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기가 되는 좋은 습관 - 단순하지만 강력한 15분 핵심 습관의 힘
김시현 지음 / 레몬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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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습관으로 굳어진 시스템이다. 습관을 몸에 익히고, 습관으로 자리 잡기만

한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목표는 자동으로 달성된다. 습관이 이렇게 무섭다.'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존 드라이어든의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지만 나중에는 습관이 우리를 만든다'는 말이 생각

났다. 오늘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만들어진 습관에 의해 움직여 지는 것이다. 결국 좋은 습관이든

나쁜 습관이든 나에 의해서 만들어 진 것이다.

인간의 뇌는 동물과 다르다. 갓 태어난 뇌는 신경계의 단위인 뉴런이 연결되어 있지 않기에 끊임없이

뉴런을 연결시키며 학습을 한다. 우리의 뇌는 훈련하면 훈련 할수록 변화하는 '뇌의 가소성'을 가졌다.

가소성(可塑性)이란 어떤 유전자형의 발견이 특정한 환경 요인을 따라 특정 방향으로 변화하는

성질을 말한다. 뇌의 신경회로는 외부의 자극이나 경험과 학습을 통해 구조가 기능적으로 변화하고

재조직된다. 투자의 귀재인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은 '인생은 눈덩이를 굴리는 일과 같다'고 말했다.

눈덩이를 굴린다는 것은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한다는 말이다. 어떤 일을 매일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하면 결국 그것이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은 거대한 눈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저자는 여기에 더해 하루에

15분을 투자하는 '15분의 기적'을 말한다. 마음만 먹고 하지 못했던 일을 지금 시작하라는 것이다.

더도 덜도 말고 딱 15분씩 만이라도.

어떤 사람을 알아보고 싶거든 그의 24시간을 살펴 보라는 말이 있다. 24시간 안에 그의 모든 습관이

들어 있다. 그 하루가 그의 평생의 청사진과도 같기에 그의 평생을 어느정도 예측 할 수 있다. 사람은

습관의 노예이기 때문에 작은 눈덩이가 세월을 거치며 거대한 눈 사람이 되고,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마부작침(磨斧作釱, 물론 원래의 의미는 이것과 조금은 다르다)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꾸준히 지속하면 세월과 함께 쌓여 눈덩이가 되는 것이다. 어떤이는 30일이면 습관이 되고 66일이면

몸에 붙는다고 하지만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고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함은 분명하다. 그만큼의

지속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성취는 갑자기 날아드는 행운이 아니라 끊임 없이 노력하고 준비하는

이에게 오는 선물이다. 늦지 않았다. '스몰 스탭'은 첫 발걸음을 쉽게 떼게 해주는 좋은 방법이다.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부담감이 아니라 바쁜 현실에서도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작은 발걸음이

지금 필요한 것이다.

습관은 목표를 현실로 이루어지게 한다. 세상에 그 어떤 목표도 평소에 쌓아둔 습관과 실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꿈이 너무 크다 보면 꿈 뒤로 숨기가 쉽다. 꿈이 클 수록 한 발자국 떼기가 어렵다 너무

멀고 어렵게 느껴진다. 시작도 하기 전에 꿈이라는 거대함에 압도 당하지 말고, 차근차근 작은 것부터

해보는 것이다. 꿈만 꾸다가 현실에서 도태되느니 당장의 현실에 충실한 일개미가 되는 편이 현명하다.

인간은 완벽을 쫒는 존재이지만 완벽한 인간이란 단 한명도 없다.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완벽함을

쫒느라 세월을 흘려 보내기에는 오늘 하루, 바로 이 순간이 우리에겐 너무 소중하다.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해서 못 한다. 완벽함은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내가 조금씩 키워 나가는

것이다. 어제의 나와 꾸준한 차이를 만드는 것 그것이 습관이다.

매일 할 수 있는 일을 해낼 때 삶은 가장 빛난다. 조금씩 바꾸면 내일은 더 나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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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 현대지성 클래식 31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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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기준에 대한 논쟁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계속된 질문이고 숙제이다. 철학의

여명기로부터 최고선에 대한 문제 다시말해 도덕성의 기반에 관한 문제는 사변철학의 주요 문제로

간주되어 왔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이다. 그 옛날 젊은 소크라테스는 늙은 프로타고라스의 말을

듣고서, 소위 소피스트의 대중적 철학에 반대 의사를 표시하면서 공리주의 이론을 펼쳤을 정도로

공리주의의 역사는 깊다. 테스형(요즘은 소크라테스를 이렇게 부르는 것 같다)의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옳고 그름의 기준에 대해 어느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어 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공리주의는 바라보는 시선 따라 추구하는 바가 확연히 달라진다. 공리라는 단어는 쾌락이라는 단어

