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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혁명과 반혁명 사이 - 철학자 박구용, 철학으로 시대를 해석하다
박구용 지음 / 시월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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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의 혁명과 반혁명 사이]는 철학자인 박구용 전남대 교수님이 12월 8일 매불쇼에서 한 자신의 발언을 반성하고 사과하기 위해서 쓰기 시작한 책이다. 윤석열의 12.3 내란 사태 이후 국민의 힘 의원들 불참으로 탄핵안이 부결되자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 모였는데, 박구용 교수님은 매불쇼에서 '2030여성들이 정말 많이 참여했다. 여성들을 보기 위해서라도 남성들도 많이 광장에 나와달라.'는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발언을 농담처럼 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김어준 총수님의 팟빵 매거진 [월말 김어준]을 너무 잘 듣고 있고, 특히 철학 코너는 메모까지 하면서 듣고 있던 팬으로서 나 역시 박구용 교수님의 발언에 실망감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평소 '무사유와 무감각'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과 잔인함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동안 여성들이 받아온 차별과 억압에 대한 무감각 때문에 나온 발언이 아닌가 싶어 실망이 더 큰 면도 있었다. 박구용 교수님은 매불쇼에 출현한 다음날 김어준 총수님의 [겸손은 힘들다]에 출현해서 자신이 한 발언을 사과하고 연구실에 스스로를 감금시켰다. 광장에 나와야 하는 시기에 광장에 나오지 못하고 자신이 제일 좋아하던 장소인 연구실을 감옥으로 만들어 10일간 셀프감금을 하면서 집필한 책이 [빛의 혁명과 반혁명 사이]이다.


  p. 159 나 역시 오이디푸스처럼 자신의 눈을 파는 반성을 해야만 합니다. 지체된 도덕감각에 대한 처벌을 달게 받아야 합니다. 여기에 생각이 이른 그 순간부터 이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동안 쉬지 않고 그동안 해왔던 이야기를 되새기며 이 책을 쓰고 있습니다. 이 책은 지체된 도덕감각에 대한 처벌로 혁명의 아침에 떠오르는 해돋이를 시민들과 함께 마주하지 못하는 한 철학자의 반성문입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은 비상계엄령을 통해 반혁명을 일으키는데, 시민들은 맨 몸으로 반란군의 폭력을 막아서고 이후 혁명을 일으킨다. 계엄이 선포된 지 한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란 수괴 윤석열은 체포조차 되지 않고 용산 관저를 요새화해서 버티기를 하고 있다. 시민들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매일, 매주 주말마다 광장에 나가 응원봉을 흔들며 윤석열 체포와 탄핵 가결을 외치고 있는데, 박구용 교수님은 지금 우리는 '혁명과 반혁명의 사이'에 놓여있다고 진단한다.


  +한국에는 세 가지 혁명이 존재했는데, 역사상 처음으로 '백성이 주권자'라고 천명한 '동학농민운동', 역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이 공화국을 지향한다고 선언했던 '3·1운동', 권위주의적 독재 체제를 끝내고 입헌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한 결정적인 사건인 '5·18민중항쟁'이다. 윤석열의 내란은 촛불혁명의 성과를 부정하는 반혁명 쿠데타이기도 하지만 '동학농민운동', '3·1운동', '5·18광주민중항쟁'을 모두 부정하는 박혁명 쿠데타이기도 하다, 한강 작가님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과거가 현재를 도운 것이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햇다고 했는데, 우리 시민들은 역사적인 혁명의 순간들과 그당시 희생됐던 시민군들을 기억하고 맨 몸으로 국회의사당 앞으로 달려갔다. 그래서 당연히 우리의 혁명이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윤석열 체포를 기다리는 매일매일이 너무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이번 12.3 내란 사태에서 제일 화가 나고 분한 것 중 하나는 정치적인 계산을 하느라 머리 굴리고 있는 최상목 권한대행과 윤석열 체포를 저지하고 정광훈 일당의 집회에 나가 머리를 조아리는 국민의 힘 의원들의 행태이다. 한나 아렌트는 나치 독일의 SS장교로 홀로코스트의 핵심 설계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지켜보고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다. 아이히만은 다정한 남편이자 자상한 아버지였지만 유대인을 가장 빨리 학살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운 악마이기도 하다. 아이히만은 자신에세 내려온 명령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명령을 수행했을 경우 자신이 받을 이익을 계산하기만 했다. 목적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사유하지 않고 계산만 하는 사람은 누구든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한나 아펜트의 '악의 평범성'의 개념인데, 지금 현재 최상목 대행과 국민의 힘 의원들 역시 내란의 목적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내란 사태 이후 어떻게 해야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이 연장될 수 있을지 계산만 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악'이다.


