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멘탈을 위한 심리책 - 사소한 일에도 흔들리고 부서지는 당신에게 필요한 마음의 기술
미즈시마 히로코 지음, 전경아 옮김 / 갤리온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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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쉽게 충격을 받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는 저자의 말과 같이 요즘 우리는

조그만 일에도 상처를 받고 아파하며 힘들어 하는 유리 멘탈을 가지고 있다. 더 예민하고 금방 마음의

중심을 잃어 버리고, 불안, 짜증, 쓸쓸함과 같은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저자는

여유가 없을 때는 마음이 나쁜 감정으로 완전히 뒤덮여 있는 상태라고 말하며 마음을 덮고 있는

한 겹의 꺼풀만 벗겨내도 '어떤 일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마음'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살다보면 별의 별일이 다 생기고 작은 일에도 중심을 잃고 휘청거릴 순간이 많다. 이러한 상황은

면탈의 강도와 관계없이 찾아 온다. 인간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마음먹고 부족함을 찾으면 얼마든지

찾아 낼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불완전하다. 문제는 이 사실을 인정하느냐 부인하느냐의 문제이다.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하면 다음의 대처는 훨씬 유연하고 편안해진다. 단순한 인식의

문제이지만 생각의 전환은 의외로 힘이 세다. 전환 그 자체만으로 이미 절반은 벗어 난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강력하다. 우리는 늘 '지금'을 산다. 즐겁고 기쁘다고 느끼는 것도 지금이고, 괴롭고 힘들다고

느끼는 것도 지금이다. 이 말은 지금의 지금은 조금전의 미래요 조금후의 과거라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 없고 되돌릴 수 있다면 지금을 소홀히 해도 좋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기에 우리는

지금을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미래는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지금이 쌓아 올린 결과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경고한다. '안심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해 지금을 소홀히 하는 삶을 살면, 죽을 때까지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면서 살아갈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소중한 뭔가를 잃으면 반드시 '슬픔의 프로세스'를 거쳐야 한다. 슬픔의 프로세스는 현실을

부정하면서 시작되는데 이미 벌어진 일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깊은 슬픔이 빠지고 결국 자신의 상실을

받아들인다. 이 과정 속에서 인간은 슬픔을 비롯하여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고독을

수반한다. 한창 슬플때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어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고 외로움과 공허감을 가지게

된다. 어떤 사람에게나 소중한 사람과 소중한 것이 있고 그것을 잃어 버리면 힘들 수 밖에 없다. 이것만

알아도 무겁고 쓸쓸한 감정은 점점 가벼워진다. 이것이 슬픔의 프로세스다. 모든 감정에는 의미가 있다.

모두 이유가 있기에 생겨나는 감정이다. 그런것들을 무시하면 결국 그 감정에 지배 당하게 된다. 무작정

긍정적인 것이 좋은게 아니라 긍정으로 살아가는 삶이 좋은 것이다. 상황에 맞게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이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된다.

저자의 글은 긍정적인 면이 많고 심하게 다그치지 않아서 좋다. 특별히 이 대목은 더욱 마음에 든다.

'마음대로 안 될 때는 그냥 쉰다.' 매일의 생활은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다. 처리하지 못한 일이나 실수

한 대목은 두고두고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하지 못한 건 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현실과 싸워 이길 가능성은 없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하려고 했던 것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했어야 하는 미래'의 상실을 의미한다.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언제까지나 머물고 있는 것은 시간은 그대로 흘러가는데 시계 바늘 만 붙잡고 있는 것과 같다.

저자가 제안하는 인생이 가뿐해지는 4가지 마음 기술을 적어 본다. 무조건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어떤 결과가 나올 지 시험해 보는 마음으로 정말 그렇게 되는지 지켜본다. 실험하기에 성공이든

실패는 거기에서 얻는 결과는 전부 장래를 위한 것이무로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실험이기에 최선은

다하지만 완벽을 기대하지 않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실험이기에 다른 시점으로 생각해볼

여지를 갖게 된다. 다른 시점은 사물이나 상황을 바라보는 편견을 제거해 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완벽할 수 없다. 타고난 성질이나 상황에 좌우되는등

인간에게는 한계가 많다. 인생이란 그러한 한계 속에서 더 자기 답게 사는 길을 찾는 것이다.

