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 - 온라인이 대체할 수 없는 로컬 콘텐츠의 힘
모종린 지음 / 알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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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간 오프라인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골목상권의 부상이다. 골목상권은 단순히 상품을

소비하는 곳이 아니라 콘텐츠를 경험하는 '문화지구'이다. 소비자와 창작자가 지역과 골목의

오래된 문화를 새로운 도시문화 트랜드와 접목해 만든 콘텐츠를 소비하는 곳이다. 골목상권이

로컬 지향을 대표하긴 하지만 상권에서 뿐만 아니라 개성있는 상업 시설들도 로컬의 부상에

한 몫을 단단히 한다. 로컬 지향 현상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키워드는 다양성과 그 다양성이

만들어 내는 창조성이다. 사람들은 지역주민들의 일상에서 배어 나온 개성과 다양성을 로컬에서

발견하는데 이는 획일적인 전통상권에선 찾을 수 없는 요소다. 사람들은 단순한 로컬이 아닌

'크리에이티브 로컬'에 관심을 갖는다. 이 책은 저자도 말했듯이 사례 중심의 로컬 크리에이터

입문서다. 전작인 '골목길 자본론'에서 상권 단위로 로컬을 분석했다면 이 책은 로컬에서 기회를

찾는 창업가를 위해 로컬을 활용하는 방법을 말한다. 현재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의 경험으로

위생과 쾌적성, 디지털 전환, 동네 경제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생활 반경의 축소로 동네 소비도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기에 지금 시기에 이 책은 훌륭한 참고서가 될것같다.

​

오프라인 기업은 로컬에서 탈산업화 사회가 요구하는 창조자원을 찾는다. 탈산업화 사회는

개성으로 경쟁하는 시대이다. 1970년대 이후 선진국은 모두 조직력, 효율성, 물질적 성장을

강조하는 물질주의 사회에서 개성, 다양성, 삶의 질을 중시하는 탈물질주의 사회로 전환했다.

우리나라 역시 2010년 이후 정체성에 대한 욕구가 유난히 강한 밀레니엘 세대를 중심으로

탈물질주의로의변화를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프리랜서, 디지털 노마드 등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직업과 일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밀레니얼 세대도 전통적인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 대기업보다는 개인의 창의성과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소상공인 영역의 로컬

크리에이터 부분에 더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다.

​

로컬은 우리에게 '생활권'의 의미로 중요해졌다. 포스트 코로나 사회에서 생활권 중심의 도시를

재구성한다면 ,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는 생활권 경제이다. 동네가 진정한 의미의

생활권이 되기 위해서는 주민을 위한 충분한 일자리 창출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각 지역이

고유의 지역산업을 개발하여 지역에서 선순환하는 생활권 경제를 구축하는 것이 포스트

코로나 경제의 숙제다.

​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기업 중심 도시, 자동차 도시, 도시재개발로 특정할 수 있는 모던

도시와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 보행자 도시, 도시재생이 특징이 되는 포스트모던 도시의

기로에 서있다. 두 도시 사이에서의 선택은 라이프 스타일에 달려 있다. 그리고 라이프

스타일은 나이와 성별, 직업과 소득 수준 등에 따라 다르기에 획일적인 접근 보다는

다양하고도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

로컬 크리에이터에게 지역에 온 이유를 물으면 공통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살고 싶은

삶을 살기 위해 지역에 정착했다고 말한다. '나다움'이 정착의 이유인 것이다. 나다움은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깊이 있는 관찰과 용기 있는 선택이 쌓여 이루어지는 삶 그

자체인 것이다. 나다움은 자존감이기에 존재적 나다움이다. 존재적 나다움이 중요한 사람의

세계는 나와 다른 사람으로 나뉘어 있다. 나다움은 자신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마음의 기술이다. 이에대해 저자는 김수현의 베스트셀러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를 인용하여 나다움에 대해 설명한다. '벌어지지 않은 일에 미리 불안해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want)을, 할 수 있겠다(can) 싶으면 했다(do).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 나를

짓누르는 관계와는 거리를 뒀고, 그들이 내게 함부로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통념, 사회가 규정한 정답에서 한 발 떨어지니, 삶은 명료하고 가뿐했다.'

