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을 향해 헤엄치기
엘리 라킨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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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상실은 누구에게나 아픔이며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그리고 상실은 현실이고 그 현실은 여전히

우리로 하여금 삶을 살아내게 만든다. 영원할 것 같은 상실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익숙함은

삶에 그대로 녹아내려 새로움을 만들어 간다. 주인공 케이틀린. 그의 인생에 남은 것은 이혼이라는

흔적과 애완견 바크뿐이다. 상실이라는 커다란 벽과 빈털터리에 자존감과 의욕마저 잃어버린

그녀에게 주변 인물들은 삶의 의미가 되어가며 이 소설은 진행된다.

처절하게 지쳐있는 그녀의 삶에 할머니가 있는 플로리다는 추억이고 동경이며 도피처이다. 그리고

할머니 나넷은 등대이다. 노년이 주는 여유로움과 편안함, 대범함과 지혜로움까지 겸비한 나넷은

그녀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된다. 사실 케이틀린은 어린시절 눈 앞에서 아빠가 죽는 모습을 본

충격때문에 사랑하는 것에 다가가는 것도, 남겨지는 것도 스스로 거부한 채 살았으며 결혼한 후에도

여전히 그렇게 살았고 결국 헤어짐을 선택한다. 사실 이 책에서 케이틀린 보다 더 눈에 들어 오는

것은 나넷과 빗시와 같은 할머니들이다. 아마 나이를 알려주지 않았으면 육십 정도나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들은 활발하고 역동적인 삶을 산다. 수영과 스트레칭으로 몸매를 만들고,

새로운 연인과의 밀회를 즐기고, 현실을 만끽하는 그녀들에게서 나의 '미래'를 보았다. 우리의 노년도

그래야 하는데 말이다.

늘 평가의 대상이었던 자신을 점수 매기지 않고 편안한 쉼과 휴식을 제공하며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할머니들을 위해 케이틀린은 용기를 낸다. 할머니들의 오랜 꿈이었던 인어쇼를 준비하기 위해

직접 인어의상을 만든다. 그렇게 그녀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이 순간을 즐기기 시작한다.

바크는 특별하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안락사 되기 직전에 입양해 온 두려움과 낯설음에 겁을 잔뜩 먹은

녀석은 어린시절 부모의 죽음을 경험한 후 삶에 두려움을 느끼고 회피하고 숨어 버리던 자신과 너무나도

닮아있어 더욱 마음이 간다. 개는 주인을 닮는다고 한다. 바크의 안정과 평안함이 케이틀린의 회복과

안정이 서로에게 동화되어 자존감을 회복하고 세상에 맞서기 시작하는 그녀와 주변을 즐기고 누릴 줄

아는 어엿한 반려견이 되어 간다. 이렇게 둘은 각자의 두려움에서 벗어 난 것이다. 일흔 다섯의 빗시

할머니가 전하는 '이 순간을 좋게 만들려면 이 순간을 살아야지'라는 말은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를

희생하며 사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Carpe Diem'에 열광했던 그 시절은 이미 과거가 되어

저기 먼 기억속에나 존재하는 우리에게 일흔 다섯 할머니의 이 소리는 '라떼는 말이야'가 아니라 생생한

삶이다. '지금, 이순간'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준다. 나쁜일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말고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주어진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아내는 것, 어쩌면 인생은 그런것일수도 있다.

상실은 어느누구도 피해 갈수 없는 현실이고 극복해야할 과제이며 넘어서야할 벽이고 지나가는 시간이다.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가진 용기의 대가이다. 마지막 쳅터에 들어있는 '바깥 세상의 소리는

작게 들렸다. 다시 물은 내 것이 됐다'는 말처럼 자신에게 집중할 때 세상은 그냥 세상일 뿐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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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으로 읽는 삼국지 - 중원을 차지하려는 영웅호걸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교양으로 읽는 시리즈
나관중 지음, 장순필 옮김 / 탐나는책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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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여년전. 약 일백여년에 걸친 중국 후한말에서부터 진나라로 통일되기까지 천하 패권을 두고 펼치는 영웅호걸들의

역사를 담은 '삼국지'를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은 후 많은 시간이 지나 김원중 평역 정사 삼국지를 탐독한 이후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삼국지는 진수(陳壽)가 쓴 정확한 사실의 역사 기록인 '정사(正史)'와 나관중(羅貫中)이 쓴 역사를 토대로

쓴 가상의 이야기인 '연의(演義)'로 나뉘는데 삼국지 연의 이후로 제갈량은 지혜의 대명사로, 관우는 관왕 혹은 관제로

불리며 '무신'의 대접을 받으며 무속신앙의 대상이 된다. 방대한 분량과 700명이 넘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흡사 박경리의 토지를 연상케 한다) 하는 이 책은 수 많은 고사성어(삼고초려, 읍참마속, 고육지책, 도원결의등등)

와 교훈으로 가득차며 인생의 허무감과 권력의 덧없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실제로 위의 조조, 오의 손권, 촉의 유비 중

어느 누구도 통일 왕국을 이루지 못했다.