앞에 놓이면 아주 무미건조하게 되어버리며, 반대로 쾌락이라는 단어는 공리 앞에 놓이면 너무

관능적이 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에피쿠로스에서 벤담에 이르는 철학자들은 공리를

쾌락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것으로 본게 아니라 공리를 쾌락(즉 고통으로부터의 면제)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그들은 유익한 것 대 유쾌한 것, 유익한 것 대 장식적인 것, 이렇게 맞대응 시킨것이 아니라

유익이 곧 유쾌한것이요 장식이라고 즉, 이 셋을 다 같은 것으로 보았다. 사실 '공리주의는 구체적

형태의 쾌락 ' 가벼움, 아름다움, 장식, 오락 등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사상이다'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고 실제로 대부분은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공리주의의 삶의 이론은 고통 없음과

쾌락은 삶의 목적으로서 바람직한 유일한 것들이며 모든 바람직한 것들(다른 철학의 입장에서와

마찬가지로 공리주의에서도 바람직한 것은 아주 많다)은 그것 자체에 들어 있는 쾌락 때문에

바람직하고, 또 고통 없음과 쾌락을 약속하는 수단이기에 바람직하다.

밀의 공리주의는 행복주의 혹은 질적 쾌락주의(어떤 쾌락은 그것이 제공하는 쾌락의 양과는

무관하게 다른 쾌락보다 더 좋다)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유다이모니아(행복)와 깊은 관련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유다이모니아에 이르는

세 단계는 첫째 인간의 행위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이다, 둘째 행복은 이성이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셋째 이성에 따른 행동은 모든 전통적 가치의 핵심적 특징이다 인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인간들 사이에서 뭔가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고, 그 행동은 행복을 추구하는 쪽으로 맞춰져야

한다고 말한다. 결과론적으로 우뚝 솟은 산(행복)은 하나인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밀이

그것을 쳐다보는 방향만 약간씩 다른 것이다.

행복의 구성 요소들은 아주 다양하고 각 요소는 여러 요소들이 하나로 뭉쳐 있을 때만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도 바람직하다. 공리주의는 어떤 특징적 쾌락이나 어떤 고통으로부터의

면제를 행복이라는 용어로 묘사되는 어떤 집단 적인 것의 한 요소로만 바라보지는 않고, 또 그것들이

그런 요소 이기 때문에 바람직 하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그것들은 수단인가 하면 동시에 목적의

일부분 이기도 하다. 공리주의의 이론이 따르면 미덕은 원래 자연적으로 그 목적(행복)은 아니고 단지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은 부분이다. 사람들이 미덕을 행복으로 가는 수단이어서 애지중지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원하고 또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4장)

이종인의 작품해설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이 책은 철학하기(doing philosophy)를 유도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 책 어렵다. 쉽게 책장이 안 넘어가고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많다. 그러나 읽는

동안 거듭 생활 속의 사건들과 사례들이 떠오르고 생각하게 만든다.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철학은

'죽음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했고, '국가'에서 '가장 좋은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과 밀의 생각을 종합하면 '철학은 인생을 멋지게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된다. 이 책을 읽고

밀의 주장에 질문을 던지고, 이어서 그 대답을 스스로 생각해 내는 것, 이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철학 하기인 것이다. J. S. Mill은 쾌락의 질적 차이를 주장하며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인간이 더 낫다. 만족하는 바보 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더 낫다'라고 말한다.

생각이 많아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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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부르는 노래
최병락 지음 / 두란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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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의 삶은 단 한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P213

주님을 관념적으로 이해하지 말고 지금 실제로 내 곁에 계심을 믿고 어디에 있든지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갑시다. P175

터널이 깊어지면 그만큼 출구가 가까워진다는 말이 있다. 지금 우리는 그 긴 터널을 지나며 혼란의

시기를 마주하고 있다. 회중 예배가 멈춰선 자리에 온라인 예배가 등장했고, 사역이 멈춰선 자리에는

비대면 사역이 들어섰지만 감격도 기쁨도 없어진지 오래고 우리는 여전히 목 마르다. 출구가 가깝다는

것을 기대하며 힘겹게 한발씩 내딛어 보지만 아직은 요원한 이 시기에 감옥에서 조차 '나는 지금도

달려 간다'고 이야기하는 바울의 삶과 상황을 통해 이 시대를 향한 주님의 소망하심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빌립보서는 옥중서신(저자는 주 안에 있다는 의미로 주중서신이라고 말한다)이지만 기쁨의 서신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바울의 상황은 감히 기쁨이라 말하기 힘든 상황과 고난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바울은 기쁨의 근원과 이유에 대해 분명한 믿음을 가진다. 빌립보서를 통해 바울이 일관되게

