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불편한 진실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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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연 교수의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를 읽은 후에 김진명 작가의 <세종의 나라>를 읽고 있는 중에 강명관 교수의 책이 출간되었다. 도발적인 제목이었지만, 이미 장지연 교수의 글에서 익혔던 내용이라 그 충격은 덜했다.


1420년 9월, 세종은 부민고소금지법 제정.

1431년 1월, 부민고소법 제한적 복구

1433년, 부민고소법 폐기

1443년 12월 훈민정음 창제

2년 9개월 후

1446년 9월 <훈민정음> 완성(어제서문, 예의, 해례, 서문으로 구성된 <훈민정음> 완성.


한글이 가장 필요한 곳은 외국어 학습이었다. 한글은 외국어 어휘의 발음을 표현하는 데 더할 수 없이 요긴한 도구였다. 한자의 음과 뜻이 스승의 입으로 전수되던 것이 한글로 대체되었다.

언해는 경서에 대한 학습을 쉽게 했다.

시골의 무식한 자들이 어려서부터 언문으로 경서를 익히고 외워 과거에 합격하지만, 편지를 주고받지도 못하는 수준, 

시골 선비들이 언문 토가 달리 경서를 읽고 강경과에 급제하기도 한다.

경서의 언해야말로 사족들이 한글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한 사례일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 의도 정설, 세종의 어제서문,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어리석은 백성의 일용을 위해 세종이 만든 것이다.

반론,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해 만든 문자.

훈민정음 창제 의도 1, 민중을 가르치겠다는 훈민의 의도, 2.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 민중에게 표현 수단을 주겠다는 의도, 3. 민중의 일상생활의 사용에 편리함을 느끼게 해주겠다는 의도.

1.은 한글 사용 주체가 지배계급이다. 지배계급이 한글로 텍스트를 만들어 백성을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2, 3은 한글을 사용하는 주체가 민중이다. 1에서는 민중이 대상이고, 2, 3에서는 민중이 주체다.

세종은 부민고소법을 폐지한다. 지방수령에 대해 지역민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법, 이것을 세종이 폐지한다. 이를 두고 강명관 교수는 세종이 한글을 만들었지만, 최종적으로 승리한 것은 한글 창제를 반대한 최만리라고 주장한다.  강교수에 따르면, 세종이 비록 한글을 만들었지만, 백성의 한글 사용을 위한 구체적 조치는 마련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럴 여력이 없지 않았나? 부민고소법을 페지한 것은 훈민정음 창제에 반발하는 사족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였을 것 같은데.

암튼 부민고소법의 폐기로 한글로 문서를 작성해 수령의 비위와 불법과 과잉 수탈을 고소할 수 없게 되었다. 수령 관할하의 재판에서 한글로 문서를 작성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현실에서 민중은 굳이 한글로 글쓰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노비나 농민이 한글로 쓴 기록물이 거의 없다. 종이를 구할 형편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세종은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한글이라는 표음문자를 만들었다. 하지만 한글 사용자는 백성에게만 한정되지 않았고 사용 영역은 넓었다. 범용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집현전 학자들은 그 범용성에 감탄했다. 정인지의 말마따나 한글은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다. 한자의 한국식 발음과 북경에서의 발음 간(향음과 화음) 괴리를 심각하게 여겼던 세종.

강명관 교수의 주장을 한 문단으로. 304쪽.

한글은 민중을 위해 만든 문자였지만, 정작 세종은 부민고소법의 폐지에 찬동함으로써 백성들이 한글을 사용할 기회를 박탈했다 그는 민중이 한글을 일용할 어떤 수단도 제공하지 않았다. 민중의 적극적인 한글 사용은 민중을 대상이 아닌 주체로 만드는 길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길은 열리지 않았다. 세종은 지배계급의 대표자였고,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대변하는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이는 한글에 관한 가장 불편한 진실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불편한 진실이 아니라 가장 강한 객관성을 지닌 훈민정음에 대한 평가로 보인다. 

내가 보기에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의도,

강명관의 주장대로 지배계급의 지배 체제 강화 의도가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의 중심이라 해도, 조선은 맹자의 민본주의를 바탕으로 역성 혁명으로 건국한 나라라는 점에서 이를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서 지배계급을 설득하는 데 백성을 위하는 마음, 민본의 정신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훈민정음은 지배계급, 곧 사족이 더 많이 활용하였다.

강명관의 실증대로 한글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한 이들은 민중이 아닌 지배계급이었다. 이는 세종의 의도와 일치하는 결과라 하겠다.

세종의 민본주의를 오늘날 현대의 민주주의와 동일시할 수 없다. 맹자의 민본주의는 지배체제의 공고화를 위한 지배 논리이다. 민이 근본이라는 것은 민 없이 왕 노릇하기는 불가능하니 민을 잘 다독이고 민이 왕을 추종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 민이 가장 귀하다는 것. 왕 없는 민은 가능하지만, 민 없는 왕은 존재할 수 없으니 군주가 가장 가벼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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