이문열의 삼국지를 처음 선택했던 이유는 대중적 인지도 뿐만 아니라 각 인물에 대한 평가와 사건을 바라보는 탁월한

시각,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 이외에도 실제 정사에 기록된 내용과 의미를 반영하여 작품의 이해도가 높였기

때문이었는데 이 책은 저자도 전술했듯이 '편하고 쉽게 읽히는 삼국지'이다. 알다시피 '유비'는 사람만 좋았지

지도자로서나 아버지로서 탁월하지 못했던 인물이며(이문열은 이 부분을 관용과 포용력으로 표현하나 솔직히

동의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조조'의 리더쉽과 결단력과 과단성은 리더로서의 탁월함을 보여준다. 우유부단의

대명사인 유비와 달리 조조는 일의 처리나 결정에 있어 단호했고 분명했다. 물론 유비의 어진 성품은 본받을만 하지만

그의 특유의 우유부단함은(고우영의 만화 삼국지에서는 이 부분을 유비의 얼굴에 그대로 표현해 보는이로 하여금 유비의

성품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한다) 때론 상황이나 결정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의외의 인물도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인물에 꽂혀 다른 이는 눈에 잘 들어 오지 않았다. '제갈량'이다. 자는 공명, 호는

와룡인 그는 삼고초려와 천하삼분지계, 적벽대전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만 이는 대부분 삼국지연의에만 기술되어 있을

뿐 역사서에는 별다른 활약상이 드러나지 않는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유비가 숨을 거두며 '내 자식들이 보좌할만 하면 그를

돕되, 부실하다면 그대가 스스로 황제가 되어 다스리라'고 말하자 '몸을 굽혀 모든 힘을 다하여 죽은 후에야 그만둔다'

(鞠躬盡瘁 `死而後已)고 말한 후출사표는 훗날 청나라의 강희제의 신조로 삼았을 정도의 충절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가

만들었다고 알려진 최대 사거리가 200m가 넘는 쇠뇌(석궁)은 활에 비해 배우기도 쉽고 명중률이 높아 전투에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했다. 천하를 능히 주무르고 호령할 만한 능력과 자질을 지녔음에도 유비를 주군으로 선택하여 끝까지 섬겼던

그의 모습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물론 후대의 평자들은 모든것이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었다고 하지만 그는 주군을 향한

충성과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사리사욕이 없고 스스로를 지킴에 변함이 없었던 인물이다. 철새처럼

둥지 갈아타기가 본업인양 이리저리 권력의 줄을 찾기에 급급하고 자기 배부르고, 자기 자식을 위해서라면 불법과 편법을

서슴지 않고 자행하는 요즘 정치인들에게 제갈공명은 '그림의 떡' 일수도 있겠으나, 그럼에도 그런 인물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게임과 영화, 만화등 다양한 콘텐츠가 제공되는 '삼국지'는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과는 말도 하지 말라'는 '라떼는

말이야'가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꼭 읽어 보면 좋은 책이다. 물론 방대한 분량과 조금 어려울 수 있는 단어들로 막힐때도

있겠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읽으면 될 많은 분량을 엑기스만 뽑아 단행본으로 엮어 놓은 이 책은

그냥 쉽고 편하게 읽히는 '삼국지'가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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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으로 읽는 삼국지 - 중원을 차지하려는 영웅호걸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교양으로 읽는 시리즈
나관중 지음, 장순필 옮김 / 탐나는책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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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여년전. 약 일백여년에 걸친 중국 후한말에서부터 진나라로 통일되기까지 천하 패권을 두고 펼치는 영웅호걸들의역사를 담은 '삼국지'를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은 후 많은 시간이 지나 김원중 평역 정사 삼국지를 탐독한 이후 오랜만에다시 만났다. 


