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부르는 노래
최병락 지음 / 두란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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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의 삶은 단 한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P213

주님을 관념적으로 이해하지 말고 지금 실제로 내 곁에 계심을 믿고 어디에 있든지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갑시다. P175

터널이 깊어지면 그만큼 출구가 가까워진다는 말이 있다. 지금 우리는 그 긴 터널을 지나며 혼란의

시기를 마주하고 있다. 회중 예배가 멈춰선 자리에 온라인 예배가 등장했고, 사역이 멈춰선 자리에는

비대면 사역이 들어섰지만 감격도 기쁨도 없어진지 오래고 우리는 여전히 목 마르다. 출구가 가깝다는

것을 기대하며 힘겹게 한발씩 내딛어 보지만 아직은 요원한 이 시기에 감옥에서 조차 '나는 지금도

달려 간다'고 이야기하는 바울의 삶과 상황을 통해 이 시대를 향한 주님의 소망하심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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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는 옥중서신(저자는 주 안에 있다는 의미로 주중서신이라고 말한다)이지만 기쁨의 서신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바울의 상황은 감히 기쁨이라 말하기 힘든 상황과 고난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바울은 기쁨의 근원과 이유에 대해 분명한 믿음을 가진다. 빌립보서를 통해 바울이 일관되게

말하는 기쁨은 결코 상황에 있지 않다. 주어진 상황을 뛰어 넘어 개입하심과 간섭하심에 대한 확신이

그를 기쁨으로 이끈다. 이러한 확신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변화시킨다. 바울은 주남 안에

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세상이 주는 어떤 것보다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하다.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주님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며 진리를 아는

삶이라는 것이다. 진리를 알기에 진리를 살기에 주님과 함께 있는 것 만으로 기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은 그 자체가 감옥이기에 주님과 함께 산다는 것은 진리를

아는 자 만이 누리는 특권이자 행복인 것이다. 바울 역시 자신이 주님 안에 거한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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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에게는 분명한 정체성이 있었다. 자신이 누구의 것이며 누구에게 속해 있으며 누구를 믿는지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다. 이러한 확신은 그를 어떠한 상황 앞에서도 당당하게 만든다. 요즘 우리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부분이다. 자신들의 하는 행동들이 부끄러운 것이지 예수가 부끄러운 것은 아닌데 자신뿐만

아니라 예수도 부끄럽게 만든다. 그런다보니 정체성에 자신이 없다. 정체성이 모호하다 보니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당당하게 밝히지 못한다. 어느 영화에서 보았던 반달(건달도 민간인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라는 의미)에 회색인들이 너무 많다.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적당히 불의와 손잡고, 적당히

편의주의에 편승해 자신들이 믿고 싶은 예수만 믿는다. 이젠 가면을 벗을 때다. 직분에 목숨 걸지 말고

연극을 집어치우고 진짜가 되어야 한다. 바울은 그런 진짜를 살았다. 그렇기에 기쁨을 노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대학시절 한경직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직분은 그 만큼 더 봉사하라고 주시는 것인데

왜 다들 직분을 받으면 그만큼 더 남에게 봉사를 시키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을 기억해 보자. 주님은

결코 우리에게 무작정 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항상 먼저 행하시고 먼저 본을 보이시고 '너희도 이와 같이

행하라'고 하셨다. 직분은 계급이 아니다. 제발 정신들 좀 차렸으면 좋겠다.

이 책은 세상과의 적당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읽었으면 좋겠다. 줄타기는 이제 그만 마치고

주님 안에 서는, 주님과 함께 사는 그런 신앙인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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