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소셜리즘 - 불평등·AI·기후변화를 중심으로 새로운 세계는 어떻게 형성될까?
브렛 킹.리처드 페티 지음, 안종희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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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 소셜리즘(Technosocialism)은 기술을 뜻하는 테크노(Technology)와 사회주의를

뜻하는 소셜리즘(Sicialism)의 합성어다. 집단의 필요를 강조하는 소셜리즘, 그 요구를

훨씬 더 낮은 경재적 비용과 정치적 비용으로 제공할 수 있는 기술력, 결국 새로운

기술이 비용을 절감시켜 집단의 노력을 줄이면서도 원하는 것 이샹의 수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는 이론인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

시간은 불과 30년 밖에 남지 않았다. 조금은 충격적인 문장이나 분명한 사실이다. 기후

변화에 대한 정부간 협의체(IPCC) 2022년 기준 6차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2011-

2020년) 동안 지구의 평균 온도는 산업혁명 이전과 비교했을때 1.09도 상승한 상태며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410ppm으로 200년만에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 주요

원인으로는 인간의 활동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이며, 지구의 온도가 0.5도 추가 상승할

때마다 기상이변 현상의 빈도와 강도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자카르타, 키리바시 등이 점점 바다로 가라앉고 있으며 해수면이

1m 상승시 바다에 잠길 것으로 예상되는 도시로 네덜란드, 베네치아, 몰디브 등이 있다.

매년 바다는 '인간에 의해 기록된 가장 뜨거운 해'를 경신 중이다. 뿐만아니라 평균 기온이

2도 높아지면 북극해는 얼음 없는 여름을 맞이 하게 될것이라고 경고한다. 세계 최대 탄소

흡수원인(모든 육지의 1/4의 탄소를 흡수) 아마존은 무분별한 벌채로 탄소 흡수량 보다

더 많은 온실 가스를 배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후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체인

온실가스(6대 온실가스 - 이산화탄소 CO2, 메탄 CH4, 아산화질소 N2O, 수소불화탄소

NFCs, 과불화탄소 PFCs, 육불화황 SF6)등이 대기에서 마치 비닐하우스의 비닐과 같은

역할을 하는 온실효과를 일으키며 이 때문에 지구 온난화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 기후

변화는 날씨를 좀 더 덥게 만드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지금 전세계를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만들며 모든 국가에서 엄청난 수의 사망자를 내고 있는 코로나 19 바이러스 역시

기후 변화에서 기인하였음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고 단순한 '기후변화'가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사람과 국가에 미치는

'가후재난'이다.

​

저자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대안으로 '인텔리전트 트윈'intelligent twin'이라는 도시

전역 인공지능 시스템을 사용하는 '선전(深圳)'을 예로 들며 스마트 정부를 이야기한다.

인공지능 5G 엣지 컴퓨팅을 이용해 교통단속, 교통혼잡해결, 통제와 지휘를 하고 있고

이미지 인식 장비(중국은 1초에 14억명의 얼굴을 스캔할수 있다고 함)를 이용해 사고가

발생하면 경찰통재, 앰블런스 출동, 화재나 다른 응급서비스 차량이 필요한지 자동으로

판단하여 지휘하는데 이는 현재 가장 앞서 있다는 미국의 911 대응시간과 응급치료

서비스(EMS) 비용 효과 측면보다 월등히 앞서 있다. 실제로 선전에서는 경찰이 과속,

안전벨트 미착용, 후미등 미점등 등으로 차를 세우지 않고 등록되어 있는 운전자의

휴대폰으로 벌금 통지서가 발송된다.

​

이제 우리 보다 미래 세대가 살아가야할 세상에서 해결해야 할 정치적 이슈들은 다음과

같다. 인간 실존의 원리인 불평등, 차별, 인종주의와 같이 경제적 불확실성의 영향과 인간을

소외시키는 자본주의와의 싸움은 계속 될것이고 이는 종교, 성, 인종, 계급에 관한 인간의

지배력 또는 우월성에 대한 반계몽적 관점들의 써움이 될것이다. 또한 온도 상승은 농법,

작물적합성, 토지 이용등에 중대한 변화를 유발한다. 프랑스의 포도주 생산 지역이 온도

상승에 따라 수확량이 감소하고 우리나라도 경작 한계선이 점차 상승하여 대구 명물이던

사과가 충주를 지나 아제는 강원도 평창이나 영월에서 수확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밖에도

인공지능과 로봇 공학 측면이나 가상세계와 디지털 복제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세계 등은

향후 우리가 고려하고 집중해야 할 부분이다.