  P.54 무사유는 단순한 '생각 없음'이 아닙니다. 무사유는 정신의 소극적인 활동도 아니고, 의식의 무기력증도 아닙니다. 무사유는 적극적인 무시의 활동입니다. 이 적극적인 무시의 활동을 하는 것이 도구적 이성입니다. 한마디로 이익계산에 혈안이 된 독적 이성의 활동이 무사유입니다. 이 맥락에서 아이히만은 명령의 정당성을 따지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이익 계산은 능숙하게 수행한 악마, 가장 악랄한 악마였습니다.


  +윤석열은 후보 시절 "극빈의 생활을 하고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은 자유를 모른다."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자유는 사람이면 누구나에게 부여되는 권리인데 윤석열은 자유를 권리가 아니라 자격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과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선별이 가능하다. 윤석열은 자유의 화신을 자처하며 자유의 중요성을 부르짖지만 본인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유라는 가치에 반대하는 세력이라며 적으로 규정하고 탄압한다. 이번 비상계엄령 당시 계엄선포문을 보면 윤석열이 생각하는 자유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데, 적이라고 규정한 상대편의 자유는 아예 무시하고 윤석열 본인만이 누릴 수 있는 가치를 자유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메타인지는 '내가 인지하고 있는지를 인지하는 것', 즉 자기 객관화의 문제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총선에서 참패한다면 '내가 국정수행을 잘못 해서 참패를 했구나'라고 생각하고 국정 기조를 바꾸려고 하겠지만 메타인지 능력이 아예 없는 윤석열은 '나는 잘했는데, 민주당이 부정선거를 해서 참패했어. 언론이 문제니 언론을 통제해야 겠어.' 라고 생각한다. 메타인지 능력의 부족으로 윤석열은 비상계엄령까지 생각하고 행동에 옮겼고, 지금도 가상에 세계에서 자신은 자유의 화신이자 억압받는 피해자라고 규정하며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끌어모으고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기득권의 자리에 메타인지가 부족한 사람이 너무 많이 분포되어 있다는 게 아닐까. 나는 이번 내란 사태를 통해 우리가 그동한 생각했던 '성공'이라는 기준에 부합했던 인물상을 재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메타인지 능력이 뛰어나고 공감력이 뛰어나고 관찰자적 시점이 아닌 참여자적 시점으로 국민을 대할 수 있는 사람. 이번 기회에 싹 다 물갈이가 되고 젊은 세대가 바라는 '성공'의 기준 역시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빛의 혁명과 반혁명 사이]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와 2부가 현재 윤석열이 왜 내란을 일으켰는지, 윤석열 같은 대통령은 어떻게 탄생됐는지,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비인간적인 결정적 사건들을 통해 윤석열 정부를 분석했다면 3부에서는 빛의 혁명 성공 후 우리 사회가 만들어갈 제7공화국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2부와 3부 사이에 브릿지 챕터를 통해 제7공화국의 논리적 명제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철학이 고리타분하고 현실과 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철학은 시대를 읽고 시대를 해석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학문이다. 윤석열은 도대체 왜 안 잡혀 가는지 이 시국은 언제 끝이 날지 내란성 불면증을과 우울증을 앓고 계시는 분들이 느긋한 마음으로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면서 읽으면 너무 좋은 책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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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사회 - 왜 우리는 희망하는 법을 잃어버렸나?
한병철 지음, 최지수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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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헌 작가 그림


  불안이 사람들을 서로 떼어 놓기 때문에 모여서 함께 불안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불안은 공동체를, 우리를 만들지 못하게 한다. 불안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 고립된다. 그러나 희망은 우리의 차원을 포함한다. 희망하는 행위는 동시에 '히망을 전파하는 것', 불꽃을 옮겨 붙이는 것, '자기 주변에서 불꽃을 키우는 것'을 의미한다. 희망은 혁명의 발효제이자 새로운 것의 발효제, 즉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불안의 혁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불안해하는 사람은 어떠한 것의 지배 아래 자기 자신을 던져 넣은 사람이다. 다른, 더 나은 세상을 희망하는 행위는 행위 안에서만 비로서 혁명 가능성이 생겨난다. 오늘날 혁명이 가능하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가 희망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불안 속에 고집스럽게 머물기 때문이며, 삶이 '살아남기'로 위축되기 때문이다.