로컬 크리에이터에게 나다움은 자신만의 콘텐츠다. 자신이 소유한 객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일과 기술로 나다움을 정의하기 때문에 콘텐츠를 강조한 사람의 나다움은 존재적 나다움과

대비되는 소유적 또는 사회적 나다움으로 개념화 할 수 있다. 그런 이들에 대해 '밀레니얼의

반격'의 저자인 전정환은 '그들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 돈을 번다. 돈을 벌기 위해서만 지역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닮은 지역과 함께 행복한 삶을 지속하기 위해 돈을 벌고자 한다. 그래서

이들은 밀레니얼의 지역 개척자가 된다.'고 말한다.

​

'모든것은 항상 자잘하게 움직인다. 생명이 있는 한, 그것들은 부단히 움직여 오늘을 만난다.

나에게 일상이 있다는 것은 매일이 같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매일이 항상 다르기 때문이다.

항상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항상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는 말처럼 일상을 아름답게

생각하고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지금, 일상은 새로운 소비문화가 된다.

이 책은 이러한 일상을 위한 로컬 비지니스 모델을 제시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고 싶은 삶을 살라고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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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을 때까지 나답게 살기로 했다 - 자신을 죽이지 말고 무기로 삼아라!
세토 카즈노부 지음, 신찬 옮김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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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에게 던지는 '왜'라는 물음에 분명하게 답을 내놓을 수 있다면 그 다음은 아주 간단해

진다는 니체의 말은 평생을 '왜'라는 질문 혹은 그런 질문도 없이 사는 우리에게 큰 울림이

된다. 자신의 길과 나아갈 방향에 대한 답을 안다면 그 삶은 타인을 흉내낼 필요도 헛된

시간을 보낼 필요도 없이 그 길을 가면 된다. 다만 우리에게 그것이 불가능 하기에 우리는

여전히 그 길을 찾고 있다.

​

'나 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모두들 나답게 살고 싶다고 말하지만 정작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한다. 생각해보면 나도 10대, 20대 때는 '내가 아닌 누군가'를

꿈꾸면서 무던히 애쓰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러는 동안 정작 내가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만큼 자기 인식의 정확도도 부족했다. 실제로 타샤 유리크(미국 심리학자)는 '95%에

달하는 사람들이 자기인식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10-15% 만이 올바르게

자기인식을 한다'는 통계를 제시하며 우리의 착각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어른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착각으로 나이와 자기인식은 정비례 한다는 믿음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믿음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외부의 정보나 선택지가 많아져서 이제껏 축적해온 경험과 그것의 다양성에

눈을 뜨며 자기인식이 흔들리기 시작해 자신에 대한 정확한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

무의식이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나오는 것, 의도적이 아닌

본능적인 것, 남이 평가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하고 싶은 것을 말한다. 무의식적인 행동은

타고난 재능이나 신념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남을 신경쓰지 않는 진짜 자신의

모습이다. 자기인식은 자기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으로 인생에서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과 만족이 커진다. 그만큼 진짜 자신과 마주하는 과정은

무의식과 만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

저자는 지금을 '패자 부활의 시대'라고 말한다. 실패는 도전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실패했지만

다시 일어섰음을 말한다. 실패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기에 외국기업에서는 '얼마나 실패하지

않았는가'보다 '어떻게 재기했는가'에 더 주목한다. 실패했기에 도리어 더 단단해진 내가

진짜 나인 것이다.

​

고독은 자아성찰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혼자가 되어 자신을 돌보는 동안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자아성찰은 마음이 자신을 향해 있을 때

가능하고, 고독에 의해 더욱 깊어진다. 그리고 그 고독은 자신을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자신을 만나야 변화를 꿈꿀 수 있다.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조차 안된

것이다.

​

자기 인식을 통해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자신과 타인을 똑같은 선반에 올려놓고 비교하고 평가하는 일이 점차 줄어 들 것이고

타인의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현명함 마저 생길 것이다. 못하는 것에 매달려 헉헉거릴

시간에 잘하는 것을 더욱 개발하여 '그래요. 대신 나한테는 이런 능력이 있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 나다운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런 삶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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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
한수산 지음 / &(앤드)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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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모든 것은 사랑했기 때문에 안다.'

