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 진심 - 삶에서 미끄러져도 그곳이 부처님 손바닥 위라면 ㅣ 진심 시리즈 2
박사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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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불교와 인연을 맺는 이야기 중, 고3 시절 시내버스 앞문에 옆구리를 부딪힌 통증을 치료하려고 병원에 갔다가 ‘결핵성 늑막염’ 진단을 받고 격리된 이야기를 읽고는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주인공 이반이 떠올랐다. 주인공은 어느 날 옆구리를 목조 가구 귀퉁이에 찧었고, 그 통증을 치료하다가 정확한 병명도 모른 채 죽었다. 저자 박사가 1980년대에 살았기에 망정이지 100년 전에 태어났더라면 꼼짝 없이, 불교도 만나지 못하고 영겁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학사 논문이라고 하면 거창한 느낌이 들지만, 대학교 졸업 논문을 그렇게 불렀다. 지금도 그렇게 하나 모르겠다. 내 학사 논문 주제는 '불교의 무아 사상'이었다. 사반세기 전 일이지만, 뚜렷한 느낌은 이걸 더 파고 들었다가는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었다. 달콤한 꿀이 있는 꽃 도롱 안으로 삐끗하면 빠질 뻔한 상황이었을까. 다행인지 어쩐지 모르지만, 학위 논문으로만 대충 제출하고 끝났다. 내내 그 느낌을 안고 살다가 최근에 한자경 교수가 출간한 <무아와 일심>을 읽으면서 무아 사상에 드리운 안개를 조금씩 걷어내고 있다. 이런 나보다 작가 박사와 같은 마음으로 불교와 함께 하는 모습이 멋져 보인다. 박사답다. '나답게'를 영어 알파벳으로 적고 아이디로 삼고 있는 사람이 있다. 쉬운 모습은 아니지만, 작가 박사는 <불교에 진심>에서 그런 모습에 근접해 있는 것 같아 보여서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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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앞에서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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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 남아 있는, 나의 기록이 사라진 적은 두 번 있다. 한 번은 000을 거부하고 000투쟁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고 마음먹고 실행에 옮기기 직전, 대학교 학과실에서 자정이 넘은 시각에 대학노트에 적은 일기장을 불태운 일이다. 두 번째는 3개월과 5년 3개월 동안 000과 000에서 아버지에게 쓴 봉함 엽서인데, 나와서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그 엽서를 담은 상자가 없어진 걸 알았다. 가끔 시골집에 들를 때마다 벽장에, 창고에 놓여 있던 상자를 언젠가는 꺼내서 봐야지 했는데,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아버지가 불태우셨을 것 같다. 치매는 아니었지만, 거동이 불편해지시면서, 어느 날 아버지 옆에 누워 인공 시절(한국전쟁 전후) 아버지 삶을 궁금해한 후, 그 상자를 태우셨을까? 1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어머니를 여의면서 어머니께도 여쭤보지 못하였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형은 최근에 방 정리를 하면서 찾았다고 봉함  엽서 한 장을 내밀었다. 아버지는 내 일기와 같은 그 편지를 읽으시면서 어떤 심정이셨을까? 난 한 번도 여쭙지 못했다.

일기는 그 일이 있은 직후부터 제대로 쓰기 시작했다. 망신을 당한 일. 내가 초래한, 언젠가는 있을 수 있는 일이 내게 닥치고 나는 반성문을 쓰기 시작했다.

‘안 쓰면 잊을 수 있잖아. 미래의 너를 속일 수 있어. 안 쓰면 없던 일이 되는 거야. 만약 네 감정을 쓰기 시작한다면..... 넌 주체하지 못할 거야. 힘들겠지’ 

최은영은 여기까지 생각하고 중학생 시절을 떠올렸다. 나는 내 스무 살 되던 해, 그리고 쉰 살을 앞둔 12월을 떠올렸다.

2년 전에 이주혜의 소설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을 읽고, 그 소설 속 글쓰기 강사가 한 말, "쓰면 만나고 만나면 비로소 헤어질 수 있습니다."를 메모지에 적고 모니터 옆에 붙여 놓았다. 가끔씩 보았는데, 사무실을 옮기면서 버렸나 보다. 외웠을 테니 버려도 되겠지 했나 보다. 엊그제, 그 문장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은 거 있지. 그래서 구글 검색해서 알아냈고, 카톡 프사에 적어 두었다. 

