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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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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외가

아껴 읽었다. 소설 󰡔밝은 밤󰡕은 옆에 오래 놓아두고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잊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읽은 이야기였다. 여자와 여자의 엄마, 이 엄마의 엄마, 그리고 그의 엄마, 4대에 걸친 가의 이야기를 눈으로 새기면서 나는 우리 엄마와 외할머니를 생각했고 외할머니의 엄마를 상상했다. 더는 자를 붙이지 말아야 하는데도 수십 년 동안 입에 붙어 있는 그 단어가 좀처럼 떼어지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에게만큼은 지명을 앞에 붙이고 어디 할머니, 어디 할아버지라고 부르라한다.

이번 추석에 아내의 할머니를 뵙거든, 내 자식이 있는 자리에서 꼭 여쭤봐야겠다. 당신 손으로 손톱을 깎을 수 없을 정도로 나이를 드신 할머니에게 당신의 엄마는 어떤 분이셨냐고 물으시면, 할머니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시며 말씀하시겠다.

 

2. 무지

고등학교 선후배가 함께하는 모임의 술자리에서 6년 후배가 옆자리에 앉았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하러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길에 참석한 자리였다. 요즘도 벌초를 집안 행사로 한다고 하니 대단한 가문의 종손쯤 될까 하는 짐작을 하면서 본관이 어디냐고 물었다. 귀에 익은 지명이었다. 가족관계증명서 뗄 때마다 들여다보는 어머니 본관과 같았다. 후배의 이름을 염두에 두고 항렬자가 뭐냐고 물었더니 외삼촌 항렬과 같다. 어머니 태어난 곳을 대니 거기에도 집성촌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고교 시절 한문 선생님은 자기보다 2대 아래라고 한다. 집안에 교육계 종사자가 많다고 한다. 나와 그 후배, 그리고 한문 선생님이 공유하고 있는 동일한 유전자는 얼마나 될까? 부계를 자연으로 알고 익숙해진 내게 어머니의 계통은 낯설다.

지난 여름 초입에 9남매 중에서 여섯 남매가 모였다. 부모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겨우 삶의 자리를 잡은 남매만 매년 한 차례 모이다가 감염병 탓에 3년 만에 만났다. 󰡔밝은 밤󰡕의 여운이 사그라들기 전이었다. “혹시 외할머니의 엄마가 어떤 분이셨는지 알아?”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할머니의 엄마는?” 이 질문에도 모른다고 한다. 우리는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안다. 어머니도 안다. 매년 설날과 추석이면 산소에 간다. 내게 증조부는 일제 강점기에 쌀 판매업을 하신 분이다. 고향집 창고를 허물려고 그 안에 있던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명패를 보았다. 증조모는 두 분이다. 한 분은 추석 전날 땡감을 드시다 얹혀 급사를 하셨단다. 새로 오신 증조모는 기울어가던 집안을 일으켜 세우셨단다. 소설 󰡔혼불󰡕의 청암 부인만큼 그러셨을까. 이쯤은 우리 남매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의 외할머니는 아무도 몰랐다. 들은 바가 없지만, 애초에 우리 엄마에게 우리가 묻지 않았다. 나의 엄마의 엄마를 나는 안다. 나의 외할머니. 잎담배를 연달아 피우셨던 분이셨다. 결혼 전에 횟배앓이를 낫게 하려고 피우셨던 뻐끔 담배를 아흔 살 즈음까지 달고 계셨다. 외할머니의 엄마를 나는 모른다. 우리 엄마는 알고 계셨겠지만, 한 번도 엄마에게 엄마의 외할머니가 누구셨냐고 묻지 않았다. 멀쩡한 Y자 나무에는 한쪽만 있는 줄 알았다. 󰡔밝은 밤󰡕은 우리가 또 다른 한쪽을 보게 한다. 우리가 엄마에게 물려받은 X염색체는 엄마가 외할머니 자궁 속에 있을 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샤론 모알렘, 󰡔우리의 더 나은 반쪽󰡕, 229.) 그 외할머니의 X염색체는 외할머니가 외할머니 엄마 자궁 속에 있을 때 만들어진 것이다. 존재를 잊고 살아 왔다. 질문은커녕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3.

밝은 밤’, 언뜻 형용모순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어둔 밤이 있고 밝은 밤이 있다. 어둔 낮이 있고 밝은 낮이 있듯이. 대기가 깨끗하고 찬 밤, 별빛이 가득한 밤은 밝은 밤이다. 큰 보름달이 주변의 별빛을 모두 머금고 태양빛을 반사하는 밤은 어둔 낮만큼 환하다. 낮이 주기 어려운 포근함과 따뜻함을 밝은 밤은 우리에게 준다. 밤은 어두워야 한다면, 밝은 밤은 밤이 아니다. 밤은 어두워야 밤답다. 밤이 어둡지 않고 밝다면 밤이 아니다. 물론 밝은 밤이 있다. 공기가 차갑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밤이면 별빛만으로도 밝다. 보름달은 태양빛을 반사하면서 무수한 별빛을 머금고 삼킨 채 어둔 밤을 밝게 비춘다.

영옥이 그믐밤에 보았던 밝은 밤이 있다. 새비 아줌마와 희자가 있는 대구로 피란을 가던 중에 만난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를 영옥은 데려가려고 한다, 영옥의 엄마 삼천은 그 아이에게 영옥의 겉옷을 꺼내 입히고 목도리로 머리를 싸매주고 삶은 감자와 고구마 몇 개를 보자기로 싸서 건넨다. 그 아이가 삼천의 치맛자락을 잡자 삼천은 억지로 떼어낸다. 영옥이 같이 가자고 하자 그 아이가 영옥을 안았다. 삼천은 다시 떼어냈다. 그리고 영옥을 때렸다. 그 아이를 두고 길을 걷다 해가 지고, “그믐밤이었다. 별 무리가 아주 낮게까지 내려와 밝게 빛났다. 그걸 보면서 할머니는 생각했다. 우리는 이런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자격이 없는 존재들이라고. 짐승만도 못한 존재, 천한 존재,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들이라고.”

