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앞에서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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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 남아 있는, 나의 기록이 사라진 적은 두 번 있다. 한 번은 000을 거부하고 000투쟁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고 마음먹고 실행에 옮기기 직전, 대학교 학과실에서 자정이 넘은 시각에 대학노트에 적은 일기장을 불태운 일이다. 두 번째는 3개월과 5년 3개월 동안 000과 000에서 아버지에게 쓴 봉함 엽서인데, 나와서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그 엽서를 담은 상자가 없어진 걸 알았다. 가끔 시골집에 들를 때마다 벽장에, 창고에 놓여 있던 상자를 언젠가는 꺼내서 봐야지 했는데,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아버지가 불태우셨을 것 같다. 치매는 아니었지만, 거동이 불편해지시면서, 어느 날 아버지 옆에 누워 인공 시절(한국전쟁 전후) 아버지 삶을 궁금해한 후, 그 상자를 태우셨을까? 1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어머니를 여의면서 어머니께도 여쭤보지 못하였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형은 최근에 방 정리를 하면서 찾았다고 봉함  엽서 한 장을 내밀었다. 아버지는 내 일기와 같은 그 편지를 읽으시면서 어떤 심정이셨을까? 난 한 번도 여쭙지 못했다.

일기는 그 일이 있은 직후부터 제대로 쓰기 시작했다. 망신을 당한 일. 내가 초래한, 언젠가는 있을 수 있는 일이 내게 닥치고 나는 반성문을 쓰기 시작했다.

‘안 쓰면 잊을 수 있잖아. 미래의 너를 속일 수 있어. 안 쓰면 없던 일이 되는 거야. 만약 네 감정을 쓰기 시작한다면..... 넌 주체하지 못할 거야. 힘들겠지’ 

최은영은 여기까지 생각하고 중학생 시절을 떠올렸다. 나는 내 스무 살 되던 해, 그리고 쉰 살을 앞둔 12월을 떠올렸다.

2년 전에 이주혜의 소설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을 읽고, 그 소설 속 글쓰기 강사가 한 말, "쓰면 만나고 만나면 비로소 헤어질 수 있습니다."를 메모지에 적고 모니터 옆에 붙여 놓았다. 가끔씩 보았는데, 사무실을 옮기면서 버렸나 보다. 외웠을 테니 버려도 되겠지 했나 보다. 엊그제, 그 문장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은 거 있지. 그래서 구글 검색해서 알아냈고, 카톡 프사에 적어 두었다. 

잊는 일과 헤어지는 일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겠다. 다르다면, 최은영은 잊지 않기 위해 쓰고, 이주혜는 잊기 위해 쓰는 걸까? 같다면, 이주혜의 헤어짐이란 만남의 다른 형식이고 잊지 않음의 또다른 방식일 테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은 김금희 작가의 소설 <복자에게>에서 얻은 표현을 빌리면, 포슬포슬하다. 아프고 눈물 나지만 따뜻했다. <백지 앞에서>에 쓴 작가 최은영도 그러했다. 병을 잘 이겨서, 오래오래 포슬포슬한 그의 소설을 더 많이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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