잊는 일과 헤어지는 일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겠다. 다르다면, 최은영은 잊지 않기 위해 쓰고, 이주혜는 잊기 위해 쓰는 걸까? 같다면, 이주혜의 헤어짐이란 만남의 다른 형식이고 잊지 않음의 또다른 방식일 테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은 김금희 작가의 소설 <복자에게>에서 얻은 표현을 빌리면, 포슬포슬하다. 아프고 눈물 나지만 따뜻했다. <백지 앞에서>에 쓴 작가 최은영도 그러했다. 병을 잘 이겨서, 오래오래 포슬포슬한 그의 소설을 더 많이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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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불편한 진실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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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연 교수의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를 읽은 후에 김진명 작가의 <세종의 나라>를 읽고 있는 중에 강명관 교수의 책이 출간되었다. 도발적인 제목이었지만, 이미 장지연 교수의 글에서 익혔던 내용이라 그 충격은 덜했다.


1420년 9월, 세종은 부민고소금지법 제정.

1431년 1월, 부민고소법 제한적 복구

1433년, 부민고소법 폐기

1443년 12월 훈민정음 창제

2년 9개월 후

1446년 9월 <훈민정음> 완성(어제서문, 예의, 해례, 서문으로 구성된 <훈민정음> 완성.


한글이 가장 필요한 곳은 외국어 학습이었다. 한글은 외국어 어휘의 발음을 표현하는 데 더할 수 없이 요긴한 도구였다. 한자의 음과 뜻이 스승의 입으로 전수되던 것이 한글로 대체되었다.

언해는 경서에 대한 학습을 쉽게 했다.

시골의 무식한 자들이 어려서부터 언문으로 경서를 익히고 외워 과거에 합격하지만, 편지를 주고받지도 못하는 수준, 

시골 선비들이 언문 토가 달리 경서를 읽고 강경과에 급제하기도 한다.

경서의 언해야말로 사족들이 한글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한 사례일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 의도 정설, 세종의 어제서문,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어리석은 백성의 일용을 위해 세종이 만든 것이다.

반론,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해 만든 문자.

훈민정음 창제 의도 1, 민중을 가르치겠다는 훈민의 의도, 2.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 민중에게 표현 수단을 주겠다는 의도, 3. 민중의 일상생활의 사용에 편리함을 느끼게 해주겠다는 의도.

1.은 한글 사용 주체가 지배계급이다. 지배계급이 한글로 텍스트를 만들어 백성을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2, 3은 한글을 사용하는 주체가 민중이다. 1에서는 민중이 대상이고, 2, 3에서는 민중이 주체다.

세종은 부민고소법을 폐지한다. 지방수령에 대해 지역민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법, 이것을 세종이 폐지한다. 이를 두고 강명관 교수는 세종이 한글을 만들었지만, 최종적으로 승리한 것은 한글 창제를 반대한 최만리라고 주장한다.  강교수에 따르면, 세종이 비록 한글을 만들었지만, 백성의 한글 사용을 위한 구체적 조치는 마련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럴 여력이 없지 않았나? 부민고소법을 페지한 것은 훈민정음 창제에 반발하는 사족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였을 것 같은데.

암튼 부민고소법의 폐기로 한글로 문서를 작성해 수령의 비위와 불법과 과잉 수탈을 고소할 수 없게 되었다. 수령 관할하의 재판에서 한글로 문서를 작성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현실에서 민중은 굳이 한글로 글쓰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노비나 농민이 한글로 쓴 기록물이 거의 없다. 종이를 구할 형편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세종은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한글이라는 표음문자를 만들었다. 하지만 한글 사용자는 백성에게만 한정되지 않았고 사용 영역은 넓었다. 범용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집현전 학자들은 그 범용성에 감탄했다. 정인지의 말마따나 한글은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다. 한자의 한국식 발음과 북경에서의 발음 간(향음과 화음) 괴리를 심각하게 여겼던 세종.

강명관 교수의 주장을 한 문단으로. 304쪽.

한글은 민중을 위해 만든 문자였지만, 정작 세종은 부민고소법의 폐지에 찬동함으로써 백성들이 한글을 사용할 기회를 박탈했다 그는 민중이 한글을 일용할 어떤 수단도 제공하지 않았다. 민중의 적극적인 한글 사용은 민중을 대상이 아닌 주체로 만드는 길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길은 열리지 않았다. 세종은 지배계급의 대표자였고,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대변하는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이는 한글에 관한 가장 불편한 진실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불편한 진실이 아니라 가장 강한 객관성을 지닌 훈민정음에 대한 평가로 보인다. 

