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면 충분하다 - 컨셉부터 네이밍, 기발한 카피에서 꽂히는 멘트까지
장문정 지음 / 쌤앤파커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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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 말에 말 한마디에 천냥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말에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말해야 하나? 어떻게 말을해야 상대방으로부터

호감을 갖게 하고 내가 원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안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별히 판매의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며 터득한 저자의 노하우는 전가의 보도와

같이 날이 바짝 서 있다. 정곡을 찌르기도 하고 비틀어 우회하기도하며 때론 무식하리 만치

저돌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상대방의 혹은 고객의 방심을 허무는 기가 막힌

타이밍에 발휘되면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갖게 된다.

저자의 말 중에 이런말이 있다.

"내가 쉽다고 느껴야 고객도 쉽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쉽게 설명하지 못하면 그 상품은

그냥 어려운 상품이다. 어렵고 이해 안되는 상품을 사려고 하는 고객은 없다. 때문에 상품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그 상품을 가장 쉽고 정확하게 고객에게 설명해야 한다. 이 말이

중요하다. 판매자가 상품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지식이 있어야만 그 상품의 특장점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할 수 있다. 저자는 이것을 휴대폰의 발전 과정을 통해 설명한다. 정확한 설명

이라고 해서 고객이 알지 못하는 단어들을 사용해서 설명하기 보다는 그것을 고객이 알 수 있는

단어로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고 신뢰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린이라는

상상속의 동물을 의미하는 한 맥주회사의 판촉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물원의 귀여운 기린을

등장시켜 효과를 본 상황을 예로 든다. 그렇다. 소비자는 자기가 알아듣고 알수 있는 상품에 호감을 느낀다. 그 상상의 벽을 허무는 방법이 쉽게 알아듣게 설명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센스와 탁월함과 적응력에 놀랐다.적재적소 상황 상황마다. 적절한 대처와

방법들을 제시하며 자신이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나가는 능력에 감탄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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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맨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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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마이클 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온 나라가 마치 정의를 지키는 수호자가 된 양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정의를 주장하고,

정의롭게 살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냄비는 식어 버리고

어느새 정의는 글방 선생이나 주장할 만한 부정의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책을 접하며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 시각의 변화로 인한 행동 양식의 다양함을

느끼게 되었고 현재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여과 없이 펼쳐지는 일련의 행동들이 한 사람과

사회를 얼마나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헤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오물충으로 대변되는 희생양.

어쩌면 그는 우리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언제 어쩐 모습으로 여과없이 드러날지 모르는 민낯과

같은 우리의 삶을 돌아 보면 답은 간단하다. "아.. 잘 살아야 겠다." 그러면서도 투철한 사명의식인양 위장되어 한 사람의 인권과 삶마저 무참하게 짓밟아버리는 우리의 무책임함에 대해서는

분명 경종을 울려준다.

저스티스맨으로 통칭되는 인물의 글은 그것을 증명한다. 그는 자신의 평범한 삶에 대한 자괴감이

자의식 과잉의 뒤틀린 현상으로 발현되고 이는 타자의 처지에 밑도 끝도 없이 분개하여 정의감처럼 느껴지는 감정을 불사르고, 그 감정의 정체를 미처 분간하기도 전에 일방적인 옹호를 칼날처럼

내세우고, 가해의 원인일것으로 추정되는 대상을 무차별적으로 질타함으로써 자신의 자괴감을

희석하려는 비열한 다른 얼굴이라고 말한다.

살해되어 가는 그들의 단면이 드러나는 순간 모두들 벌뗴처럼 달려들어 여론 몰이와 사냥을

시작한다. 현실과 다르지 않다. 어떠한 사건이 벌어지면 마치 대단한 정의감인양 그것들 까발리고

들춰내고 사실의 검증마저도 하지 않은채 영웅이 되어 간다.

이러한 사회의 현실 앞에 던저진 이책.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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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강대상을 옮겼나 - 목회답답증에 걸린 이들을 위한 진단과 처방
톰 레이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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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강대상을 옮겼을까?

이 질문에 대답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답 할 수 없었다. 한국 교회의 강단은 분명 강대상을

옮긴 이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 할 수 없다. 최소한 그 조직사회에서

살아 남으려면 어느누구도 말해서는 안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저자의 글에서의

강대상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마천루와 같이 높게, 바벨과 같이 거창하게 쌓아 올려진 철옹성과도

같은 우리의 강대상을 누군가 옮겨야 하지 않을까? 마치 누군가에게 침입이라도 아니 조그마한

흠집이라도 날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 격한 반응을 보이며 어마무시한 방어기재를 발휘하는 그

강대상의 권위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주님은 광야에서도 거리에서도 작은 배에 타고서도