톨스토이의 '사랑과 평화'에 나오는 말이다. 그런것 같다. 사랑하기에 더 많이 관심이 가고

더 많이 알고 싶고 더 많이 기억하고 싶다. 그런 우리의 삶에 기억되는 모든것은 그렇게

사랑했고 그렇게 잊혀져 간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잊혀져 가는것이 기억되는 것보다

훨씬 많아지면서 우리는 그렇게 나이 들어간다. 젊은 시절의 꿈은 어느덧 추억으로

남겨지고, 그 시절의 사랑은 그저 여운이 남을 뿐이다.

​

누구나 꿈꾸는 '그곳'이 있다. 저자는 '이곳만은'이라는 표현을 쓴다. 나에게 그곳은 '쿠바'와

지중해의 '데루카'라는 작은 섬이다. 여기저기 많은 곳을 다녀 봤는데 유난히 쿠바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곳의 살벌함과 그 안에 자리한 사람들의 자유로움과 넘치는 열정

그리고 체게바라의 숨결이 아직 남아 있는 그곳에 가보고 싶었으나 아직은 '미래완료형'이다.

지중해의 데루카(현지인들이 그렇게 부르는 아주 작은 섬) 섬은 지중해 여행을 하던 중

지인의 도움으로 경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가로지를 때 보았던 섬이다. 아주 작은 섬이고

사람은 두 가구 밖에 살지 않는 섬인데 하늘에서 본 풍경과 바다 빛깔, 모래 사장이 너무

예뻤던 곳이다. 이곳에 거주하는 분들이 여행객 한 팀 만 수용하는 곳이라 미리 예약을

해야 하고 한번 들어가면 보름 정도를 그곳에 있어야 하기에(그것도 날씨가 좋아야만

가능하다) 너무너무 가보고 싶지만 아직 '이곳만은'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저자가 표현하는

'넉넉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늙어 갈 언제쯤' 그 때가 되면 꼭 가고 싶은 곳이다.

그곳을 그리워하고, 떠남과 만남을 꿈꾸며 살고 있다.

​

자신만의 공간을 가진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유럽의 발코니의 역할이 그것이다. 비좁은

집의 한 구석에 자신만이 자리할 공간을 위해 선뜻 공간을 허용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차를

커피를 담배를 술을 마시며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다. 엔도 슈사쿠에게 필요했던 책상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작은 방이 그렇고, 강릉 초당 마을에 있는 신봉승의 집필실이 그렇고, 저자의

영하당이 그렇다. 그곳에서 치열하게 외롭고 고독했을 것이다. 예술가에게 있어 외로움이란

혼자라는 의미이며 단순함이며 스스로 선택한 화려한 유배이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가혹하게

자신과 맞서는 장소이기에 때로는 축복의 공간이 된다.

'사랑의 기억으로'라는 제목을 가진 장은 절절하다. 작가가 지나온 삶의 자리에서 만난

선생님들에 대한 글로 가득한데 그 하나하나가 연서와 같다. 딱 한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웃어 보이셨던 최수근 선생님, 별명 만큼이나 뚝심있게 국내에서는 연구 조차도 미미한

조선시대 천문학자 박안기를 연구하고 평전을 쓰는 일을 해내신 '뚝지' 박병례 선생님,

지성으로 정의로움으로 다사로운 사랑으로 제자에게 가르침이 되고 등불이 되어주셨다고

기억하는 박용주 선생님, '시를 써야지 소설을 써'라며 핀잔을 주시지만 속 깊으신 조병화

선생님, '글은 쓰는 것이 아니라 고치는 것이다'고 말씀하시며 글쓰는 자세에 대해 강조하신

황순원 선생님(나도 개인적으로 교수라는 명칭보다 선생님이라는 명칭이 더 좋다). 저자는

어떤점에서 행운아인것 같다. 평생 한 명을 만나기도 어려운 좋은 선생님을 이렇게 많이

만났으니 말이다. 이렇듯 좋은 스승을 만났기에 저자도 바르고 곧게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아쉬움이다. 눈이 침침해지고 잘 보이지 않고 보행이 불편해지고

생각도 느려진다. 저자는 이에 대해 '늙음은 나무를 심지 못하는 나이다'라고 말한다.