내가 보기에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의도,

강명관의 주장대로 지배계급의 지배 체제 강화 의도가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의 중심이라 해도, 조선은 맹자의 민본주의를 바탕으로 역성 혁명으로 건국한 나라라는 점에서 이를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서 지배계급을 설득하는 데 백성을 위하는 마음, 민본의 정신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훈민정음은 지배계급, 곧 사족이 더 많이 활용하였다.

강명관의 실증대로 한글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한 이들은 민중이 아닌 지배계급이었다. 이는 세종의 의도와 일치하는 결과라 하겠다.

세종의 민본주의를 오늘날 현대의 민주주의와 동일시할 수 없다. 맹자의 민본주의는 지배체제의 공고화를 위한 지배 논리이다. 민이 근본이라는 것은 민 없이 왕 노릇하기는 불가능하니 민을 잘 다독이고 민이 왕을 추종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 민이 가장 귀하다는 것. 왕 없는 민은 가능하지만, 민 없는 왕은 존재할 수 없으니 군주가 가장 가벼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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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 ㅣ 금요일엔 역사책 1
장지연 지음, 한국역사연구회 기획 / 푸른역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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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연 교수님의 글은 <경향신문> 칼럼에서 처음 읽었다. 나는 역사 과목을 좋아했고 관심이 많다. 교수님의 칼럼은 재미있었다. 최근에는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이란 제목으로 꽤 긴 글을 싣고 있다. 아직 보지 않은 <왕과 사는 남자> 관련 3월 24일자 글, <박완서가 경고한 ‘소설과 역사의 혼동’...이야기 너머 ‘맥락’을 질문해야>을 읽었다. 역사 관련 영화, 소설을 접하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나중에 언제라도 그 영화를 볼 텐데, 미리 어떻게 봐야 할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음독 구결: 한자음에 어미나 조사를 한국어로 붙여 가며 읽을 수 있도록 구결을 붙인 것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자동으로 한문 문장을 해독해야 한다. 읽은 데 번거로움은 없지만, 한자를 잘 알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음독 구결은 한문에 익숙한 식자층에 유용한 독법으로, 암송에 유리하다. 훈민정음의 개발은 이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음독 구결이 한자음을 알아야 읽을 수 있는 방식이라는 한계가 있다면, 언해본은 한자를 보지 않고서도 구송을 할 수 있게 한다. 보이는 대로 읽고 읊고 외울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한문 글쓰기는 못 했다지만 경전 자구를 읊어 댈 수 있는 교양층은 급속도로 증가한 것이다.

석독 구결: 한자의 뜻을 풀어서 읽는 것을 의미, 한문 훈독에 포함되지만 한자 순이 아니라 우리말 어순에 따라 글자 순서를 바꿔가며 읽는 것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원문을 이해하고 공부하며 읽기에는 편리하지만 상당히 번거롭다. 한자의 뜻을 생각하며 왼쪽 구결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자동으로 한문 문장을 해독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종의 야심은 백성들이 쉽게 여겨 날로 쓰는 것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성인의 말씀이 담긴 경전을 우리말로 풀이하고 심지어는 한자의 발음까지 바로잡으려고 한 것이다.

경전이니까, 성현의 말씀을 왜곡 없이 발음하기 위함.

훈민정음 창제 직후 삼강행실도나 유교 경전 언해가 성과 없이 중단된 것에 비해 <동국정운> 같은 운서 편찬은 이뤄짐. 이는 ‘훈민정음 발음기호설'을 지지하는 유력한 정황 증거임.

훈민정음은 양반의 문자권력과 중국을 추종했던 권위적이고 사대주의적인 당대 지배층의 비위를 건드린 것이 아니라, 보편 문화를 함부로 교정하려고 한 야심만만한 기획 때문에 비판에 부닥친 것이다. 새로운 문자는 경전과 음운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훈민정음은 엄청난 기세로 보급되었다.

한글 독음만 달리거나 구결이 붙은 한시를 필사하는 방식은 한문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로 나가는 데는 문제가 있었지만, 필사한 내용이 담고 있는 교양의 확대에는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조선 시대에 여성만이 훈민정음을 사용했고 엘리트 남성은 이를 천시하여 사용하지 않았다고 도식적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훈민정음은 드러나지 않을 뿐 모든 문자교육의 기초였다. 한글을 익히면서 문자교육을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문 공부로 나아갔다.

훈민정음이 문자교육의 기초로 활용되자 한문을 교육하는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었다.

음을 소리 나는 대로 쓰고 싶은 욕구나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차자를 활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훈민정음은 막힌 데 없이 이를 펼쳐 놓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하였다.

