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누구나 길을 간다. 각자의 길이 다르기에 그 끝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걷고 싶은 길 뿐 아니라 걷고 싶지 않은 길도 가야만 하고 그 길 위에 서 있다가 옆으로 비껴서며 생을 마친다. 생각이 발현 된 이후로 우리는 늘 '무엇이 진정한 인생의 길이며 어떻게 참다룬 생의 길을 발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며 산다. 그 길 위에서 삶과 죽음, 성공과 실패, 절망과 희망의 갈림길을 만나고 늘 선택의 기로에 서며 무언가 결정해야 한다. 이 땅의 모든 이들은 떠나온 목적과 이유가 존재하며 그것을 위해 살며 그 길을 이어간다. 무엇이 참된 길인가에 대해 성경은 대단히 명쾌하다. 예수는 그 길을 묻는 제자들에게 단호하게 '내가 곧 길이다'라고 말한다.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 봤을 이 말이 아쉽게도 우리 삶에서는 살아 있지 못하고 힘도 없다. 목적과 의미와 나아갈 길을 알려주심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성전 뜰 만 밟고 다닌다.
죽음은 필연이다. 누구도 죽음 앞에서 머뭇거릴수도 주저할수도 없이 죽음은 철라이며 살아왔던 삶에 대한 기억이 된다. 선생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60년, 21900환, 그리고 매일 1환'은 여러모로 생각할 꺼리를 제공한다. 우리는 삶을 산다기 보다 죽음을 향해 간다. 선생의 표현대로 '매일 매일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처럼 죽음은 절박한 사실이며 엄숙한 현실이다. 죽음은 삶의 종말인 동시에 결산이고 인간은 죽기 위해 산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영생'을 이야기한다. 사망이 끝임은 분명하나 죽음 이후의 새로움이 존재한다. 종말인 동시에 새로운 삶의 출발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기대하며 살고 죽는다.
선생이 미워하는 것들 중 두번째를 차지하는 '종교의 가치를 모르는 종교가'들에 적극 공감한다. 그들은 가장 고귀한 것들을 가장 천박한 것으로 여기고 다른 이들이게도 그런 영향을 끼친다. 진정한 종교는 선량함과 약함에서 시작되고 가난과 겸손 그리고 세속적인 욕망이 없는 곳에서 태어나기에 종교는 태생적으로 세속적인 지위와 명성과 부를 가질 수 없다. 이를 가지는 순간 종교는 종교로서의 본질을 버리고 세상이 되며 어떠한 종교든 타락하고 변질된다. 종교가 종교로서의 구실을 못하는 순간 종교는 세상의 지탄거리와 걱정거리가 된다. 성경 속의 다윗이 그랬다. 순전하고 양과 같던 그가 권력과 세속에 빠지자 선생의 말을 빌리면 '기막힐 정도로 답답한 과오'를 범하고 하나님은 그보다 더 가혹할 수 없을 정도로 진노하신다. 지금 우리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