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서은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행복해져야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나? 


  25살에 사랑에 미쳐서 결혼을 하고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았다. 밥도 한 번 해보지 않고 시집을 갔더니 살림도 양육도, 생전 남이었다 가족이 된 시댁과의 관계맺기도 모든 게 힘들고 서툴렀다. 신랑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안되서 어린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겨가며 맞벌이를 했고 지금까지 둘째를 낳고 3개월 간 출산 휴가로 쉬었던 거 외에 단 한 번도 쉼 없이 일을 했다. 아이들 한 끼 끼니를 챙기고 그날의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한달 열심히 돈을 벌어 가계 경제가 구멍나지 않게 살림을 살고, 그저 하루, 일주일, 한달동안 해야 할 일을 잘 해내려 애써가며 살다 보니 아들은 21살이 됐고 딸은 고2가 됐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가 생겨 책을 읽기 시작했고, 좋아하는 반려동물을 들이다 보니 강아지2명, 고양이 2명 다견 가족이 됐고, 아들이 대학을 가고 딸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시간적 여유가 더 많아져 유튜브도 하고 명상 수업도 듣고 홈트로 요가도 꾸준히 할 수 있게 됐다.


  뭔가를 이루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나? 그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시간 조율을 해가며 하루 하루 버티며 살다 보니 지금에 도착해있다. "불행하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 "행복해져야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처럼, 그저 최선을 다해서 살다보니 "불행"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보통의 날들은 무탈하게 흘러갔고 가끔은 괴롭고 가끔은 기뻤다. 괴로움과 고통없이 평화로우면 다행이다 싶었고 가끔은 괴롭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은 평온한 일상이 행복이지 않나,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서은국 교수님은 [행복의 기원]에서 "인간은 행복해지기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행복을 도구로 이용한다."라고 하면서 우리는 생각보다 동물적인 본능에 의해 많은 것을 선택한다고 한다. 특히 생존에 위협을 느낄수록 본능에 더 이끌리게 되는데, 가끔 뉴스에 나오는 아이의 위험 앞에서 초증력자가 된 아빠나 엄마 역시 순간적인 본능에 이끌린 게 아닌가 싶다. 행복이라는 감정 역시 우리 뇌에 동물적으로 새겨져 있는데 특히 생존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했을 때 행복을 느낀다. 사냥을 해서 먹을거리를 확보하거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서 짝짓기 대상을 찾거나. 자기 생존을 위해 자신보다 가끔은 더 힘이 센 상대와 싸움을 하기도 하고 미지의 땅을 찾아 나서야 하는데 두려워도 한 발 내딛게 하기 위해 우리에겐 강력한 보상이 필요하고 우리의 뇌는 쾌감이라는 감정, 행복이라는 감정을 선물로 준다. 행복은 거대한 이상이나 가치, 도덕적 지침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일 수밖에 없다. 


  대신 만족감이 오래 지속되면 다시 사냥에 나서거나 미지의 땅을 찾지 않기 때문에 만족감, 행복이라는 감정은 금방 소멸되고 우리는 또 다시 보상을 받기 위해 한 발을 내딛는다. 그래서 서은국 교수님은 행복은 아이스크림과 같다고 한다.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 있으면 금방 녹아 흘러내리듯이 행복이라는 감정 역시 내가 움켜 잡았다고 느끼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는 것. 평생 원했던 일을 이루더라도 그 행복감은 아이스크림처럼 금방 흘러 내린다는 것. 로또에 당첨되고 주식이 대박나고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고 원하는 집을 사더라도 행복감은 금방 사라지고 우리는 또 다른 행복에 대한 갈망으로 불안해 하고 두려워한다. 인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행복을 위해 내 인생을 모두 투자하고 사는 건 그래서 허무하다. 차라리 사소하고 작은 행복감, 기쁨을 여러 번 자주 반복적으로 느끼며 살 때 행복하다,는 감정은 훨씬 더 오래 지속되지 않을까? '소확행'이야말로 서은국 교수님이 말하는 행복의 기원이지 않을까?

 


  결혼해서 아이들을 키우는 21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저 무탈하게 하루가 지나가길 바라면 순간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행복감을 느꼈을까. 돌이 되도록 걷지 못하던 아들이 첫 발을 내딛고 나를 향해 걸어오던 순간, 돌잔칫날 멜빵 청치마를 입고 분홍 모자를 쓰고 뛰어 다니던 딸이 다른 아이보다 빨리 걷는다며 자랑하던 순간, 행복했던 순간들이 너무 많아서 나열을 할 수가 없을 정도다. 내 인생의 무탈하다고 느꼈던 모든 순간에는 이런 작은 행복들이 가득 차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난 늘 그런 감정을 느끼며 산다. 작고 하찮아 보이지만 확실한 기쁨, 만족감, 행복. 홈트로 요가를 하면서 처음 머리서기를 성공했던 순간, 12층까지 계단을 타고 올라와 숨이 찰 때의 성취감, 어려워서 도저히 못 읽을 것 같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 유튜브를 보고 한 샐러드 파스타를 딸이 너무 맛있다며 엄지를 들어 올리며 먹어줄 때, 그리고 늘 내 옆에 머무르는 뽕이봉구초울이칠봉이. 

  서은국 교수님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기 인생의 갑이 되라고 말한다. 남들의 잣대에 신경쓰지 말고 작고 하찮아 보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보석처럼 빛나는 행복이 되어줄 일들을 하며 40대 후반 내 인생 갑으로 앞으로도 잘 살아나가고 싶다.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은 다른 것 같지만 뇌는 동일한 부위에서 이 둘의 고통을 똑같이 느낀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 타이레놀을 먹으면 이별의 상처가 조금 나아지기도 한다는데,  이십대 때 이 사실을 알았다면 사랑에 미쳐 시집을 일찍 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듯. 






  

행복의 핵심을 사진 한 장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의 내용과 지금까지의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총체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 내면 행복은 결국 이 사진 한 장으로 요약된다.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 한 마디 덧붙인다면 "The rest are details." 나머지 것들은 주석일 뿐이다. - P1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