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가 내 부엌으로 걸어 들어왔다 1 하루키가 내 부엌으로 걸어 들어왔다 1
부엌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모임 지음, 김난주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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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참 대단한 인물이다. 그의 작품의 세계는 독특한 그 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하루키의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들만의 행복한 시간을 위한 요리를 만드는 각각의

방법들에 대해 적은 글로 다양한 요리들을 선 보인다.

 

특별히 눈에 들어 온 요리는 정말 별것 아닌 "소고기, 양파, 피망 볶음"이라는 요리이다.

마치 심야식당에 늘 찾아와 프랑크 소세지를 시켜 먹는 사람처럼 나에겐 정말 특별한 요리인데 

놀랐던 것은 지금까지 내가 해 먹었던 방식과 정말 똑 같다는 것이다. 하물며 마지막에 맥주를

가볍게 끼얹는것 까지..

보는 내내 먹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하고 결국 마트로 달려가 재료를 준비하고 열심히 만들어서

정말 오랫만에 맛있는 주말 점심을 먹기도 했다. 소고기의 달콤함과 피망의 아삭함과 숙주의 부드러움과 양파의 매콤달콤함이 어울어져서 나오는 맛에 맥주로 잡내를 제거한 소박하지만 행복이 담겨 있는 요리, 20대의 유학시절 너무 배가 고파서 만들어 먹었던 첫번째 요리이자 사랑하는 사람에게 처음으로 만들어준 추억이 담긴 "소고기, 양파, 피망 볶음"

 

이책을 통해 그 때의 아련한 추억과 군침 돌게하는 기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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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처를 축복이라 부르기로 했다 - 오늘, 지금, 여기서 행복
이규현 지음 / 두란노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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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축복 어떻게 보면 서로 이질적이고 연합할 수 없는 단어들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상처를 축복을 향한 시작점이라고 볼 수도 있고 상처 그 자체를 이미 축복과는

거리가 먼 아픔으로 기억 할 수도 있으며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모든 것의 결론으로 "완전한 사랑"을 제시한다.

완전한 사랑, 참 좋은 말이다. 참 좋은 이상이다.

그런데 과연 가능할까? 어떻게 하는것이 완전한 사랑일까?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책을 읽어 가면서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다.

"오늘, 지금, 여기서 행복이다."

행복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바로 지금. 이곳이 행복이고 삶이다.

행복은 미래에 존재하는것도 과거에 존재했던 것도 아닌 지금 이곳이 바로 행복이다.

그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과거에 연연해 하면서 추억을 곱씹으며

사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고 미래의 행복을 꿈꾸며 현재의 행복을 무참히 밟아 버리거나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러면 무엇 할 것인가. 지금 난 행복하지 않은데..

 

책을 읽는 내내 이 구절이 마음에 걸렸다.

지금 나는 행복한가? 과연 지금을 살고 있는 나는 행복을 누리며 사는가?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아픔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완전한 사랑" 뿐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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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인문학 트렌드 -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김시천 기획.대담, 박석준 외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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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하기만 할것 같은 인문학을 쉽게 풀어 써내려가며 여러가지 학문과의 접목을 시도한 이 책은

인문학의 트랜드를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것 같은 생각에서 읽기 시작했다.

기대했던 여러가지 학문적 토론과 대화들을 통해 다양한 인문학의 스펙트럼을 확인 할 수 있었고

특별히 음식 인문학이라는 테마는  나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 했다.

"식사로서의 음식은 일상이지만, 문화와 역사로서의 음식은 인문학이다"라는 선언을 통해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음식들이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다양한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은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기도  함을 알려준다. 한끼의 식사를 해결하기 어려웠던 시절의

음식은 삶 그 자체였고 형편이 조금 나아지고 나서의 음식은 삶의 지표였고 먹는것이 풍족해진

지금의 음식은 건강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음식의 의미들은 각 시대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기도 한다.

또한 "폐기율"이라는 단어를 통해 동서양의 음식을 대하는 모습의 차이를 보여 주기도 한다. 소를

예를 들자면 동양에서는 소의 고기 부위 외에 곱창과 막창 같은 내장도 요리해서 먹고, 뼈는 고아 먹고 심지어 소의 귀지 마저도 약재로 사용하지만, 서양에서는 머리와 다리,꼬리등을 음식의 재료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먹을 수 있는 것을 결정하는 기준이 나라와 문화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각 문화권의 특성에 따라 혐오 음식이 구한 음식으로 둔갑하기도 하고 버려지는 음식이 고가의 음식으로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이는 종교에 따라서도 달라지기도 한다. 물론 포괄적의미에서 종교도 문화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렇듯 음식은 각 나라와 문화권의 상황에 따라 음식으로 혹은 버려지는 폐기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음식을 어떤 자세로 먹고 만드냐에 달려 있는것 같다. 음식 인문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음식은 사회상이며 문화상이며 현실적 세계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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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이퍼의 성경과 하나님의 영광
존 파이퍼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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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교회로서의 위치를 잃어 버려 세상의 지탄의 대상이 되어버린 현실을 마주하며

무너져버린 강단의 초라함을 어떻게든 세워 보려 애쓰는 많은 목회자들이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이 책을 대한다.