영옥은 그 별을 보고 숨을 쉬었을까. 별을 보는 일은 숨구멍으로 숨을 쉬는 것과 같다. 지연이 천문학을 선택한 이유다. 영옥이 대구로 가는 피란길에서 본 별도 영옥에게는 숨구멍이었을 것 같다. 내게 숨구멍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이 시를 적었다.

 

숨구멍

 

내 하루의 지금 숨구멍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활자다

수업, 업무, 가사가 잠시 멈춘 틈에

모니터 앞 책받침대에 펴 놓은 글자에 눈이 가면

나는 숨 쉬기 시작한다 비로소

호흡은 공기를 먹는다

숨은 고래마냥 수면 위로 뿜어 나온다

숨은 내 몸에 스며드는 생명이다

구멍을 달리하며 숨은 쉰다

 

4. 상처, 잔인함

이상한 일이야. 누군가에게는 아픈 상처를 준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말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지연의 엄마인 미선이 자신의 엄마인 영옥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모녀 사이에서 엄마가 딸에게 아픈 상처를 주었지만, 자신의 딸인 지연에게는 엄마 영옥은 좋은 사람이다.

나는 미선이가 엄마인 영옥과 왕래를 끊은 이유를 알지 못한다. 지연의 언니인 정연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 이유와 원인을 찾기 위해 책을 여러 번 뒤적였지만 찾지 못했다. 내가 건성으로 소설을 읽은 것인지, 그것들이 책에는 기술되지 않은 채, 독자인 내가 추측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지연이 음주운전 차에 들이받혀 정신을 잃고 있었을 때, 언니의 등을 꼭 껴안고 자전거를 타며 언덕을 내려가던 꿈을 꾼다. 자전거 타다가 죽었나? 정연의 죽음을 두고 딸 미선을 위로한다며 엄마 영옥이 건넨 사람 명이 하늘에 달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냐.”라는 이 말이 딸과 엄마 간의 거리를 멀게 할 정도로 잔인한 말인가. 그 후 5년 만에 지연을 10일간 맡기고 돌아와서는 지연이 결혼식에 영옥을 초대하지 않은 미선의 마음은 영옥과 얼마나 거리를 둔 것이었을까.

영옥은 손녀 지연에게 엄마가 딸을 용서하는 건 쉬운 일이라 말한다. 딸이 엄마를 용서하는 일은 어렵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를 용서하지 못하는 딸도 엄마에게 상처를 준다. 엄마 미선은 결혼 전에 우체국에서 함께 일했던 친구인 명희 아줌마에게 명희 아줌마의 엄마 수술비로 큰돈을 선뜻 주었다. 명희 아줌마에게 엄마 미선은 정말 좋은 사람이지만, 미선의 엄마 영옥에게 아픈 상처를 준다. 지연은 엄마 미선에게 죽은 언니 정연을 잊으라며 날선 말로 상처를 준다.

지연의 증조모 정선은 자신의 병든 엄마를 새비 아저씨 손에 맡기고 남편 희수와 함께 개성에 간다. 고조모는 삼천(정선)의 치맛자락을 붙잡으며 자신을 데리고 가라 한다. 정선이 그 손을 떼어내자 포기한다. 다음 생에 자신의 딸로 다시 태어나 못다 해준 걸 해주겠다며 다시 만나자 한다. 자식에게 버림받은 것을 알게 된 마음, 그 상처를 감추고 자식을 떠나보내는 고조모의 마음이 남는다.

박희수, 그는 아내 정선이 백정의 신분인데도 그와 결혼한다. 천주교 신자인 자신이 아내에게 큰 사랑을 실천했다고 자부하며 살았던 것 같다. 자신의 딸 영옥이 사기 결혼을 한 데 일조한 데 대해 자책을 하기보다는 남자 마음 하나 잡지를 못해서 빼앗겼으니 아쉬울 것도 없다.”라며 모진 말을 영옥에게 한다. 그 말에 정선은 자기 손으로 희수를 죽이겠다는 폭언을 하면서 영옥의 상처를 감싼다. 영옥도 아버지에게 죽으라고 한다. 희수는 몇 달 뒤에 대로변에서 버스에 치여 죽는다. 아내와 딸의 말에 큰 상처를 받고 죽음을 선택했을까.

희자의 고모할머니 명숙의 편지에 답장을 하지 않은 영옥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자신이 사는 세상과는 다른 곳으로 나아가고 있는 희자를 생각하는 영옥이.‘질투, 시기라는 단어를 굳이 쓰지 않아도 느껴지는 영옥이의 그런 마음이 느껴진다. 공자는 을 설명하면서 잔인함을 그것의 반대로 여겼다고 한다. 잔인한 말과 삶의 모습이 상처로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5. 기억

할머니 영옥은 수제비를 먹을 때마다 아버지 박희수가 느닷없이 국군에 자원입대한다면서 주말에 훈련소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말하던 날이 떠오른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낮잠이나 초저녁잠을 잤거나 커피를 많이 마신 날 밤에 쉬이 잠이 오지 않아 괴로운 이유는 불면 자체보다는 떠올리기 싫은 옛 기억에 있다. 여기에다 이루지 못한 것들, 이에 따르는 후회, 자괴감 등은 불면을 더욱 끔찍하게 한다. 더는 어쩌지 못하는 나이가 되어 느끼는 무력감에다 생생해지는 기억을 그대로 떠안으며 살기는 무척 힘든 일이다.