삼국지는 진수(陳壽)가 쓴 정확한 사실의 역사 기록인 '정사(正史)'와 나관중(羅貫中)이 쓴 역사를 토대로쓴 가상의 이야기인 '연의(演義)'로 나뉘는데 삼국지 연의 이후로 제갈량은 지혜의 대명사로, 관우는 관왕 혹은 관제로불리며 '무신'의 대접을 받으며 무속신앙의 대상이 된다. 방대한 분량과 700명이 넘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지기를반복(흡사 박경리의 토지를 연상케 한다) 하는 이 책은 수 많은 고사성어(삼고초려, 읍참마속, 고육지책, 도원결의등등)와 교훈으로 가득차며 인생의 허무감과 권력의 덧없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실제로 위의 조조, 오의 손권, 촉의 유비 중어느 누구도 통일 왕국을 이루지 못했다.

이문열의 삼국지를 처음 선택했던 이유는 대중적 인지도 뿐만 아니라 각 인물에 대한 평가와 사건을 바라보는 탁월한시각,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 이외에도 실제 정사에 기록된 내용과 의미를 반영하여 작품의 이해도가 높였기때문이었는데 이 책은 저자도 전술했듯이 '편하고 쉽게 읽히는 삼국지'이다. 알다시피 '유비'는 사람만 좋았지 지도자로서나 아버지로서 탁월하지 못했던 인물이며(이문열은 이 부분을 관용과 포용력으로 표현하나 솔직히동의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조조'의 리더쉽과 결단력과 과단성은 리더로서의 탁월함을 보여준다. 우유부단의 대명사인 유비와 달리 조조는 일의 처리나 결정에 있어 단호했고 분명했다. 물론 유비의 어진 성품은 본받을만 하지만 그의 특유의우유부단함은(고우영의 만화 삼국지에서는 이 부분을 유비의 얼굴에 그대로 표현해 보는이로 하여금 유비의 성품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한다) 때론 상황이나 결정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의외의 인물도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인물에 꽂혀 다른 이는 눈에 잘 들어 오지 않았다. '제갈량'이다. 자는 공명, 호는 와룡인 그는 삼고초려와 천하삼분지계, 적벽대전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만 이는 대부분 삼국지연의에만 기술되어 있을뿐 역사서에는 별다른 활약상이 드러나지 않는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유비가 숨을 거두며 '내 자식들이 보좌만 할만하면 그를 돕되, 부실하다면 그대가 스스로 황제가 되어 다스리라'고 말하자 '몸을 굽혀 모든 힘을 다하여 죽은 후에야 그만둔다'(鞠躬盡瘁 `死而後已)고 말한 후출사표는 훗날 청나라의 강희제의 신조로 삼았을 정도의 충절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가 만들었다고 알려진 최대 사거리가 200m가 넘는 쇠뇌(석궁)은 활에 비해 배우기도 쉽고 명중률이 높아 전투에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했다. 천하를 능히 주무르고 호령할 만한 능력과 자질을 지녔음에도 유비를 주군으로 선택하여 끝까지 섬겼던 그의 모습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물론 후대의 평자들은 모든것이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었다고 하지만 그는 주군을 향한 충성과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사리사욕이 없고 스스로를 지킴에 변함이 없었던 인물이다. 철새처럼 둥지 갈아타기가 본업인양 이리저리 권력의 줄을 찾기에 급급하고 자기 배부르고, 자기 자식을 위해서라면 불법과 편법을 서슴지 않고 자행하는 요즘 정치인들에게 제갈공명은 '그림의 떡' 일수도 있겠으나, 그럼에도 그런 인물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게임과 영화, 만화등 다양한 콘텐츠가 제공되는 '삼국지'는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과는 말도 하지 말라'는 '라떼는 말이야'가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꼭 읽어 보면 좋은 책이다. 물론 방대한 분량과 조금 어려울 수 있는 단어들로 막힐때도 있겠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읽으면 될 많은 분량을 엑기스만 뽑아 단행본으로 엮어 놓은 이 책은 그냥 쉽고 편하게 읽히는'삼국지'가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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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답이 될 때 - 고난의 자리, 하나님이 내게 묻다
장창수 지음 / 두란노 / 2021년 5월
평점 :
품절


그리고 그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P55

이제 더 이상 핑계 거리는 없습니다. P71

설교는 본문에 충실해야 한다는 대 전제가 무너져 버린 지금 우리에게 본문에 충실한 설교를

만나는 것은 성도로서도 설교자의 입장에서도 반가운 소식이다. 신대원 시절 은사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있다. '설교자는 카세트 테이프와 같아야 한다'는 말씀인데, 현장에 나와 보니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너무도 이해가 됐다. 정해진 말씀만 전하면 되는데 이것저것 자꾸

첨가하다 보니 정작 본문은 뒷전인 경우가 너무도 많았다. 저자는 본문 중심의 설교를 전하는

분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기대가 된다.

