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에게는 분명한 정체성이 있었다. 자신이 누구의 것이며 누구에게 속해 있으며 누구를 믿는지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다. 이러한 확신은 그를 어떠한 상황 앞에서도 당당하게 만든다. 요즘 우리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부분이다. 자신들의 하는 행동들이 부끄러운 것이지 예수가 부끄러운 것은 아닌데 자신뿐만
아니라 예수도 부끄럽게 만든다. 그런다보니 정체성에 자신이 없다. 정체성이 모호하다 보니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당당하게 밝히지 못한다. 어느 영화에서 보았던 반달(건달도 민간인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라는 의미)에 회색인들이 너무 많다.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적당히 불의와 손잡고, 적당히
편의주의에 편승해 자신들이 믿고 싶은 예수만 믿는다. 이젠 가면을 벗을 때다. 직분에 목숨 걸지 말고
연극을 집어치우고 진짜가 되어야 한다. 바울은 그런 진짜를 살았다. 그렇기에 기쁨을 노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대학시절 한경직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직분은 그 만큼 더 봉사하라고 주시는 것인데
왜 다들 직분을 받으면 그만큼 더 남에게 봉사를 시키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을 기억해 보자. 주님은
결코 우리에게 무작정 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항상 먼저 행하시고 먼저 본을 보이시고 '너희도 이와 같이
행하라'고 하셨다. 직분은 계급이 아니다. 제발 정신들 좀 차렸으면 좋겠다.
이 책은 세상과의 적당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읽었으면 좋겠다. 줄타기는 이제 그만 마치고
주님 안에 서는, 주님과 함께 사는 그런 신앙인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