하루하루가 망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캄캄한 세월이 가며 기억력이 무너진다. 그러면서

점점 더 나이들어 간다. 그것이 우리네 삶이고 우린 그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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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시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35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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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인 플라톤과 함께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철학사, 자연학, 윤리학, 정치학, 수사학, 미학, 동물학, 식물학,

심리학, 철학사, 정치사 등에 걸쳐 폭 넓은 지성과 학문적 관심을 가졌던 인물로 이 책은

당시 많은 시인들이 본능에 따라 쓰고 대중이 재미로 즐기던 비극과 서사시를 하나의

철학이자 학문으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플라톤은 감정을 깍아 내렸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행위로 표현되는 감정에 인간의 성격과 사상이 나타나므로 미덕 실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고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켜 카타르시스(정화)를

경험하고, 그러면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비극의 고유한 목표라고 강조한다.

​

비극은 양념을 친 온갖 언어를 곳곳에 배치해 낭송이 아니라 배우의 연기를 통해, 훌륭하고

위대한 하나의 완결된 사건을 모방하여 연민과 공포를 느끼게 함으로써 그 감정의 전화를

이루어 내는 방식이다. 비극은 행위를 모방한다. 행위는 행위라고 불리는 것을 행하는

것이고, 행위자는 자신의 성격과 사상에 따라 특정한 성질을 드러낸다. 비극의 특성을

결정하는 구성요소는 플롯, 성격, 대사, 사상, 시각적 요소, 노래 이렇게 여섯가지인데

이 중 둘은 모방의 수단이고, 하나는 모방의 방식이며, 셋은 모방의 대상이다. 비극은

사람이 아니라 행위와 삶을 모방하기에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행위나 사건을

구성하는 플롯이다.

​

시인의 소임은 이미 일어난 일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 날 수 있는 일, 즉 개연성이나 필연성에

따라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역사가와 시인의 차이는 역사가는 이미

일어난 일을 말하고 사인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말한다는데 있다. 풍자 시인이 특정한

개인을 놓고 시를 쓰는 것과 다르게 비극은 가능성이 있어야 설득력이 있기에 실존 인물의

이름을 고집스럽게 사용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은 가능하다고 믿기 어렵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분명 가능하다. 가능성이 없다면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분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가장 훌륭한 비극은 플롯이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이어야 하고, 공포와 연민을 불러 일으키는 행위나 사건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비극이라는 모방의 고유한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귀한 사람이 행복했다가 불행해

지는것을 보여 주어서도 악인이 불행을 겪다가 행복해 지는 것을 보여 주어서도 안된다.

비극은 오이디푸스나 디에스테스와 같이 미덕과 정의가 남달리 뛰어나지는 않지만,

악덕이나 악행이 아니라 어떤 실수나 결함 때문에 불행해진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결말은 불행에서 행복으로 바뀌어서는 안되고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뀌어야 한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가능성과 객관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

시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 335년경에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 다룬

작시론이며 시에 대한 철학적이고 학문적인 통찰을 담은 본격적인 시론이자 시학이다.

그는 통속적이고 저속한 '테크네'(당시 지식인 사이에서 널리 성행한 전문 기술과 실용학문)에

철학을 부여해서 하나의 학문으로 발전시킨 인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카타르시스는

사람 속에 있는 감정을 조절해서, 지나치게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적절한 분량의 감정,

즉 이성과 미덕에 부합하는 감정을 지니게 한다고 말한다. 많은 감정 중 공포와 연민을

강조하는 것은 비극이 주로 이 감정을 다루기 때문이다.

​

이 책은 어렵다. 어렵고 복잡하고 현실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은 깊다.

보통의 사람이 생각하는 기준을 넘어선 또다른 기준의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것을 만들려

노력하라. 그것이 어렵다면 모방부터 시작해 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언은 오래도록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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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왓? - 미국식 영어 공부의 진실
큐 팍 지음 / 에이원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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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어렵다. 어렵기만 한게 아니라 잘 늘지도 않는다. 우리 선배 세대들은 콘사이스를

씹어 먹으며 영어 공부를 했고 우리 세대는 성문 기초, 기본, 종합 영어를 달달 외우며

공부를 했다. 그때 처음 외웠던 문장이 '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이다. 그렇게

중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과 대학원에 가서도 여전히 영어를 했지만 실력은 그닥 늘지

않았다. 시험 성적은 항상 좋았지만 외국인 앞에 설라치면 말문이 막히고 입이 안

벌어졌다. 그리곤 서서히 영어는 내 곁을 떠나 버렸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현실 앞에

우리가 영어를 힘들어 하는 이유는 그동안 제대로 된 영어를 배우지 않았고 영어가 속한

미국 문화에도 관심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익히 들어 본 말이다.