소설 󰡔밝은 밤󰡕밝은 밤 같은 기억의 강물이다. 백정을 천대하던 신분제, 위안부와 징용, 히로시마 원폭 피해를 겪었던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과 피난민 등의 참상이 여러 모양과 색깔로 흐르고 있다. 지연의 전남편은 시간은 흘러가는 강물이 아니라 얼어붙은 강물이라고 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동시에 존재한다는 뜻이란다. 기억도 그런 점에서 얼어붙은 강물과 같다. 기억은 낮 시간대에 있지 않다. 기억은 늘 밤을 배경으로 한다. 지연은 감기약을 먹고 총천연색 꿈을 꾼다지만, 꿈과 달리 기억은 밤이고 흑백이다. 할머니 영옥은 지연에게 옛 이야기를 처음 했다. 영옥에게 기억하기는 나이가 들수록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그의 삶은 잊을 수 없는 일로 가득하다. 밝은 밤이 어둔 밤이 되어야 평온해질 수 있다.

어둠은 거기에 있었다.” 지연이 희자 할머니에 관한 다큐멘터리 자료를 보러 도서관에 가는 길 지하철에서 머리를 기대고 자는 어떤 여자에게 자기의 어깨를 맡기면서 든 생각이다. ‘거기란 인정하고 싶지 않고 알고 싶지 않고 느끼고 싶지 않아서 지연 자신과 지연의 인생에게 거짓말을 한 지연 자신이다. 그런 가 어둠이라면 밝음은 인정하고 싶고 알고 싶고 느끼고 싶은 이겠다. 밝은 밤 같은 기억에 덜 괴로워하려면 그 어둠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다. 기억의 강물을 건너거나 벗어나는 일은 부질없어 보인다. 그냥 흘러가다 어디에서 흐른 강물인지 모르게 되는 바다로 가고 싶다. 어둔 밤의 바다에서 삼천이, 새비, 영옥이, 희자 등 소설 󰡔밝은 밤󰡕의 모두가 평안하기를 바란다. 나도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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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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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삶

고단하다의 고자는 한자로 고통스럽다 고()자일 것 같았는데, 단자는 어떤 한자일까 궁금했다. 사전을 찾아보니 지쳐서 피곤하다.”는 뜻으로 고유어다. 단출하고 외롭다는 뜻의 고단은 한자로 孤單이다. 소설 󰡔밝은 밤󰡕은 여자 쪽으로 4대에 걸친 고단한(지쳐서 피곤한) 삶을 전한다.

지연은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고 6년 동안 살았던 집을 정리하고 희령으로 떠난다. 감기약을 먹고 총천연색으로 꿈을 꾼 후에 겨우 몸을 추스르고 출근했는데 선배에게 업무 과실로 질책을 받으며 이혼한 자신의 처지를 떠올린다. 지연의 엄마 미선은 혼외자다. 일찍 어른이 되어 엄마 영옥과 거리를 둔 미선의 삶, 딸인 지연과 갈등, 고단해 보인다.

지연의 증조모(정선, 삼천이)가 증조부(박희수)와 함께 개성으로 가려하자 병석에 누운 고조모가 치맛자락을 잡고 당신도 데려가 달라 애원한다. 정선이 그 손을 떼어내자 다음 생에는 네 딸로 태어나 현생에서 못 다한 사랑을 베풀어주겠다고 증조모에게 말한다. ‘똥지게꾼도 오물을 퍼내지 않을 정도로 천대받는 백정의 딸로 자란 삼천의 어린 시절도, 시숙에게 줄 쌀밥이 복구네 아이 장난으로 뒤엎어지고 그걸 주워 담고, 깨진 사발 조각에 발을 베고도 머리가 깨질 듯이 추운 날에 보리쌀을 씻는 삼천의 결혼 생활도 고단하기 그지없다. 삼천에게 그 밤은 무척 고단한 밝은 밤이었다.

 

혹독한 삶

혹독하다, ()자는 독하다, 심하다, 잔인하다는 뜻인데, ‘술이 독하다, 향기가 짙다는 뜻도 있다. 숙취의 고통이 떠오른다. 지난밤 과음으로 다음 날 내내 내장에서 알코올을 소화하고 독기를 거르느라 괴롭고, 뇌에서는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 일어나 마음은 표류한다. 샤론 모알렘이라는 의학자는 󰡔우리의 더 나은 반쪽󰡕이란 책에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삶을 단 한 단어로 혹독하다고 적었다. 우리 유전자가 온갖 감염병에 맞서 면역 반응을 일으켜 생명을 유지하려는 일이 무척 혹독하다는 뜻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어낸 소설 󰡔밝은 밤󰡕의 등장인물에게 그런 숙취나 바이러스 면역 과정의 혹독함은 사치에 가깝다. 새비의 남편이 히로시마에 가 일을 하다 원폭 피해를 입고 돌아와 죽어가는 모습, 정선이 가족을 데리고 새비가 있는 대구로 피란 가던 중에 만난 여자 아이에게 옷을 입히고 먹을거리를 쥐어 준 후에 떼어내는 모습은 혹독하다는 단어 말고는 표현할 수 없다. 그 피란길에서 해가 저물자 별빛 가득한 그믐의 밝은 밤을 올려다 본 영옥은 그런 밤을 즐길 자격도 없는 천한 존재라는 자각을 한다. 영옥에게 그 밝은 밤은 혹독한 밤이었다.

 

따뜻한 삶

따뜻하다는 물리적으로 쾌적한 느낌이 들 정도로 온도가 알맞게 높다는 뜻이라고 사전에 나온다. 도타운(깊고 많은) 사랑을 느낄 정도로 인정이 있다는 의미도 있단다. 소설 󰡔밝은 밤󰡕이 고단하고 혹독한 삶만을 담고 있었다면 또다시 여러 번 마음이 아플까 더 펼칠 마음이 일지 않았을 테다.

