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홍신 세계문학 13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최경준 옮김 / 홍신문화사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활

 

 

  <부활>을 처음 읽은 것은 여고 시절이었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그저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이라는 것과 전체적인 흐름정도만 기억하고 작품에 대한 교훈이나  감상적인 부분은 많이 잊고 있었다. 수 십 년이 지나 사춘기 아이를 둔 학부형이 되어 다시 <부활>을 읽으면서 고전이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톨스토이'라는 작가를 왜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지 더 절실히 공감하게 되었다.  이 작품이 1899년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으로부터 벌써 100년도 훨씬 더 이전에 쓰여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작가가 작품에서 수없이  반복하는 많은 사회문제들은 그대로 남아있다. 아니 오히려 당시보다 또 다른 면에서 더 골이 깊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사회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에 대해  알만큼 알아버린 중년의 나이가 되어 읽는 <부활>은 고전명작을 읽는 즐거움을 넘어 많은 부분  우울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양심이라는 것에 대해,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시간을  넘어서서도 여전히 누구나 읽고 감동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고전 읽기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작품의 남자 주인공인  '네홀류도프'는  당시 사회의  상류층에 속하는  젊은 공작으로 모든 면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청년이다.  신분마다 따로 그들의 계층이 뚜렷이 정해진 사회에서  그는 모든 면에 유복한 생활을 하며  살아간다. 그는  신분으로 인해 자신이 사는 지역의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석하곤 하는데, 소설은  '네홀류도프'가  한 재판에 참석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죄인의 죄를 판단하는 배심원의 한 사람인 그는 어느 날 재판장소에서  자신이  젊은 시절에 잠시 스치듯이  사랑했으나,  잊고 있었던  '카추샤'라는 여인을 알아보게 된다.  '네홀류도프'는 배심원으로 '카추샤'는 살인 혐의를 받고  공범으로 지목된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재판을 받는 죄인의 입장이었다. 

 

 

 

  사람은 다 그렇지만, 네폴류도프의 마음속에도 두 가지 인간이 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남에게도 행복이  될 수 있는 그런 행복만을 구하는 정신적인 인간이고, 다른 한 사람은 오직 자기만을 위해 행복을  찾고, 그 행복을 위해서 온 세계의 행복마저 희생시키려는 동물적인  인간이었다. 페테르부르크의 생활과 군대 근무에 중독되어 이기주의에 홀려있던 이 시기에는,  이 동물적 인간이 그를 지배해 정신적 인간을  꼼짝 누르고 있었다.  ( 본문 77쪽 )

 

 

 

 

 

  재판은 죄가 없이 모함을 당한 '카추샤' 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며 배심원들의 실수로 결국 유형에 처해지고,  시베리아로 떠나야하는 상황에 이른다.  '네홀류도프'가 처음 '카추샤'를 만난 것은 그의 고모 집에서다.  '카추샤'는  버려져 죽음을 당할 상황에 놓인 여자 아이를 불쌍히 여겨  두 고모들이 데려다 키우면서  집안일을 거들기도 하고,  혹은 글을 배우기도 하면서  완전한 가족도 그렇다고 하녀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성장한다.  그는  고모 집에서 만난  '카추샤'와 사랑을 하게 되지만 그것은 잠시 불장난 같은 짧은 만남이었다.  그들의 만남은 '네홀류도프'가 돌아가면서 끝이 나지만,  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 '카추샤'는 고모  집을 떠날 수 밖에 없게 되고, 이후 아이는 죽고 '카추샤'는 창녀가 되어 거리의 여자로 살아간다.

 

  오랜 시간이 지나 예전에 순수했던 모습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재판장에서의 '카추샤'를 만나면서  '네홀류도프'는 그날 이전의 자신이 살아왔던 쾌락을 쫓던  상류층의  삶에 대해  반성하게 되고,  남은 시간을 '카추샤'를 위해  살겠다고 결심한다.  <부활>은  두 주인공의 이러한  줄거리를 풀어가면서 그 속에 담긴 당시 러시아 사회의 여러 모순들을 하나씩 들춰내고 비판해간다.  '네홀류도프'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카추샤'의  뒷바라지를 위해 감옥을 드나들면서  이전에 상류사회에서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작가는 주인공 '네홀류도프'가 만나는 여러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당시의 법, 사회환경, 정치제도 등 많은 것을 고발해간다. 

 

 

 

  '따라서  우리는, 가령 단 1시간이라도, 또 무슨 특별한 경우에라도 인간에의 감정보다 더 귀중한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에 대한 죄를 짓고서도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 본문  502 쪽 )

 

 

 

 

   현재 우리 인류에게는 전 인류가 먹어도 충분한 양의 식량이 있지만,  아직 많은 곳에서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한 쪽에서는 식량가격을 조절하기 위해 많은 양의 식량을 버리기도 한다.  또한  아직도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사회는  100년 전보다 더 '인간다움'을 잃고 이제는  양심이라는 것을 느끼며 방황하거나 고뇌하지도 않게 되었다.  지금  우리 주변에, 그리고  나 자신조차도 작품 속의 '네홀류도프'처럼   스스로  고뇌하고 눈물을 흘리며 행동으로 변화해 부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돌아볼 일이다.  작가가 말하듯이  동물적인 인간만이 남아 정신적인 인간을 꼼짝못하게 하는 가운데  사회는 점점 더 비열해지고 있지는  않은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