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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혁명과 반혁명 사이 - 철학자 박구용, 철학으로 시대를 해석하다
박구용 지음 / 시월 / 2025년 1월
평점 :
[빛의 혁명과 반혁명 사이]는 철학자인 박구용 전남대 교수님이 12월 8일 매불쇼에서 한 자신의 발언을 반성하고 사과하기 위해서 쓰기 시작한 책이다. 윤석열의 12.3 내란 사태 이후 국민의 힘 의원들 불참으로 탄핵안이 부결되자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 모였는데, 박구용 교수님은 매불쇼에서 '2030여성들이 정말 많이 참여했다. 여성들을 보기 위해서라도 남성들도 많이 광장에 나와달라.'는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발언을 농담처럼 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김어준 총수님의 팟빵 매거진 [월말 김어준]을 너무 잘 듣고 있고, 특히 철학 코너는 메모까지 하면서 듣고 있던 팬으로서 나 역시 박구용 교수님의 발언에 실망감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평소 '무사유와 무감각'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과 잔인함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동안 여성들이 받아온 차별과 억압에 대한 무감각 때문에 나온 발언이 아닌가 싶어 실망이 더 큰 면도 있었다. 박구용 교수님은 매불쇼에 출현한 다음날 김어준 총수님의 [겸손은 힘들다]에 출현해서 자신이 한 발언을 사과하고 연구실에 스스로를 감금시켰다. 광장에 나와야 하는 시기에 광장에 나오지 못하고 자신이 제일 좋아하던 장소인 연구실을 감옥으로 만들어 10일간 셀프감금을 하면서 집필한 책이 [빛의 혁명과 반혁명 사이]이다.
p. 159 나 역시 오이디푸스처럼 자신의 눈을 파는 반성을 해야만 합니다. 지체된 도덕감각에 대한 처벌을 달게 받아야 합니다. 여기에 생각이 이른 그 순간부터 이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동안 쉬지 않고 그동안 해왔던 이야기를 되새기며 이 책을 쓰고 있습니다. 이 책은 지체된 도덕감각에 대한 처벌로 혁명의 아침에 떠오르는 해돋이를 시민들과 함께 마주하지 못하는 한 철학자의 반성문입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은 비상계엄령을 통해 반혁명을 일으키는데, 시민들은 맨 몸으로 반란군의 폭력을 막아서고 이후 혁명을 일으킨다. 계엄이 선포된 지 한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란 수괴 윤석열은 체포조차 되지 않고 용산 관저를 요새화해서 버티기를 하고 있다. 시민들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매일, 매주 주말마다 광장에 나가 응원봉을 흔들며 윤석열 체포와 탄핵 가결을 외치고 있는데, 박구용 교수님은 지금 우리는 '혁명과 반혁명의 사이'에 놓여있다고 진단한다.
+한국에는 세 가지 혁명이 존재했는데, 역사상 처음으로 '백성이 주권자'라고 천명한 '동학농민운동', 역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이 공화국을 지향한다고 선언했던 '3·1운동', 권위주의적 독재 체제를 끝내고 입헌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한 결정적인 사건인 '5·18민중항쟁'이다. 윤석열의 내란은 촛불혁명의 성과를 부정하는 반혁명 쿠데타이기도 하지만 '동학농민운동', '3·1운동', '5·18광주민중항쟁'을 모두 부정하는 박혁명 쿠데타이기도 하다, 한강 작가님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과거가 현재를 도운 것이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햇다고 했는데, 우리 시민들은 역사적인 혁명의 순간들과 그당시 희생됐던 시민군들을 기억하고 맨 몸으로 국회의사당 앞으로 달려갔다. 그래서 당연히 우리의 혁명이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윤석열 체포를 기다리는 매일매일이 너무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이번 12.3 내란 사태에서 제일 화가 나고 분한 것 중 하나는 정치적인 계산을 하느라 머리 굴리고 있는 최상목 권한대행과 윤석열 체포를 저지하고 정광훈 일당의 집회에 나가 머리를 조아리는 국민의 힘 의원들의 행태이다. 한나 아렌트는 나치 독일의 SS장교로 홀로코스트의 핵심 설계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지켜보고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다. 아이히만은 다정한 남편이자 자상한 아버지였지만 유대인을 가장 빨리 학살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운 악마이기도 하다. 아이히만은 자신에세 내려온 명령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명령을 수행했을 경우 자신이 받을 이익을 계산하기만 했다. 목적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사유하지 않고 계산만 하는 사람은 누구든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한나 아펜트의 '악의 평범성'의 개념인데, 지금 현재 최상목 대행과 국민의 힘 의원들 역시 내란의 목적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내란 사태 이후 어떻게 해야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이 연장될 수 있을지 계산만 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악'이다.