영옥이 지연에게 사과 하나를 건네며 대화를 나누다 손녀랑 닮았다면서 서울 사는 애가 여기에 내려올 일이 없잖우.”라고 말하자, “그런데 내려왔네요, 여기.”라고 지연이 대답하는 장면에서 영옥의 지연을 향한 도타운 사랑을 느꼈다. 눈물이 핑 돌았다.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받고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끼는 지연을 보면서 내가 4학년, 5학년 다닐 무렵에 단칸 자취방에서 밥을 해주셨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새비가 정선과 영옥에게 주기 위해 장만한 온갖 선물을 풀어놓는 장면이나 영옥이 손녀인 지연에게 베푸는 손길 하나하나 따뜻하다. 희자의 고모할머니 명숙이 영옥에게 보인 선의와 유품도 그렇다. 밝은 밤은 따뜻한 밤이기도 하다.

밝은 밤의 온기

아껴가며 조금씩 읽은 지 4개월이 지나고 있다. 내내 뭉근하게(세지 않으면서 꾸준하고 끊임없이) 내 생활과 함께하고 있다.

누군가와 대화할 기회가 있으면 당신 엄마의 외할머니가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어본다. 대개는 자신의 외할머니를 떠올린다. ‘외할머니의 엄마라고 다시 말하면 돌아오는 답은 거의 몰라였다. 나도 모른다. 친할머니의 엄마를.

우리가 모르는 조상은 호칭에 자가 들어가거나 여자. 족보는 남자조상만의 계통만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의 나를 비롯한 거의 모든 생명체는 남과 여의 결합이다. 이를 정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현실 사회는 남자만 있다. ‘비정상을 이만큼이나 정상으로 인식하는 대상이 또 있을까. 여자 조상에 대해 나는 모르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궁금해 한 적조차 없었다는 사실을 󰡔밝은 밤󰡕은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일깨웠다.

고단하고 혹독하다가도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모든 이의 삶을 보았다. 백로 절기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보드라운 이불로 막아내자 느껴지는 그 따스함을 소설 󰡔밝은 밤󰡕과 함께 오래 간직하고 싶다. 자꾸 꺼내 읽고 싶은 소설, 어떤 쪽이든 펼쳐진 대로 읽다보면 다시 덮기가 쉽지 않은 이야기다. 우리 삶의 본 모습을 모두 담고 있어서, 우리 삶을 닮고 있어서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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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한 삶
김경일 지음 / 진성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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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심리학 책이다. 아무 데나 펼쳐 읽어도 금세 빠져든다. 󰡔적정한 삶󰡕에는 저자 개인의 감정이 고스란히 표현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남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이다 보니 나와 우리 이야기가 된다. 고개를 저절로 끄덕이게 하고 웃음 짓게 하다가 빵 터지게 한다. ‘의지력 총량의 법칙에 나오는 내용대로, 엉터리 논문을 봐달라는 학생 앞에서, 점심시간 교직원 식당에서 동료 교수를 향해서, 그리고 막내딸 채원에게서 저자가 품은 감정은 평범하고 착한 보통 사람들을 위한 학문을 하는 저자의 마음을 그대로, 나의 마음과 똑같게 보여준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고독과 혼자 하는 일을 즐기고 나만의 비밀을 소중하게 여기는 현대인의 모습을 말이다. 한 공간에 여럿이 모여 있는 것보다 혼자 있는 공간에서 여럿을 만나는 일도 재미있고 나름 효율 넘치는 일이라는 점을 알게 했다. 과잉된 관계로 피로한 현대인에게 비대면이 주는 자유로움은 일종의 해방구였는지 모르겠다. 󰡔적정한 삶󰡕이 지니는 여러 가치 중 하나는 팬데믹 상황에서 팬데믹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지만, 팬데믹 전후를 살았거나 살아갈 모두에게 적용해도 의미가 있다는 데 있다. 그것이 이 책을 더 값지게 한다.

저자에 따르면, 감정이야말로 인간의 모든 결정을 가능하게 한다. 감정을 정확하게 알고 다스려야 불쾌감을 피하고 건강을 증진한다. 더 나아가 판단의 질이 향상되어 탁월하고 유능한 인재가 될 수 있다. 더 나은 일상과 인생을 열어주는 작지만, 위대한 비밀을 저자는 나의 뇌 안에서 벌어지는 감정을 명확히 인지하고 조절하고 풍요롭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 책은 이를 이타성, 감사하는 마음, 만족감, 행복감, 정직과 겸손, 웃음 등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타성은 악어, 개코원숭이, 늑대, 침팬지 등이 멸종을 피하고 생존과 번영을 하게 한 힘이다. 내가 아닌 남을 위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사람의 태도, 인간을 강력한 생물학적 개체로 만들어 낸 진화의 전략이 이타성이다. ‘정직이 있는 그대로 솔직히 말하는 것이라면 겸손은 상대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는 사회적 기술이다. 적정한 겸손의 지점을 아는 일은 오랜 훈련의 결과이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다. 감사는 타인에 대한 의무감을 증가하게 한다. 감사할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진 빚을 갚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웃음은 어떤 일을 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신념이나 가치와 달리 하루하루를 계속 이어가게 만드는 힘이다. 심리적 근육을 만들어 주는 것이 웃음이다. 내가 독서기록장에 기록한 문구들이다. 무엇 하나도 적정성을 무시할 수 없는 감정이다.

