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무슨 사건이 있든 성격이 전혀 바뀌지 않는다.

남편에게 애정을 쏟지 못하자 아들에게 애정을 쏟는 것도 필요 이상의 것. 도를 넘치는 어긋난 사랑으로 아들마저 떠난다. 자식이 잘 되길 바라고 하는 행동도 아니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전형적 어머니상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행동이 아들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다. 마지막에 결국 자신이 내쫓은 하녀에게 신세를 지게 되는 귀족의 처참한 몰락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존재가 고유의 냄새를 지녔듯이 그 방의 냄새, 그 방이 간직해 온 냄새, 낡은 거처의 모호하고 감미로운 냄새, 흐릿하지만 분명히 알아볼 수 있는 냄새가 잔느에게 스며들어 추억들로 감싸고 그녀의 기억을 취기에 빠뜨렸다. 그녀는 두 의자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그 과거의 숨결을 들이마시고 숨을 헐떡였다.
p.374

이 책의 원문 제목은 <Une Vie>로, 사실 <여자의 일생>이라는 번역이 잘못됐으며 [어떤 인생]이라고 번역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이지만 옛날부터 이렇게 표현한 관례상 여자의 인생이라고 제목을 그대로 두었다고 했다. 물론 책 내용을 미루어 봤을 때 주인공 잔느의 <여자의 일생>이라는 제목이 좀 더 직관적이고 와닿긴 하지만 모파상이 의도한 것은 한 '여성'이 아닌 '사람'이었을 수 있다. 그러면 작품의 배경으로 아름답게 묘사된 자연에 비해 인간 생의 허무함을 그리고자 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작품해설을 읽으며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더 허우적거리게 되었다.

<테스>에서 사생아를 낳은 그녀가 어머니에게 왜 남자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냐고 원망하던 구절이 생각난다. 부모는 자식에게 행복이 보장된 길만을 안내해 주고 싶지만 그 미래는 아무도 점칠 수 없다.

여자의 인생이, 어떤 일생이 한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송두리째 흔들리는 일들이 우리 곁에서도 예기치 않게 들려올 때는 무심했다가 소설 속 이야기를 읽다보니 우리네 인생도 그다지 다를게 없다. 어쩌면 삶이란 생각보다 허무하게 무너질 수도 있고 허망하게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행복에 눈을 뜰 때면 지난 고통이 사라져 버린다. 잔느는 힘겨운 인생 뒤에 떠나버린 아들의 딸을 안고 마지막으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며 생에 무한한 감동을 다시 한번 느낀다.

보시다시피 인생은
우리들이 믿는 것처럼
결코 그리 좋지도
그리 나쁜지도 않답니다.

인생에 아무런 환상이 없다는 명명백백한 사실을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사이 어느 틈엔가 바늘구멍만한 희망이 있지 않을까. 그래도 나의 인생은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희망.

인생에 대한 동경과 환상은 순수했던 잔느처럼 꿈꾸고, 현실은 하녀 로잘리처럼 당차게 살고싶다. 현실의 삶은 순수한 사람이 살기에는 벅찬 곳이라 잔느처럼 사람애게 세상에 속아 초라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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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딸에게 - 세상 모든 엄마와 딸을 위한 노래
김창기.양희은 지음, 키큰나무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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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이 부르는 노래를 원래부터 너무 좋아한다. 고요하고 적막하게 화려한 기교없는 창법으로 듣는 이의 마음과 향수를 불러오는 탁월한 음색. 통기타를 치며 포크송을 즐겨 부르던 그 시절의 음악들.
역시 난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모양이다~^^

이 곡은 양희은과 후배 가수의 콜라보 곡으로 여러 번 들었다. 김세정과 악동 뮤지션의 이수현과도 함께 부른 이 곡은 들을 때마다 마음 한켠에 묻어두었던 모성과 함께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추억과 사랑이 애틋해진다.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 아이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 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난 한참 세상 살았는 줄만 알았는데
아직 열다섯이고
난 항상 예쁜 딸로 머물고 싶었지만
이미 미운 털이 박혔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알고픈 일들 정말 많지만
엄만 또 늘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내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지

공부해라 그게 중요한 건 나도 알아
성실해라 나도 애쓰고 있잖아요
사랑해라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
나의 삶을 살게 해줘!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내가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줄 수 있겠니
넌 나보다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해 주겠니

양희은이 담담하게 부르는 가사의 내용이 사춘기 딸을 키울수록 더욱 마음에 와 닿아 뭉클하다. 더구나 좋은 노래를 따스한 그림과 색채로 가사를 담아 책으로 만들었다. 김창기님께서 작사를 할 때에는 아들에게 주는 곡으로 쓰셨다고 한다. 양희은님이 노래하면서 자연스럽게 <엄마가 딸에게>가 되었고 2절 가사는 양희은님께서 직접 쓰실 정도로 애착을 가진 노래이다.♥

곧 데뷔 50주년을 맞이하는 가수 양희은의 이 노래 가사는 모녀를 끈끈한 애정으로 묶어주는 귀한 노래가사라고 생각된다. 처음 듣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던 노래.
엄마가 딸에게...