말하는 기쁨은 결코 상황에 있지 않다. 주어진 상황을 뛰어 넘어 개입하심과 간섭하심에 대한 확신이

그를 기쁨으로 이끈다. 이러한 확신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변화시킨다. 바울은 주남 안에

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세상이 주는 어떤 것보다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하다.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주님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며 진리를 아는

삶이라는 것이다. 진리를 알기에 진리를 살기에 주님과 함께 있는 것 만으로 기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은 그 자체가 감옥이기에 주님과 함께 산다는 것은 진리를

아는 자 만이 누리는 특권이자 행복인 것이다. 바울 역시 자신이 주님 안에 거한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바울에게는 분명한 정체성이 있었다. 자신이 누구의 것이며 누구에게 속해 있으며 누구를 믿는지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다. 이러한 확신은 그를 어떠한 상황 앞에서도 당당하게 만든다. 요즘 우리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부분이다. 자신들의 하는 행동들이 부끄러운 것이지 예수가 부끄러운 것은 아닌데 자신뿐만

아니라 예수도 부끄럽게 만든다. 그런다보니 정체성에 자신이 없다. 정체성이 모호하다 보니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당당하게 밝히지 못한다. 어느 영화에서 보았던 반달(건달도 민간인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라는 의미)에 회색인들이 너무 많다.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적당히 불의와 손잡고, 적당히

편의주의에 편승해 자신들이 믿고 싶은 예수만 믿는다. 이젠 가면을 벗을 때다. 직분에 목숨 걸지 말고

연극을 집어치우고 진짜가 되어야 한다. 바울은 그런 진짜를 살았다. 그렇기에 기쁨을 노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대학시절 한경직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직분은 그 만큼 더 봉사하라고 주시는 것인데

왜 다들 직분을 받으면 그만큼 더 남에게 봉사를 시키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을 기억해 보자. 주님은

결코 우리에게 무작정 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항상 먼저 행하시고 먼저 본을 보이시고 '너희도 이와 같이

행하라'고 하셨다. 직분은 계급이 아니다. 제발 정신들 좀 차렸으면 좋겠다.

이 책은 세상과의 적당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읽었으면 좋겠다. 줄타기는 이제 그만 마치고

주님 안에 서는, 주님과 함께 사는 그런 신앙인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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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배한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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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나의 부끄러운 민낯을 만난다. 북한산 꼭대기에 서 있는 비석을 정상 표시석으로 알고 있었던

나에게 함께 했던 분(이 책에도 등장하는 분)이 그 비석이 신라의 정복 군주인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정복한 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며 정상의 이름인 비봉이라는 명칭도 이 비석에서 유래했다고

말씀해 주셨을 때 얼굴이 화끈거리며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사실 별 관심이 없었기에 유심히 보지도

않았고 그저 산 정상에 늘 서있는 정상 표시석 정도로 생각했던 나에게 이 일은 사물에 대한 관심과

집중을 알려준 그런 계기가 되었다. 전란을 겪으며 손상 된 비석의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현재는 재현품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비석이 무려 국보 제3호다.

국보의 맏형인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넓이 10m, 높이 4m 크기의 발가벗고 춤을 추는 나체의 사람과

거북, 물고기 그림등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절벽 윗부분이 처마처럼 튀어나와 비에 젖지 않는 구조여서

장구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보존 상태가 훌륭한 문화재다. 암각화는 말 그대로 바위 그림이다. 제작

기법은 쪼기, 갈기, 긋기, 돌려 파기 등이 사용됐으며 다양한 그림들이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아쉬운 점은 이렇게 역사적 가치를 가진 작품들이 우수기, 갈수기가 되면 댐의 수위에 따라 암각화가

수중에 잠겼다가 노출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빠르게 훼손되어 5000년 이상을 굳건했던 암각화가 수십년

이내에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렇게 소중한 문화재는 지켜야 할텐데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우리 인쇄사의 불멸의 업적으로 불리는 해인사 대장경판(국보 제 32호)의 보존은 말 그대로 기적이다.

고려때 국가적 환란을 맞아 민심을 결집하고 불법의 힘을 빌려 적을 물리치기 위해 국가 사업으로 불교

경전을 종합하며 벌인 대장경 사업은 1011년 거란의 침입을 계기로 시작됐다. 경판에 새겨진 글자는

5,200만자로 추산되고, 경판을 모두 연결하면 길이가 69km에 이르고, 경판에 들어간 나무수는 1만 -

1만 5000그루에 이르며, 경판을 새기는데 동원된 연인원은 13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측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를 가졌다. 경판은 방대하기만 한게 아니라 정교하기까지 해서 글자의 배열이 한 사람이

쓴 것처럼 가지런하다. 이에 대해 금석학의 대가인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신선의 필체'라고 감탄하기로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방대한 경전임에도 오탈자는 물론 내용상의

오류도 찾을 수 없다. 인쇄물이 아닌 목판이 온전한 채로 남은 것은 전 세계적으로 해인사 대장경판이

유일하다.