​

저자는 '미래를 원하다면 과거를 벗어나라'고 제안한다. 여기에는 시장의 합리성과 국경을

초월하는 철학이 기반되어야 한다. 인류 역사의 변곡점을 맞는 우리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전세계적인 부채, 실업, 기아, 생태난민위기,팬데믹과 의료문제, 시스템과 이데올로기의

혼란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에 저자는 '우리를 이렇게 만든 기존의 사고방식과 철학을 포기할

때만 우리에게 마래가 있다'고 말한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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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시선 - 여성의 눈으로 파헤치는 그림 속 불편한 진실
이윤희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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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뭐라 짚어서 말하기도 어려운 '불편한 느낌'에 대해 저자는 열가지의 질문으로 '불편한'

작품을 그린 거장들과 그들을 만들어 낸'시스템'과 마주서며 대화를 시도한다. 지금까지

대놓고 이야기 하기도 어려웠던 그것을. 그러면서 저자는 '삶을 냉소하기 보다는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것으로 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

'동일한 조건'. 역사는 대체적으로 남성 중심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대부분 승자에게 모든

권력을 헌납하고 그 대부분은 남자다. 이 간단한 명제가 여성이 많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이유다. 만약 학습이나 연마 혹은 습득의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진다면

어땠을까? 저자의 첫번째 질문은 여기에서 출발하며 요한 조파니(Johan zoffany)의 '왕립

아카데미 회원들'이라는 작품을 예로 든다. 왕립 아카데미는 1768년에 설립된 영국 미술

분야 최고의 기관이다. 정원은 40명으로 34명은 국왕이 지명하고 나머지는 정회원의

선거로 선출되는데 이 작품에 등장한 38명은 모두 남자다. 미술인을 양성하고 서로

교류하며 연례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미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곳에 여성은

보이지 않는다. 두 명의 여성 회원이 존재하지만 이들은 당시 위대한 화가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인 누드 수업에 참가하지 못하고 벽면에 걸린 초상화로 등장한다.

이렇듯 여성에겐 정당한 기회 조차도 주어지지 않는 현실 앞에 '여성 미술가가 남성과

동등하게 위대한 화가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사실 어이가 없는 질문이다.

​

책의 전반에 걸쳐 나오는 '누드'와 '벌거벗음'에 대한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의

견해는 그동안 정리되지 않던 질문에 훌륭한 답이 된다. '벌거벗었다는 것은 옷을 걸치지

않았다는 뜻이며 이는 우리 대부분이 벌거벗었을 때 느끼는 당혹감을 함축하고 있다.

반면 누드라는 단어는 제대로만 사용된다면 어떠한 불편한 의미도 함축하지 않는다.

누드라는 단어가 우리의 마음 속에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는 무방비의 웅크린 몸이

아니라 균형잡히고 건강하고 자신감 있는 몸, 즉 재구성된 신체이다'(누드 : 이상적

형태에 대한 탐구 중, 1956) 즉, 벗은 상태를 의식하고 부끄러워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신체의 균형과 아름다움을 꺼리낌 없이 드러내는 것이 누드다. 여기에 저자는 여성

누드는 행동하는 주체가 아니라 시선의 대상으로 만들어진 보여주기 위한 실체이며

'누드'라는 서양 미술 속의 개념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보편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남성 누드는 행동하는 주체이지만 여성 누드는 시선의 대상이 된다.