엄마도 한때는 딸이었고 어느 새 나도 엄마가 되어 딸의 모습을 보고 있다. 늘 생각한다. 엄마라면 나에게 어떻게 했을까?
내가 딸이라면 어떻게 해 주는 것이 나을까?

엄마와 딸을 꽃과 나비로 표현해서 더욱 포근해지는 그림이 있는 책이다. 꽃과 나비는 언제나 함께 있어야 꽃울 피우고 먹이를 먹을 수 있는 운명같은 존재이다.

딸에게 노래도 들려주고 책도 보라고 슬며서 밀어 주었더니 딱 자기 이야기라며 웃는 그 웃음 뒤엔 다른 생각이 있을거라는 짐작이 든다. 책이란 겉으로 표현내지 못하는 내면의 울림이 있다.나는 음악과 책이 주는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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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SF의 새로운 상상력
국내 최초 재난•공포 소설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역작!

둥근 달에게 소원을 간절하게 비는 듯한 보랏빛 표지 그림이 몽환적이다. 김유정 소설 문학상 수상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라는 이경 작가의 소개가 짧게 있었다. 소재가 특이하고 스토리는 박진감 넘치는 색다른 장르의 신선한 소설이었고 마지막까지 궁금해서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허물을 벗지 않으면 한 번도 
버림받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온 몸이 허물에 덮이는 피부병으로 밤의 도시 속 D구역에 격리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전설 속의 거대한 뱀 '롱롱'이 허물을 벗게 될 때 자신들 몸의 오래된 허물이 벗겨진다는 전설을 믿는 사람들. 그리고 전설 속의 뱀 '롱롱'을 찾아 나선 파충류 사육사 '그녀'와 방역 센터의 입소자들. 허물에 덮인 그들이 롱롱과 마주치는 순간, 도시를 움직이는 거대 제약회사의 충격적인 음모가 드러난다. 
작가의 압도적이고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구축된 거대 도시. 재난과 질병에 포위된 인간의 극한 공포, 그리고 생존을 위한 단 하나의 간절한 '소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육원을 나와야 했을 때 후원금 통장을 털어 동물원 근처에 방을 얻었다. 동물원은 보육원과 비슷했다. 새끼들은 어미와 떨어져 사육사의 손에 자랐다. 그녀는 오랫동안 뱀을 지켜보다 돌아왔다. 뱀은 고요했다. 그녀처럼.
p.24

숭배의 대상이었던 뱀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공포의 대상이 됐는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고집스럽게 타이어 동굴을 지키던 사람들이 갑자기 빠져나던 이유를 모를리 없었다. 하지만 사육장에 있는 뱀을 이용해 공포를 부풀리는 이유가 고작 프로틴을 팔기 위해서라니. 납득하기 힘들었다.
p.146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들이 우리를 유혹하는 방식을 보면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하지만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그 어떤 것과 잉여 생산물을 교활하게 연결시키는 전략을 활용한다. 우리 자신의 분명한 분별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풍문에 의해서 쫓게 되는 허상과 실재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전설은 전하는 입마다 다르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을 다음 사람에게 전하기 때문이야. 믿음은 저절로 싹을 튀우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믿을 것인지 스스로 택하는 게야. 제 손으로 터를 파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려 집을 짓는 것이지. 너는 스스로 허물을 벗으면 마땅히 다시는 입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던 게지.
p.201

이런 소설을 상상 속에서 끄집어 내어 이야기로 엮어내는 작가를 보면 비상한 천재들 같다. 언제나 별거 아닌 생각을 특별한 시선으로 달리해 보는 실험정신과 많은 가설들을 내세운 스토리 전개가 흥미롭다. 

파충류를 신으로 숭배하는 둣한 토테미즘에 빗댄 이야기와 혼자 벗겨내기 힘든 허물을 온몸에 덕지덕지 붙이고 격리되어 사는 사람들의 불안과 고통을 현실처럼 혹은 가상의 세계처럼 마음껏 상상하게 만든다. 