단단하고 건강한 마음과 부서진 멘탈을 회복하고 중심을 잡아 마음의 균형을 이루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길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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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몰입 - 나를 넘어서는 힘
짐 퀵 지음, 김미정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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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우리가 받은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뇌가 있어 우리는 배우고 생각하고 창조하고 사랑하고

기쁨을 경험한다. 그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러한 것들을 마음껏 누리기에 건강한 환경은

아니고 뇌는 나날이 지쳐간다. 저자는 이에 대해 '뇌의 능력(사고하고 집중하고 학습하고 성장하는

것, 즉 완전히 인간 다울 수 있는 기능을 말한다)을 시험하는 네 가지 악당'이라는 표현을 쓰며

소개한다.

그 첫번째가 디지털 홍수(digital deluge)이다. 한정된 시간과 높은 기대 속에 밀려드는 정보의 홍수에

압박감과 불안과 불면을 초래하는데 이를 디지털 홍수라고 한다. 두번째는 디지털 주의산만(digital

distraction)이다. 디지털 기기들이 선사하는 일시적 쾌락으로 깊은 인간관계와 학습과 작업들에

필요한 주의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지속력마저 감소한다. 세번째는 디지털 치매(digital dementia)이다.

인간의 근육과 같은 기억을 그대로 방치해 놓은 결과 단련되지 않고 오히려 저하되어 점점 기억하려는

의지조차 가지지 않게 된다. 인간은 학습능력이 향상되고 두뇌 운동을 많이 할수록 치매에 걸릴 확률이

낮아지는데 우리는 기억을 슈퍼컴퓨터에 아웃소싱해서 점점 기억력을 감퇴시키고 있다. 마지막이

디지털 추론(digital deduction)이다. 풍부하고 다양한 정보를 너무 손쉽게 얻고 의존하다 보니 비판적

사고와 추론까지 기술에 맡기게 되고 결국 스스로 결과를 도출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클릭은 생각의 근육을 없앤다. 저자는 이와 같은 상황을 인식하고 이것들을 우리의

명료한 정신을 알아가고 두뇌 피로, 주의 산만, 학습의 어려움, 불행을 초래하는 '디지털 악당'이라고

부른다.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말이지만 이 책에서 읽으니 더욱 와닿는 글귀가 있다. '외부의 힘으로 깬 알은

그 생명이 끝나지만 내부의 힘으로 껍질을 깬 알에서는 생명이 시작된다. 위대한 것은 항상 자신

안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청소년기

후반이 되면 뇌가 신경학적 정점에 도달해 그 후로는 변화가 전혀 없어 기능이 저하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으로 행동과 환경에 따라 형성되고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뇌는 유전자와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각각이 고유한 뇌를 갖고 있고 이 뇌 구조는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달라지므로 어느것이 낫다고 속단 할 수는 없다.

목적은 목표와 다르다. 목표가 달성하고자 하는 사항이라면 목적은 목표를 달성하려는 이유를 말한다.

인생의 목적을 알면 성실할 수 밖에 없다. 인생의 목적을 아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이

무엇인지, 왜 그런 사람인지 알기에 자신의 핵심 가치에 충실한 삶을 산다. 목적은 삶의 결정을 이끌고,

행동하게 하고, 목표를 형성하고, 방향감을 제공하며, 의미를 창출한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열정과 목적을 혼동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열정을 발견한다는 것이 올바른 길을 선택한다거나

운명적 직업을 발견한다는 것은 분명 아니다. 열정은 우리의 내면을 밝히는 것이다. 우리가 변한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열정 역시 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몰입(flow)은 어떤 활동에 너무 열중해서 다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은 상태다. 그 경험 자체가 너무 즐거워서 이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큰 대가라도

치르려 할 것이다. 이를 '최적경험(optimal experience)'라고 한다. 몰입은 분투(struggle), 완화(relaxation),

몰입(flow), 통합(consolidation)의 4단계를 형성하며 '소스 코드'라는 동기를 통해 진행된다.

이 책이 이야기 하는 핵심은 '성공의 답은 내 안에 있다'이다.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에게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른이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이제는 한계를 벗어난 새로운 자신을 맞이해야 한다. 이렇듯

한계를 벗어나면 동기 역시 무한해진다. 야망에 습관을 맞출 수도 있고 그것이 자연스러워 질것이다.

집중력, 기억력, 사고력, 독서의 한계를 뛰어 넘어 획득한 기술들과 그 도구들을 결합할 때 엄청난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무엇을 하느냐다. 모두가 꿈을 꾸지만 대부분은 꿈만

꾼다고 말하는 데일 카네기의 말이 더욱 깊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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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뒤바꾼 가짜뉴스 - 거짓으로 대중을 현혹시킨 36가지 이야기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장하나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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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년 세계사 속에서 독재자와 반체제 포퓰리스트(populist, 일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여 일을

추진하는 사람) 혹은 대부분의 정치꾼들은 '거짓말=가짜뉴스(fake news, 매스미디어나 소셜미디어

등의 허위 보도)'를 이용해 다양한 정보를 조작하고 대중을 선동함으로써 세상을 움직여왔다.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소련의 스탈리니즘등은 교묘한 프로파간다(propaganda,

선전전)를 통해 대중을 옭아 매며 세상을 흔들었다.

