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연 교수님의 글은 <경향신문> 칼럼에서 처음 읽었다. 나는 역사 과목을 좋아했고 관심이 많다. 교수님의 칼럼은 재미있었다. 최근에는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이란 제목으로 꽤 긴 글을 싣고 있다. 아직 보지 않은 <왕과 사는 남자> 관련 3월 24일자 글, <박완서가 경고한 ‘소설과 역사의 혼동’...이야기 너머 ‘맥락’을 질문해야>을 읽었다. 역사 관련 영화, 소설을 접하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나중에 언제라도 그 영화를 볼 텐데, 미리 어떻게 봐야 할지
음독 구결: 한자음에 어미나 조사를 한국어로 붙여 가며 읽을 수 있도록 구결을 붙인 것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자동으로 한문 문장을 해독해야 한다. 읽은 데 번거로움은 없지만, 한자를 잘 알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음독 구결은 한문에 익숙한 식자층에 유용한 독법으로, 암송에 유리하다. 훈민정음의 개발은 이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음독 구결이 한자음을 알아야 읽을 수 있는 방식이라는 한계가 있다면, 언해본은 한자를 보지 않고서도 구송을 할 수 있게 한다. 보이는 대로 읽고 읊고 외울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한문 글쓰기는 못 했다지만 경전 자구를 읊어 댈 수 있는 교양층은 급속도로 증가한 것이다.
석독 구결: 한자의 뜻을 풀어서 읽는 것을 의미, 한문 훈독에 포함되지만 한자 순이 아니라 우리말 어순에 따라 글자 순서를 바꿔가며 읽는 것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원문을 이해하고 공부하며 읽기에는 편리하지만 상당히 번거롭다. 한자의 뜻을 생각하며 왼쪽 구결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자동으로 한문 문장을 해독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종의 야심은 백성들이 쉽게 여겨 날로 쓰는 것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성인의 말씀이 담긴 경전을 우리말로 풀이하고 심지어는 한자의 발음까지 바로잡으려고 한 것이다.
경전이니까, 성현의 말씀을 왜곡 없이 발음하기 위함.
훈민정음 창제 직후 삼강행실도나 유교 경전 언해가 성과 없이 중단된 것에 비해 <동국정운> 같은 운서 편찬은 이뤄짐. 이는 ‘훈민정음 발음기호설'을 지지하는 유력한 정황 증거임.
훈민정음은 양반의 문자권력과 중국을 추종했던 권위적이고 사대주의적인 당대 지배층의 비위를 건드린 것이 아니라, 보편 문화를 함부로 교정하려고 한 야심만만한 기획 때문에 비판에 부닥친 것이다. 새로운 문자는 경전과 음운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훈민정음은 엄청난 기세로 보급되었다.
한글 독음만 달리거나 구결이 붙은 한시를 필사하는 방식은 한문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로 나가는 데는 문제가 있었지만, 필사한 내용이 담고 있는 교양의 확대에는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조선 시대에 여성만이 훈민정음을 사용했고 엘리트 남성은 이를 천시하여 사용하지 않았다고 도식적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훈민정음은 드러나지 않을 뿐 모든 문자교육의 기초였다. 한글을 익히면서 문자교육을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문 공부로 나아갔다.
훈민정음이 문자교육의 기초로 활용되자 한문을 교육하는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었다.
음을 소리 나는 대로 쓰고 싶은 욕구나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차자를 활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훈민정음은 막힌 데 없이 이를 펼쳐 놓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하였다.
훈민정음 덕택에 우리말에 의성어와 의태어가 풍부하게 살아 남게 되었다. 이러한 의성어 의태어는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이자 결과이다.
훈민정음 창제 직후부터 왕실 여성들이 언문으로 의사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한문 글쓰기의 압축성, 모호성은 오해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언문은 그 가능성을 축소시켰다.
조선 시대의 문자 생활은 젠더화되어 있었다. 다 같이 한글을 쓰더라도 그에 대한 태도와 방식이 달랐던 것이다. 상층 남성 엘리트가 한글에서 감정 피난처를 찾았다면 여성은 한글을 통해 자신을 공식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얻었다.
왕실 여성의 언문 교지나 편지는 절묘한 위치, 한문 문식력이 상당하다 할지라도 일부러 등급이 낮은 문자를 사용하여, 고도의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지만, 권력에 대한 의지는 없음을 보일 수 있었다. 정치의 장에 회색의 지대를 열어 놓았다.
장지연 교수의 바람은 역사적 상상력의 경계를 조금이라도 넓혔으면 하는 것이다. 역사적 신비주의, 신비로움, 무작정 위대함에서 벗어나, 여러 시선으로 있는 그대로 보기에 장지연 교수의 열망이 몰려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