어떤 사회에서든 특정 부류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조장함으로 이익을 창출하고 또 어떤 부류는 희망을 조성한다. 불안과 희망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언제나 선택에 따른 책임은 자신의 몫이다. 그 불안과 공포를 악용하는 사회와 기업의 윤리와 이윤추구라는 자본주의적인 풍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설에 기인한 소망이라도 붙들고 사는 사람들의 간절한 이야기 전개는 끝까지 박진감 넘친다. 그리고 마지막이 궁금해져서 끝을 행햐 읽게 만든다. 열린 결말을 맺음으로 더욱 상상력을 극대화 시키는 매력이 있었다.

공포가 이념이 되고, 이념이 공포를 강화시켰다. 그 불행한 순환 속에 유일하게 실재하는 건 허물 뿐이었다. 공박사는 시민이 아니라 시민들의 허물이 불행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공포란 인간의 욕망과 여러 모로 비슷하지. 공포가 공포를 낳는 것처럼 욕망이 욕망을 낳는다네. 내가 공포를 이용했다면, 자네는 욕망을 이용한거야. 허물을 벗고자 하는 욕망. 그게 죄라면 자네와 내가 저지른 죄의 무게는 비슷할 걸세."
p.277-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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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유연하게, 
마음은 단단하게! 
오늘은 나의 심신 가꾸는 날  

외부로 향한 눈을 잠시 가리고 내 안에 있는 눈을 뜨고 그저 여기 있음에 집중하는 시간.
균형잡힌 삶을 위해 오늘도 나마스떼!!

-AM327 글•그림
생소한 이름의 작가, 피키캐스트 화제의 연재작이라는 궁금한 채널의 소개로 시작한다. 본명은 김민지. 상업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이야기를 그리는 작가의 책이라서 네 컷이나 여덟 컷의 웹툰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그림으로 된 에세이는 처음이다. 글밥으로 가득 채워진 책은 아니지만 아기자기한 색감의 그림 안에 일상에 깃든 요가라는 장치를 소개하며 소소한  이야기들이 미소짓게 만든다. 자꾸 책장이 넘어가지 않고 멈추는 이유는, 따라하라는 안내는 어디에도 없지만 친절하고 자세한 그림설명에 요가 동작을 쓸데없이 따라하게 된다는 점이다. 정말 말도 안되게 뻣뻣한 내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나도 요가를 하면 조금이나마 부드러워지고 삶까지 유연해질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생겨 버렸다.

작가는 회사생활이나 사람으로 지친 몸과 끌려다니는 감정을 줄이고 나 자신과 친해지려는 노력으로 요가를 시작했다. 여전히 휘청일 때도 있지만 삶 속에 요가가 스며들어 일상의 중심을 지탱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작가의 말에 나는 과연 어떻게 나를 보듬어 가는지, 나 자신과 친해지려는 노력을 하는지,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정답없는 게 인생이라도 나만의 답은 
내 안에 있다는 걸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줘요.
늘 모든 것은 내 안에 있네요.​
없던게 생겨나는게 아니라 늘 있던 걸
발견하고 깨달을 뿐.
p.53

빈 말을 많이 한 날은 마음도 텅텅 비어버려서 집에 오는 길도 긴 밤도 허전하게만 느껴져요.
그런 날 나는, 가장 소중한 친구 대하듯 나를  다독입니다.
마음의 구멍은 제때제때 메워요
p.238

덜컥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둘 수 있었던 것, 자리잡을 때까지 월세를 선듯 내주는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었던 용기 메이트, 반려견 민구와의 일상이나 엄마와 딸의 흔한 이야기들을 작가만의 감성으로 가만가만 읊조리듯 들려준다. 다른 것들이 침범하지 않게 온전히 들숨과 날숨을 내쉬며 나에게만 집중해 보는 시간을 날마다 반복하며 쌓아올린 요가를 통한 유연함을 전하고 함께 나누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꼭꼭 눌러 담겨져 있었다. 어느 곳을 펼쳐 읽어도 좋고 아무데나 보이는 요가 동작을 따라해 볼 수 있는 재밌는 책이다. 날마다 요가 수련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성취해가며  안팎으로 근육을 키워가는 모습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나 자신을 다독다독하고 싶어지고 온전히 집중해 보는 시간을 늘려야겠다.