P.54 무사유는 단순한 '생각 없음'이 아닙니다. 무사유는 정신의 소극적인 활동도 아니고, 의식의 무기력증도 아닙니다. 무사유는 적극적인 무시의 활동입니다. 이 적극적인 무시의 활동을 하는 것이 도구적 이성입니다. 한마디로 이익계산에 혈안이 된 독적 이성의 활동이 무사유입니다. 이 맥락에서 아이히만은 명령의 정당성을 따지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이익 계산은 능숙하게 수행한 악마, 가장 악랄한 악마였습니다.
+윤석열은 후보 시절 "극빈의 생활을 하고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은 자유를 모른다."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자유는 사람이면 누구나에게 부여되는 권리인데 윤석열은 자유를 권리가 아니라 자격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과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선별이 가능하다. 윤석열은 자유의 화신을 자처하며 자유의 중요성을 부르짖지만 본인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유라는 가치에 반대하는 세력이라며 적으로 규정하고 탄압한다. 이번 비상계엄령 당시 계엄선포문을 보면 윤석열이 생각하는 자유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데, 적이라고 규정한 상대편의 자유는 아예 무시하고 윤석열 본인만이 누릴 수 있는 가치를 자유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메타인지는 '내가 인지하고 있는지를 인지하는 것', 즉 자기 객관화의 문제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총선에서 참패한다면 '내가 국정수행을 잘못 해서 참패를 했구나'라고 생각하고 국정 기조를 바꾸려고 하겠지만 메타인지 능력이 아예 없는 윤석열은 '나는 잘했는데, 민주당이 부정선거를 해서 참패했어. 언론이 문제니 언론을 통제해야 겠어.' 라고 생각한다. 메타인지 능력의 부족으로 윤석열은 비상계엄령까지 생각하고 행동에 옮겼고, 지금도 가상에 세계에서 자신은 자유의 화신이자 억압받는 피해자라고 규정하며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끌어모으고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기득권의 자리에 메타인지가 부족한 사람이 너무 많이 분포되어 있다는 게 아닐까. 나는 이번 내란 사태를 통해 우리가 그동한 생각했던 '성공'이라는 기준에 부합했던 인물상을 재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메타인지 능력이 뛰어나고 공감력이 뛰어나고 관찰자적 시점이 아닌 참여자적 시점으로 국민을 대할 수 있는 사람. 이번 기회에 싹 다 물갈이가 되고 젊은 세대가 바라는 '성공'의 기준 역시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5/0114/pimg_7869671494569859.jpg)
[빛의 혁명과 반혁명 사이]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와 2부가 현재 윤석열이 왜 내란을 일으켰는지, 윤석열 같은 대통령은 어떻게 탄생됐는지,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비인간적인 결정적 사건들을 통해 윤석열 정부를 분석했다면 3부에서는 빛의 혁명 성공 후 우리 사회가 만들어갈 제7공화국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2부와 3부 사이에 브릿지 챕터를 통해 제7공화국의 논리적 명제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철학이 고리타분하고 현실과 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철학은 시대를 읽고 시대를 해석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학문이다. 윤석열은 도대체 왜 안 잡혀 가는지 이 시국은 언제 끝이 날지 내란성 불면증을과 우울증을 앓고 계시는 분들이 느긋한 마음으로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면서 읽으면 너무 좋은 책이지 않을까.