                                                                                     p.38


  희망은 '자기 안에서 힘을 만들지 않는다. 희망의 중심이 '자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희망하는 이는 타인을 향해 나아간다. 희망하는 이는 '자기'를 넘어서는 일을 신뢰한다. 따라서 희망은 믿음에 가깝다. 절대적인 절망 앞에서도 나를 세우고 심연 속에서 서 있는 힘을 주는 것은 초월성을 지닌 타자의 존재다. 희망하는 이는 자기 자신의 힘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다. 하벨은 이러한 이유로 희망이 그것의 근본을 초월적인 것에 두고 있다고, 즉 희망이 먼 것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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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서은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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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해져야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나? 


  25살에 사랑에 미쳐서 결혼을 하고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았다. 밥도 한 번 해보지 않고 시집을 갔더니 살림도 양육도, 생전 남이었다 가족이 된 시댁과의 관계맺기도 모든 게 힘들고 서툴렀다. 신랑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안되서 어린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겨가며 맞벌이를 했고 지금까지 둘째를 낳고 3개월 간 출산 휴가로 쉬었던 거 외에 단 한 번도 쉼 없이 일을 했다. 아이들 한 끼 끼니를 챙기고 그날의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한달 열심히 돈을 벌어 가계 경제가 구멍나지 않게 살림을 살고, 그저 하루, 일주일, 한달동안 해야 할 일을 잘 해내려 애써가며 살다 보니 아들은 21살이 됐고 딸은 고2가 됐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가 생겨 책을 읽기 시작했고, 좋아하는 반려동물을 들이다 보니 강아지2명, 고양이 2명 다견 가족이 됐고, 아들이 대학을 가고 딸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시간적 여유가 더 많아져 유튜브도 하고 명상 수업도 듣고 홈트로 요가도 꾸준히 할 수 있게 됐다.


  뭔가를 이루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나? 그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시간 조율을 해가며 하루 하루 버티며 살다 보니 지금에 도착해있다. "불행하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 "행복해져야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처럼, 그저 최선을 다해서 살다보니 "불행"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보통의 날들은 무탈하게 흘러갔고 가끔은 괴롭고 가끔은 기뻤다. 괴로움과 고통없이 평화로우면 다행이다 싶었고 가끔은 괴롭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은 평온한 일상이 행복이지 않나,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서은국 교수님은 [행복의 기원]에서 "인간은 행복해지기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행복을 도구로 이용한다."라고 하면서 우리는 생각보다 동물적인 본능에 의해 많은 것을 선택한다고 한다. 특히 생존에 위협을 느낄수록 본능에 더 이끌리게 되는데, 가끔 뉴스에 나오는 아이의 위험 앞에서 초증력자가 된 아빠나 엄마 역시 순간적인 본능에 이끌린 게 아닌가 싶다. 행복이라는 감정 역시 우리 뇌에 동물적으로 새겨져 있는데 특히 생존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했을 때 행복을 느낀다. 사냥을 해서 먹을거리를 확보하거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서 짝짓기 대상을 찾거나. 자기 생존을 위해 자신보다 가끔은 더 힘이 센 상대와 싸움을 하기도 하고 미지의 땅을 찾아 나서야 하는데 두려워도 한 발 내딛게 하기 위해 우리에겐 강력한 보상이 필요하고 우리의 뇌는 쾌감이라는 감정, 행복이라는 감정을 선물로 준다. 행복은 거대한 이상이나 가치, 도덕적 지침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일 수밖에 없다. 


  대신 만족감이 오래 지속되면 다시 사냥에 나서거나 미지의 땅을 찾지 않기 때문에 만족감, 행복이라는 감정은 금방 소멸되고 우리는 또 다시 보상을 받기 위해 한 발을 내딛는다. 그래서 서은국 교수님은 행복은 아이스크림과 같다고 한다.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 있으면 금방 녹아 흘러내리듯이 행복이라는 감정 역시 내가 움켜 잡았다고 느끼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는 것. 평생 원했던 일을 이루더라도 그 행복감은 아이스크림처럼 금방 흘러 내린다는 것. 로또에 당첨되고 주식이 대박나고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고 원하는 집을 사더라도 행복감은 금방 사라지고 우리는 또 다른 행복에 대한 갈망으로 불안해 하고 두려워한다. 인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행복을 위해 내 인생을 모두 투자하고 사는 건 그래서 허무하다. 차라리 사소하고 작은 행복감, 기쁨을 여러 번 자주 반복적으로 느끼며 살 때 행복하다,는 감정은 훨씬 더 오래 지속되지 않을까? '소확행'이야말로 서은국 교수님이 말하는 행복의 기원이지 않을까?