가짜 뉴스는 흔히 '데마(Dema)'라고 부르는데 기원전 6세기에서 5세기 사이의 아테네 대중정치에서

나온 말로, 귀족층에 맞선 '데마고고스(Demagogos, 대중 정치인)'에서 나온것으로 추정된다. 상인과

수공업자 같은 대중들의 힘이 점차 세지면서 귀족층과 대립하게 되며 이때 격한 연설과 가짜뉴스,

여론 선동을 통해 대중을 끌어들이고 대중의 이익을 대변하던 인물, 클레온(Kleon)이 등장하는데

이가 최초의 데마고고스였다. 사실 데마는 그렇게 나쁜 의미로 사용된 단어는 아니었지만 역사는

승자의 편이어서인지 당시의 권력층이었던 귀족등이 데마고고스에게 적의를 품고 '가짜 뉴스로

대중을 선동하는 발칙한 인간'이라는 이미지로 만들어 버렸다. 사실 절대 권력이 상대편에게 있을 때

자신들의 확고한 정치 주장을 펼치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과장된 표현과 자극적인 말들이

대중을 선동할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그들의 선택은 어쩌면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상당히 재미 있는 부분과 흥미로운 부분이 많이 나온다. 망명을 권유하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살길을 찾아 망명하면 지금까지 자신이 한 주장이 모두 거짓이 된다면서 독배를 받아 마신 스승

소크라테스의 모습과 자신의 스승을 그렇게 무너뜨리는 시대상 앞에 실망한 플라톤이 현실을

외면한 채 이상 세계가 존재한다는 '이데아론'을 주장하며 한 거짓말이 '아틀란티스의 전설'이며

대서양을 '애틀랜틱 오션(Atlantic Ocean)'이라 부르게 된것도 플라톤의 거짓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또한 고대 중국의 왕은 자신을 열 개의 태양신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라는 열개의

태양신이 차례로 대지를 비춘다고 여김)이라 칭하며 나라를 다스렸는데 이 때 열흘마다 행해진

골점(骨占)을 통해 나라를 다스릴 방향을 결정했다. 신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던 은(股)왕은 우골이나

귀갑에 얕은 구멍을 수없이 뚫고 끓는 물에 익혀서 균열이 생기면 그것을 보고 열흘 동안 나타날

길흉을 넘쳤다고 한다. 뼈는 신성한 물건이니 점친 결과를 기록해야 했고 골점 결과는 동물의 뼈에

새겨졌는데 이때 사용된 문자가 한자의 유래가 된 '갑골문자'이다. 로마를 대표하는 정치가이자 군인,

문필가로 알려진 카이사르는 마냥 훌륭하다고도 그렇다고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를

빼놓고는 로마를 논할 수 없는 인물이긴하나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 물으면 또 딱히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모르는 애매한 인물인데 우리는 카이사르라는 이름을 안다. 카이사르의 정식 이름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가이우스는 이름, 율리우스는 씨족명, 카이사르는 성에 해당하는

것으로 당시 로마가 혈연으로 맺어진 부족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남긴 말 중 갈리아 전쟁을

통해 갈리아 지역의 광활한 영토를 로마의 속주로 편입하여 지배하게 되는데 이때 카이사르는

'분단해서 정복하라'라는 말을 남겨 후세에 이민족 지배의 원칙으로 삼게 한다. 원로원과 손 잡은

폼페이우스와의 대립이 심해지자 최후의 결전을 다짐하며 한 말인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지금도

많은 이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는 말이다. 원로원에서 승리를 거둔 그에게 '임페라토르'(Imperator,

군대최고지휘관)라는 칭호를 수여하여 훗날 황제(Imperor)의 어원이 되었고 이집트에서 들여온

달력을 '율리우스력'이라 칭하고 자신이 태어난 달인 7월을 'July'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공화정의

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결국 원로원애 의해 암살당한다. 이렇게 펼쳐놓고 보면 카이사르가 직접

개입하거나 승리하거나 만들어낸 업적은 별로 없고 누군가가 차려 놓은 밥상에서 밥을 먹은 것 뿐이

없는 것 같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국민 영웅에서 흡혈귀가 되어 버린 왈라키아의 왕 이야기와 종교개혁 시대에