​

여성 누드는 고대 그리스부터 19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늘상 그려져 왔지만 다리 사이에

있는 성기와 음모가 그려지는 것은 금기로 여져왔다. 어느 그림이든 누드의 주인공은

다리를 모으거나 꼬거나 손이나 천을 얹어서 그 사이가 보이지 않도록 자세를 취하는

방법으로 외설의 함정을 피하며 고급 예술로서의 안정을 추구했다. 물론 귀스티브 코르베

(Gustave Caurbet) 같은 화가는 '내가 천사를 그려야 한다면 천사를 내 눈 앞에 보여달라'고

말하며 기존 미술 관습을 거부하고 사실주의적 표현으로 작품을 묘사해 실제 음모가 그대로

드러나는 그림을 그렀다. 그러나 정작 그의 그림은 100여년이 지날 동안 아주 은밀히

극소수만 볼 수 있었다.

​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미술의 역사 뿐 아니라 세상 만사에 불편한 시선을 가진 자의

기록이다. 그럼에도 불쾌하거나 거북하지 않다. 오히려 시원하다. 할 말을 했다는, 혹은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일종의 만족감도 준다. 인간으로서 다른 경험을 가진 성별의 다른 시각에

대한 충분히 의미있는 진술이며 흥미로운 시도였다. '불편한 시선'이 이제는 그냥 '시선'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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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이라는 병 - 우리 시대의 영원한 스승, 김형석 교수의 명고전
김형석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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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은 각자 자기의 길을 걷고 있으나 사실은 신념도 없는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P16

고독의 반대는 사랑이다.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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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며 고독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사람과 소통하고 글을 쓰며 자신과의 대화를 이어가고 쉽고 정감있는 수필을 쓰게 되며 이를 수상(隨想)이라 부르는 선생의 글들이 모여 '고독이라는 병'이라는 제하의 책으로 태어났고 훌쩍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 우리 곁에 돌아 왔다. 20여년전에 읽었던 책임에도 여전히 설렌다. 밀레니엄을 앞둔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기에 기대감으로 책장을 연다.

​

길. 누구나 길을 간다. 각자의 길이 다르기에 그 끝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걷고 싶은 길 뿐 아니라 걷고 싶지 않은 길도 가야만 하고 그 길 위에 서 있다가 옆으로 비껴서며 생을 마친다. 생각이 발현 된 이후로 우리는 늘 '무엇이 진정한 인생의 길이며 어떻게 참다룬 생의 길을 발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며 산다. 그 길 위에서 삶과 죽음, 성공과 실패, 절망과 희망의 갈림길을 만나고 늘 선택의 기로에 서며 무언가 결정해야 한다. 이 땅의 모든 이들은 떠나온 목적과 이유가 존재하며 그것을 위해 살며 그 길을 이어간다. 무엇이 참된 길인가에 대해 성경은 대단히 명쾌하다. 예수는 그 길을 묻는 제자들에게 단호하게 '내가 곧 길이다'라고 말한다.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 봤을 이 말이 아쉽게도 우리 삶에서는 살아 있지 못하고 힘도 없다. 목적과 의미와 나아갈 길을 알려주심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성전 뜰 만 밟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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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필연이다. 누구도 죽음 앞에서 머뭇거릴수도 주저할수도 없이 죽음은 철라이며 살아왔던 삶에 대한 기억이 된다. 선생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60년, 21900환, 그리고 매일 1환'은 여러모로 생각할 꺼리를 제공한다. 우리는 삶을 산다기 보다 죽음을 향해 간다. 선생의 표현대로 '매일 매일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처럼 죽음은 절박한 사실이며 엄숙한 현실이다. 죽음은 삶의 종말인 동시에 결산이고 인간은 죽기 위해 산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영생'을 이야기한다. 사망이 끝임은 분명하나 죽음 이후의 새로움이 존재한다. 종말인 동시에 새로운 삶의 출발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기대하며 살고 죽는다.