언제나 내 안에 깃든 인생의 답을 길어 올리는 시간들을 즐기며 나마스떼~인사하는 날이 오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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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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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못 다한 삶을 후회하는
한 남자가
죽음을 앞두고 제안한
일생일대의 거래

[오베라는 남자]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감동소설의 대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 소설이다.

다산북스의 책인데 표지가 너무 이쁘다. 겉표지를 벗겨내니 보랏빛 양장본의 동화같은 표지가 마음에 든다. [일생일대의 거래]에는 배크만이 가족에 대해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겨있다.
프레드릭 배크만이 실제 자신의 고향을 배경으로 크리스마스 이브 밤, 잠든 아내와 아이를 바라보며 쓴 소설이라고 한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편지 형식의 책이다. 처음과 마지막 장의 그림은 동화같은 아름다운 장면으로 소설 속으로 이끌고 들어 간다.

"모든 생명이 똑같이 소중할까요?"하고 누가 물으면 대다수가 우렁찬 목소리로 "네!"하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저 사람의 생명은요?"라고 묻기 전까지의 얘기지.
일생일대의 거래(p.11)

병원에서 어린 여자아이를 보게 된다. 겨우 다섯 살에 암에 걸린 아이. 다가오는 죽음이 무섭지만 본인을 걱정하는 엄마를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애써 엄마에게 맞춰주는 아이. 사랑스러운 아이와 맞닿은 생과 (죽음이 아닌) 목숨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서 내가 죽으면 그 소식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었다. 다섯 살짜리의 죽음은 기사로 다루어지지 않고, 석간신문에 추모사가 실리지도 않는다. 그 아이들은 아직 발이 너무 작고,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만한 발자취를 남길 시간이 없었다.
일생일대의 거래(p.26)

할 수만 있다면 아이를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본인이 생각보다 평범한 사람인 걸 깨닫는다. 아이를 살리려면 그가 그토록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그가 이룬 업적들, 남긴 발자취... 모두 포기해야 한다.

모든 부모는 가끔 집 앞에 차를 세워놓고 5분쯤 그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거다. 그저 숨을 쉬고, 온갖 책임이 기다리고 있는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갈 용기를 그러모으면서.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숨막히는 부담감을 달래며, 모든 부모는 가끔 열쇠를 들고 열쇠 구멍에 넣지 않은 채 계단에 10초쯤 서 있을 거다.
p.34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고 싶었던, 오랜 세월 쌓아온 이야기를, 아버지는 곧 죽을, 아니 사라질 마당에 아주 담담하게 그린다. 오랫동안 본인이 쌓아온 모든 것들을, 본인이 중요하다고 여긴 모든 것들을 두고 가야 하는 씁쓸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쉽고 슬플 뿐이다.

...(생략) 항상 네 눈에 비치던 헬싱보리가 아주 찰나의 순간 내 눈에도 보였다. 네가 아는 어떤 것의 실루엣처럼. 고향. 그곳은 마침내 그제야 우리의 도시가 되었다. 너와 나의 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그거면 충분했다.
일생일대의 거래(p.105)

목숨을 맞바꾼다는 것은 대신 죽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왔던 인생 전체를 삭제 당하는 것. 즉 존재 자체가 없어짐을 뜻한다. 남자는 두렵지만, 이제 일생일대의 거래를 하려고 한다.
사업가로서는 성공했지만 아버지로서는 완전히 실패한 남자가 마지막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하고 싶다.
바로 지난 시간을 어리석게 흘려보낸 자신과 화해하고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는 것.

사람이란 누구나 미련해서인지 바빠서인지 죽음을 코앞에 두고 마주해야만 살아온 인생을 함축적으로 반추하게 되고, 사는 동안 애써 눈감았던 진실을 현실 속으로 데려온다. [일생일대의 거래]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사색적 질문을 담고 있어서 여러 번 읽을수록 곱씹게 되는 시처럼 서정적인 소설이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이 이야기는 마지막 그림처럼 크리스마스 선물같다.

이 짧은 소설을 읽으면서 부모로서의 무게감, 성공의 가치, 행복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나의 부모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파적이겠지만 부모의 부담감과 책임감, 성공을 향하던 젊음 뒤에는 결국 자식을 위한 희생으로 마무리되는 부모님의 일생을 나 역시 가고 있음을 직감하기 때문일까. 사랑하는 가족에게 이런 편지같은 소설을 남기는 작가가 부러웠다. 이해할 듯 못할 듯 새로운 형식의 짧은 동화같은 소설은 다 읽은 후에 다시 한번 읽어도 여전한 매력이 있는 소설이다. 프레드릭 배크만이라는 작가만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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