5년 전 겨울이었다. 나는 큰 실패와 좌절을 겪었다. 자초한 일이었다. 참담함이 내 감정을 지배했다. 앞으로 닥칠 여러 일들이 두려움과 공포로 다가왔다. 불안과 우울이 늘 꿈틀댔다. 󰡔우리 아이 명시 낭독󰡕 책을 샀다. 초등학교 2학년, 6학년 자식과 암송한 첫 시가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그리고 기형도의 엄마 걱정’. 나보다 훨씬 잘 외우는 딸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내 잘못된 행동과 말을 반성하고, 기운을 냈다. 낮에는 고향 집에서 나무 농사를 짓는 형 일을 도왔다. 전지한 나뭇가지를 요란하면서도 살벌한 소음을 내는 파쇄기에 넣어가며 나무밭을 정리했다. 내 일상을 아주 세세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B5 크기의 공책을 늘 지니고 다니면서 쓸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이면 적었다. 어제 일과 오늘 일, 그리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떠오르는 잘못과 실수의 장면을 되새기면서 내 마음을 글로 옮겨 적었다. 일곱 권째 쓰고 있다. 저자 김경일이 제안한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으로 행동하기’, 이순신 장군이 했던 것처럼 아주 작고 구체적인 것들을 기록하기등을 나는 그 일을 겪은 후부터 했다. 평범하고 보통 사람인 내가 적정한 감정을 지니기 위해 했던 일이었다. “실패는 성공보다 중요하다.”, “실패는 우리의 데이터베이스다.”라는 말은 진실이지만 아프다. 아프니까 진실이겠다. ‘상대의 실패를 조롱하거나 처벌하지 않고 소중한 경험으로 대우해 주는 지혜를나를 비롯한 많은 실패자는 바란다.

󰡔적정한 삶󰡕은 단순한 삶의 기술을 넘어 다음과 같은 문구로 성찰의 기회와 지혜를 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기질이다. 사람은 변한다. 낙천성은 타고나지만, 낙관성은 후천적이다. 명사는 사람을 인식하는 데 분명하고 빠르지만, 낙인을 강화한다. 사람을 동사로 표현하자. 소시오패스는 자신의 권리를 우선 주장한다. 만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성취 지향적인 사람은 권력 지향적인 사람에게 이용당하기 쉽다. 󰡔피로사회󰡕를 쓴 철학자 한병철이 신자유주의적 성과사회를 비판하면서 지적한 자유를 착취하는 이’, ‘자기 착취자성취 지향적인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낌없이 표현해도 되는 부정적인 감정은 슬픔이다.”라는 김경일 교수의 주장은 우울증을 긍정성의 과잉 징후로 읽으면서 정신을 살아있게 하는 것부정성의 회복을 강조하는 한병철의 주장과 상통하는 것 같다. 나쁜 습관을 사람의 의지로 없애는 것은 허황한 주장이라는 로이 바우마이스터의 입장에 보태 김경일 교수는 나쁜 습관 위에 좋은 습관을 덮어씌우자고 제안한다. 50대 중반이 코앞인 내게 다음 두 가지는 꼭 기억해야 할 내용이다. 󰡔여성의 활로, 남성의 말로󰡕라는 책 제목과 목적 없는 대화 상대인 저자의 경상도 친구다. 내 여생의 행복은 좋은 관계가 결정할 것 같다.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딱 알맞은 환경, 과잉도 결핍도 아닌 적정의 상태, 내가 이런 환경과 상태에서 살고 있는지 아닌지는 내 감정이 지금 적정한지 살펴보면 알 것 같다. 5년 전 나의 잘못, 실패, 좌절은 분명 적정을 넘어선 과잉 감정의 결과였다. 한 번의 과잉이 아닌 여러 번 반복된 과잉의 결과이다. 그 옆에 적정한 만족감을 누리지 못한 결핍의 감정이 있었다. 요즘 들어 생동하다라는 단어를 곧잘 떠올리고 쓴다. 동사로는 생기 있게 살아 움직이다’, 형용사로는 그림이나 글씨 따위(물질)가 살아 움직이는 듯이 힘이 있다는 뜻이다. ‘생동하는 적정한 삶의 중심에 적정한 감정이 있다. 김경일의 󰡔적정한 삶󰡕은 나와 같이 평범하고 (착한×) 보통인 사람에게 자꾸 넛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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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도시를 생각해 - 우리가 먹고 자고 일하고 노는 도시의 안녕을 고민하다
최성용 지음 / 북트리거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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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전거, 천변 산책길

작년 9월부터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차도에서 자전거 타기는 무서운 일이다. 자동차 경적에 움찔움찔 놀라고 짜증 난다. 요란한 경고음에 항의라도 하면 당신 생각해서 빵빵거렸다.”라고 되레 큰소리다. 보도블록이 울퉁불퉁 튀어나온 인도를 불법적으로 5분 정도 엉덩이 들고 자전거를 타는 동안 횡단보도를 불법적으로 자전거를 탄 채 세 차례나 건넌다. 자전거를 타고 건널 수 있는 횡단로는 딱 한 군데다. 역주행도 서너 번 한다. 차가 달리는 도로에서 자전거 타는 이는 사고를 당하지 않을까 긴장한다. 그런데 천변 산책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순간 나는 사고 유발자가 된다.

내가 사는 도시에는 도청사가 있어도 소도시라고 해야 할 정도로 아담하다.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강은 한강, 금강 정도에 훨씬 미치지 못해서 ○○이라 불린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물고기가 가득하고 빨래하기, 멱감기 등을 할 정도로 깨끗했다. 그러다 10여 년 사이에 똥물이 되어 악취를 풍겼다. 1990년대 말 하천 정비 사업을 하면서 하수도를 따로 내더니 1급수에 가까운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천이 되어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봄이면 그 연한 푸르름에 몸과 마음이 열린다. 늦가을부터 늦겨울까지는 막 엮어 씌운 초가지붕에서 느낄 만한 따스함과 옛 고향의 정취를 은근하게 풍기는 갈대숲이 천변 곳곳에 펼쳐져 도시의 삶에 행복이 더해진다. 한여름 다리 밑에서 맴도는 시원한 바람과 짙은 풀 향은 무더위마저 즐기게 한다. 사계절 내내 물줄기와 식생을 만끽하려는 사람이 천변 산책길을 거닌다.