​

선생이 미워하는 것들 중 두번째를 차지하는 '종교의 가치를 모르는 종교가'들에 적극 공감한다. 그들은 가장 고귀한 것들을 가장 천박한 것으로 여기고 다른 이들이게도 그런 영향을 끼친다. 진정한 종교는 선량함과 약함에서 시작되고 가난과 겸손 그리고 세속적인 욕망이 없는 곳에서 태어나기에 종교는 태생적으로 세속적인 지위와 명성과 부를 가질 수 없다. 이를 가지는 순간 종교는 종교로서의 본질을 버리고 세상이 되며 어떠한 종교든 타락하고 변질된다. 종교가 종교로서의 구실을 못하는 순간 종교는 세상의 지탄거리와 걱정거리가 된다. 성경 속의 다윗이 그랬다. 순전하고 양과 같던 그가 권력과 세속에 빠지자 선생의 말을 빌리면 '기막힐 정도로 답답한 과오'를 범하고 하나님은 그보다 더 가혹할 수 없을 정도로 진노하신다. 지금 우리가 그렇다.

선생이 제자와 나눈 대화처럼 철학을 배우는 것보다 철학을 해야하는데 잘 안되듯이 우리는 신앙을 배우는 것보다 신앙을 사는 일에 더 힘쓰고 노력해야 한다. 니체나 하이데거는 '고독'은 우리가 온 곳도 무(無), 가는 곳도 무, 머물던 곳도 무인것을 느끼는 자아 속에 깊이 깃들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가장 깊은 고독을 느끼며 얻을 수 없는 사랑을 품은 이가 누구보다도 고독해 진다. 실존적인 고독을 느끼는 사람은 영원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영원을 얻을 수 없는 한 언제나 고독 속에 산다. 그래서 선생은 영원에의 고독은 죽을 수도 없는 고독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저자의 마지막 말은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고독의 병에서 고침을 받은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영원을 받아 누리는 사람은 입을 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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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직 신앙을 접하지 못했거나 이제 막 신앙을 시작하는 분들이 선생님의 말처럼 부담 없이 읽었으면 좋겠다. 신앙적인 부분이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그 안에 담긴 복음의 메세지들을 통해 조금은 쉽게 그리스도를 접하는 기회가 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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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니트 게임 - 세상에 없던 판도를 만든 사람들의 5가지 무한 원칙
사이먼 시넥 지음, 윤혜리 옮김 / 세계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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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Smart with Why'에서 변화와 혁신을 만들고 주도하는 이들의 'Why'를 이야기

했고, 'Leaders Eat Last'에서 리더는 어떻게 생각하고 움직이고 부딪쳐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사이먼 시넥(Simon Sinek)의 이번 책은 'The Infinite Game'이다.

​

'Infinite Game'은 이전에 우리가 추구했던 유일한 결승점만 존재하던 유한게임에서

벗어나 다양한 결승점과 다양한 도달 방법들이 가능해진 '지속 가능한 내일'을 위한

무한게임을 의미한다. 유한게임은 정해진 규칙과 선수가 있고 승자와 패자가 승부에

의해 결정되지만 무한게임에는 정해진 룰이 없다. 상대해야할 경쟁자도 없고 승자와

패자의 구분도 모호하다. 위기 안에서 유연하게 대처하여 살아 남는 이가 승자고 이들은

다가 올 미래에 대한 선명한 비전과 차별화된 일의 의미와 목적을 가진다.

​

사이먼 시넥은 유한게임의 한정된 지표 앞에서 다음의 다섯가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매일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당신의 진짜 라이벌은 누구인가? 당신은 팀 안에서 자신의

약점을 보여줄 수 있는가? 당신은 회사를 폭파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당신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갈 용기가 있는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에 대한 답을 구하는데도 한참의 시간이 걸렸고 나의 약점을 팀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지에서는 아예 생각이 멈춰 버렸다. 어쩌면 나는 팀 안에서 약점을 공개할 수도

없고 회사를 폭파 시킬 용기는 더더욱 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질문을 면접장에서

받았다면 나는 탈락이다.

​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예외없이 선택지가 하나인 게임에 참여한다. 물론 그 안에는

다양한 선택과 포기, 결정과 단념이 포함되지만 인생이라는 게임은 태어나면서부터

상존하고 우리는 그 안에 존재한다. 인생이라는 게임의 목표는 승리가 아니라 게임의

지속이며 그 지속을 바탕으로 타인에게 봉사하는 삶이며 자신이 오늘 내린 결정이

미래에 미칠 영향에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고 같은 비전을 좇는 사람들을 협력자로

여기며 그들과 서로 신뢰감을 쌓고 함께 공동선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사이먼

시넥은 그런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고, 그들을 이끌고,

지지할 공동의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

저자는 무한게임 방식을 선택하면 매일 아침 의욕이 충만하게 출근하고 근무시 안정감을

느끼며 하루가 끝날때 성취감을 만끽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생각은 막연하거나

추상적이거나 뭉뚱거리지 않는다. 그는 직설적이며 도전적이고 명쾌하며 명료하다.