'찾아 오시는 하나님'. 이것이 타 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본질이다. 인간이 만든 종교는 끝없이

갈구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하나님은 찾아 오신다. 당신이 만든 피조물들의 아픔과 고통을 방관하지

않으시고 직접 다가 오신다. 인생이 힘들고 실패하고 지치고 도저히 일어설 함 조차 없는 그때

어느새 곁에 계신 그분을 만난다. 그리고 그 분은 우리에게 '질문'하신다. 성경의 많은 부분이 이렇게

기술된다. 회복과 은혜의 시작점이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 안에는 피조물을 향한 그윽한 사랑과

긍휼이 들어 있다.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는 그분의 '진심'이 거기에 담겨 있고 근본적인 해답 마저도

같이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구원의 계획을 가지셨기에 항상 최선이다. 처음 범죄한 아담에게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질문하신다. 예전에 이 본문 때문에 참 많이 고민했던 적이 있다. 자신이 직접

자신의 형상대로 빚어 생기를 불어 넣어 만든 첫 피조물의 범죄에 진노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신

'하나님'. 책망과 경고가 아닌 '회복과 돌아옴'을 바라는 마음에서의 '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 앞에

그분의 간절함을 느꼈다. 간절해야 할 인간은 범죄하고 도망하는데 죄를 심판해야할 그분이 오히려

간절함을 보인다. 이 간절함에 반응하는 인간의 태도는 그냥 범죄자다. '두려움'을 가진다. 하나님을

떠난 성도의 삶이 '두려움'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몸을 가리고 숨어 버린다. 지금의 우리다. 우리 역시

자신의 범죄함으로 인해 두려워 숨는다. 두 손으로 겨우 자기 눈을 가리고 '안보이시죠'라고 하는

뻔뻔함 마저 가진다. 하나님은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사 41:10)'라고 하시는데 말이다.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하나님의 질문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그분의 간절함이고 사랑이다. 존 칼빈(John Calvin)이 말하는 'Coram Deo'가 바로 이것의

해답이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하나님 앞'이다.

인생은 '포기시키시는 하나님과 집착하는 인간의 싸움'이라고 한 어거스틴의 말은 적절하다. '내가 너의

하나님이다'라고 하시는 하나님 앞에 고집과 집착으로 만용을 부리는 인간, 결과가 뻔히 보이지만 여전히

꽉 쥔 손엔 힘이 들어 간다. 야곱의 그랬다. 야곱은 여인에게 , 재물에, 자식에 집착했다. 태어날 때 부터

뭔가를 잡아야만 성미가 풀리는 성품이기에 더더욱 집착이 강했다. 물론 자신이 집착하고, 쥐고 있는 것을

놓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서 믿음이 결정된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놓을 수 있다. 상황 그 너머에 계시는

그 분이 보이기에 결단은 쉬워진다. 야곱은 그 기회를 '아마르(창32장, 생각하다)'에서 찾는다. 그리고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놓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아마르'는 찾아 온다. 그때 얍복 강가의 야곱처럼

붙들어야 한다. 네째인 유다를 낳고 '아마르' 한 후 자신의 집착에서 벗어 난 레아처럼 말이다.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신 후에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창32:28)라고 말씀하신다. 다시는 집착하는 삶을 살지 말라는 의미다. 꽉 쥔 손을 풀어 그 분의

손을 잡으면 된다. 우리가 내려놓으면 하나님이 움직이신다. 우리는 문제나 절망 속에서 하나님에게 집

중해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 만을 붙잡아야 한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을 바라보느냐이다. 사람은 자신이 바라 보는 것을 추구하고, 무엇을 보는 지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인의 시선은 하나님께 고정되어야 한다. 세상과 타협하며 세상에

집착하면 결코 하나님께 집중할 수 없다. 자신이 바라보는 것으로 정체성이 구별되기에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이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온다. 시대를 따라 세상의 움직임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아닌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우리가 바라 보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

오스 힐먼(Os Hillman)이 자신의 저서 에서 밝혔듯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주를 찾는 '편의'의 단계를 지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위기 상황에서 주를 찾는 '위기'의 단계를 거쳐 어떠한 상황에서도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는 '확신'의 관계에 이르러야 한다. 하나님의 타이밍은 언제나 선하시기에 믿고

기다리는 이에게 반드시 약속을 지키신다. 내 타이밍과 내 방법이 아닌 그분의 타이밍과 그분의 방법에

의해 당신의 일을 해나가신다.

