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배한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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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나의 부끄러운 민낯을 만난다. 북한산 꼭대기에 서 있는 비석을 정상 표시석으로 알고 있었던

나에게 함께 했던 분(이 책에도 등장하는 분)이 그 비석이 신라의 정복 군주인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정복한 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며 정상의 이름인 비봉이라는 명칭도 이 비석에서 유래했다고

말씀해 주셨을 때 얼굴이 화끈거리며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사실 별 관심이 없었기에 유심히 보지도

않았고 그저 산 정상에 늘 서있는 정상 표시석 정도로 생각했던 나에게 이 일은 사물에 대한 관심과

집중을 알려준 그런 계기가 되었다. 전란을 겪으며 손상 된 비석의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현재는 재현품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비석이 무려 국보 제3호다.

국보의 맏형인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넓이 10m, 높이 4m 크기의 발가벗고 춤을 추는 나체의 사람과

거북, 물고기 그림등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절벽 윗부분이 처마처럼 튀어나와 비에 젖지 않는 구조여서

장구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보존 상태가 훌륭한 문화재다. 암각화는 말 그대로 바위 그림이다. 제작

기법은 쪼기, 갈기, 긋기, 돌려 파기 등이 사용됐으며 다양한 그림들이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아쉬운 점은 이렇게 역사적 가치를 가진 작품들이 우수기, 갈수기가 되면 댐의 수위에 따라 암각화가

수중에 잠겼다가 노출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빠르게 훼손되어 5000년 이상을 굳건했던 암각화가 수십년

이내에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렇게 소중한 문화재는 지켜야 할텐데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우리 인쇄사의 불멸의 업적으로 불리는 해인사 대장경판(국보 제 32호)의 보존은 말 그대로 기적이다.

고려때 국가적 환란을 맞아 민심을 결집하고 불법의 힘을 빌려 적을 물리치기 위해 국가 사업으로 불교

경전을 종합하며 벌인 대장경 사업은 1011년 거란의 침입을 계기로 시작됐다. 경판에 새겨진 글자는

5,200만자로 추산되고, 경판을 모두 연결하면 길이가 69km에 이르고, 경판에 들어간 나무수는 1만 -

1만 5000그루에 이르며, 경판을 새기는데 동원된 연인원은 13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측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를 가졌다. 경판은 방대하기만 한게 아니라 정교하기까지 해서 글자의 배열이 한 사람이

쓴 것처럼 가지런하다. 이에 대해 금석학의 대가인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신선의 필체'라고 감탄하기로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방대한 경전임에도 오탈자는 물론 내용상의

오류도 찾을 수 없다. 인쇄물이 아닌 목판이 온전한 채로 남은 것은 전 세계적으로 해인사 대장경판이

유일하다.

국보는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에서 역사적, 예술적, 학문적 가치가 크거나 제작연대가 오래되고

특히 그 시대의 대표적이거나 제작의장이나 제작 기술이 우수하고 유래가 적거나, 형태 품질 제재 용도가

현저히 특이하고 특히 저명한 인물과 관련이 깊거나 그가 제작한 것을 문화재위원회가 심의를 거쳐

지정한다. 쉽게 말하면 '보물 중에 보물'이라는 말이다. 이 책에는 국보와 각각의 역사적 순간들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나 토막 상식으로 제공하는 '국보 신고와 보상금'과 '국보의 가격'과 국보

연구의 선각자인 고유섭의 이야기는 흥미롭고 정말 토막 상식 다운 효과를 가졌다.(이를 토대로 살짝

잘난척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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