그래서 굳건한 낙천주의자인 그에게 더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무한게임에서 단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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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 - 처음 만나는 페미니스트 지리학
레슬리 컨 지음, 황가한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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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지리학자'. 용어부터 생소하다. 저자인 레슬리 컨(Leslie kern)은 도시 계획, 교통,

주택과 전반적인 도시 제반 시설등에서 여성이 받는 제약과 장벽에 대해 '도시가 가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고 규정하며 '도시는 남성의 경험을 표준으로 삼음으로써 여자들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도시 환경은 소득에 따른 여자들 간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

이 책은 크게 남자들, 엄마들, 친구들, 혼자만의, 시위의, 공포의, 가능성의 도시로 나뉜다.

사실 내가 남자이기에 들어가는 말의 '남자들의 도시'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남자이기에

느끼는 범위나 간극의 폭이 인지의 수준을 넘어 공감의 수준에 까지 도달함을 느꼈다.

또한 상존하는 현실과 드러나지 않은 진실 혹은 무심결에 지나쳐 버린 부적절한 성편향성을

짚으며 무엇이 공정한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도시 자체가 가부장적이라는 말은 결코 극단적인 표현이 아니다. 도시는 태생부터 불평등하고

발상 자체가 암성중심적이다. 대부분의 편의 시설은 임산부에게 매우 불편한 구조이며, 같은

크기로 지어진 화장실은 늘 여성들은 줄을 서게 만든다. 매일 보도되는 성폭력, 스토킹, 학대,

착취의 대상은 거의 여성일 경우가 많고, 대부분의 시설은 남성중심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도 그럴것이 도시를 설계할 때 거의 대부분 남자들이 참여한다. 그러니 도시는 자연히

남성중심적이 된다.

​

다만 요즘은 예전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음은 사실이다. 장애인이나 아이들, 여성들에 대한

편의와 배려가 눈에 띄게 늘었다. 여성들의 안전한 귀가를 위한 제도적 장치, 공중 화장실에

배치된 유효 공간들, 유모차와 장애인을 고려한 보도 블럭, 약간의 문제는 존재하지만 여성

전용칸등 개선의 노력은 분명하고 실제로 눈에 띄이게 늘었다. 더 많은 시설들이 장애인과

아이들 그리고 여성듸 편의를 고려하고 조성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사회구성원 각각의

특성과 개성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과 더불어 우리의 시선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사회는 여전히 여성에게 불리한 제도와 시설이 넘쳐난다. 젠더로서의

평등함이 동반되지 않는 주장과 실천은 의미없는 아우성에 불과하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 있을 수 있는가'는 성공적인 도시의 중요한 지표이다. 누구의 시선으로부터,

말로부터, 행동으로부터 자유로을 권리는 모두에게 있고 그 권리는 무엇보다 앞선다. 지금

우리 사회는 유리천장을 깨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과 그것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분투가

상존한다. 상존과 공생은 문자적 의미일뿐 현실은 너무 멀다. 그래서 아직 '유리 천장'이라는

말이 존재한다.

​

'남자들의 도시' 챕터에 나오는 말로 오래도록 나를 돌아보게 한 문장이다. '여자들의 도시

경험은 여전히 물리적, 사회적, 경제적, 상징적 장벽에 가로막힌다. 그 장벽은 성별에 따라

편향된 방식으로 여자들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남자들은 이런 장벽을 만난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장벽들을 보지 못한다' 우리 모두는 도시에서 걷고 일하고 즐기고

공간을 차지할 자유를 가진다. 도시는 모두를 위한 공간이다. 여성 친화적인 도시는 도시

세계에서 다르게 살기, 더 잘 살기, 더 공정하게 살기에 관한 현재 진행중인 실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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