훈민정음 덕택에 우리말에 의성어와 의태어가 풍부하게 살아 남게 되었다. 이러한 의성어 의태어는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이자 결과이다.

훈민정음 창제 직후부터 왕실 여성들이 언문으로 의사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한문 글쓰기의 압축성, 모호성은 오해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언문은 그 가능성을 축소시켰다.

조선 시대의 문자 생활은 젠더화되어 있었다. 다 같이 한글을 쓰더라도 그에 대한 태도와 방식이 달랐던 것이다. 상층 남성 엘리트가 한글에서 감정 피난처를 찾았다면 여성은 한글을 통해 자신을 공식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얻었다.

왕실 여성의 언문 교지나 편지는 절묘한 위치, 한문 문식력이 상당하다 할지라도 일부러 등급이 낮은 문자를 사용하여, 고도의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지만, 권력에 대한 의지는 없음을 보일 수 있었다. 정치의 장에 회색의 지대를 열어 놓았다.

장지연 교수의 바람은 역사적 상상력의 경계를 조금이라도 넓혔으면 하는 것이다. 역사적 신비주의, 신비로움, 무작정 위대함에서 벗어나, 여러 시선으로 있는 그대로 보기에 장지연 교수의 열망이 몰려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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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의 순간들 - 아직 끝내는 것이 어려운 사람을 위한 철학 연습
소피 갈라브뤼 지음, 박명숙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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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갈라브뤼, 어지간히 나올 이름일 것 같다. 깊고 깊은 마음과 사유를 담은 글에서 글쓴이가 ‘소피 갈라브뤼’를 언급하고 그가 쓴 책의 한국어 번역 책, “마침표의 순간들”이란 제목을 주석에서 볼 것 같다.

‘아직 끝내는 것이 어려운 사람을 위한 철학 연습’이란 부제를 적으면서 지금 내가 무엇을 끝내려고 하고 있는지 그 ‘무엇’이 궁금해졌다. 나는 지금 무엇을 끝내려고 하는가. 아무것도 끝내려고 하지 않으면서 끝남을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있다. 나는.

들뢰즈, “알코올 중독자란 끊임없이 술을 끊는 사람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마지막 한 잔에 머물지요........다른 모든 잔들은 마지막 한 잔을 기다리는 그의 방식일 뿐이지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중장년이나 노년 사이에서만 유통하지 않을 것 같다. 1990년생, 2026년 올해 서른 여섯, 나보다 딱 20년 늦게 태어났고, 청년의 끄트머리에 있는 철학자가 끝, 마지막, 마침표에 대해 사유하고 문자로 표현하였다. 나이로만 따지면 한창때를 살고 있는 그에게 그것들에 관한 것들을 읽을 수 있다니. 나는 그것들을 꼭 나이의 문제로만 보았다. 태어난 이후 매시간이 끝, 마지막, 마침표의 순간인데도 말이다.

모든 마지막은 언젠가는 오고야 만다. 

지루함에도 나름의 효능이 있다. 지루함은 상상력과 반항심과 사고력을 길러준다.

보부아르가 지적하듯,일이라는 것은 강요된 것이든 선택된 것이든 근본적으로 양면적이다. 일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얽매이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사회에 통합시키는 수단이 되며, 우리의 능력을 길러주거나 유지시켜 준다. 그럼에도 어떻게 하면 자신의 존재를 단 하나의 활동으로 축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바로 여기에 노년의 활력을 유지하는 열쇠가 있다.

우리는 끝을 피하기 위해 뒷걸음질을 친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남기게 되더라도 그렇게 한다.

직업적 경험의 필요불가결한 조건인 은퇴의 전망은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나 자기 일을 더는 못 견텨 하는 사람에게나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은퇴는 곧 소외의 시작일 수 있기 때문이다.

퇴직으로 인한 단절은 종종 사회적 죽음의 동의어가 되며, 삶의 폐기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떠남은 세속적 삶의 절정인 동시에 궁극적인 끝을 향하는 카운트다운처럼 느껴진다.

'마지막 순간’이 새로운 결심이나 자기 변화를 향한 의지를 나타낼 때 우리는 그것을 훨씬 더 수월하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끝’이라는 개념보다 ‘이행’, ‘전환’, ‘쇄신’이라는 개념을 선호하다.

은퇴란 자신의 일부가 끝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또 하나의 마지막 순간’을 선언하는 기술이다. 그것은 엄청난 도전을 부과한다.

은퇴는 수익성과 생산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리 사회의 함정이다.

마지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죽음의 순간은 근원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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