얼마든지 말씀을 전하고 그것이 복음이 되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움직였건만 우리의 거룩을 가장한 강대상은 그냥 높게 만 솓아 있는 모래성과도 같아 위태하기까지 하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 가졌던 세상을 향한 계획과 기대가 어느새 자신의 교회와 성도를 향한 프로그램들로 도배를 하기 시작한다. 소위 말하는 머릿수를 늘리는데 급급해 지기 시작한다. 목회자의 마음은 조급해지고 점점 세상의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시작한다. 말도 안되는 이런 저런 이름이 붙은 프로그램들이 교회에 들어오면서 말씀에 대한 공부와 기도의 모임은 현저히 그 수가 줄어 든다. 사람들이 재미 없어 한다가 그 이유다. 어느새 교회 안에서도 인본주의가 신본주의를 넘어서 버렸다. 최고의 가치와 절대 가치 마저도 자신들의 기준과 부합 되지 않으면 여지 없이 난도질 하기 시작한다.

이젠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처음의 그 자리로 돌아 가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이러한 물음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상황의 호전은 당신에게서 시작된다. 회복은 당신에게서 시작된다. 아니 성경적으로 정확한 표현을 쓰자면, 이 교회들에서 하나님은 한사람을 회복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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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떠나는 나날 - 사랑이 끝나고, 30일 동안
하워드 브론슨.마이크 라일리 지음, 선우윤학 옮김 / 큰나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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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모두는 이별을 한다.

어떤 형태의 이별이든 그 순간 아프다. 사랑했기에 아프고, 좋아했기에 아프고,

또한 미워했기에 아프다. 그 아픔을 회복하고 치유하는데 여러날이 소모된다.

안녕이라고 말하고, 두사람이 다시 만날 가능성이 닫히고, 차갑게 이어지는 침묵들과

먹먹함은 이별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표적 표현이다. 이 책은 그런 이별에

대한 치유와 회복 내지는 극복을 다루고 있다.

 

내용중 신뢰하기라는 챕터가 있다.

이별의 대상에 대한 되돌아 봄이다. 정말 그를 믿었는가? 혹은 그냥 믿는 척만 했는가?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확신은 진짜인가? 라는 물음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어찌보면

조금 아플 수 있는 시간을 보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뢰를 바탕으로하는 관계는

조금은 더 믿을 수 있는, 조금은 더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기 때문이다. 누가 먼저

신뢰의 끈을 끊어 버렸는지에 대한 물음은 어쩌면 누가 먼저 사랑을 멈췄는지에 대한

반증일 수도 있다. 마주치기 싫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현실과의 대면이지만 여기에는

이러한 관계 점검을 통해 반복되는 실패를 조금은 미연에 방지해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그러면서 자신 스스로 조금은 관대해 질 필요가 있다. 상대방에 대해 그도 나와 같이 약한

존재이고 실수할수 있는 존재이고 흔들릴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조금은 더 좋은 관계가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가 사랑에 푹빠져 행동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믿음은 모든것을 극복할 수 있다.

이런 믿음이야 말로 불확실성이라는 미래임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사랑은 세상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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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예술 - 소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침묵을 배우다
알랭 코르뱅 지음, 문신원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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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침묵이 금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절제된 언어인 침묵, 오래전 일본의 지성인 엔도 슈샤쿠는 "침묵"이라는

책으로 종교적 신념과 이상에 대해 도전했던 기억이 난다. 백마디 말보다 때론 침묵이

훨씬 강한 힘을 가졌음에도 요즈음은 말하지 않으면 알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마다

자신을 밝히며 이야기하기에 급급한 것을 보며 조금은 천천히 가더라도 정도를 걷기

위한 침묵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나만의 생각을 가져 본다.

 

특별히 침묵의 절대자라는 챕터에서 소개하는 요셉의 침묵은 독특하다. 예수의 아버지인

요셉. 그는 침묵의 가장이다. 베들레헴에서 요셉은 입을 다물었고 성서속에서 요셉의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저 부인인 마리아의 말에 따르는 그냥 침묵의 아이콘이다.

심지어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성경은 말하지 않는다. 요셉의 침묵은 귀를 기울이는 마음,

절대적인 내면이다. 이 사람은 평생 예수와 마리아 만을 바라보았고 그저 자신의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한 그냥 평범한 가장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그의 삶에 절대적 침묵과 말의 자기

초월이라는 찬사를 보내며 보쉬에가 바친 침묵의 근엄함과 겸손함이라는 이중찬사를 소개한다. 

그의 침묵은 말없는 외침이고 자기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침묵이 예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다른 것이 아닌 오직 예수에게만 집중하게 한다. 어쩌면 조금은 빗나갈수도 있을 여지

마저도 막아 버린다. 그냥 예수만 이야기 할 수 있는 토대를 그의 침묵을 통해 만들어 낸다.

 

핸리 데이비드 소로의 "침묵만이 귀 기울일 가치가 있다"라는 글귀가 생각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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