마녀사냥을 부축일 수 밖에 없었던 아이러니한 진실과 현실적인 선택으로 애매모호한 노예화를

선언한 링컨의 이야기, 신문의 날조 기사탓에 발발한 미서전쟁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물론 사건 하나하나의 양이 방대해서 요약하기가 어려웠을것 같긴한데 소개하고자 하는 사건을

조금 줄이고 사건의 내용을 조금 더 깊이 다루어 주었으면 어떨까하는 아쉬움을 갖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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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스토리텔러들
이샘물.박재영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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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사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시선을 어디에 두는지, 중심을 어디에 두는지,

방향을 어떻게 하는지, 조명을 어떻게 하는지 등에 의해 변형되고 왜곡되며 다르게 보인다. 기자들의

기사도 그렇다.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기사의 논조가 다르고 전개가 다르다. 같은 일인데도

말이다. 특히나 '정보 정리형'인 우리 나라의 기사들은 정보를 정리해서 알리는 조건을 충족하기에

밋밋하고 딱딱하다. 이에 비해 미국 언론계는 '정보 전달' 못지않게 '스토리텔링'을 중시하기에

기자들은 뉴스에 스토리를 입혀 매력적으로 전달하는 '스토리텔러'로 통용된다. 이 책은 그들의

'기준'을 말한다.

좋은 주제가 있더라도 스토리를 찾아야 하고, 중요한 정보가 있더라도 이야기 거리가 있어야 한다.

스토리의 힘은 강력하다. 기존에 널리 알려진 소재라도 새롭고 신선한 스토리가 있으면 흥미로운

기사가 된다. 이야기 거리는 독자를 기사 속으로 끌어 오는 핵심적인 매개체이다. 그래서 미국 신문

역사를 다룬 책 'Discovering the News(Schudson, 1978)'는 이를 '스토리의 이상'과 '정보의 이상'이라고

부른다. 스토리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 맥락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다.

이에대해 퓰리처 상을 수상한 존 프랭클린(John Franklin)은 '스토리는 내러티브의 각 부분들이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배치 하는 것이며, '의미'는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다'고 말한다.

가끔 인터뷰 기사나 장면을 볼 때 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질문의 요지가 뭐지?'. 본질에서 벗어나거나

관계없는 질문으로 시간을 잡아 먹는 기자들이 여럿있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최대한의 '꺼리'를 뽑아

내야 하는데 자꾸 산으로 간다. 그냥 산으로만 가면 다행인데 문어발식으로 확장성도 가진다.

그러다보니 답변자의 진심과 생각은 이미 저 멀리 가있고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을 요구한다. 이에대해

저자는 '똑똑한 인터뷰'를 하라고 주문한다. '정직하고 신뢰 받을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 제대로 되고

정확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 기자에게 중요한 것은 전문가에 대한 '접근성'이 아니라 '인터뷰의

품질'이다. 똑똑한 인터뷰는 타이틀이나 학벌이 좋은 사람과 하는 인터뷰가 아니라 기사에서 다루는

사안에 대한 깊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신뢰헐 만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그들의 영역에 머물라. 그들의 세계에서 인터뷰하라'고 말한다. 단순히 취재원이 이야기하는

것을 전달하는게 아니라 그들이 살아 있는 것을 관찰하라고 말한다. 인터뷰는 취재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입을 다물고 눈과 귀와 마음을 여는 것을 배울 때, 우리는 지구에서 가장 숙련된

인터뷰어도 절대 발견하지 못했을 것을 발견한다'는 퓰리처상 수상자인 톰 프렌치(Tom French)의 설명은

간과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콘텐츠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대표작을 '킬러 콘텐츠'라고 부르듯이,

기사에서는 멘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명구를 '킬러 멘트(killer Quote)라고 부른다. 인터뷰의 목적은

취재원으로부터 '킬러 멘트'를 확보하는 것이다. 적지 않은 미국 기사가 마지막 부분을 멘트로 마무리하는

것도 말 한마디의 힘이 크기 때문이다.