그런데 산책길을 달리는 자전거는 걷는 이의 안전을 위협한다. 2m 포장도로를 반절로 나눠 한쪽은 자전거길, 한쪽은 걷는 길로 표시해 놓았다. 사람끼리 교차하는 순간 자전거끼리 교행하는 찰나는 위험하다. 속도를 줄이고 사람 뒤에서 서행하거나 멀리서부터 나 자전거, 지나가요라는 신호로 딸랑이를 울린다. 행여 2~3m 뒤에서 딸랑거렸다가 두 손 번쩍 들면서 화들짝 놀라는 몸짓을 하는 사람을 맞닥뜨리면 나마저 덩달아 놀라고 자전거 타기를 접고 버스 타기로 바꿀지 고민한다.

2. 우리 집, 도시

도로변에 있는 이층 짜리 처가의 상가 건물 바로 옆 건물의 이층 사무실을 주거 공간으로 고쳐서 15년 전에 이사할 때만 해도 도로 건너편은 주거지로 막혀 있었다. 5년 전쯤, 소방도로를 내면서 집 건너편 불법 점유 건물을 철거하니 안방 창문에서 팔달로를 달리는 차들이 보일 정도로 툭 틔어졌다. 대신 아늑한 거주 공간 느낌은 크게 줄었다. 집 앞 도로는 팔달로가 나기 전 이 도시의 중심 도로였다. 아내의 어린 시절, 집 앞은 서울의 명동거리만큼 사람으로 북적였다. 신도시 개발 무렵부터는 저녁 6~7시만 되어도 시장이 바로 옆인데도 사람과 차 모두 별로 없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 우리 아이들을 플라스틱 썰매에 태워 집 앞 도로를 미끄러지며 달리곤 했을 정도다. 집 서쪽에는 파산한 저축은행 건물이 버려진 채로 3년 정도 있다 헐리고 두 동짜리 25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지금에야 많이 익숙해졌지만, 막대기 두 개가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모습은 무척 위압적이었다. 가장 아쉬운 일은 도시의 반절을 동과 서로 나누고 있는 야트막한 산에 걸린 큼지막하고 발간 저녁 해를 더는 감상할 수 없게 된 일이다. 수돗물 세기는 약해졌다. 가끔 옥상에 장작불을 피워 캠핑을 즐기고 불멍할 때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아파트 주민 눈치가 보이지만, 그들이 우리를 더 부러워할 것이라 믿으며 이제는 개의하지 않는다. 저자 최성용은 우리가도시의 모습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들어가며에 적었다. 내가 받은 영향은 무엇일까.

우리 집은 구도심에 있는 재래시장 입구에 있다. 서울의 청계천처럼 도심을 흐르는 작은 하천이 있다. 5.16쿠데타 이후 예비역 장성이 이권을 챙기려는 수단으로 하천 복개 공사를 도맡았다. 복개된 도로 양편에 있던 닭집에서 버린 닭털을 비롯한 부산물이 복개 하천을 가득 메웠다. 청계천 정비 사업이 긍정적인 평가를 얻자 그 사업을 벤치마킹한 우리 시는 하천을 덮은 콘크리트를 시장 상인들의 거센 반대를 딛고 걷어냈다. 저수지 두 곳을 지나온 물이 자연 그대로 흐르도록 했다. 여름에 집 앞의 대기 온도가 27도인 걸 확인하고 시내버스를 20분 남짓 타고 도시 외곽 야산 밑에 자리 잡은 직장에 출근해서 건물 현관에 걸린 온도계를 보면 24도였다. 그런데 복개천을 자연 하천으로 만든 뒤에는 기온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다.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된 책 속 사진으로 본 수원천이나 공주의 제민천 모습과는 크게 다르고 볼품은 없지만, 원래 물이 흐르던 개천(개울)을 눈으로 보고 물비린내를 맡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대만족이다.

 