 


  결혼해서 아이들을 키우는 21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저 무탈하게 하루가 지나가길 바라면 순간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행복감을 느꼈을까. 돌이 되도록 걷지 못하던 아들이 첫 발을 내딛고 나를 향해 걸어오던 순간, 돌잔칫날 멜빵 청치마를 입고 분홍 모자를 쓰고 뛰어 다니던 딸이 다른 아이보다 빨리 걷는다며 자랑하던 순간, 행복했던 순간들이 너무 많아서 나열을 할 수가 없을 정도다. 내 인생의 무탈하다고 느꼈던 모든 순간에는 이런 작은 행복들이 가득 차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난 늘 그런 감정을 느끼며 산다. 작고 하찮아 보이지만 확실한 기쁨, 만족감, 행복. 홈트로 요가를 하면서 처음 머리서기를 성공했던 순간, 12층까지 계단을 타고 올라와 숨이 찰 때의 성취감, 어려워서 도저히 못 읽을 것 같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 유튜브를 보고 한 샐러드 파스타를 딸이 너무 맛있다며 엄지를 들어 올리며 먹어줄 때, 그리고 늘 내 옆에 머무르는 뽕이봉구초울이칠봉이. 

  서은국 교수님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기 인생의 갑이 되라고 말한다. 남들의 잣대에 신경쓰지 말고 작고 하찮아 보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보석처럼 빛나는 행복이 되어줄 일들을 하며 40대 후반 내 인생 갑으로 앞으로도 잘 살아나가고 싶다.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은 다른 것 같지만 뇌는 동일한 부위에서 이 둘의 고통을 똑같이 느낀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 타이레놀을 먹으면 이별의 상처가 조금 나아지기도 한다는데,  이십대 때 이 사실을 알았다면 사랑에 미쳐 시집을 일찍 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듯. 






  

행복의 핵심을 사진 한 장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의 내용과 지금까지의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총체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 내면 행복은 결국 이 사진 한 장으로 요약된다.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 한 마디 덧붙인다면 "The rest are details." 나머지 것들은 주석일 뿐이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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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 미투 운동에서 기후위기까지
리베카 솔닛 지음, 노지양 옮김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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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에 방영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연상연하 커플의 연애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드라마이다. 여주인 손예진과 남주 정해인의 캐미가 너무 좋았던 드라마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내게는 좀 다른 기억으로 남아있다. 커피회사 가맹운영팀의 슈퍼바이저로 근무하던 손예진은 좋은 게 좋은 거다 주의로 회사 남자 상사들의 성추행을 웃으며 받아 넘기곤 해 동료들에게 '윤탬버린'으로 불린다. 하지만 자신을 소중하게 대하는 정해인을 통해 각성하고, 상사들의 성추행을 비롯한 꼰대짓을 일절 거부한다. 손예진의 변화를 시작으로 회사 내 여직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하고 남자 직원들의 성추행 문제가 공론화되지만 여자 직원들은 성추행 문제가 더 이상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나마 가해 남성들이 처벌받기를 원했던 손예진은 그 일에 대해 침묵 당하기를 강요받는다. 이것은 과연 누구의 이야기인가?


  

  2017년 10월 할리우드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과 관련된 50명이 넘는 여성들의 증언으로 미국 내 미투운동이 촉발됐다. 미투운동은 SNS 등을 통해 성추행이나 성폭력 사건을 '#미투' 를 달아 고발했던 사회운동인데, 이 운동의 주체는 고발하는 여성이 아닌 여성들의 고발을 들어주는 우리 시민들이다. 


  2017년 이전에도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이나 성추행 사건을 고발했지만 우리 사회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가해자의 처벌을 강력하게 원하는 손예진을 찾아온 회사 측 변호사는 합의를 가장한 협박을 한다. "아직 피해자가 정해진 사건이 아니다. 성추행 사건이 공론화되면 당신 역시 비난을 피할 수 없을거다."


