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
한수산 지음 / &(앤드)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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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모든 것은 사랑했기 때문에 안다.'

톨스토이의 '사랑과 평화'에 나오는 말이다. 그런것 같다. 사랑하기에 더 많이 관심이 가고

더 많이 알고 싶고 더 많이 기억하고 싶다. 그런 우리의 삶에 기억되는 모든것은 그렇게

사랑했고 그렇게 잊혀져 간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잊혀져 가는것이 기억되는 것보다

훨씬 많아지면서 우리는 그렇게 나이 들어간다. 젊은 시절의 꿈은 어느덧 추억으로

남겨지고, 그 시절의 사랑은 그저 여운이 남을 뿐이다.

누구나 꿈꾸는 '그곳'이 있다. 저자는 '이곳만은'이라는 표현을 쓴다. 나에게 그곳은 '쿠바'와

지중해의 '데루카'라는 작은 섬이다. 여기저기 많은 곳을 다녀 봤는데 유난히 쿠바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곳의 살벌함과 그 안에 자리한 사람들의 자유로움과 넘치는 열정

그리고 체게바라의 숨결이 아직 남아 있는 그곳에 가보고 싶었으나 아직은 '미래완료형'이다.

지중해의 데루카(현지인들이 그렇게 부르는 아주 작은 섬) 섬은 지중해 여행을 하던 중

지인의 도움으로 경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가로지를 때 보았던 섬이다. 아주 작은 섬이고

사람은 두 가구 밖에 살지 않는 섬인데 하늘에서 본 풍경과 바다 빛깔, 모래 사장이 너무

예뻤던 곳이다. 이곳에 거주하는 분들이 여행객 한 팀 만 수용하는 곳이라 미리 예약을

해야 하고 한번 들어가면 보름 정도를 그곳에 있어야 하기에(그것도 날씨가 좋아야만

가능하다) 너무너무 가보고 싶지만 아직 '이곳만은'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저자가 표현하는

'넉넉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늙어 갈 언제쯤' 그 때가 되면 꼭 가고 싶은 곳이다.

그곳을 그리워하고, 떠남과 만남을 꿈꾸며 살고 있다.

자신만의 공간을 가진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유럽의 발코니의 역할이 그것이다. 비좁은

집의 한 구석에 자신만이 자리할 공간을 위해 선뜻 공간을 허용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차를

커피를 담배를 술을 마시며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다. 엔도 슈사쿠에게 필요했던 책상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작은 방이 그렇고, 강릉 초당 마을에 있는 신봉승의 집필실이 그렇고, 저자의

영하당이 그렇다. 그곳에서 치열하게 외롭고 고독했을 것이다. 예술가에게 있어 외로움이란

혼자라는 의미이며 단순함이며 스스로 선택한 화려한 유배이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가혹하게

자신과 맞서는 장소이기에 때로는 축복의 공간이 된다.

'사랑의 기억으로'라는 제목을 가진 장은 절절하다. 작가가 지나온 삶의 자리에서 만난

선생님들에 대한 글로 가득한데 그 하나하나가 연서와 같다. 딱 한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웃어 보이셨던 최수근 선생님, 별명 만큼이나 뚝심있게 국내에서는 연구 조차도 미미한

조선시대 천문학자 박안기를 연구하고 평전을 쓰는 일을 해내신 '뚝지' 박병례 선생님,

지성으로 정의로움으로 다사로운 사랑으로 제자에게 가르침이 되고 등불이 되어주셨다고

기억하는 박용주 선생님, '시를 써야지 소설을 써'라며 핀잔을 주시지만 속 깊으신 조병화

선생님, '글은 쓰는 것이 아니라 고치는 것이다'고 말씀하시며 글쓰는 자세에 대해 강조하신

황순원 선생님(나도 개인적으로 교수라는 명칭보다 선생님이라는 명칭이 더 좋다). 저자는

어떤점에서 행운아인것 같다. 평생 한 명을 만나기도 어려운 좋은 선생님을 이렇게 많이

만났으니 말이다. 이렇듯 좋은 스승을 만났기에 저자도 바르고 곧게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아쉬움이다. 눈이 침침해지고 잘 보이지 않고 보행이 불편해지고

생각도 느려진다. 저자는 이에 대해 '늙음은 나무를 심지 못하는 나이다'라고 말한다.

하루하루가 망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캄캄한 세월이 가며 기억력이 무너진다. 그러면서

점점 더 나이들어 간다. 그것이 우리네 삶이고 우린 그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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