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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시선 - 여성의 눈으로 파헤치는 그림 속 불편한 진실
이윤희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2년 7월
평점 :
딱히 뭐라 짚어서 말하기도 어려운 '불편한 느낌'에 대해 저자는 열가지의 질문으로 '불편한'
작품을 그린 거장들과 그들을 만들어 낸'시스템'과 마주서며 대화를 시도한다. 지금까지
대놓고 이야기 하기도 어려웠던 그것을. 그러면서 저자는 '삶을 냉소하기 보다는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것으로 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동일한 조건'. 역사는 대체적으로 남성 중심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대부분 승자에게 모든
권력을 헌납하고 그 대부분은 남자다. 이 간단한 명제가 여성이 많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이유다. 만약 학습이나 연마 혹은 습득의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진다면
어땠을까? 저자의 첫번째 질문은 여기에서 출발하며 요한 조파니(Johan zoffany)의 '왕립
아카데미 회원들'이라는 작품을 예로 든다. 왕립 아카데미는 1768년에 설립된 영국 미술
분야 최고의 기관이다. 정원은 40명으로 34명은 국왕이 지명하고 나머지는 정회원의
선거로 선출되는데 이 작품에 등장한 38명은 모두 남자다. 미술인을 양성하고 서로
교류하며 연례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미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곳에 여성은
보이지 않는다. 두 명의 여성 회원이 존재하지만 이들은 당시 위대한 화가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인 누드 수업에 참가하지 못하고 벽면에 걸린 초상화로 등장한다.
이렇듯 여성에겐 정당한 기회 조차도 주어지지 않는 현실 앞에 '여성 미술가가 남성과
동등하게 위대한 화가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사실 어이가 없는 질문이다.
책의 전반에 걸쳐 나오는 '누드'와 '벌거벗음'에 대한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의
견해는 그동안 정리되지 않던 질문에 훌륭한 답이 된다. '벌거벗었다는 것은 옷을 걸치지
않았다는 뜻이며 이는 우리 대부분이 벌거벗었을 때 느끼는 당혹감을 함축하고 있다.
반면 누드라는 단어는 제대로만 사용된다면 어떠한 불편한 의미도 함축하지 않는다.
누드라는 단어가 우리의 마음 속에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는 무방비의 웅크린 몸이
아니라 균형잡히고 건강하고 자신감 있는 몸, 즉 재구성된 신체이다'(누드 : 이상적
형태에 대한 탐구 중, 1956) 즉, 벗은 상태를 의식하고 부끄러워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신체의 균형과 아름다움을 꺼리낌 없이 드러내는 것이 누드다. 여기에 저자는 여성
누드는 행동하는 주체가 아니라 시선의 대상으로 만들어진 보여주기 위한 실체이며
'누드'라는 서양 미술 속의 개념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보편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남성 누드는 행동하는 주체이지만 여성 누드는 시선의 대상이 된다.
여성 누드는 고대 그리스부터 19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늘상 그려져 왔지만 다리 사이에
있는 성기와 음모가 그려지는 것은 금기로 여져왔다. 어느 그림이든 누드의 주인공은
다리를 모으거나 꼬거나 손이나 천을 얹어서 그 사이가 보이지 않도록 자세를 취하는
방법으로 외설의 함정을 피하며 고급 예술로서의 안정을 추구했다. 물론 귀스티브 코르베
(Gustave Caurbet) 같은 화가는 '내가 천사를 그려야 한다면 천사를 내 눈 앞에 보여달라'고
말하며 기존 미술 관습을 거부하고 사실주의적 표현으로 작품을 묘사해 실제 음모가 그대로
드러나는 그림을 그렀다. 그러나 정작 그의 그림은 100여년이 지날 동안 아주 은밀히
극소수만 볼 수 있었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미술의 역사 뿐 아니라 세상 만사에 불편한 시선을 가진 자의
기록이다. 그럼에도 불쾌하거나 거북하지 않다. 오히려 시원하다. 할 말을 했다는, 혹은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일종의 만족감도 준다. 인간으로서 다른 경험을 가진 성별의 다른 시각에
대한 충분히 의미있는 진술이며 흥미로운 시도였다. '불편한 시선'이 이제는 그냥 '시선'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