  1999년 이탈리아 대법원은 '청바지를 입은 여성의 성폭력' 사건 재판에서 청바지를 입은 여성의 적극적인 도움 없이는 바지를 벗길 수 없다는 이유로 피고 승소 판결을 내려 논란이 된 적이 있는데, 미투 운동 촉발 이후 피해자 여성들의 목소리에도 대중이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대단한 성취다,


  리베카 솔닛은 이런 변화를 '새로운 성당을 짓고 자명종을 울리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가 지금 맞이하고 있는 변화는 누군가 이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깨어나라고 소리쳐준 덕분이고 우리는 그들의 노동을 통해 변화를 맞이하고 깨어있는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는 거다. 그래서 이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게 됐고, 주류의 언어가 아닌 비주류의 언어로 말하기가 가능해졌다. 가부장제 사회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여성들이 언어를 갖는 일이라고 한다. 여성들이 자신만의 언어로 말하기를 시작했을 때 모든 관습과 통념은 무너지고 변화는 시작된다. 미투운동은 2011년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2012년 '아이들 노모어', 2013년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에서 이어져 2018년 '그린 뉴딜'로 이어졌다 . 주변부가 논의되다 중심으로 옮겨가는 일은 새로운 성당을 짓는 일이고, 비주류의 목소리로 말하는 이들은 자명종을 울리는 일이다. 그렇다면 보통 시민인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요즘 필사하고 있는 책 정희진 선생님의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에서 정희진 선생님은 공부하라고 한다. 여성의 일을 남성의 언어로 말하려 하는 순간 오류가 발생한다. 여성의 언어로 여성의 역사를 말하고 다음 세대 여성에게 전수해야 한다. 매 순간 공부하지 않으면 누가 여성이고, 문제인지 아닌지를 누가 정하는지를 알 수 없다고. 지금 나는 우리 시대 자명종 역활을 하는 분들의 글을 읽고 무작정 받아들이기만 하는 수준이지만 책읽기를 통해 '나의 세계'는 분명 확대되고 있다. 무엇에 분노해야 하는지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그러다 보니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고, 참견하게 된다. 이런 변화 역시 새로운 성당을 짓는데 아주 작은 일부라도 보탬이 되고 있는 거겠지, 나는 연대란 기꺼이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공부하자.




  


이 건물의 자재는 우리의 아이디어와 희망과 가치이며 이는 우리의 대화와 에세이와 사설과 주장에서 나왔다. 누군가의 슬로건, 소셜미디어 메세지, 책, 저항 운동, 시위 또한 재료가 되었다. 우리는 항상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에 대해 말을 꺼냈고 자연, 권력, 기후 이야기를 하면서 이 세 요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주장했다. 또 다른 사람은 공감과 연대, 인내, 협동과 집단행동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했다. 공정, 평등, 가능성을 말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처음에는 크지 않은 개별적인 목소리였고 먼저 도착한 사람들의 주장이었으나 점차 집단이 함께 추구하는 사업이 되었는데, 한 사람이 말하면 중요해 보이지 않지만 백만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말하고 그들의 말을 각자의 세계관과 매일의 행동에 적용하기 시작하면 힘을 얻는다. 이 구조 안에 살고 있는 우리도 점점 성장한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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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5-29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글 잘 읽었습니다 요새 저 밥누나 보는 중이거든요!! 전에 보다 말았었어요 그래서 더 잘 읽었습니다 뒤에 그런 내용이 나오는군요

편독 2024-06-07 14:23   좋아요 0 | URL
약칭이 ‘밥누나‘군요. 김은 작가님 작품이 제 취향에 맞아서 밥누나도 재미있게 봤고 봄밤도 재미있게 본 드라마입니다. 미투를 다루긴 하지만 깊이있게 다루기 보다는 여주의 변화, 자기 성장의 소재 정도로만 사용되고 끝나긴 하는데, 멜로 드라마에서 미투를 다뤘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곡 2024-06-07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밥누나 뒤에 방송한 봄밤을 먼저 보았는데요 거기에는 가정폭력이 나왔지요 네 말씀대로 소재로 쓰인 것만으로도 일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도시인의 월든 - 부족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태도에 대하여
박혜윤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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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1845년부터 1847년까지 2년간 사회를 떠나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아갔던 시간을 기록한 에세이 [월든]을 출간한다. [월든]은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고전인데, 이 책을 잘 읽는 방법은 부유하듯, 산책하듯 소로의 문장을 그냥 읽는 것이다. 소로는 [월든]을 통해 인생의 정답이 아닌 마음 가는대로 살며, 느끼는대로 말하고 쓰며, 그래서 가끔은 모순적이긴 해도 괜찮음을 보여준다. 내 삶의 주인으로, 내 인생의 저자로 내가 중심을 잡고 서 있으면 다 괜찮음을 이렇게 멋지게 말해줄 수 있다니 그래서 나는 [월든]을 좋아한다. 