3. 정치, 내일의 도시가 현실이 되게 하는 방법

최성용의 󰡔내일의 도시를 생각해󰡕를 숨 헐떡여 가며 재미나게 읽으면서, 왜 이제야 이런 책을 읽게 되었는지, 진작에 읽었으면 내가 사는 도시를 제대로 재미있게 둘러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참 다행이라는 희열을 함께 느꼈다. 도로의 주인은 단연코 사람이어야 한다. 내일의 도시가 기후 위기를 이겨내려면, 자전거(전기자전거 말고)가 자동차보다 더 많아지고 일반적인 이동 수단이 되려면, ‘혁명적인 필요 창출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시내 중심 도로에 2~3km 길이의 관광자원 차원으로 노면전차인 트램 설치 사업은 최소 사백억 원에서 육백억 원이 든다. 그 돈을 시내버스 정기권 혜택을 늘리는 데 쓰거나 사람이 편하게 거닐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도로로 만드는 데 쓰는 것이 훨씬 낫다. 내가 말하는 혁명이란 그렇게 되는 것, 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린벨트가 김신조 사건 이후 군사시설을 숨겨 놓을 땅을 조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최성용의 󰡔내일의 도시를 생각해󰡕로 처음 알았다. 물을 머금는 도시, 인도를 투수 포장으로 바꿔 빗물을 머금게 한다는 것, 덕수궁 돌담길처럼 트래픽 카밍 기법을 적용한 우리 지역 기차역 앞 마중길, 덴마크 코펜하겐의 친환경 쓰레기 처리장, 무장애 숲길 등 익숙한 것을 신선하게 바르게 알고, 또 새로 알고 깨달았다. 내가 사는 동네에 낡은 공간이나 건물이 있나, 있다. 호텔 건물. 얼마 전에 집 앞 100m 떨어진 곳에 이십 년 가까이 빈 채로 있는 공간을 시에서 매입해 소규모 공공주택으로 개조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아내와 나눈 적이 있다. 강력한 지역 균형 개발 정책을 실시하면 녹지 공간 훼손 없이도 살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 지방의 공공주택은 비어 있다. 입법, 사법, 행정부 소속 모든 기관이 세종시로 모이고 주요 공공기관이 수도권에서 벗어나 분산 배치되도록 헌법과 법률이 제정된다. 그야말로 무혈혁명’, ‘작은 혁명이 이뤄진다면 내일의 도시는 살만한 데가 된다. 혁명적인 사고정책이 아니고서는 현재의 기후 위기, 출생률 위기, 지역 위기 등을 해결할 수 없다. 󰡔내일의 도시를 생각해󰡕는 우리에게 그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저자는 지역단체장이나 입법기관으로서의 정치를 꼭 해야 한다. 그래야 내일의 도시는 생각에 머물지 않고 현실이 된다. ‘여전히 도시에 살고, 도시를 구경하며, 도시에 대해 쓰고 있는최성용 저자가 정치를 한다면, 정치는 긍정어의 대표 명사가 될 수 있다.

저자를 찬양하는 글은 처음 쓴다. 저자의 글을 칭찬하면서 저자를 존경하는 마음은 가진 적은 있지만, 저자의 글을 통해 저자 자체를 추앙까지 하고 있다. 저자의 어릴 적 꿈이 시장이니, 이런 분이 시장으로 일하고 있는 도시에 언제일지 몰라도 한 달만이라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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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 투쟁기 -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
우춘희 지음 / 교양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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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무 농사, 이주노동자

우리 형은 나무 농사를 20여 년째 짓고 있다. 교목보다 관목 위주로 묘목을 생산하는 우리 형은 여성 노동을 주로 필요로 한다. 주저앉은 채로 조심스럽고 세심한 손길로 막 싹 튼 묘목 사이에 자란 잡초를 뽑거나 2~3cm 간격으로 촘촘히 꺾꽂이하고 옮겨 심는 작업 등이 많기 때문이다. 다른 곡물 농사처럼 나무 농사도 때를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 싹 트기 전인 4월까지 밭고랑을 만들어 비닐을 치고 묘목 작업을 하려면 여러 일손이 집중적으로 필요하다. 현금을 손에 바로 쥐는 일이 많지 않은 농촌에서 나무 농사 품팔이는 하루 일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현금을 받는 일인데도, 막상 참여하는 이는 자기네 봄 농사 준비 다 마치고 한숨 돌리는 70~80대 할머니들이다. 손이 느린 할머니 일손 탓에 작업 속도가 더디다 보니 도시의 스무 살 청년과 맞먹는 농촌의 50대 중반인 우리 형은 속이 타들어 가는데도 달리 도리가 없었다. 최근 들어서는 자식이 밭일하지 말라고 해서, 기력이 떨어져서, 요양병원에 들어가서 더는 품을 팔지 못하는 할머니 일꾼이 늘어나 더욱 일손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2~4월 자연과 사람 모두 봄기운을 느끼며 생기를 띠어가는 시절에 봄을 찬양하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리는 가운데 형은 사람 구하는 데 온 힘을 다하다 결국에는 포기하고 체념하다 농부가 된 걸 후회하면서 봄 가뭄처럼 속이 탄다. 관목을 포기하고 교목 위주로 농사 방향을 틀려고 하던 즈음, 작년과 올해 외국인 계절근로자 프로그램으로 태국 국적의 20대 초반 여성 일꾼 10여 명을 얻었다. 한 달 걸릴 일거리를 일주일 만에 끝내고 얼마나 흡족해하던지. 더욱이 두 말 세 말 반복하지 않아도 단번에 알아듣고 깔끔하게 처리하는 솜씨에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딱 한 번, 쓰레기를 함부로 버린다며 문화 수준이 낮다는 불평 한마디 했다.

 

2. 깻잎, 이주노동자, 임금 체불

깻잎을 좋아하는 나는 작년 5월 말, 토요판 신문 책 소개 면에서 깻잎 따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이란 소제목이 붙은 󰡔깻잎 투쟁기󰡕를 처음 접했다. ‘하루 10시간씩 매일 깻잎 15천 장이란 문구를 보고 설마, 그게 가능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마침 이금이의 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는 중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포와로 불린 미국 하와이에 있는 사탕수수밭에 사진 신부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이주한 이들의 삶을 그린 소설이었다. 100여 년을 사이에 두고 우리 땅에서 다른 나라 국적을 지닌 이들이 사진 신부가 겪었던 이주 노동의 고통을 고스란히 겪고 있는 사실에 놀라웠고 안타까웠다.