말씀이 살아 있지 않은 교회는 이미 교회로서의 가치를 잃은 것이다. 말씀이 선포 되어야 할 강단에서 신변잡기나 심리와 상담 위주의 사람들의 감성만을 자극하는 연설들이 반복되는 한 교회는 자정의 의지마저 잃어 버리게 될 것이다.

 

파이퍼는 칼뱅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마치 내게 빛이 확 비치는 것처럼...이렇게 참된 경건의 빛과 지식을 꽤 받고 나니". 말씀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위엄을 경험하고 나니 그의 삶은 마치 어둠 가운데 있던 캄캄함이 갑자기 비쳐드는 빛에 힘을 잃어 버리듯 환해 진다라는 것이다. 이것이 말씀의 능력이다. 말씀은 분명 "빛"으로 오셨다. 그가 빛으로 오셨기에 세상의 어둠은 그를 감당할 수 없고 쫒겨 갈 수 밖에 없다.

이전 까지만 해도 말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엄이라는 빛과 영광의 아름다움이 죽어 있었다면 그 빛을 통하여 새 생명을 주셨다는 것이다. 죽음에서 살아나 눈을 떴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고후4:4)라고 표현하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성령의 내적조명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할 것이다. 말씀에는 자체의 영광이 담겨 있고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과 그 모든 자취이며 그 영광이 우리에게 확신을 준다. 이러한 확신을 통해 믿음의 길이 견고해 지며 흔들림 없는 바른 믿음이 나아오게 된다.

 

현실의 암울함과 어둠에 한탄만 할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두껍게 쳐져 있는 커튼과 장막을 걷어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내게 빛이 확 비치는.."그 찬란한 영광을 경험하게 된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움직여야 한다. 스스로에게 두껍게 쳐져있는 많은 장막과 어두움에 대해 담대히 선포해야 한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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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관을 돌파하는 기도 - 믿음이 두려움을 삼킨다
강준민 지음 / 두란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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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참 어려운 길이다.

사람들은 정답이 없기에 참 어려운 길이라고 말하고 예수를 아는 이들은 예수를 닮는다는것 아니 흉내라도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인생 참 어렵다고 말한다.  

그런데 주님은 항상 그 어려움 속에 길을 만들고 계신다. 그 길을 발견하는 사람은 그 길을 걸아가기만 하면 된다. 다른 어떤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가진 짐 마저도 내려 놓고 그냥 앞서 가신 그 길을 따라 가면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길이 어렵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난관의 시기보다는 그 방법에 초점을 맞춘다.

얼마나 빨리 통과하느냐가 아닌 어떤 방법으로 통과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야곱을 깨뜨리실 때도 그러하셨다. 낯선곳에서 오히려 힘과 능력을 겸비하여야 버틸 수 있는 이방의 땅에서 그에게 연약함을 선물로 주신다.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과는 전혀 다른 처방이다. 그러나 여기에 진리가 있다. 그 연약함 만이 인간의 교만함과 우쭐거림을 꺽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그렇게 해야만 하나님께만 매달릴 수 있기에 하나님은 그 방법을 사용하신다. 그분의 방법은 항상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는다. 그 연약함 뒤에 숨겨진 보물인 "동행"을 발견한 야곱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이 아니면 안된다는 아주 지극히 작아보이지만 더할나위 없이 정확하고 큰 사실을 그는 연약함에서 발견하게 된다.

우리의 인생도 그런것 같다. 우리의 교만함은 때론 하나님 보다 앞선다. 마치 하나님을 요술램프에서 나오는 요정처럼 혹은 ATM기에서 배출되는 현금 처럼 생각해서 자신의 마음대로 하려고 하고 잘 안되면 하나님이 안계신것 처럼 쉽게 변절해 버린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들의 삶이 다르다.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이고 철저하게 하나님이 우선이다.

그렇게 살다 보니 세상으로 부터는 조금은 불편한 존재들이 되어 버렸지만 그들은 그것을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있기 때문이다.

이책의 내용에 보면 "포로를 놓아 주어라"라는 글이 나온다. 스스로에게 사로 잡혀 있는 많은 이들에게 혹은 나에게 적절한 표현이다. 무언가 하나님이외의 것을 향해 너무도 많은 시간과 생각을 쏟아 부었기에 스스로가 의식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포로가 되어 버려 노예가 된 어리석은 영혼들을 향해 주님은 여전히 "포로를 놓아주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밧세바와의 간음을 통해 첫 아들을 잃게 되는 다윗을 이야기 한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사랑과 용서에 대한 감사가 나오는 대목이다.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무수히 많은 영적 간음들을 저지르다 보니 이미 무뎌질대로 무뎌진 우리의 마음과 가슴에 하나님은 날카롭게 말씀하신다. "포로를 놓아 주어라." 방법은 간단하다. 내려놓고 포기하고 무릎으로 나아가 고백하면 된다. 그리고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처럼 다시는 그것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그때 은혜가 임하는 것이다. 그때 용서가 임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한 행복을 맛 볼 자격을 지닌 그분의 자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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