  [도시인의 월든]은 [숲속의 자본주의자]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박혜윤 작가님의 책이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과를 졸업하고 4년 간 기자생활을 하다가 미국워싱턴대학교에서 교육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가족과 함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의 시골로 들어가 임금노동에 종사하지 않는 삶을 산다.


  "정기적인 임금노동에 종사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도 생존할 수 있을까?" 

 

  실험처럼 시작된 '은둔'은 정혜윤 작가님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되는 멋진 삶을 선물한다. 문명을 움직이기 위해서 모든 개인들은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같은 속도로 더 많은 것을 늘 생산해야 하지만 정혜윤 작가님은 이에 반항한다. 정혜윤 작가님은 삶에 여백이 있음이 좋음을 알게 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고, 내가 내 삶의 유일한 주인이어야 하고, 세상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나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함을 깨닫는다. 그동안 배운 걸 사회에 되돌려줘야 하지 않냐, 깊은 산 속에서 소비를 줄여 소득없이 사는 사람은 패배자가 아닌가, 등의 사회적 시선은 무시해버린다. 세상일에는 정답이 없고, 그저 내가 원하고 내가 주인인 삶을 살면 된다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옥수수가 자라는 것만 바라보고 있어도 내게는 그 무엇보다도 의미있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

 

  [월든]에서 인상적이었던 문장 중에 '집안일을 즐거운 소일거리라고 생각해라.'가 있었는데 박혜윤 작가님 역시 집안일을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집안일은 굉장히 하찮지만 끝이 없다. 오늘 먹은 걸 치우고 오늘 입은 옷을 빨아도 내일이 되면 똑같은 양의 일이 쌓여 있다. 집안일은 절대로 탈출할 수 없기 때문에 공포로 다가오기도 하는데, 저자는 어느날 문득 깨닫는다.내가 더럽힌 변기를 남에게 청소시킨다는 게 말이 되는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 존재의 핵심은 집안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우리 삶은 아무 의미 없지만 의미없음에 우울해하거나 고민하지 말고 집안일을 시작하는 거다. 내가 먹은 그릇을 치우고, 내가 더럽힌 화장실을 치우다보면 이 하찮은 노동에서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박혜윤 작가님은 아이들이 가사를 주도적으로 하게 하는데, 집안일을 통해 삶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집안일의 하찮음을 통해 모든 것을 하찮게 바라볼 수 있는 태도를 배울 수 있고, 하루만 물컵을 치우지 않으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기 때문에 오늘 하루 물컵을 닦지 않음이 결국은 죽음과 같다고. 집안일에서 시작해 죽음을 논하기까지 한다.

 

  퇴근무렵이 되면 늘 오늘 저녁을 뭘 해먹나,를 고민하는데 대충 먹어야지,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가사분담을 해서 지금 고등학교 딸아이는 빨래개기를, 재활용 버리기를 담당했던 아들이 대학생이 되면서 떨어져 지내게 돼 그 일이 남편 몫이 됐다는게, 내가 그 동안 아이들에게 삶의 하찮음을 가르치고 있었다는 생각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기도 했다. 내 꿈은 둘째가 대학교를 졸업하는 6년 후에 회사를 그만두고 인적이 드문 산 속에 있는 폐가를 구입해 리모델링해서 자연과 동물과 가까이 사는 것이다. 다들 노후자금을 걱정하고 투자에 골몰하고 있을 때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을 꿈꾸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도시인의 월든]을 읽으면서 다 괜찮다,는 위로를 받았다. 모든 일에는 정답이 없으므로 지금 당장 노후 자금을 준비하지 않고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지 않더라도 내 마음이 가는 곳이 그 곳이라면 다 괜찮다고, 그렇게 살아도 충분히 멋지고 의미있다고 내 어깨를 토닥여주는 책이었다.

집안일에 매진하는 건 내게 있어서 죽음을 기억하는 방법이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말한 지혜, 즉 죽음을 기억하고 매 순간 충실하게 사는 일을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어떻게 내일 죽을 것처럼 살 수 았는가? 그러다가 오래오래 살면 어떡하나? 그런데 드딛어 매 순간 죽음을 생각하며 오늘 이 땅에 발을 꼭 딛는 법을 알아냈다. 나 자신도, 이 세상도, 별것 아닌 나 자신이 살아가는 인생도 하찮다. 그걸 똑바로 바로 응시하는 일은 바로 집안일을 하는 것이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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