글로벌 언어인 미국식 영어를 가르치지 않고 한국식 시험용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것은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리고 저자는 이 책을 잘 짜인 학습법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미국식 영어라는 언어의 성질과 특성을 잘 이해할 수 있고 어떤 자세로 이 언어를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는 미국식 영어에 대한 에세이라고 말한다. 영어를 공부가

아닌 언어와 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저자의 발상이 신선해서 좋다.

첫 장부터 강한 도전이 몰려 온다. 그동안 목숨 걸고 지켜온 '문장 형식'을 버리라고 한다.

별로 도움이 안될 뿐더러 오히려 문장 해석과 이해에 방해가 된다고 한다. 그럼 지금까지

우린 뭘 배웠지. 그러면서 '문장 쪼개기'를 제안한다. 문장 해석이 있어 블록 단위로 구분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지 문장 구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저자의 의견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며 책장을 넘겨본다. 읽어 가면서 조금의 긍정과 동의가 생긴다. 그동안 너무

'시험을 위한 영어'에 몰입해 있다보니 틀린다는 것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그 강박이

조급함으로 몰려오고 조급함은 결국 오버 페이스와 번 아웃을 가져오며 그 결과 수 없는

영어 포기자를 양산하게 된 것이다. 어차피 배우는 과정에서는 틀려도 괜찮은데 말이다.

문장을 의미의 덩어리로 쪼개서 제대로 해석하라고 주문하는 저자는 용법의 구분 보다

해석이 중요하고 오히려 품사(Part of Speech)가 필수라고 말한다. 영어는 학문의 아니고

언어이다. 학문은 그 분야의 학자가 공부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 언어를 배우면 되는데

자꾸 학문을 하려고 하니 영어가 어려워진다. 아마 나도 그랬던것 같다.

우리 때는 영어는 '단어 싸움'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늘 단어장(저자는 이것을 단어

리스트라고 부른다)을 지니고 다녔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나의 생각에 영어 단어는 글을 읽으면서 늘려야지 단어 리스트를 외운다고

늘지는 않는다고 말하며 지금까지의 내 생각에 파문을 일으킨다. 단어를 많이 외워서

빈칸의 단어를 쉽고 빠르게 고를 수 있는 걸 어휘력이 뛰어나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눈으로 봐서 단어를 인식하는 능력과 머릿속에서 단어를 생각해 낼 수 있는 능력은 전혀

다르다. 여기에는 우리의 게으름도 한몫한다. 책을 읽는 건 쉽지 않다. 우리 말로 된 책도

읽기 싫은데 영어책은 당연히 더 읽기 싫다. 요즘과 같이 각종 첨단 기계 문명에 둘러

쌓인 우리에게 책 읽는 것은 정말 어려원 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게으름은 상황에 적응을

정말 잘한다. 귀찮으니까 손 쉽게 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 내고 그것을 하면서 대리 만족을

한다. 그 결과가 지금의 우리고 이런 우리에게 저자는 '단어책을 암기하는 공부 방법을

버리라'고 주문한다. 축구를 잘하려면 운동장에서 뛰면서 공을 계속 차야 하듯이 영어

단어 실력을 늘리려면 영어책이나 영어 글을 계속 읽어야 한다. 특별한 방법을 찾으려고

시간 낭비 하지 말고 오히려 먼저 시작하고 공부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조금씩

변형시키고 맞춰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계속 실행 가능한 것을 택하고 움직여야 한다.

영어에 왕도는 없다. 한번에 단숨에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매일매일을 조금씩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저만치 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저자는 이런 우리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기초 체력이 튼튼해야 어떤 운동을 해도 잘할 수 있듯이 영어 읽기로 다져진 기초가 튼튼해야

영어 실력이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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