저자도 지적했듯이 국내 신문들은 제호만 가리면 비슷비슷해서 서로 구분이 안간다. 형식도 내용도

비슷하다. 심지어 인터넷 판은 다른 기자의 내용이 버젓이 이름을 바꿔서 올라 오기도 한다. 내용이

구별되지 않다 보니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시점'으로 승부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기자들은 차별성

없는 기사를 '빨리' 내보내며 속보 경쟁을 하고, 뜨내기 독자를 얻는다'고 표현한다. 어쩌면 '특종'에

목을 메야 하는 그들에게 '차별성 있는 앵글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기사'는 배부른 소리이거나

비현실적인 소리 일수도 있다. 기사는 '읽히기' 위해서 쓰여진다. 기자들이 탁월한 스토리텔러가

되고자 하는것도 '잘 읽히기' 위해서다. 스토리텔링의 기법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스토리탤링의

정답은 없지만 최소한의 기준은 존재한다. 활자기에서 찍어 내듯 비슷비슷한 기사가 아닌 '차별성'과

'신뢰성'을 가진 읽을만한 기사를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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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 BTS 앨범의 콘셉트 소설 그리고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헤르만 헤세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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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Demian, 1919, Hermann Hesse)은 10대 때 처음 만났고 그때는 그냥 읽기만 했다. 대학 시절

만난 데미안은 생각의 방향과 의식의 균형으로 인해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에

만난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가 꿈꾸던 '지독한 사랑'과 그 '다양성'이 보인다.

'내 속에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나로부터 시작하여 나를 향하는, 치열한 성장 기록인 데미안의 첫구절이다.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규정하고 치열하게 나를 찾고, 다시 놓아주고, 다시 찾는 인생의 무한궤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이 책.

참 어렵다. 인식 안에 있던 분리로 인해 저지르지도 않은 도둑질로 크로머에게 지독하게 시달리는

싱클레어 그 속에서 만난 데미안은 선구자이자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런 그가 던지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이미 진리이고 참이었다.

카인에 대한 이야기는 싱클레어에게 충격적이었듯 나에게도 신선한 자극이 된다. 시대적 상황 자체가

무거운 시대였고 별것 아닌것도 심각하고 대단한 일인양 묘사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시기였기에

얼마든지 그럴수 있고 모든것이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기에 더더욱 그렇다. 그런 그에게

데미안은 너무도 특별한 존재이다. 그저 믿고 따를 수 밖에 없는 그렇기에 더욱 위험하다. 절대적

믿음이 깨어지고 난 후의 폭풍은 쉽게 감당하기 어렵기에. 가인과 아벨에 대한 설명이 그렇다.

'달리 볼 수 있다. 그점에서 비판을 가할 수도 있다.' 그가 말하는 카인은 우리의 상식 속 카인이

아니다. 스스로 성찰하고 구도하는 새로운 인간형이자 자연인을 만들어 낸다.

또 하나의 인물이 등장한다. 싱클레어가 꿈 속에 열망하던 이미지가 현실로 등장한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독일어로 Eva는 영어의 이브이다)을 만난다. 싱클레어의 눈에 비친 에바 부인은

'자신의 내면의 상징'이었고 별이었고, 열망 그 자체였다. 서로가 서로를 향했으며 서로가 자석처럼

이끌렸고 함께 머물렀고, 함께였다. 물론 이 부분이 우리의 정서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긴 하다.

그럼에도 이 둘의 관계는 추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에바 부인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돌이켜

생각해 봐. 그 길이 그렇게 어렵기만 했나? 아름답지는 않았나? 혹시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을

알았던가?' 그 길이 어떠한지를이 아닌 그 길 자체를 묻는 질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멈춰섰었다. 나도

그랬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지나온 길을 생각하면 여전히 아쉽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던졌던 말 중 이 말은 유독 오래 남는다. '사람은 누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지. 누군가를 두려워 한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 자기를 지배할 힘을 내주었기 때문이야' 어쩌면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의 말을 빌어 우리에게 사람이면 누구가 갖는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 안에 거인을 데리고 사는데 이 거인에게 지고 넘어지고

복종하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처음에는 아주 작았던 이 거인이 점점 커져

결국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두려움은 데미안의 말처럼 '자기를 지배할 힘을 넘겨주었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고 주눅 들게 한다. 두려움은 극복의

대상이지 존중의 대상이 아닌데도 우리는 그 두려움에 자꾸 무릎을 꿇는다.

등장인물인 싱클레어(Saint + Clair)와 데미안(Demon)의 관계는 이름에서조차 선과 악으로 나뉘고 책의

내용 속에는 선과 악의 대립 구도가 자주 등장한다. 단 둘 사이가 모호한 채 말이다. 출간 당시 헤르만

헤세는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발표했으니 이 책은 자신의 내면에 대한 회고록이라고 해도 될것 같다.

'너는 네 안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럼 내가 네 안에 있음을 알게 될거야'라는 데미안의 말은 식스센스급

반전을 가져 온다. 아무튼 이 책 여전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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