이 책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이 편과 저 편에서

방황하지 말고 바른 선택을 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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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는 시간을 위한 말들 - 슬픔을 껴안는 태도에 관하여
박애희 지음 / 수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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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게 힘들어요. 어리기 때문에 그런가요?'라는 마틸다의 질문에 '언제나 그래'라고 대답하는 영화

'레옹'을 만났다. 사는건 언제나 힘들다. 어릴땐 어린데로, 나이가 들어선 나이든 대로 힘들다.

그래서인지 의료사회학자 아서 프랭크는 인간을 하나의 범주로 묶을 때 그 공통성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 '고통'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저서 '아픈 몸을 살다'에서 '나의 고통은 다른 사람의 고통과 비교할

수 없다. 내 고통을 있는 그대로 목격 할 수 있을 뿐이고 고통이 치료될 수 있느냐와는 상관없이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 그것이 바로 '돌봄'이다'라고 말했다.

여행의 묘미는 우연과 여유다. 저자도 그랬던것 같다. 한때는 출발부터 도착까지 타임 테이블을 만들어

분단위로 스케줄을 짜고 먹어야 할것, 보아야 할것등의 리스트를 준비해 마치 도장 찍듯이 다녔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냥 떠난다. 딱 하나만 확인하고. 커피를 맛있게 하는 집이 있는지 혹은 스타벅스라도

근처에 있는지. 초라하고 남루하게 느껴졌던 어느 하루도(삿뽀로 편의점에서는 다들 그런가 보다. 나도

그랬다), 무척이나 화가나서 씩씩대던 날도(나도 타임테이블로 움직일땐 매번 싸웠던것 같다), 한 숨만

터져나오던 어느 밤도, 훗날에는 어떤 아름다움과 의미를 내게 선물할 지 모른다. 그래서 여행은 날마다

새롭다. 얼마전 들른 주문진의 좁은 골목길이 그랬다. 주문진을 백번은 넘게 다닌것 같은데 처음 만난

낯설음이었다. 길을 잘못 찾아 들어간 그 골목은 아직도 1980년대를 살고 있었다. 저자의 말처럼 '힘겨운

시간을 견디는게 버거울 때면 그렇게 지금 여기가 아닌 먼곳을 내다보라고, 아주 예전의 여행들이 자꾸

말을 건다.'

이 책에서 최고의 인생을 만난다. 이도우의 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 가겠어요'에 나오는 대화인데 책방

이름이 왜 '굿나잇 책방'이냐는 은영의 물음에 '글쎄.... 잘자면 좋으니까, 잘 일어나고 잘 먹고 잘 일하고,

쉬고 그리고 잘 자면 그게 좋은 인생이니까'라고 대답하는 은섭. 다시 '그게 다냐고' 묻고 '그럼 뭐가 더

있나? 그 기본적인 것들도 안돼서 다들 괴로워하는데'라고 답을 한다.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면 사는게

힘들어 잘 먹지도 못하고, 잘 쉬지도 못하고, 날 자지도 잘 일어나지도 못했다. 심지어 일도 제대로

못한다. 기본적인 생활조차 못하면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냥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며 살았다.

그러면서 '이 정도는 견뎌야지', '엄살 피우지마'하며 자신을 괴롭혔던 우리가 꿈꾸는 최고의 인생은

어쩌면 '잘 자고, 잘 일어나고, 잘 먹고, 잘 쉬고, 잘 일하고, 다시 잘 자는것'이 아닐까. 더 열심히, 더 힘을

내서가 아니라 '그저' '계속' 그렇게 묵묵히 나아가다 보면 평소처럼 똑같이 했는데 받지 못했던 위로와

보상이 온다.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의 배우 오정세는 우리에게 견딜 수 있는 희망이라는 것을 준다.

'여러분은 모두 곧 반드시

여러분만의 동백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힘든데 세상이 못 알아준다고 생각할 때 속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곧 나만의 동백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요.'

물론 그 동백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그때까지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기다리는 일이 늘 그렇듯 지난하고 고단할 것이지만 언젠가 동백을 만날 수

있을것이라는 믿음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숨이 턱턱 막히고 한 숨이 터져 나와도 그렇게 다시 계속해서

걸어 가는 것. 이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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