수천만 원의 임금체불로 고통을 겪은 캄보디아 국적의 쓰레이응 씨 사연이 가슴에 먹먹하게 남는다. 22살 여성, 20168월부터 20202월까지 37개월 동안 채소 농장에서 일하고 받은 임금이 950만 원이다. 최저임금으로 계산해도 6천만 원 이상을 받지 못한 셈이다. 옛일이 떠올랐다. 이름있는 대학교 학생이 아니었던 나는 친누나 친구의 중학생 딸 영어 과외를 했다. 이름있는 대학 다니는 사람보다 3분의 1 수준인 월 10만 원을 받았다. 보통 과외비는 선불이지만, 그 부모가 후불로 하자 해서 궁색한 처지였던 나는 관례를 깨고 그러자 했다. 6개월 남짓하다가 그 중학생이 그만하자 해서 끝났다. 두 달분 과외비를 못 받은 상태였다. 20만 원을 곧 보내주겠다던 그 부모는 석 달이 지나도록 과외비를 입금하지 않았다. 그동안 거의 매일 같이 입금 여부를 텔레뱅킹으로 확인했다. 돈 버는 손위 남매들에게 몇만 원씩 용돈을 타가며, 옥탑 자취방에서 버텼다. 더는 손 벌리기가 어려웠던 어느 날 동전을 모아둔 저금통에서 동전을 모두 꺼내 보니 200원 하는 백자 담배 한 갑에 라면 두 봉지 살 돈이 나왔다. 그 돈을 책상 위에 놓고 등교했다. 돌아와 보니 주택가 일대에 도둑이 들어 온갖 금품을 싹 쓸어 갔다며 경찰이 분주히 다녔다. 설마하니 내 동전까지? 옥탑방에 들어와 보니 창문은 열려 있고 신발 자국이 방바닥에 찍혀 있었다. 내 동전은 없어졌다. 저녁을 굶어야 했다. 결국 과외비 달라는 전화를 또 걸었지만, 형편이 어렵다며 양해해달라는 답을 받았다. 그때 절박했던 심정이 잊히지 않는다. 나는 누나에게 전화했다. 누나가 보내준 돈으로 라면과 달걀을 사서 저녁을 먹었다. 누나가 그 친구에게 말했는지 그 뒤로 한 달이 지나, 거의 포기할 무렵에 20만 원이 입금되었다. 쓰레이잉 씨는 나보다 몇백 배 더한 상황이었다.

 

3. 이주노동자에 대한 기회주의적인 한국인의 태도

우춘희의 󰡔깻잎 투쟁기󰡕는 이금이 소설을 먼 옛 이야기가 아닌 오늘의 우리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차별과 고통의 이야기로 전하고 있다. 󰡔깻잎 투쟁기󰡕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데,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쓴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혐오와 차별의 정치학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다. 그는 유럽에서 마녀 누명을 쓰고 화형을 당한 여성이 대개 혼자 살면서 재산이 있는 유복한 여성이란 점을 근거로 희생양 찾기가 그 사회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경향신문 김준기 뉴스콘텐츠부문장은 2023914일 자 칼럼에서 1970년대 중반 이후 미국 경제가 침체하면서 불법 이민자에 대한 탄압과 혐오가 거세졌다고 적었다. 한국 경제의 성장세가 주춤하면서 이주노동자가 희생양이 될까 두렵다. 이를 정회옥 교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우리 한국인의 태도가 기회주의적이라고 힐난한다. 경제 상황이 좋을 때는 한국이라는 멀고 낯선 땅에 와서 고생이 많다고 호의를 보이다가도, 경기가 안 좋을 때면 외국인 노동자가 좋은 일자리를 다 빼앗아 간다거나 그들과 경쟁하다가 내 임금이 깎인다고 하거나 하는 식으로 연민과 호의가 혐오와 적대감으로 바뀐다고 지적한다. 이런 태도는 미국인이 아시아계 이주자를 대하는 태도와 똑같다. 우리나라 사람이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행태는 서구중심주의, 오리엔탈리즘, 인종주의의 왜곡된 변형의 결과이다. 우리는 차별받는 인종이면서 동시에 차별하는 인종이라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처지에 놓여 있다. 정희옥 교수의 이런 판단의 근거가 󰡔깻잎 투쟁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4. 사소(些少)한 혁명 바라기

집 근처 재래시장 점포 세 군데에 동남아시아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채소, 과일, 생선 등을 팔고 있다. 1~2년 사이에 그들은 우리 곁에 사장님으로 함께 자리하고 있다. 주말에는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이들이 주변에 있는 구제 옷 가게를 찾는다. 우리나라 사람이 큰 소리로 시끄럽게 떠들어대듯 그들의 말과 웃음도 요란하다. 똑같은 사람이다. 특별히 더 비난하거나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출생률 0.78명인 현재, 한국이라는 나라가 아니라 그냥 우리 사회가 덜 불행하고 더불어 살아가려면 모두가 그저 사람이라는 생각을 저절로 해야 한다. 깻잎뿐만 아니라 상추, 고추 등 모든 먹을거리를 큰 걱정 없이 나누어 먹을 수 있으려면 제도와 법, 정책 모두를 동원해서라도 인종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거창한 체제의 혁명이 아닌, 아주 사소해 보이는 영역에서 혁명이 아니면 우리는 크게 후회할지 모른다.

처음에는아주 작은 사소한 혁명이라고 썼다. 혹시 사소작다는 뜻이 있어서 동어반복이 아닌지 사전을 찾아보니 그렇다. ‘些少한자어 자체도 동어반복이다. 작고 적고 보잘것없다는 뜻이 중첩된 단어다. 다르고 익숙하지 않은 그 무언가를 대상으로 텃새를 부리고 차별하고 혐오와 조롱을 일삼는 행태가 당하는 처지에서 보면 결코 작거나 적거나 보잘것없지 않음은 분명하다. 그 무엇이 대개 수적으로 적은그 무엇이다 보니 사소하게 여기는 일을 무척 당연하게 여긴다. 다르고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이 사소해 보이는 인식과 태도, 제도와 정책의 혁명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혁명이다. 조영관 이주민센터장도,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도 신문 칼럼에서 사람이 오는 일이다.’를 강조한다. 혁명이 필요하다. 마음 편하게 상추 한 잎 위에 깻잎 한 장 포개어 고기 한 점 기분 좋게 쌈 싸 먹을 사소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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