국보는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에서 역사적, 예술적, 학문적 가치가 크거나 제작연대가 오래되고

특히 그 시대의 대표적이거나 제작의장이나 제작 기술이 우수하고 유래가 적거나, 형태 품질 제재 용도가

현저히 특이하고 특히 저명한 인물과 관련이 깊거나 그가 제작한 것을 문화재위원회가 심의를 거쳐

지정한다. 쉽게 말하면 '보물 중에 보물'이라는 말이다. 이 책에는 국보와 각각의 역사적 순간들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나 토막 상식으로 제공하는 '국보 신고와 보상금'과 '국보의 가격'과 국보

연구의 선각자인 고유섭의 이야기는 흥미롭고 정말 토막 상식 다운 효과를 가졌다.(이를 토대로 살짝

잘난척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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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처럼 가볍게 살아라 - 남들 덜 신경쓰고, 나를 더 사랑하며 진정한 행복을 찾아서
마스노 슌묘 지음, 강정원 옮김 / 슬로디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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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망상(莫妄想)'.

아주 오래전에 들었던 선어(禪語)를 이 책에서 만났다. 한참 야망에 불타고 욕망에 사로 잡혀 있던

그때 나이가 지긋하신 보광사 말사에 계시던 노스님이 해주신 말씀이다. 하나의 망상에서 벗어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듯이 인생은 지고 있는 짐을 하나씩 내려 놓으며 걸어가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이 책에서 다시 만났다. 서양 속담에서도 말하듯 '지속의 힘'은

위대하다. 끊이지 않고 멈추지 말고 실천하다 보면 한결 가벼워진 자신과 평온해진 마음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삶에는 항상 이상과는 다른 '현실의 나'가 존재한다. 사실 양자의 차이를 좁히기는 쉽지않다. 삶에서

이상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이상이 이상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헛된 꿈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종종 우리는 '이상의 나'에게 '현실의 나'가 열등감을 가지는 자기혐오를 겪게 된다.

'각하조고(脚下照顧)'라는 말이 있다. '자기 발 밑을 응시하라'는 의미를 가지는 선어이다. 발밑을

응시한다는 것은, 한 걸음을 내디디는데 필수 조건이다. 설령 작은 한 걸음이라도 할지라도 이상으로

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벌어진 간격으로 고민할 필요도, 자기혐오에 빠질 필요도 없다. 한 발을

내딛어야 다음 발을 내딛을 그 곳이 보인다. 이상은 머리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함에 있다.

뒷모습이 멋지다는 말이 있다. 인생은 어차피 냉혹한 승부의 세계다. 승부의 세계에는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존재한다. 뒷모습이 멋지다는 것은 패배를 순순히 인정하는 태연함에 있다. 태연하다는 것은

평정함을 말한다. 비록 패배 했다고 할지라도 평정함을 잃지 않는 것이 뒷모습이 멋진 사람이다. 상황에

따라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승리와 패배를 뛰어 넘어 진솔하게 자기 사람을 사는 것 이것이 영원히

지지 않는 방법이고 이렇게 사는 이의 뒷모습은 멋지다.

'지금'은 언제나 중요하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그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즉금(即今), 당처(富䖏),

자기(自己).' '지금, 당장, 그 장소에서'라는 뜻이다. 그 순간에, 그 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반드시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한결 같이 하는 것이다. 늘 지금 해야 할 일을 정성으로 해나가는 것,

이러한 것의 축적이 삶이다. 해야 할 자기의 일에 정성을 기울이고 전력을 집중하다 보면, 남과 비교할

겨를이 없다. 시점을 '지금'에 똑바로 두고 자신을 통째로 투입하면 '비교하지 않는 삶'을 누리게 된다.

상대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나로 바뀌면 상대를 보는 눈이 변화된다. '이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상대를, '이런 사람인 것이다'라고 바뀌게 된다. 깨끗이 인정하면 불편하다는 의식도 불식되고 오히려

진심이 전달되고 받아 들여 진다. 있는 그대로를 그대로 인정하면 좋고 싫음이 없어진다. 남을 내 뜻대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내가 바뀔 수밖에 없다.

삶의 도처에서 길을 잃게 되었을 때, 다시 돌아오기 위한 마음의 의지가 담긴 이 책은 저자의 말대로

'처방전'이다. 마스노 슌묘 선사의 마지막 말이다. '여러분은 이 책이라는 '처방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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